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런던 메이 페어에 문을 연 갤러리숍
‘더 뉴 크래프트 맨’은 영국의 장인들이 만든 아름다운 물건을 모아 사람들에게 소개하며 단번에 화제 선상에 올랐다.
↑ 고객이 공예가에게 작품을 의뢰할 때 아이디어를 주고 받는 공간.,
올해로 11년째를 맞이한 영국 공예 페어 ‘콜렉트 Collect’는 최근 2년 사이에 더욱 주목받으며 급부상했다. 예술은 난해하고 디자인은 식상해진 지금, 사물의 가치를 공예에서 찾으려는 움직임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19세기, 윌리엄 모리스는 공업화, 기계화 대신 공방으로 돌아가자는 공예 부흥 운동을 벌였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런던에서는 다시 공예 부흥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 현상을 목격한 것은 작년 늦가을 무렵이었다. 크고 작은 행사가 많은 9월이 지난 런던은 비교적 조용했다.
↑ 다른 물건과 함께 셋팅된 오크니 체어
한산해진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베스트 오브 브리티시 Best of British’ 라는 장소를 방문하게 되었다. 오로지 영국의 장인들이 생산한 물건만 진열하는 공간이었는데 그 당시, 한창 공예에 관심이 많아지던 터라 매우 흥미로웠다. 스코틀랜드의 울로 만든 핸드메이드 담요부터 세라믹 그릇, 런던의 작은 워크숍에서 만든 가방, 액세서리 등은 영국의 지역색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높은 품질에서 느껴지는 고급스러움은 물론, 만든 사람의 노력이 배어나는 물건에서 그들이 추구하는 미학이 엿보였다. 더 나아가 영국인들의 삶의 한 단편을 발견한 듯해서 묘한 설렘과 흥분을 느끼기도 했다. 그때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팝업숍이 올해 6월, ‘더 뉴 크래프트 맨 The New Crafts men’이라는 이름으로 런던의 메이 페어에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너무나 기뻤다. 더 뉴 크래프트 맨은 영국을 대표하는 슈트 회사인 기브스 앤 호크 Gieves and Hawkes의 회장 마크 헨더슨 Mark Henderson, 아트&비즈니스에서 디렉터로 일하던 나탈리 멜튼 Natalie Melton, 존 루이스 등 영국의 대형 브랜드에서 제품 개발을 맡아온 캐서린 로크 Catherine Lock, 이 세 사람이 합심해 만든 갤러리숍이다. 이들은 더 뉴 크래프트 맨을 통해 숨어 있던 영국 공예가들을 세상 밖으로 불러내고 질 좋은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선보이고자 했다. 공예가들이 긴 세월에 걸쳐 터득한 기술로 만든 물건에는 강한 에너지가 담겨 있다. 이러한 물건을 일상에서 가까이 두고 사용하다 보면 자연스레 힘을 전달 받는다. 공예의 가치에 주목한 더 뉴 크래프트 맨의 등장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더 뉴 크래프트맨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아 디렉터인 나탈리 멜튼에게 대화를 요청했다.
1 옻칠로 마감한 윈저 체어. 2 도예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로라 칼린의 테이블 램프. 3 해변에서 모티프를 얻어 디자인한 쿠션.
공예가들의 장인 정신은 언제나 존재해왔다. 하지만 더 뉴 크래프트 맨이 등장한 2012년경부터 그들의 정신은 사회적인 이슈이기도 한 ‘지속 가능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더 뉴 크래프트 맨’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영국의 공예 기술은 내가 아트&비지니스에서 일할때부터 주목하고 있었다. 그 당시 다양한 예술에 어떻게 자금이 투자되고 후원되는지 살펴봤는데 공예가들의 열악한 환경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2009년에 그들을 후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인 ‘크래프티드 Crafted’를 마련하고 비즈니스 전문 지식을 배울 수 있도록 했다. 우리는 수공예인들이 문화와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기술을 더욱 개발하고, 나아가 전 세계에서 각각의 전통을 보존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더 뉴 크래프트 맨의 숍을 마련하게 되었다.
↑ 자연스러운 나무 테이블 위에 놓인 도자기들.
더 뉴 크래프트 맨의 웹사이트를 보면 ‘우리는 문화와 장소가 깊이 연관되어 있는 오브젝트를 소개한다’라는 문구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문화와 장소란 무엇인가?
