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에 당첨된 예술가의 흥미로운 이야기
작가에게 로또란 유명세를 얻어 자신의 작품이 값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당첨금이 반드시 작가에게 돌아가는 것일까?
아르망 기요맹 ‘센강의 풍경’ 1890년 ©Wikimedia
로또에 당첨되어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혼자 은행에 갔는데, 담당 직원이 큰 소리로 “로또 당첨금 찾으러 오셨어요?”라고 물어봐서 당황했다는 한 남자의 뉴스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사실 우리 주변에도 로또에 당첨된 누군가가 있을지 모른다. 갑작스레 부자가 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로또에 당첨돼서 그렇다는 소문이 돌기도 한다. 예술가 중에는 모네가 로또에 당첨된 덕분에 지베르니에 거대한 작업실을 꾸미고 작품에 몰두해 유명 작가가 될 수 있었다는 잘못된 내용이 TV 예능에 나오기까지 했다. 로또에 당첨된 이는 그와 같은 시기에 활동한 아르망 기요맹(1841~1927)인데 인상주의 화가 중에서 가장 유명한 모네로 오인한 것이다. 낮에는 정부 철도에서 일하고 아침이나 주말에만 그림을 그리며 고되고 부지런한 삶을 이어가던 기요맹에게 행운이 찾아온 건 1892년, 51세에 이르러서다. 그는 복권에 당첨되어 10만 프랑이라는 거금 수령한 후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작품에만 몰두하며 86세까지 여생을 보냈다. 그러나 예술가에게 진짜 로또는 당첨금 수령이 아니라 그 자신이 유명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닐까? 작품이 비싼 값에 팔릴 수 있으니 화수분이 따로 없다. 헌데 그 당첨금을 누가 찾을까? 여기에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아르망 기요맹 ‘자화상’ 1872년 클리브랜드 미술관. ©Guillaumin
아르망 기요맹 ‘이브리의 일몰’ 1873년 오르세미술관. ©Guillaumin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르네 마그리트 (1898~1967)는 수수께끼 같은 그림을 그리며 생계를 위해 광고와 디자인 일을 병행했고, 피카소 등 대가의 그림을 모작하거나 심지어 위조지폐를 만들기도 했다. 예술가라 하면 으레 베레모에 자유분방한 복장일 것 같은데 중절모에 양복을 입은 작가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지금은 튀는 패션이지만 당시 유럽 남성 대부분이 중절모를 쓰고 다녔기에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평범해 보이기 위해서 선택한 방편이었다고 한다. 사람들 눈에 띄고 싶지 않았던 바람은 13세에 우울증을 앓던 어머니가 강물에 투신자살해서 온 마을에 화제가 된 사건과도 무관하지 않으리라. 60대가 되어 비로소 알려지기 시작했고 드디어 자신의 작품 세계를 알아봐주는 프랑스의 철학자 푸코와 서신을 교환하기도 했으나 성공의 기쁨도 잠시, 67세에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헌데 20년 뒤 우연히 마그리트의 아내를 만나 작품에 대한 전권을 물려받은 이가 등장한다. 현재 마그리트 재단의 대표인 찰리 헬스코비치다. 그는 자녀도 없이 고군분투하던 노부인을 돕다 오늘에 이르렀다고 설명하는데, 과거도 모호하고 부인의 유서가 공증되지 않은 것이기에 혹자는 그를 가르켜 ‘개를 산책시키던 사람’ (부자의 유산을 물려받은 개를 산책시키던 이가 재산을 차지하게 되는 상황)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시작이야 어쨌거나 1998년 브뤼셀에 마그리트의 재단을, 2009년에는 마그리트 미술관을 설립하였으며, 세계적인 뮤지엄 순회 전시를 열며 오늘날 마그리트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긁지 않은 복권이었던 마그리트를 가꾸고 널리 알려 열매를 얻은 셈이다. 제발 로또에 당첨되게 해달라는 기도에 신이 하셨다는 ‘로또를 사라’는 말씀은 어쩌면 마그리트 재단의 대표처럼 주변을 잘 둘러보고 평소 덕을 쌓으라는 말씀은 아닐지.
마그리트 뮤지엄, 브뤼셀. ©Wikimedia
가로수길에 자리한 젊은 작가들의 디자인 스튜디오 구오 듀오의 작업실
1995년생의 젊은 작가 맹유민, 이화찬이 이끌고 있는 디자인 스튜디오 구오 듀오의 작업실이 궁금했다.
신사동 가로수길에 자리한 구오 듀오의 두 번째 작업실.
구오 듀오의 맹유민, 이화찬 작가.
홍익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맹유민, 이화찬 작가는 같은 과에서 만난 것을 계기로 현재 디자인 스튜디오 구오 듀오 Kuo Duo를 함께 이끌고 있다. 좋아하는 음식, 음악, 취향, 생각하는 방식이 비슷했던 두 사람은 어느 순간 단순히 친하다고만 생각했던 부분이 팀워크처럼 나아간다는 느낌을 받았고, 언젠가 함께 스튜디오를 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게 되었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졸업 후 이들은 기존의 관념을 새롭게 넓혀보고 폭넓은 경험을 해보자는 결심으로 가까운 나라인 일본부터 유럽 등지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저는 덴마크 코펜하겐의 세실리아 만즈 스튜디오에서 1년 반 정도 있었고, 화찬 작가는 스웨덴 스톡홀름의 폼어스위드러브 스튜디오와 일본 도쿄의 시게키 후지시로 스튜디오에서 1년 정도 있었어요. 옆 나라인 스웨덴과 덴마크를 자주 왕래했는데, 당시 일하면서 느꼈던 경험과 주변 사람들의 조언에 힘입어 한국에 돌아가면 우리 것을 시작해봐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정말 맥주를 마시면서 가볍게 이야기하다 ‘그래, 오늘부터다!’ 하고 확신을 했죠(웃음)”라며 맹유민 작가가 구오 듀오의 시작을 설명했다.
