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는 가구를 중심으로 한 세계 최대 규모의 디자인 축제다. 5박6일간 축제의 일원이 되어 앞으로 우리의 삶과 연동될 라이프스타일 동향을 내다보고 흥겨웠던 축제의 현장을 밀착 취재했다.
Viva Milano!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지난 4월 17일부터21일까지 열린 ‘2015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 Salone del Mobile’. 세계 유명 가구 브랜드의 행보와 푸오리 살로네에서 만난 전시 공간을 통해 새로운 인테리어의 흐름을 짚어본다.
1 로 피에라에서 열린 살로네 델 모빌레 전시장. 2 미켈레 데 루키의 설치 전시 <더 워크>부스. 3 아르떼미데의 쇼윈도를 장식한 카를로 라티의 프리 픽셀 조명.
Review
에디터 신진수가 본 살로네 델 모빌레
매년 4월에 열리는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살로네 델 모빌레 기간을 전후해서 열리는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건축가, 기자 그리고 디자인에 관심 있는 모두에게 열려 있는 축제의 장이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 동안 로 피에라역에 위치한 전시관에서 열리는 살로네 델 모빌레는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브랜드의 신제품을 발표하는 자리이자 각국에서 몰려든 바이어와 일반 관람객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다는 비유를 실감케 한다. 살로네 델 모빌레는 언제부턴가 바이어와 업체를 위한 상업적인 전시에 충실해 디자인에 대한 순수한 접근의 의미는 다소 퇴색했지만 여전히 세계적인 국제가구박람회다운 위용을 갖추고 있다. 올해는 2년에 한 번 열리는 조명 전시인 에우로 루체 Euro Luce관이 가장 신선했다. 스타 디자이너로 자리를 굳힌 마이클 아나스타시아데스를 비롯해 굵직한 조명 브랜드가 전시장을 밝게 비췄고 가구 디자인보다는 의미를 확장해 조명 디자인의 장점을 살린 각 브랜드의 제품을 둘러보는 재미가 있었다.
가구 전시관은 브랜드마다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전시 인테리어에 힘쓴 모습이 역력했다. 카시나와 카펠리니는 늘 그래왔듯 클래식한 전시 부스를 꾸몄고 비트라는 창고를 개방한 듯한 넓은 면적의 부스를 자랑했다. 거대한 원숭이 램프로 발걸음을 멈추게 한 BD바르셀로나, 바닥재로 큰 오브제를 만든 볼론, 겨울 왕국 못지않은 투명한 아름다움을 선사한 글라스 이탈리아 등 자신의 제품을 한껏 돋보이게 만든 부스 인테리어가 볼 만했다. 또 여전히 작년에 이어 식물이 인테리어의 요소로 자리 잡았는데 컨셉트의 격전장 같은 전시장에 녹색 식물이 데커레이션 요소로 곁들여져 편안한 축제 분위기를 돋우었다. 에우로 루체와 마찬가지로 2년에 한 번꼴로 열리는 오피스 가구 전시관인 워크 플레이스 3.0에서는 단연 미켈레 데 루키의 설치 전시
1 파올라 나보네가 디자인한 판다가 서 있는 카펠리니 부스. 2 아웃도어 가구 브랜드 파올라 렌티의 야외 전시장. 3 색색의 pvc를 엮어 만든 마르니의 팔로케마오 시리즈. 4 구프람의 오브제 ‘메타카투스’. 5 디젤홈의 ‘코스믹 디너 문’ 접시. 6 카펠리니의 행잉 ‘스크린’ 시스템.
에디터 박명주가 본 푸오리 살로네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 기간에 개최되는 장외 전시 푸오리 살로네는 밀라노 시내에 포진되어 있는 다양한 숍과 전시장, 박물관에서 일제히 열린다. 정형화되지 않은 자유로운 전시 형태 그리고 내실 있는 전시는 엄청난 흡입력으로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올해는 밀라노 엑스포가 2주 뒤에 열릴 예정이라 작년보다 대규모 전시가 많이 열렸다.