수공예의 가치는 그 속에 숨어 있는 깊은 의미에 있다. 예를 들어 강철 산업으로 유명한 셰필드 지역에서 생산되는 어네스트 라이트 앤 선 Ernest Wright and Son의 도금 가위의 경우 5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데 대량생산으로 가격 경쟁력을 지닌 외국 기업으로 인해 여러 번 파산 위기에 이르렀다. 더 뉴 크래프트 맨이 론칭할 즈음, 캐서린은 이 멋진 도금 가위를 가져와 보석함에 넣어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가위 하나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디서 왔는지 등의 이야기를 들려주니 사람들이 그 가치를 인정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어떠한 사물을 간직한다는 것, 누군가가 인생을 걸고 시간과 노력을 들여 하나의 세련된 물건을 만든다는 것, 그리고 물건을 통해 누군가와 연결된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기쁨을 선사한다.
더 뉴 크래프트 맨은 팝업숍을 두 번 연 후 드디어 런던 메이 페어 지역에 정착했는데 지금의 갤리리숍을 마련하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짧은 시간 안에 물건을 완성하는 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하나의 물건을 만드는 공예가들에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팝업숍이 좋은 성과를 낸 이후 물건을 소개하는 방식이나 숍 운영에 관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제 우리는 제대로 된 숍을 갖게 되었고 공예가들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건 정말 놀라운 발전이다. 물론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한 어려움도 있었지만 영국의 공예를 발전시키는 데 크게 일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더 뉴 크래프트 맨 숍 전경.
더 뉴 크래프트 맨에 소속된 70여 명의 공예가 중 당신이 가장 애착을 느끼는 3가지 물건을 말해달라.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다. 여기 전시된 작품 하나하나에 전부 애착이 있다. 하지만 가레스 닐의 작품인 하미린 의자를 꼽을 수 있겠다. 가죽 장인인 빌 암버그와 함께 제작했는데, 가죽 특성상 사용하면 할수록 그 사람의 흔적이 가죽에 배어나는 점과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다는 지속성에 큰 매력을 느낀다. 에드먼드 변의 유리 제품은 미적인 면에서 봤을 때 분홍과 살굿빛의 유리병이 너무 매력적이다. 공예라고 하면 소박하고 시골의 거친 느낌만 생각하는데 그게 아닌, 신비로운 아름다움과 섹시함까지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마음에 든다. 마지막으로 힐러리 번의 바구니는 진한 버드나무 향을 내는데 앞서 말한 것처럼 지역성이 진하게 묻어난다. 힐러리는 영국 데본 지역에서 작업하는데 대농장에서 직접 버드나무를 심고 키워서 수확하는데 나뭇가지를 잘라 말린 후 엮어서 바구니로 만드는 모든 과정을 직접 한다.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물건이지만 최고의 기술로 제작한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는 늘 나를 감동시킨다.
↑ 더 뉴 크래프트 맨의 디렉터 나탈리 멜튼.
우리는 지금 수공예품을 중심으로 말하고 있지만 당신이 사물을 대할 때의 태도는 디자인, 아트에도 해당한다고 본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사물을 올바르게 감상하는 것이란 무엇인가?
공예가가 만든 물건이 디자인 소품 혹은 예술 작품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점에서 디자인과 공예의 경계가 점점 희미해지는 것 같다. 이때 중요한 건 각각의 물건이 개개인에게 주는 의미이다. 이제 사람들은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제작 과정은 어떠한지, 어떤 재료가 사용하는지, 그 비하인드 스토리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이해하고자 한다. 내가 선택한 물건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이야기 말이다. 이로 인해 그 물건은 더욱 의미 있어지고 한번 쓰고 버리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곁에 두려고 한다. 즉각적인 감정 행태와 행동이 당연시되고 있는 지금, 최대 6개월간 기다려야 완성되는 공예가의 물건은 현재 우리 삶의 방식을 다시금 뒤돌아보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더 뉴 크래프트 맨을 통해 성취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더 뉴 크래프트 맨이 공예가들을 알리는 데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되었으면 한다. 지금은 영국의 공예가를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지만 더 나아가 세계 곳곳에서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이들과 함께하고 싶다. 새롭게 소생되고 있는 전 세계의 공예 기술을 발전시키고 후원하는 것은 곧 지속 가능성과 깊은 연관이 있다. 런던에서 시작된 우리의 아이디어가 점차 퍼져 나간다면 정말 기쁠 것이다.
에디터 최고은│구술과 인터뷰 김명한│사진 레이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