아시아 서남부 중동에 위치한 요르단. 명절 때면 양을 잡아 여럿이 나누어 먹는 만사프 요리부터 즉석에서 흔들어 만드는 요거트, 이젠 유럽에서도 일반화된 케밥까지 가깝고도 먼 아랍 요리를 만나본다.
사막, 석유, 전쟁, 테러. 우리가 ‘아랍’ 하면 머릿속에서 연관지어버리는 키워드다. 하지만 이런 연상작용은 ‘한국이라는 나라 이름을 들으면 떠오르는 것이라곤 드라마뿐이다’라는 문장처럼 온당치 못하다. 그리고 요르단은 그런 ‘아랍’의 스테레오 타입을 가장 경쾌하게 부숴주는 나라 중 하나다. 사막도 있지만 비옥한 농토도 있다. 세계에서 올리브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스페인에 올리브를 팔아먹는 나라다. 하지만, 기름이라곤 올리브 기름뿐이다. 석유는 거의 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나라는 관광업에 목을 맨다. 천성적으로 손님을 좋아하고 대접하는 것을 좋아하는 유목민의 기질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이 나라 사람들에게 관광업이란 퍽 어울리는 선택이다. 그렇지만 이스라엘과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와 시리아 사이에 끼어서 저 혼자 평화롭길 기대한다는 것도 난센스다. 그래서 이 나라는 온갖 이질적인 것들로 넘쳐난다. 전쟁과 평화, 사막과 과수원, 종교적인 엄숙주의와 냉소적인 세속주의. 그리고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것들은 언제나 그 경계 면에 자리 잡고 있기 마련이다.
높이 솟은 첨탑에서 금요일의 3번째 기도 시간을 알리는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후세인 모스크를 가득 채운 사람들은 일제히 메카를 향해 납작 엎드렸다. 사막의 태양이 한껏 힘을 얻기 시작하는 6월의 오후, 모스크 안은 사람들의 체온과 신앙의 열기로 후끈 달아오른다. 이 기도가 끝나면 사람들은 광장으로 몰려나가 미국을 성토하는 시위를 시작할 참이다. 때는 2004년,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군의 이라크 침공 작전이 펼쳐진 지 1년이 지났을 시점이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 사람들의 심기는 뜨거워진 아스팔트만큼이나 달궈져 있었다. 이럴 땐 꼭 필요한 것만 취재하고 이면도로의 시샤, 즉 아랍식 물담배가 있는 카페로 퇴각하는 것이 상책이다. 각종 향료를 배합한 담배에 숯불을 얹고 그 연기를 물에 통과시켜 흡입하는 시샤는 아랍 사람들에게 허락된 몇 안되는 길티 플레져 중 하나다. 그래서 전통 카페에는 이 시샤를 준비하기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슬슬 시장기가 느껴지면 카페를 나서서 주변 골목을 기웃거려본다.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역삼각형의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돌려가며 굽고 있는 집이 금방 눈에 띈다. 샤와르마라고 부르는 아랍식 샌드위치다. 우리나라엔 터키식 이름인 ‘케밥’으로 알려져 있지만 아랍에 왔으면 아랍식 이름으로 불러주는 것이 도리다. 샤와르마는 요르단에서 가장 만만하게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양이나 닭 중 좋아하는 쪽을 선택하면 노릇하게 잘 구워진 가장자리 부분을 썩썩 썰어서 야채와 함께 납작한 빵에 돌돌 말아준다. 하지만 눈앞에 보여지는 과정이 간단하다고 해서 이 샤 와르마를 패스트푸드로 치부하는 건 어쩐지 미안하다. 잘 손질한 닭이나 양의 살코기를 레몬즙, 마늘, 오레가노 등의 허브 양념에 하루 정도 재워야 하기 때문이다. 굽기 위해서도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 꼬챙이에 꿰어 세로로 돌려가며 굽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불룩 튀어나오지 않도록 칼로 다듬어가며 길쭉한 팽이 같은 모양을 만든다. 구울 때도 은근한 불에 오래 구워야 맛있게 익는다. 제대로만 만든다면 패스트 푸드 전문점의 햄버거 따위는 댈 것이 아니다.
끈기와 인내가 만들어낸 요르단식 요거트
어느 정도 시장기가 가셨다면 이젠 사막으로 나가볼 차례다. 우리 문화의 원형이 만주 벌판에 있다면 요르단 문화의 원형은 사막의 텐트 안에 있다. 사막에 사는 유목민들은 베두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베두인은 ‘도시가 아닌 곳에 사는 사람’을 뜻하는 아랍어 바드우를 유럽 사람들이 잘못 옮긴 말이기도 하다. 암만 주민들은 늘 사막을 꿈꾸며 조금 여유가 있을 때마다 도시의 집을 놔두고 사막으로 가서 천막을 치고 살다 온다. 쫓겨나면 죽음뿐인 사막 한가운데에서 자신의 천막 아래로 찾아든 손님은 귀한 존재다. 주인은 먼저 차를 대접한다. 첫 잔은 주인이 마시고 그 잔을 씻어서 손님에게 내민다. 만일 손님에게 대접할 만한 차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주인은 그 찻물을 미련 없이 땅에 부어버린다. 그리고 다시 준비해 오라고 지시한다. 한 잔의 차로 어느 정도 원기를 회복하고 나면 이젠 요거트를 맛볼 차례다.
