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작업실에서는 한창 몰두 중인 도무송 시리즈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과 그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다.

박지현 작가와 반려동물 토끼 용옥이. 을지로 골목을 떠도는 어린 토끼를 데려와 키우게 되었다.
쇳가루를 날리며 활력 넘치게 일하는 상인들을 보면 을지로에 있음을 온몸으로 체감하게 한다. 너나 할 것 없이 제각각 바삐 움직이고 있는 골목을 따라 비주얼 아티스트 박지현의 작업실을 찾았다. 사실 그의 작품은 지난해 복합 문화 공간 성수야드의 전시를 통해 알게 됐는데, 멀리서 보았을 때 회화 작품과 같은 이미지가 눈길을 끌었다. 홍익대학교 조소과 학사와 석사 과정을 거친 그는 2002년, 미국에서도 석사 과정을 수료한 뒤 서울과 뉴욕을 중심으로 작업을 펼치고 있다. 그는 일상에서 사용되는 본래의 익숙한 의미를 색다른 시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며 입을 열었다. “처음 작업했던 주제가 ‘말장난’이었어요. 본래의 의미를 없애고 단어를 왜곡시켜 다른 의미가 생기게 만드는 작업을 했어요. 예를 들어, 유니콘의 뿔을 없애고 그 자리에 옥수수를 대체한다든지 과거 뉴욕에서 생활할 때 먹었던 음식에서 영감을 얻은 ‘치킨앤브로콜리’ 작품은 당연히 중국 음식인 줄 알고 매일 먹은 음식이 사실은 미국인의 입맛에 맞게 변형된 거라는 걸 깨달으면서 무엇이 본질인지 깊이 있게 연구한 작업이에요.” 그는 본래의 의미와 작가가 해석한 의미 간에 생기는 대립을 탐구하는 작업을 한다. 현재 몰두하고 있는 도무송 시리즈 역시 어떠한 목적에 의해 쓰였던 것이 그 기능을 상실한 상태에서 전혀 다른 의미로 재생시키는 것에 흥미를 느꼈고 이를 기반으로 한 작업을 하고 있다.

선반장에는 과거 뉴욕 생활을 회상하며 제작한 ‘치킨앤브로콜리’ 작품이 놓여 있다.

형태도 색감도 다양한 도무송 시리즈.

벽에 달린 유니콘은 그가 초기에 제작한 작품이다. 이외에도 꾸준히 작업해온 작업물이 곳곳에 있다.
“도무송이라는 것이 원이나 하트 등 직선으로 재단할 수 없는 형태의 틀을 만들어 프레스 기계로 찍어내는 인쇄 기법을 말해요. 인쇄소에서 어느 정도 쓰고 나면 폐기 처분을 하는데, 저는 이렇게 버려진 것을 조형적인 형태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을 하죠.” 그에게 버려진 재료는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작업실이 인쇄소 골목에 자리해 손쉽게 구할 수 있고, 이를 작업으로 승화해보겠노라 눈에 딱 걸려든 것. 소재는 합판과 쇠로 그 위에 액체 상태의 컬러 레진을 입혀 완성된다. “합판은 버린 주인한테 양해를 받고 가져와요(웃음). 업사이클링 같은 형태가 되어버렸는데, 어쨌든 저는 버려진 것에 새 생명을 주는 작업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의 기능은 없애버리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거죠.” 박지현 작가가 덧붙였다. 벽에 거는 월 오브제 같은 도무송 시리즈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질문하자 그는 부조 조각이라 답했다. “누군가는 회화 같다고 표현하지만, 회화나 완전한 3D 조각이라 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형태이기 때문에 부조 조각이라고 설명하고 싶어요.” 그는 높낮이를 달리 재단하거나 완전히 분해해 조형적으로 재조립하는 등 완성된 작품의 형태에 있어서는 한계가 없다고 말한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감각으로 서로 대입시켜보며 어울리는 색상을 조합하고, 조립하면서 매번 형태가 달라질 수 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도무송 시리즈를 확장해나갈 계획이에요. 예를 들어 벽에서 끌어내려 바닥에서 구축되어 쌓이면서 생기는 구축적인 조형미를 강조한다거나 아니면 거꾸로 쌓을 수도 있어요. 방법은 여러 가지가 될 것 같아요. 확실하지는 않지만 분명 재미있는 완성물이 나올 거라는 확신이 들어요.” 박지현 작가는 머지않아 산업화랑과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조금 더 확장된 도무송 시리즈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전했다.

직접 재료를 손질하고 가공하는 과정을 거치는 작은 방.

라인 시리즈로 제작한 ‘마세라티 Maserati’ 작품.

‘치킨앤브로콜리’ 드로잉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