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도로 우아한 믹스매치

극도로 우아한 믹스매치

극도로 우아한 믹스매치

펜디와 프랑수아 조셉 그라프의 만남 그리고 중국이라는 주제는 전혀 예상치 못한 파빌리온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파리에서 만난 프랑수아 조셉 그라프는 펜디의 전통과 화려함을 살리면서도 중국에 대한 오마주를 담은 캡슐 컬렉션의 탄생에 대해 들려주었다.

↑ 펜디와 프랑수아 조셉 그라프가 함께한 파빌리온 시누아의 모습.

올해로 5회를 맞이하는 2014 AD 인테리어 전이 파리 루브르 궁내에 위치한 장식 예술 박물관에서 오는 11월 23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이 전시는 세계적인 인테리어 잡지 가 전 세계 유명 디자이너 16인을 초청하여 그들이 2104년에 발표한 오브제나 인테리어 디자인을 대중에 공개하는 행사로 이번에는 특별히 펜디 FENDI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한 건축 디자이너 겸 실내장식가인 프랑수아 조셉 그라프 Francois-Joseph Graf의 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주문 제작 방식의 캡슐 컬렉션을 매년 진행해온 펜디 까사는 그동안 당대의 위대한 디자이너인 마리아 퍼게이나 티에리 르메르 등과의 협업을 통해 리미티드 디자인을 발표해왔는데 이번 해에는 현대 장식미술의 전설이자 무대 디자인의 대가인 그라프와 협업을 하게 된 것이다.

↑ 프랑수아 조셉 그라프가 펜디와 함께한 FJG 캡슐 컬렉션 중 소파.

펜디 까사와 그라프는 독특한 가구, 조명, 오브제 디자인을 진행 중인데 특히 이번 2014 AD 인테리어 전에서는 파빌리온 시누아라는 중국관을 만들어 펜디의 주문 제작 제품을 전시하게 되었으며 중국 원, 명, 청나라의 희귀한 칠보 작품에 예술가의 터치를 더한 작품을 선보이며 갈채를 받았다. 1922년 솔로몬 드 로쉬칠드 남작 부인이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한 가구 중 한번도 공개된 적이 없는 법랑 칠보 제품과의 조화를 통해 가장 전통적인 아시아의 느낌을 현대적인 스타일로 재탄생시킨 소파와 가구 컬렉션. 유행에 구애받지 않는 펜디의 창조 정신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로 특별히 이번 전시만을 위해 기획되었으며 이 캡슐 컬렉션은 2014년 9월부터 주문이 가능하다.

↑ 프랑수아 조셉 그라프가 펜디와 협업한 결과물, FJG 캡슐 컬렉션.

INTERVIEW with Francois-Joseph Graf

이번 AD 인테리어전에서 선보일 가구는 중국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들었다. 구체적인 계기를 들려달라.
개인적으로 오래전부터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것이 첫 번째 이유이다. 두 번째로는 아시아 국가 중 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을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를 삼기 위해 전시를 준비했다. 중국을 몇 차례 여행하면서 유럽과는 다른 중국 문화에 대한 특별함과 다양성, 오랜 역사를 통해 축적된 마스터피스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세 번째로는 비즈니스적인 이유이다. 중국 상하이에 펜디의 대규모 매장을 오픈할 예정인데 이에 앞서 펜디의 오너와 함께 중국에 대한 오마주를 표하기 위해서다. 또 다른 이유로는 중국에서 18~19세기에 만들어진 앤티크 가구들이 박물관 창고에 잠든 채 있어 이를 이용하여 펜디 까사의 스타일로 새롭게 선보이고자 했다. 동양적인 배경에 서양의 분위기를 믹스하면 잠들어 있던 앤티크 가구에 새로운 가치를 더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중국과 일본은 서양의 예술에 오랫동안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왔다. 펜디의 쇼룸에 있을 법한 가구들이 우리 집에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럭셔리하면서도 심플하고 서양의 느낌과 동양의 향기가 공존하는 가구들을 만들었던 이번 작업은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1,2 루브르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던 중국의 유물이 특별히 함께 전시되어 고귀함과 우아함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냈다.

당신의 작업은 매우 정교하고 화려하며 장식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주는 것들이 많았다. 그에 비해 이번에 선보인 작품은 매우 절제되어 있다. 한마디로 매우 다르다. 어찌 보면 당신의 폭넓은 작품 세계를 증명하는 것으로도 생각된다. 이런 색다른 작품이 나오게 된 이유가 있을까?
절제된 것과 심플한 것을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되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했을 때 훌륭한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전시된 나의 선인장도 아름답지 않은가? 나의 모든 작품은 늘 새롭고 다르다. 펜디와 협업을 하기 위해 오너와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펜디의 럭셔리함을 동양적인 시선으로 보여주겠다는 나의 아이디어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펜디가 서양의 브랜드지만 새로운 세계를 향해 과감한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브랜드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는 시도라 생각하면 된다.

