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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를 차단한 작은 구조가 눈에 띈다. 소리를 듣거나 차를 마시는 행위에 집중하도록 자극을 걷어내고, 감각을 또렷하게 만드는 데 초점을 둔 해외 공간 사례.

차를 위한 집, 서클 하우스

© Joshua White
© Joshua White

전시장 한가운데, 다면체 구조가 하나 놓여 있다. 골판지로 만든 외형은 임시 구조물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분위기가 달라진다. 미국 작가 오스카 투아존 Oscar Tuazon이 설계한 서클 하우스(2026)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로키스 마차 Rocky’s Matcha가 처음 선보인 오프라인 상설 공간이다. 형태의 출발점은 선으로 그린 원, 엔소 Ensō 다. 깨달음과 공허를 상징하는 이 원에서 모티프를 얻어 구조를 짜고, 전통 다실 개념을 바탕으로 하는 차(茶) 마시는 행위 자체를 중심에 두었다. 입구를 지나면 다다미 깔린 내부가 이어지고, 중앙에는 차를 준비하는 자리가 놓여 있다. 주변은 장식을 덜어낸 채 비워두고, 낮은 시선과 단순한 구성으로 정리했다. 와비사비 미학과 선적 미니멀리즘에서 출발한 다실은 의도적으로 소박하게 완성했다. 나무와 종이 같은 자연 재료를 사용하고, 몸을 낮춰 들어가는 입구와 다다미 중심의 구성으로 시선과 동선을 조절한다. 서클 하우스는 이러한 구조를 바탕으로 실제 다도 의식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사용되며, 지난 2월 로스앤젤레스 모란 모란 Morán Morán 갤러리에서 공개된 이후 갤러리 운영 시간 동안 관람할 수 있다.

© Joshua White

나무 위의 작은 찻집,  아인 슈타인 티 하우스

© Hertha Hurnaus
© Hertha Hurnaus

나무 위에 걸터앉은 작은 집 하나. 땅과 분리된 채, 어딘가 불안정하게 서 있는 구조가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일본 건축가 후지모리 테루노부는 전통적 다도의 흐름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재해석해 하나의 건축적 리추얼로 확장한다. 2020년 9월부터 2021년 4월까지 독일 인젤 홈브로이히 무조임 Insel Hombroich Museum을 통해 공개된 다실 ‘아인슈타인 티 하우스 EinStein Tea House’는 그 실험의 연장선 위에 놓인 건축물이다. 마치 공중에 부유하듯 지면 위에 세워진 이곳은 외부와의 연결을 의도적으로 차단하고, 축소된 면적 속에서 시선과 동선을 극도로 제한한다. 다실로 향하는 사다리는 이 공간에 닿을 수 있는 유일한 경로로, 전통 다실의 진입 방식을 유쾌하게 전복시키며 오르는 행위 자체를 하나의 오락으로 전환한다. 공간을 가로지르듯 길게 놓인 테이블은 몰입의 순간을 극대화하도록 설치된 요소다. 그 위에 놓인 차 도구들은 물을 덜어내고, 온도를 맞추며, 차를 담아내는 일련의 동작을 느린 리듬으로 이끈다. 여기에 테이블 가운데를 파내 설치한 이로리(いろり)가 차를 끓이는 순간을 공간의 중심으로 끌어당겨 장면 전체에 깊은 고요를 더한다. 주변 전경을 향해 넓게 난 창은 시선을 바깥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하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탁 트인 개방감 속에서 자연과 건축의 경계를 서서히 흐릿하게 만든다. 찻집이라는 응축된 형식 위에 감각의 층위를 겹겹이 쌓아올린 후지모리의 건축적 시도는 예상치 못한 전환과 긴장을 불어넣으며, 공간 자체를 서사의 장으로 확장시킨다.

