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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사이드 템포러리에서 열린 이혜미 작가의 전시 <Stardust> 전경. 

테이블웨어가 큰 인기를 얻으며 실용성과 조형성이 공존하는 도예가로 불립니다. 공예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쓰임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상상에 한계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생활기물과 작품의 경계를 두기보다는, 예술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어떤 매체든 열린 마음으로 마주합니다. 제 작업이 생활기물로 쓰인다면 그 공간에서도 고유한 미감을 유지했으면 좋겠고, 작품으로 받아들여주신다면 예술을 통해 밝음과 희망을 전할 수 있기 바라며 작업합니다. 화병이나 그릇 같은 생활기물은 꽃을 꽂거나 음식이 담긴 모습을 상상하며 형태를 만들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무’에서도 ‘미’를 찾을 수 있는 비례를 고민합니다. 그 자체로 존재감을 지닐 수 있는 아름다움의 기본은 끝까지 유지하고자 합니다.

작품 시리즈마다 표면은 달라져도, 형태를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형태는 제 작업의 정체성입니다. 두껍지 않지만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실루엣과 손 감각이 고스란히 남은 자국을 좋아해 작업에도 반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시간을 느낄 수 있는 형태’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는데, 손길을 여러 번 더하고 쌓아가는 과정을 통해 도자에 깊이를 만들고, 그렇게 축적된 밀도가 결국 저만의 고유한 언어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기능도 중요하지만 오브제 역할 역시 놓칠 수 없기에, 두 요소의 균형을 이루는 조형적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늘 고민합니다. 여러 재료를 도자에 접목하면서도 각각 형태에 따라 성형과 마감 방식만큼은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는데, 어느 공간에서든 실루엣만으로 제 작업임을 알아봐주시는 분들을 만날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낍니다.

골드 림, 진주, 실버 시리즈 등 오래전부터 주얼리 재료를 도자에 접목해왔습니다. 이런 재료의 어떤 점에 끌린 것인가요? 표면의 변화를 만드는 상회 기법에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상회는 유약 소성 후 유약 표면 위에 안료나 금, 은, 동 등의 금속 재료를 더해 장식하고, 낮은 온도에서 다시 소성하는 기법입니다. 유약이 다양한 표정과 요변을 만들어낸다면, 상회는 그 위에 또 하나의 레이어를 쌓아 새로운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와 작가 활동을 병행하며 산업도자 분야에서 다양한 상회 기법을 접했고, 그 과정에서 도자가 지닌 표현의 가능성에 더욱 매료됐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가장 적극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방식이기에, 재료에 대한 탐구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가고 싶은 가장 큰 관심사이자 작업의 즐거움입니다.

흙을 바탕으로 다채로운 물성을 탐구하는 이혜미 작가.
 은채 도자 시리즈 ‘더 플랫 베슬’과 ‘사이드 테이블-스퀘어’. 작가 특유의 평면과 곡선의 연결, 균형 잡힌 비례감이 돋보인다.
유약을 바른 도자에 은과 금을 입힌 ‘포인트 오브 빅뱅’.

특히 은을 활용한 작품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습니다. 흙과 은, 두 재료를 함께 사용하는 이유는 뭔가요? 흙의 물성을 최대한 살린 기물과 조형에 적용한 은채도자는 금속만으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질감과 온도감을 담을 수 있습니다. 흙이 지닌 밀도감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금속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형태를 구현한 뒤 은을 입히면, 은 특유의 차갑고 모던한 인상과 흙의 따뜻한 질감이 자연스럽게 공존합니다. 이 상반된 성질이 하나의 작업 안에서 균형을 이루는 점에 큰 매력을 느낍니다.

은채도자는 시간이 지나며 표면이 계속 변합니다. 변색되는 금속의 특성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저는 시간을 쌓아가는 작업을 해오고 있고, 은이라는 재료를 통해 그 시간을 함께 기록하고 있습니다. 은은 세월이 흐르며 은색에서 금색, 붉은빛, 검은빛으로 표정을 바꾸고, 그 흔적을 표면에 고스란히 남깁니다. 제 손을 떠난 작품은 새로운 공간의 온도와 습도를 겪으며 또 다른 모습을 갖게 됩니다. 완성 이후에도 사용자의 환경과 시간이 더해진다는 점에서, 작품은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와 함께 서서히 만들어가는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작업할 때마다 더 큰 책임감과 성실한 태도를 잃지 않으려 합니다.

작업 과정에서 시간은 어떤 역할을 하나요? 시간은 저에게 함께 작업하는 재료입니다. 흙은 시간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재료이기도 합니다. 성형과 접합, 건조와 소성까지 모든 과정에는 각각의 적절한 타이밍이 있고, 그 흐름을 놓치지 않아야 비로소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표현 방식에서도 시간은 중요한 요소입니다.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여러 차례 가마를 거치며 긴 시간을 견디고, 은을 입힐 때도 제가 원하는 미감의 깊이가 나올 때까지 소성을 반복합니다. 그렇게 켜켜이 쌓인 시간이 결국 제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오브제이자 소반, 와인 버킷 등으로 활용할 수 있어 실용성과 조형성을 겸비한 작품들.
 전통적 미감과 현대성이 어우러진 독창적인 도자 작품들.
 ‘문 오브젝트’ 시리즈. 은을 여러 차례 덧바르고 굽는 과정을 거쳐 새로운 물성의 오브제를 완성한다.

요즘도 작업 중 어려운 순간이 있나요? 흙은 무척 정직하면서도 어려운 재료라고 생각합니다. 도자기가 완성되기까지는 늘 변수가 따르기 마련이죠. 이제는 잘 안다고 생각하다가도 가마에서 요변처럼 예상하지 못한 변화를 만나면 다시 겸손해집니다. 그 예측할 수 없음이 도자 작업의 매력이자, 저를 늘 성실하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새로운 흙을 만날 때마다 초보자의 마음으로 다시 공부하고 실험합니다. 6년째 이어오고 있는 유약 스터디도 같은 마음에서 시작했습니다. 낯선 재료를 탐구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더 나은 다음 작업을 위해 꾸준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꼭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요? 제가 머무는 공간을 제 작업으로 온전히 채워보고 싶습니다. 바닥과 벽, 소품까지 모두를. 제 작업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조화롭게 완성된 공간에서 직접 생활해보는 것이 하나의 로망입니다. 현재도 다양한 전시를 준비하며 흙 이외의 다른 물성으로 작업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재료를 사용하더라도 제가 추구하는 미감과 조형 언어는 그대로 이어가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매체에 제한을 두기보다는, 저만의 방식으로 표현의 영역을 넓혀가고 싶습니다.

유약이 가마에서 녹고 흐른 뒤 다시 굳으며 형성된 색감과 질감에 실버 프레임을 결합한 ‘실버라이닝’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