프랑스, 일본, 브라질, 호주, 독일 등 국가를 대표하는 디자인과 산업 전반에 걸친 디자인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장도 눈길을 끌었다. 푸오리 살로네에서 가장 먼저 발걸음을 옮길 만큼 중요한 곳은 스파지오 로산나 오를란디. 올해 로산나의 앞마당에는 구프람의 팝 디자인 전시를 중심으로 셀레티와 선 브렐라의 유쾌한 디자인들이 첨가돼 유머 감각을 더한 디자인에 대한 유행을 예감할 수 있었다. 수많은 갤러리 가운데 닐루파 Nilufar 갤러리 전시는 엄지손가락을 들어줄 정도로 단연 압도적이었다. 20세기 디자인의 마스터 피스와 현대 작가와 디자이너들의 새로운 가구가 함께 전시된 이 공간에서는 럭셔리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읽을 수 있었다. 이외에도 이케아 컨템포러리 팝업 스토어에서는 디자이너와 브랜드의 이상적인 컬래버레이션이 단연 돋보였고, 생활의 중심이 되고 있는 주방 트렌드를 극명하게 드러낸 전시였다. 작년부터 불어온 식물 데커레이션의 바람은 올해 그 방점을 찍었다. 방문하는 숍마다 약속이라도 한 듯 화분으로 공간을 단장했으며 키친 가든을 둔 공간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식물을 성장시키는 LED 조명과 가든 용품들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할 분야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로 피에라를 벗어나 푸오리 살로네로 향하는 발걸음은 언제나 가볍게 들떠 있었다. 가구과 인테리어 용품에 집중하여 분석하는 전시장과 달리 한층 폭넓은 시각으로 라이프스타일 전반의 흐름을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디자인 판도를 뒤흔드는 파격적인 혁명은 없었지만 내년을 기대하기에 충분했던 것만으로도 말이다.
1 기하학을 입은 나니 마르키나
스페인의 대표적인 카펫 브랜드 나니 마르키나는 기하학적인 패턴의 멜란지 Melange 컬렉션을 선보였다. 디자이너 시비라는 여러 가지 패턴과 색을 섞어 만든 20여 가지의 리듬감 넘치는 그래픽 요소를 고안했다. 파키스탄 장인들이 섬세한 전통 기술로 짠 카펫은 러그 이상의 예술품 같았다.
2 대리석 꽃병, 치코
이탈리아의 대리석 회사인 치코는 자하 하디드와 함께 대리석 소재의 테이블과 꽃병을 선보였다. 자하 하디드는 반쯤 벌어진 꽃송이 모양의 꽃병 ‘타우’를 여러 가지 크기와 색깔로 선보였다. 소재는 대리석이지만 종이나 패브릭처럼 섬세하게 주름 잡힌 모양을 표현하기 위해 정교한 기계 작업이 필요했다고. 또 다리가 액체가 흐르는 듯 유연하게 내려오는 ‘쿼드’ 시리즈를 선보여 자하 하디드의 디자인 특성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3 모듈에 빠진 까사마니아
까사마니아는 식물과 두 가지 신제품을 디스플레이해 푸르고 싱그러운 전시 풍경을 연출했다. 이번 신제품인 소파 ‘서밋’과 커피 테이블 ‘릴리’는 모듈 형식을 채용한 제품으로 까사마니아는 이번 시즌 작은 집, 꼭 필요한 것만 갖춘 집을 위해 편안하면서도 실용적인 컬렉션을 완성했다. 줄리오 라케티가 디자인한 소파 ‘서밋’은 원하는 형태로 조합할 수 있는 소파 뒤에 가죽 끈이 달려 있어서 이동이 편리하다. 커피 테이블 ‘릴리’는 사이드 테이블로 트레이 등을 올려 활용하거나 발받침으로도 활용할 수 있어 공간 효율성이 높다.
