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종>은 아름다운 우리의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장인들의 이야기를 매달 연재합니다. 그 일곱 번째 보따리. 경기도 무형문화재 김일만 옹기장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자연스러운 선과 형태가 우리의 산수를 닮은 옹기.
“장인의 손에서 묻어나오는 세월, 몸으로 만드시고 몸으로 생각하시는 분, 나의 아버지입니다.” 200년 된 전통 가마를 지키며 7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오부자 옹기(五父子 甕器)`. 이곳을 이끌고 있는 셋째 아들 김창호 씨가 그의 아버지 김일만 옹기장(74세)을 간명하게 소개했다. 나의 아버지를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나에겐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오부자 옹기의 끈은 아마도 가족이리라. 곱디고운 백토보다 순수한 마음으로 빚어낸 옹기와 가족을 지켜온 엄격한 질서, 그것은 옹기의 순박함과 강인함을 그대로 닮아 있다.
1991년에 취재하러 왔던 한 방송 작가가 불러준 것에서 비롯된 ‘오부자 옹기’, 이보다 더 좋은 말이 있을까. 이곳에서 만드는 도자기는 오짓물(잿물) 입힌 옹기, 질그릇, 푸레 도기, 반오지 그릇, 흑유 옹기, 백도기 등 다양하다. 네 명의 아들 중 장손 김성호 씨와 막내 김용호 씨는 부친의 뒤를 이어 오짓물 옹기를, 둘째 정호 씨는 생활 옹기를, 셋째 창호 씨는 푸레 도기와 질그릇을 전문적으로 작업한다. 극도로 단순하고 기교가 보이지 않는 옹기장의 그릇은 선이 정갈한 것이 특징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선과 형태는 우리네 산수를 닮아 서정적이면서 곱다.
“일 년 내내 쉬는 날이 얼마 되지 않는 힘든 일을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하지만 3대가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매우 만족스럽게 생각합니다. 참고 견디면 언젠가는 인정받는 순간이 오겠죠.” 오부자 옹기가 7대를 이어온 이유가 이 한마디에 담겨 있다. 지난 2002년에는 공장이 화재 사건으로 위기를 겪으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건 가족의 힘 때문이었다.
1, 2 김일만 옹기장의 손은 오랜 세월의 더께가 앉아 있다.
3 아기자기한 장독대.
옹기의 질은 흙과 불에서 결정된다. 오부자 옹기 흙은 고령과 보은에서 실어와 환경에 맞게 가공한다. 옹기는 수동식 물레, 나무로 만들어진 도구, 잿물은 나무 재와 약토를 배합하여 만든다. 가마는 대포 가마라는 전통 가마(통가마)로 굽고 땔감은 참나무를 쓴다. 가마불을 지키는 것은 무엇보다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과정이기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 흙을 만지고 불을 다루어온 지 어느덧 60여 년. 하지만 장인은 아직도 배우고 경험해볼 게 남아 있다고 여긴다. 유약을 입힌 옹기는 조선시대에 발달했다.
지역에 따라 옹기의 모양이 다른 이유는 일조량과 기온차 때문이다. 경기도는 대체로 밑과 입의 지름 크기가 비슷하고 항아리의 생김새도 맵시가 있으며 완만한 형태의 곡선을 자랑한다. 숨 쉬는 그릇 옹기에는 발효 음식의 비밀이 담겨 있다. 옹기의 벽에는 미세 기공이 형성돼 있어 옹기 안과 밖으로 공기가 통하면서도 물이 새지 않는 장점이 있다. 때문에 음식물의 숙성을 돕고 부패를 방지해 발효 음식의 저장 그릇으로 적합하다. 음식의 장기 보존과 독성 배출 기능까지 갖고 있어, 우리의 발효 음식 발달은 옹기의 발달과 그 맥을 같이한다. 식생활 용기(항아리, 시루, 주발, 접시, 주전자, 내열 냄비 등)들은 고유의 흙과 수동식 물레, 천연 유약과 장작 가마에 이르기까지 전통 옹기 제작 방식을 철저히 지켜오고 있다. 오부자 옹기의 길 초입에 들어서는 순간 겸손과 낮춤의 자세를 갖게 된다. 흙을 빚는 게 아니라 마음을 빚는 옹기장의 작업이 추운 겨울에도 훈훈함을 더한다.
↑ 정갈한 선이 아름다운 접시.
*오부자 옹기는 근대화상회(02-3676-2231)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글과 사진 이정민ㅣ에디터 박명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