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정원 일기 (3)

나의 정원 일기 (3)

나의 정원 일기 (3)

삭막한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은 늘 자연을 꿈꾼다. 정원은 위로와 치유가 필요한 이들에게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을 내민다.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3인의 작가, 저마다의 정원을 품고 사는
이들이 직접 그리고 쓴 정원에 대한 단상.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돋아나는 연둣빛 새싹, 점점 무성해지는 잎사귀 사이로 피어나는 소박한 꽃, 꽃이 핀 자리에 맺히는 열매, 오색찬란한 단풍, 늦가을 찬바람에 떨어지는 낙엽들….
어느 순간 도토리는 다람쥐가 되고 다람쥐는 상수리나무가 되는 모습을 보았다.
상수리나무, 층층나무, 구상나무, 삼나무, 다람쥐, 노루, 말똥구리, 딱따구리.
숲에서 동식물들은 저마다 다른 이름을 가졌지만, 거대한 하나를 이루는 위대한 광경을 보았다.
그래서일까. 나무를 즐기려 베란다에 화분을 하나, 둘 들이기 시작했다.
강원도 계곡에서 옮겨온 이름 모를 키 작은 나무,
딸아이와 초등학교 한편 앵두나무 아래서 캐온 갓 싹 틔운 어린 나무,
집 근처 나무시장에서 철철이 인연을 맺은 이런저런 나무들까지.
숲으로 가는 번거로움 대신 나는 나무들에게 많은 시간과 노동력을 주어야 했고,
그 대신 나무들은 나에게 이른 봄
앙상한 가지에서 피어나는 연둣빛 신비를, 햇살 사이로 춤추는 푸른 잎사귀를,
신선한 밤공기에 실려 퍼지는 라일락 향기를, 포도덩굴의 우아한 유연함을 선사해주었다.
조금은 느리고 자세히 보아야 그 아름다운 자태를 느낄 수 있다.

에디터 박명주 | 포토그래퍼 박상국·유승진 | 사진가 엄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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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원 일기 (2)

나의 정원 일기 (2)

나의 정원 일기 (2)

삭막한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은 늘 자연을 꿈꾼다. 정원은 위로와 치유가 필요한 이들에게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을 내민다.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3인의 작가, 저마다의 정원을 품고 사는
이들이 직접 그리고 쓴 정원에 대한 단상.


이제는 제법 아침저녁으로 신선한 바람이 분다. 가을이 오려나 보다.
매일 아침마다 우렁차게 울어대던 매미들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풀벌레 소리들만 정적을 깨운다.
무더위가 한풀 꺾인 마당엔 화려함을 뽐내던 여름날의 꽃들이 어느덧 다 지고 그 자리에
벌개미취와 쑥부쟁이가 하나, 둘 고개를 쑥 내민다.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연보랏빛 벌개미취가 있다는 것이 참 좋다.
8월부터 10월까지 오래도록 피고 지고 그렇게 기쁨을 주는.
이제 조금 있으면 들국화 향기 가득한 정원이 되겠지.
작년에 심은 구절초와 해죽이 올해에도 잘 피어주려나 걱정이 앞서고
조바심이 일기도 하지만 이런 기다림마저 감미로우니 정원일은 결코 지루할 틈이 없다.
호수공원 산책길에 코스모스가 하나, 둘 얼굴을 내미는 모습이 정겹다.
호숫가 옆 오솔길을 따라 핀 루드베키아는 또 어떻고!
언제 봐도 기분 좋은 꽃, 그 꽃말이 ‘영원한 행복’이라 하니 자주 들여다봐야겠다.
작년에 보았던 자리에 올해도 어김없이 오손도손
서로 의지하며 피어 있으니 그 모습이 높은 푸른 하늘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다.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벌써부터 들국화 향기가 코끝을 스치는 것만 같다.
그래도 그 뜨겁던 여름의 날들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이 아쉬운 까닭을 잘 모르겠다.
그야말로 가는 여름, 오는 가을이니까.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더 깊이 가을의 서정에 푹 빠져보리라 다짐해본다.

에디터 박명주 | 포토그래퍼 박상국·유승진 | 그림 호수공원의 벌개미취 2014. 8.
그림 작가 이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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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원 일기 (1)

나의 정원 일기 (1)

나의 정원 일기 (1)

삭막한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은 늘 자연을 꿈꾼다. 정원은 위로와 치유가 필요한 이들에게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을 내민다.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3인의 작가, 저마다의 정원을 품고 사는
이들이 직접 그리고 쓴 정원에 대한 단상.


드디어 소원하던 마당 있는 집을 갖게 됐다.
어릴 적 아빠가 가꾸시던 장미 덩굴을 따라갈 순 없지만 소박하더라도 고전적인 아치형 덩굴과
장미 담장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아빠의 장미는 유언장에도 비칠 만큼 당신의 총애를 받던 작품이자 자존심이며 긍지였다.
하굣길 다리 위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활활 타오르는 빨간 점으로 보이던 우리 집.
아빠는 마음을 이해해주던 꽃과 마음대로 모양을 만들 수 있었던
그 덩굴장미가 얼마나 기특했을까.
꽃은 그냥 자라는 게 아니라 계속 만들어가야 해서 아빠 손엔 늘 원예 가위가 들려 있었다.
뒤란으로 가는 길, 아빠는 언제나 커다란 오동나무를 쓰다듬으며
“우리 은하 시집갈 때 장롱으로 만들어줄 테야” 하셨다.
결국 시집가는 걸 못 보셨지만, 나 태어날 때 아빠가 심은 오동나무라는 이야기를 엄마를 통해 들었을 때, 나는 두고두고 마음속에 스러지지 않는 장롱 하나를 갖게 됐다.
그런데 막상 꽃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니, 아빠가 내게 유물로 준 게 대단하다.
내가 이렇게 꽃으로 살고 있다니.
내겐 물감보다 더 익숙한 재료인 꽃. 꽃이 어느 날 사람으로 보이고, 문학을 공부한 내 마음대로 이전에 없던 식의 그림을 그리고….
그러니 아빠의 정원은 고스란히 내게 물려진 셈이다. 내 도화지 위로.
그림은 4년 전 결혼 때 청첩장을 위해 그린 것이었다. 꽃도 그림도 두 손의 사랑 때문에 피어난다.
이제 나는 우리 딸에게도 꽃과 나무, 흙을 보살피고 친해지는 시간을 만들어줘야지.
그리고 꽃이 다시 영원히 피어나는 방법,
사람에게 피어나게 하는 것 그리고 도화지 위 그림으로 피어 살게 하는 법도.

에디터 박명주 | 포토그래퍼 박상국·유승진 | 그림 Hands, 마른 꽃과 펜 드로잉, 2010.
꽃 그림 작가 백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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