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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을 통해 생성과 소멸, 기다림과 순환의 시간을 다뤄온 이배 작가의 작업 세계.

이배 작가. Photo: Sangtae Kim © Museum SAN
청조갤러리 3관 , Video, Sound, Color. 13min 05sec, 2026. Photo: Sangtae Kim © Museum SAN

나무는 가마 속에서 불타며 형태를 잃고, 오랜 시간에 걸쳐 식으며 새로운 물질로 재탄생한다. 완전하게 소멸한 후에야 비로소 피어나는 생명력, 이배 작가는 지난 30여 년간 그 역설의 시간을 ‘숯’이라는 물질 안에서 붙들어왔다. 1989년 프랑스로 건너간 이후 줄곧 숯에 천착해온 그에게 이는 생성과 소멸, 비움과 응축, 자연과 정신을 함께 품는 매개였다. 뮤지엄 산에서 열리는 개인전 <En attendant: 기다리며>는 이 오랜 탐구를 가장 큰 규모로 조망하는 자리다. 전시 제목의 ‘기다리며’는 아직 완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으면서도 다음 변화를 향해 열린 시간을 가리킨다. 숯이 연소를 거쳐 탄생하듯, 이배의 작업 역시 소멸 이후의 상태, 침묵 이후의 에너지, 멈춤 속에서 진행되는 변화에 대한 사유 위에서 성립한다. 이번 전시는 바로 그 시간을 공간 전체로 확장해 보여준다.

 

청조갤러리 로비 , 227.3 × 181.8cm(each) 16ea, Charcoal Ink on Paper, 2026. Photo: Sangtae Kim © Museum SAN
청조갤러리 2관 260 × 170cm(each) 6ea, 캔버스에 숯, 2003. Photo: Sangtae Kim © Museum SAN

근원에 대해 떠올릴 때, ‘농부의 아들’이라는 수식어는 언제나 작가에게 중요한 작업적 토대이자 정체성으로 기능했다. 영상과 설치작업으로 구성된 <Becoming>은 그 정체성을 직접적으로 반영한 작품이다. 9m 높이의 스크린에서는 고향 청도의 논 위에서 몸집만한 붓을 움직이는 작가의 영상이 재생되고, 그 아래 바닥에는 현지에서 옮겨온 흙으로 만든 논이 자리한다. 전시 기간이 논밭에서는 실제로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울 예정이다. 땅, 신체, 시간의 순환적 관계를 서술하기 위해 작가는 ‘고정’이 아닌 ‘생성’의 방식을 택한 것이다. 뮤지엄 산의 본관 입구에서 청조갤러리, 그리고 야외 ‘무의 공간’까지 이어지는 전시 또한 작품, 건축, 자연이 하나의 흐름으로 맞물리도록 구성했다. 본관에 놓인 8m 높이의 <불로부터(Issu du feu)>가 불에서부터 비롯된 숯의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면, 자연광이 드는 청조갤러리 로비의 평면 <붓질(Brushstroke)> 연작은 작가의 수행적 행위를 계절과 날씨의 변화에 따라 다르게 비춘다. 야외 공간의 대형 브론즈 <붓질(Brushstroke)> 조각은 산세와 건축의 선을 따라 놓여 자연, 공간, 조형이 서로 스며드는 장면을 만든다. 숯이 지나온 시간, 몸이 남긴 흔적, 그리고 그 시간을 통과하며 수행하듯 완성해낸 작품. 기다림이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세계의 질서에 자신을 맞추는 감각이라는 것을 작가는 전시를 통해 증명한다. 전시는 12월 6일까지, 뮤지엄 산에서 열린다. 

자료제공: 뮤지엄 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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