펜디는 글래머러스하면서도 럭셔리한 디자인으로 정평이 나 있다. 당신과 함께한 이번 작품이 기술력의 구현이라는 부분에서도 의미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
소재의 접목이라든지 말이다. 나무로 된 소파를 예로 들어 설명하겠다. 소파를 보면 펜디의 이니셜인 ‘F’ 를 옆면에 새겨넣은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지나치게 브랜드 네임을 노출하는 등의 디자인은 배제했다. 펜디의 패션 철학을 나의 가구에 무겁지 않게 반영했고 브랜드가 지닌 럭셔리함 역시 경박하지 않도록 유지했다. 패션과 장식적인 요소를 동시에 표현하는 것은 브랜드에 있어 중요한 일이다. 앞으로 이 가구들은 밀라노에 있는 본사로 옮길 것이다. 나는 2015년 1월에 선보일 메종&오브제에서 펜디 까사 전시장을 디자인할 것이고 다음 시즌에 판매할 수 있는 가구들을 펜디를 위해 만들 것이다. 동양적인 느낌은 유지하겠지만 이번과는 다른 다양한 가구를 선보일 예정이다.

펜디의 어떠한 요소를 사용했으며 어떻게 재해석했는가?
선형성, 대칭, 그래픽 형태의 사용이라는 코드는 펜디 까사뿐 아니라 실비아 펜디에 의해 창조된 바게트 백과 같은 펜디의 패션 컬렉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매우 건축적이고 구조적인 펜디의 가죽 제품과 기성복 컬렉션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이기도 한 프랑수아 조셉 그라프.

처음으로 펜디의 제안을 받은 것은 언제이며 이후 어떤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되었나?
펜디 측에서 지난 4년간 나의 작업을 유심히 관찰하고 이를 검토해왔다고 들었다. 2013년에 협업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으로 오갔고 나는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매해 색다른 작업을 여러 사람들과 해오고 있는데 나의 이런 부분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이후 작업은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마음대로 펼쳐 보일 수 있도록 진행되고 있다.

이번 리미티드 에디션은 어떤 제품들로 구성되는가?
다양한 모델을 만들어 펜디 측에 보여주면 펜디는 그중에서 제품화할 수 있는 것을 셀렉트하게 된다. 고전적인 아름다움에 모던함을 더해 지극히 한정된 수량만 제작될 것이다. 이 모든 작업은 내년 1월에 있을 메종&오브제를 겨냥하여 진행되고 있다. 정확한 아이템이 어떤 것인지 이야기해줄 수는 없다. 내년 메종&오브제에 그 모습을 드러낼 테니 부디 참석해주기 바란다.

펜디와 작업을 진행하면서 그들을 통해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다면 어떤 부분이며, 그 과정에서 펜디 까사만의 소중한 자산을 발견했다면 무엇일까?
밀라노 작업장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작업을 도와준 많은 분들은 진취적이고 창의적이며 에너지가 넘쳐났다. 펜디 측에서 제안한 이번 프로젝트는 내 삶의 새로운 활력이 되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은 항상 좋지 않은가.

파빌리온 시누아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한다. 중국적인 요소만으로 보면 우리에게 낯선 것은 아니다. 그러나 펜디적인 요소가 적절히 배합됨으로써 이 공간은 서양과 동양으로 한정 지을 수 없는 묘한 매력을 풍기는 전시장이 되었다.
중국의 뻔한 이미지를 깨고 싶었다. 이는 이번 컬렉션의 컬러를 보면 알 수 있는데 흔히들 중국이라 하면 붉은색 계열을 떠올리곤 한다. 이와 같은 선입견을 없애기 위해 가구에서 빨간색을 배제하고 시크하고 다소 어두운 색을 주로 사용했고 단지 포인트를 줄 때만 빨간색을 사용했다. 중국 전통 건축물의 내부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펜디라는 브랜드의 이미지가 서로 하모니를 이룬다고 생각해왔다. 내 작업은 이들의 밀접한 관계를 찾아내고 과거와 현재의 만남 속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펜디와의 이번 작업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중국과 관련한 많은 일을 하고 싶다.

편집장 노은아 | 진행 정기범(프랑스 통신원) | 사진 프랑수아 고아즈 François Go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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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Y IN SPACE

MEMORY IN SPACE

MEMORY IN SPACE

에이라운드 박창현 소장의 오감 충족

2011년에 여행차 스위스의 작은 시골 마을인 발스에 있는 ‘테르메 발스 Therme Vals’ 온천을 방문하게 되었다. 2009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일컫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피터 줌토르의 역작인 테르메 발스는 이 지역에서 채굴한 회색 규암으로 만든 현대적이면서도 자연의 멋이 고스란히 담긴 특별한 온천장이다.

