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좋아하는 향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네 개의 향초 브랜드를 만났다. 각 브랜드를 이끌고 있는 네 명의 대표는 향초를 만들게 된 계기도, 방법도 제각기 다르지만 향기를 사랑하고 공유하고 싶은 마음은 꼭 닮았다.
키토스라보
키토스라보는 호시노앤쿠키스를 운영하고 있는 이정윤 대표의 두 번째 브랜드다. 호시노앤쿠키스에서 직접 디자인한 제품을 판매하는 라인인 키토스라보의 시작 아이템은 향초다. 이정윤 대표는 ‘고맙습니다’를 뜻하는 핀란드어인 ‘키토스’의 어감과 뜻이 좋아 브랜드명으로 사용하게 됐다고 전했다. “어릴 때 캠프파이어를 하면 마지막에 초를 들고 그동안 고마웠던 사람들을 떠올렸던 것 같아요. 향기와 함께 그때의 고마운 마음을 담고 싶었어요.” 유난히 초를 좋아해 여행을 다닐 때도 예쁜 초만 보고 다녔다는 이정윤 대표. 손재주가 좋아 만드는 일이 익숙했던 그녀에게 향초를 직접 만드는 일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어디에선가 맡아보지 못한 향을 내기 위해 오일을 섞어보고 향에 대한 좋은 반응을 듣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라고.
“발향에 관한 부분이나 소이왁스가 파라핀 초에 비해 가격이 높다는 점에 대해서 오해를 하는 분들이 있어요. 초 하나를 만들 때 넣을 수 있는 오일의 양은 정해져 있거든요. 어떤 오일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발향이 달라져요.” 키토스라보에서는 병 타입 향초와 함께 피라미드, 버섯, 난쟁이 등 키토스라보의 취향이 반영된 정교한 모양의 입체 향초도 선보이고 있다. 향초를 만들면서 설레는 마음이 느껴질 만큼 곱고 예쁜 제품을 만들어온 그들은 연말쯤 새로운 작업실로 이전할 계획이다.
코스믹 맨션
원래 영화 소품을 만드는 일을 했던 코스믹 맨션의 홍원미 대표는 지인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용으로 향초를 만들기 시작했다가 향초의 세계에 빠지게 됐다. “여러 향을 섞으면서 새로운 향을 발견하는 과정이 너무 즐거웠어요.” 냄새에 민감한 편이어서 향이 너무 강하면 머리가 아팠다는 홍원미 대표는 향초를 만들 때 향이 은은하고 자연스럽게 공간에 스며들 수 있도록 조향을 한다. “가장 마음에 드는 제품은 ‘풀문’이에요. 라벤더, 작약, 치자꽃 등 흔한 향을 사용했는데 그 비율을 달리하니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향기가 완성되었어요.”
그녀에게 향초의 가장 큰 매력이 무엇인지 묻자 고민할 것도 없이 ‘힐링’이라고 답했다. 초가 타며 향을 뿜어내는 시간만큼은 고요히 나에게 집중하면서 공허해진 마음을 다시 충만하게 채울 수 있다. 마음이 무겁고 고민이 많을 때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인 것이다. 그녀 역시 초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얻었고, 코스믹 맨션을 통해 향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삶의 소소한 즐거움을 느꼈다. 자기만의 향을 찾는 일은 자신을 더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단순한 자기애가 아니라 내가 존재하고 있는 공간과 시간까지 아우른 삶에 대한 애착인 것이다.
오파크
대학에서는 도자를 전공하고 졸업 후에는 그래픽, 웹, 의상 디자인 등 다양한 일을 했던 오파크의 하민지 대표는 자신의 역량을 완전히 쏟아낼 수 있는 일을 찾다가 향초를 만났다. “기왕 할 거면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향은 물론 로고 디자인에 많은 공을 들이고 용기도 도자기를 선택해서 차별화를 두었죠.” 하민지 대표는 어디에선가 맡아본 것 같은 향보다는 독특하고 인상적인 향기를 만드는 데 집중한다.
오파크의 15가지 향 중 ‘템플스테이’는 나무 향과 사향을 섞어 절에서 나는 냄새와 비슷한 향을 내는데 중성적이고 묘한 매력이 있어서 매장에서 가장 반응이 좋다. “향초를 직접 태워서 향을 맡아보면 좋겠지만 그게 어렵잖아요. 그래서 그 향을 상상할 수 있도록 어울리는 이미지를 직접 그려서 제품에 붙였어요.” 그림을 일일이 그리는 것이 꽤 번거롭긴 하지만 이 과정이 가장 즐겁다는 그녀는 오파크의 향초가 하나의 예술품처럼 완성되기를 희망하고 또 실천한다. 그녀에게 향초는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각각 다른 향을 내는 오일을 섞어 하나의 초로 굳히는 일이 마치 도자, 그래픽, 웹 등 여러 분야에서 쌓아온 내공을 한데 모아 오파크 브랜드를 탄생시킨 것과 흡사했다. 그렇게 그녀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에 오파크는 특별할 수밖에 없다.
메누하
패션 브랜드에서 마케팅 및 홍보, 디자인 기획 업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온전히 나만의 것’을 갖고 싶었던 박보람 대표가 론칭한 메누하. 외국에서 살 때 잦은 이사를 할 때마다 그녀를 위로해준 것은 엄마 냄새가 나는 노란 오리 인형이었다. 언젠가 위로와 치유가 되는 향을 만들고 싶었던 박보람 대표는 히브리어로 평안, 안식을 뜻하는 ‘메누하’란 브랜드를 론칭했다. 메누하에서는 박보람 대표가 을지로에 갔다가 반한 적동 용기에 향초와 방향석을 담아 선보인다. 시크한 금속 용기에는 문학, 영화, 음악 등 다양한 분야로부터 영감을 얻은 향이 담겨 있다. 치자꽃을 늘 머리에 꽂고 노래를 부르던 빌리 할리데이의 애칭이기도 한 레이디데이 향처럼 말이다.
방향석은 오직 국내산 화산석만 사용하고, 향 주머니인 사셰도 수단에서 손으로 채취한 1등급 원료만 사용할 만큼 재료에 대한 자부심도 크다. “개인적으로는 우디 계열 향인 미스터 리플리와 레이디데이를 좋아해요. 앞으로 사랑하는 여인의 머리카락에 머리를 파묻고 추억을 곱씹고 싶다고 말한 보들레르의 시를 닮은 향을 만들고 싶어요.” 박보람 대표는 런던 새빌로우의 슈트 브랜드처럼 오랜 시간 엄격한 품질 관리를 통한 수공예적인 향을 선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과 꼭 닮은 향초를 선보이는 메누하는 앞으로 다양한 사이즈의 적동 용기에 담긴 초와 사셰 등을 준비 중이다.
에디터 신진수 · 최고은│포토그래퍼 안종환 · 김잔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