걸쭉한 죽처럼 진한 한 그릇의 요거트는 한 여성의 반나절이 오롯이 담긴 귀한 음식이다. 요거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양들을 불러모아야 한다. 듬성듬성 자라난 풀을 억척스럽게 뜯고 있던 양들은 베두인 여인이 부르는 소리를 듣자 앞을 다퉈 모여든다. 100마리가 넘는 양 떼는 여인의 손놀림 앞에 굴비처럼 밧줄에 지그재그로 목이 엮인 형태로 늘어선다. 그렇게 양들이 정렬하는 사이 다른 여인이 젖을 짜기 시작한다. 신속하게 하지 않으면 질식하는 녀석이 생길지도 모르는 위험한 작업이다. 이렇게 모은 젖으로 요거트를 만드는 방법이라곤 지난번에 먹고 남은 요거트를 조금 섞어 양가죽으로 만든 부대에 담고 계속 흔드는 것뿐이다. 유산균이란 녀석은 고집 센 당나귀를 닮았다. 엉덩이를 힘껏 때린다고 해서 속도가 많이 빨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인내심을 가지고 부탁하듯이 재촉할 뿐이다. 아기 요람 흔드는 것처럼 권태롭게 양가죽 부대를 흔들다 보면 그 안의 젖은 어느새 요거트로 바뀌어 있다.
이렇게 만든 요거트는 바로 마시기도 하지만 소금을 섞고 굳혀서 자메드라는 덩어리로 만들기도 한다. 훨씬 더 오래 보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자메드는 요르단 사람들이 최고의 요리로 꼽는 만사프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재료다. 요르단 사람들은 귀한 손님이 찾아오거나 축하할 만한 일이 생기면 친척중에서 도축 기술이 있는 사람을 찾는다. 만사프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만사프는 요르단식 ‘양 한 마리 요리’다. 머리부터 엉덩이까지 한 마리가 온전히 들어가는 만사프를 대접받는다는 것은 요르단에선 최상의 접대다. 자신이 가진 가장 귀한 것을 통째로 선물한다는 의미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율법에 따른 금기가 많은 아랍에서는 고기라고 해서 다 같은 고기가 아니다. 신의 이름으로 법도에 따라 도축된 고기만이 ‘할랄(허용된 것)’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로마의 원형극장이 남아 있는 유서 깊은 역사 도시 제라쉬 근교에서 나는 만사프를 준비하는 한 가족을 만났다. 1980년대 초반에 생산된 듯한 자동차가 힘겨운 신음 소리를 내며 개울가에 멈춰 서자 놀랍게도 그 안에서 다섯 사람과 양 한 마리가 내렸다. 이들은 살아 있는 양을 사서 직접 도축하기 위해 그 방면의 전문가인 친척을 차에 태우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한눈에 봐도 억세 보이는 팔을 가진 사내는 양을 개울가로 끌고 가 물을 먹인다. 율법에 따라 양이 마지막으로 배를 채우고 목을 축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사지가 묶인 채 자동차 뒷좌석에 실려온 양은 사람들이 아무리 호의를 베푼다 해도 죽음이 닥쳐온 것을 직감한다. 무척이나 우울한 표정으로 물을 마시는 둥 마는 둥 하는 양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사내는 잠시 눈을 감는다. 전원이 나간 로봇처럼 양은 순식간에 무생물이 된다. 단말마의 비명조차 남지 않는다. 그 다음은 일사천리다. 양은 20분 만에 잘 다듬어진 식재료로 변한다.
양을 잡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면 만사프를 준비하는 데에는 하루가 꼬박 소요된다. 큰 솥에 양 한 마리의 고기를 다 넣고 육수를 우려내는 것부터 시작해 여기에 요거트를 굳힌 자메드를 넣고 저녁까지 삶는다. 양고기가 충분히 익었을 때쯤 큰 쟁반에 밥을 담고 여기에 고기를 올린다. 그리고 그 위에 아몬드와 잣 등의 견과류를 듬뿍 뿌리고 농후하면서도 새콤한 맛이 나는 육수를 넉넉히 부으면 완성이다. 이제 쟁반마다 서너명씩 둘러앉아 손으로 밥과 고기의 감촉을 즐겨가며 부지런히 입안에 밀어넣으면 그만이다. 이렇게 준비한 만사프는 어느 모로 보아도 도시민의 음식은 아니다. 조막만 한 고깃덩어리에 푸른 잎사귀 하나와 꽃 한 송이가 올려진 레스토랑의 메뉴와는 세계관 자체가 다른 음식이다. 사막을 건너온 손님을 맞이하는 유목민의 환대가 그 안에 담겨 있다. 그래서 이 음식은 따뜻하다. 풍요롭다. 해 저문 사막이 다시 죽음의 공간이 되어갈지언정, 텐트 안에서 만사프를 놓고 둘러앉은 사람들 사이로는 따스한 생명이 흘러넘친다.
글 탁재형(다큐멘터리 PD) | 에디터 이경현 | 일러스트레이터 김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