돌을 켜켜이 쌓아 벽과 바닥을 만들었는데 한 가지 재료만을 사용했기 때문에 면과 면을 붙여 공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마치 하나의 거대한 돌 덩어리를 파내고 물을 채운 듯했다. 빛은 천창에서부터 벽과 틈새를 타고 들어오는데 돌과 물이 이 빛에 따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속 변하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재료와 빛, 자연 풍경과 온천의 기능이 혼연일체가 되는 공간에서 나의 모든 감각이 충만해졌고 온천에 머무는 내내 이 특별한 경험을 만끽했다. 온천은 외부로도 연결되어 있는데 알프스의 빼어난 장관을 감상하며 유유자적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에디터 최고은ㅣ사진 스위스정부관광청 www.MySwitzerland.co.kr/valsㅣ일러스트레이터 김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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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빛 염색

쪽빛 염색

쪽빛 염색

자연이 선물한 빛깔 고운 색감. 소박한 색채의 향연으로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드는 홍루까 천연 염색 장인을 소개한다.

↑ 쪽빛으로 물들이 조명.

쪽빛 하늘이 유난히 높아 보이는 가을의 문턱 앞에서 종묘의 서순라 길목에 들어섰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운치 있는 골목 안쪽엔 ‘하늘 물빛’이라는 손맛 나는 염색 장인의 작업 공간이 있다. 매듭 장인인 어머니 조일순 씨와 천연 염색 장인 홍루까, 조각보 작가인 여동생 홍광희, 이제 막 천연 염색의 길에 접어든 아들 홍성하. 이렇게 홍루까 장인의 가족은 한국 문화를 이어 나가는 작업으로 이어져 있다.

↑ 윤대중 전승자에게 선물 받은 바작.

작업의 스타일은 조금씩 다르지만 햇살, 바람, 자연, 시간이 만들어내는 천연의 색은 이 가족을 이끌어주는 힘이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 친정어머니에게서 배운 전통 매듭을 40년 이상 만들어왔다. 조선시대 노리개부터 장신구 모양까지 그 색과 모양을 만들어 매듭을 만들고 그 매듭에 쓸 천을 찾다 보니 직접 천연 염색을 하기 시작했다.

↑ 쪽과 치자로 염색한 보자기와 자초로 염색한 조각보.

1970년대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쪽 씨를 들여오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일반 염색을 하다 쪽 염색을 하게 되었고, 그 원단으로 바느질을 하여 하나의 공예품이 가족의 손을 거쳐 완성된다. 색은 여러 번 봐야 그 깊이와 진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색을 내야 한다는 고집스런 생각을 가족의 신념처럼 지켜왔다. 홍루까 장인이 천연 염색을 하기 시작한 건 1997년. 실 염색을 하시던 어머니를 돕다가 계곡에 마련된 평상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형형색색 흩날리는 천들이 나부끼는 모습에 반해 염색 장인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 위에서 내려다본 천연 염색 수세미.

“염색은 늘 편안한 친구 같아요. 나는 아직도 이 편한 친구에게 미쳐 있지요. 염색도 손맛이기 때문에 김치를 담그듯 담가야 해요.” 천연 염색은 손끝의 감각으로 물을 들이고 수십 번의 반복 끝에 최상의 색을 얻는 기다림의 결정체이며 느림의 미학으로 완성되는 친환경 염색체이다. 자연에서 추출한 색이기 때문에 처음엔 색이 약한 듯 보이지만 일반 염색보다 오래갈 뿐 아니라 훨씬 푸근한 느낌이 든다. 친환경적이면서도 은은한 천연의 색감을 보고 있노라면 사람의 마음을 깨우는 것만 같다.

↑ 쪽염색한 패널로 만든 수납장.

작년에 열린 <하늘 물 흐르는 한성가경>이라는 가족 전시회를 계기로 절대 염색 일을 하지 않겠다던 아들 홍성하 씨는 아버지의 대를 잇기 시작했다. 현대적인 것과 전통적인 것이 잘 접목되어야 전통 예술이 발전할 수 있다고 깨달은 홍루까 장인과 가족들은 천연 염색 천을 재해석해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 홍루까 염색 장인의 모습.

인류가 시작되면서 자연 염색이 시작되었고 그 역사는 지금까지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인류 문명에 물리적으로 급속히 적응하는 서양 문물과는 달리 감각과 감성에 초점을 맞추어 작품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동양철학을 바탕으로 천연 염색은 꾸준히 발전해왔다. 천년 빛깔의 쪽빛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삶의 열망에 부응해 과거에 비해 찾는 이가 많아졌다. 홍루까 장인 가족은 쪽 재배에서부터 염료 생산과 염색, 디자인, 바느질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수작업으로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천연 염색된 천은 다양한 옷과 침구, 생활 소품으로 만들어진다. 이를 비롯해 명주에 괴황(황색), 쪽(파랑), 코치닐(분홍), 소목(붉은색), 쪽과 치자(진초록) 등으로 염색한 모시 조각보와 국화 문양 보자기, 바늘 방석꽂이, 무릎 담요 등을 비롯해 의류와 침구까지 만든다. 하늘 물빛의 가을은 쪽빛 바람을 타고 날아와 살포시 내 몸에 닿는 것만 같다.

에디터 박명주 | 글과 사진 이정민(물나무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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