4 론 아라드의 힘, 모로소
모로소의 디자이너 군단이 만든 가구들은 파트리시아 우르퀴올라가 설계한 나무 막대로 만든 숲 속에서 마치 휴식이라도 취하듯 군데군데 놓여 있었다. 모로소의 부스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디자인은 론 아라드의 글라이더 소파였다. 등받이와 시트 팔걸이가 하나로 이어진 불륨감 넘치는 이 소파는 앉았을 때 흔들의자처럼 앞뒤로 움직이는 반전의 재미가 있다. 보라색에서 붉은색으로 물든 원단은 독일의 텍스타일 회사 페브릭 Febrik의 제품으로 밝은 회색에서 짙은 회색으로 물드는 원단을 입은 소파도 선보였다. 또 한 가지 주목받았던 디자인은 길거리에 버려진 구겨진 매트리스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매트리지아’ 소파로, 상식을 깨는 디자인으로 많은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5 벌써 가을, 마리메꼬
핀란드를 대표하는 브랜드 마리메꼬는 올해도 로산나 오를란디를 자신들의 컬렉션 발표 공간으로 선택했다. 단독주택처럼 예쁜 창문과 식물이 가득한 오를란디의 공간에서 마리메꼬는 2015년 F/W 컬렉션을 선보였다. 화려한 디스플레이는 없었지만 마리메꼬의 그래픽적인 패턴을 입은 식기류와 쿠션 등을 작지만 알차게 소개했다. 밝고 화려한 원색이 주를 이룬 S/S 시즌에 비해 톤 다운된 붉은 계열의 색깔을 주로 사용한 고급스러운 느낌의 마인드 스케이프 F/W 컬렉션으로 바쁜 현대인들이 휴식과 에너지를 집 안에 들일 수 있도록 제안했다.
6 젊어진 CH88, 칼 한센&선스
물소의 뿔을 닮은 곡선이 살아 있는 등받이가 멋진 디자이너 한스 베그너의 CH88 의자가 다채로운 색감의 옷을 입고 등장했다. 원목과 스틸의 조화로움에 겹쳐서 보관할 수 있는 편리함까지 갖췄다.
7 가든을 위한 제안, 세라룽가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아웃도어 브랜드인 세라룽가에서도 풍성한 신제품을 발표했다. 정원이나 테라스를 구성할 가구와 오브제, 조명이 주를 이뤘는데 세라룽가의 대표주자이기도 한 조명군에서 특히 시선을 사로잡는 아이템이 많았다. 꿀단지 같은 모양의 조명 ‘허니’, 3개의 다리로 안정적인 디자인의 조명 ‘바바’의 새로운 버전, 콘크리트 베이스로 다시 선보인 조명 ‘플로렛’ 등이 대표적이었고 실내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벤치인 플레이 우드와 오브제 겸 조명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병아리 모양의 조명 ‘펄치노’와 강아지 모양의 스툴 겸 오브제인 ‘도기’ 그리고 테이블과 라운지 체어 등이 조금씩 달라진 버전으로 출시됐다. 윗부분은 조명으로 활용 가능하고 철제 구조물을 따라 식물을 자연스럽게 연출할 수 있는 수직 정원 형태의 ‘네트라이트’도 신선한 디자인의 아웃도어 가구였다.
8 귀여운 동물 왕국, 보사
보사는 고전적인 도자 기술을 바탕으로 위트 있는 세라믹 오브제를 선보이는 브랜드다. 올해 신제품의 주제는 동물 모습을 재해석한 애니멀리타 ANIMAlitá로 디자이너 샘 바론, 하이메 아욘, 세바스찬 헤커. 니카 주판크 등의 디자이너가 해석한 재미있고 컬러풀한 세라믹 오브제를 선보였다.
에디터 박명주 · 신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