© Hertha Hurnaus
© Hertha Hurnaus

소리를 담은 방, 비트윈 스페이스 앤 사운드

회색빛 정육면체 하나가 창고처럼 큰 전시장 안에 들어선 이 작은 방은 오디오 부스 겸 다실이다. 뉴욕과 도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오디오 디자이너 데본 턴불 Devon Turnbull은 가리모쿠 리서치 센터의 Survey 03: Form Follows Feelings에서 <Between Space & Sound>(2026)를 선보이며, 소리 듣는 일을 하나의 공간 경험으로 풀어냈다. 이번 프로젝트는 2025년부터 이어온 가리모쿠 퍼니처와 진행한 협업으로, 턴불의 어쿠스틱 철학을 일본 목공 기술로 구현한 작업이다. 전시는 ‘기능은 감정과 어떻게 연결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서 소리와 공간, 그리고 그 사이의 간격을 천천히 들여다본다. 전시는 공간과 사운드의 관계를 ‘마(間)’라는 개념으로 풀어낸다. 물리적인 거리뿐 아니라 시간의 리듬과 사람 사이의 간격까지 포함하는 이 개념은, 소리가 어떻게 전달되고 머무르는지를 설명하는 기준이 된다. 전시장 중앙에 놓인 ‘사운드 하우스’는 일본 전통 다실에서 착안한 작은 독립 구조다. 둥근 입구를 지나 들어가면 외부 소음은 차단되고, 중앙에는 턴테이블과 함께 협업으로 개발한 세 가지 스피커인 산조 Sanjo, 로쿠조 Rokujo, 누리카베 Nurikabe가 놓여 있다. 주변은 턴불이 디자인한 최소한의 좌석만 남겨둬 자연스럽게 몸을 낮추고 앉게 된다. 특히 목재 혼 스피커는 가리모쿠의 3D 가공 기술로 제작된 것으로, 기존 금속 중심 구조를 목재로 구현한 결과물이다. 이곳은 음악과 침묵만이 또렷하게 남아 소리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방이다.

포도밭의 숨은 안식처, 아토모스

드넓은 포도밭 한가운데, 둥근 덩어리 세 개가 나란히 떠 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궁금증은 더 커진다. 스페인어로 ‘아주 작은 것’을 뜻하는 아토모스 Átomos다. 이곳은 그 이름처럼, 작은 부피의 몸집으로 드넓은 포도밭 한가운데에 안기듯 자리한 건축 설치물이다. 설계를 맡은 리스본 건축 스튜디오 ‘레벨로 드 안드라데 Rebelo de Andrade’는 전통과 생태, 풍경과 건축을 동시에 사유함을 작업 근간으로 삼아왔고, 그 결과 2024년 이 공간이 탄생했다. 건물은 총 세 개의 작은 구체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매스는 만남과 나눔, 삶의 축제를 상징하며, 대화와 모임, 작업, 독서와 휴식이라는 서로 다른 일상의 장면을 담아낸다. 입구에 들어서 처음 마주하는 구체는 만남의 중심이 되는 장소다. 소파와 TV, 카펫만 간결하게 배치해 자유롭게 아이디어가 교차하고 소통이 흐르는 장을 형성한다. 이어지는 두 번째 구체는 벽면을 따라 설치된 책장과 사무용 테이블 및 의자가 놓여 성찰과 결정이 공존하는 서재의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구체는 커다란 거울을 마주보고 낮은 책장과 의자를 배치해 내면의 고요함에 집중하도록 돕는다. 내부가 ‘거주’ 기능에 집중되어 있다면, 외부는 좀 더 ‘예술적 오브제’의 성격을 띤다. 재활용된 산업용 유리 폐기물로 구성된 독특한 외피는 계절의 흐름과 빛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표정을 달리하며, 하나의 유기체처럼 호흡하고 변화하는 풍경을 만든다. 이는 머무는 이로 하여금 총체적인 공간 경험을 끌어내며 거주 공간에 대한 새로운 문법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