신사동 가로수길에 자리한 구오 듀오의 두 번째 작업실.
이들의 작업을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하면, 자연스러움, 평화로움 그리고 위트다. 이들은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새로운 이야기를 할 때도 과연 이것이 자신들한테 자연스러운지 되묻는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억지스럽지 않았으면 해요. 새로운 작업을 시작할 때 기존의 결이나 가치관이 억지스러운 면은 없는지 또 컬러를 선택할 때에도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을 추구하는 편이에요.” 이화찬 작가가 말했다. 이들은 무형적인 것과 내면에서 오는 영감을 바탕으로 작업을 이어간다. 최근 선보인 피스 피스 Peace Piece 작업도 그렇다. 책을 좋아하는 두 작가는 그간 아카이빙해온 예술 서적을 정리하다 우연히 책장을 자세히 살펴보았고 직선으로만 이루어진 것들 사이로 울퉁불퉁하고 울렁울렁한 무언가가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고, 이렇게 시작된 단순한 의문이 매력적인 형태의 북엔드로 탄생했다. “저희가 생각하는 즐거움이나 재미를 시각적으로 만들어낼 때 어떻게 하면 이를 적당한 형태로 발현시킬 수 있을지 고민해요. 항상 익숙하게 봐왔던 기존의 형태, 예를 들어 북엔드 하면 머릿속에 자연스레 떠오르는 모습이 있잖아요. 그런 것을 최대한 새롭게 제안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이화찬 작가가 설명했다. 구오 듀오는 이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레 작업할 사물의 형태를 정한 뒤 평온함과 위트 한 방울을 가미한다. “만드는 행위를 하는 그때만큼은 마음이 편안해지고 즐겁고 행복해요. 아무것도 없는 판 위에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이 상당히 흥미진진해요. 그런 기분을 저희가 작업한 결과물을 보는 사람들한테도 전해졌으면 해요. 그런 이유로 마음에 평온함을 부여하는 부드러운 파스텔 톤을 입히죠. 작품의 이름도 피스 피스 Peace Piece로 지었고요. 평화로운 조각의 의미로요.” 맹유민 작가가 설명했다.
신작 피스 피스 시리즈의 북엔드와 바스켓.
평소 장난끼 많은 두 작가는 로프가 흔들릴 때의 순간을 포착한 듯한 형태처럼 작품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한번 웃음짓게 만드는 위트를 강조했다. 구오 듀오는 활동 기간이 오래되지 않았기에 지금은 북엔드나 바스켓 등 핸디하고 작은 작업물을 선보이고 있지만, 점차 확장된 피스 피스 시리즈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또한 유럽에서 열리는 작은 기획전에 참여하게 되었다며 조만간 국내외 다양한 곳에서 작품을 보여줄 예정이라며 부푼 기대감을 내비쳤다.
전시를 위해 제작했지만 현재 화기를 올려두는 화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클러스트.
파격적인 디자인과 트렌디함을 갖춘 가구 브랜드 비앤비 이탈리아
파격적인 곡선형 디자인 체어 세리 업 시리즈부터 BTS가 선택한 모듈 소파 카멜레온다에 이르기까지.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아이코닉한 디자인과 트렌디함을 갖춘 이탈리아 가구 브랜드 비앤비 이탈리아 이야기.
1969년 처음 출시된 세리 업 라운지 체어는 여성을 형상화한 유기적인 곡선 디자인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매년 다양한 가구가 출시되지만,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다. 이유야 수십 가지 일테지만, 단박에 눈을 사로잡는 인상적인 디자인의 가구는 유독 오래도록 머릿 속에 남는다. 1969년처음 출시된 가에타노 페셰 Gaetano Pesce가 디자인한 세리 업 Serie UP 5와 6이 그 중 하나다. 세리업 5는 여성의 신체를 형상화한 유기적인 곡선으로 구성된 암체어로, 당시 얽매이고 억압받았던 모든 여성을 상징화한 묵직한 구 형태의 스툴 세리 업 6과 함께 시선을 사로잡는 전위적인 디자인을 자랑한다. UP 시리즈는 50년 전뿐만 아니라 뉴욕의 모마 MoMA는 물론, 몬트리올의 파인 아트 뮤지엄과 비트라 뮤지엄에서도 영구 소장 중일 만큼 지금까지도 여전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전의 문법을 과감히 파쇄하고 새로운 발상의 디자인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혁신을 추구하는 비앤비 이탈리아 B&B Italia의 철학과 일맥상통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1966년, 비앤비 이탈리아는 이탈리아 가구 산업의 메카로 불렸던 브리안차 Brianza 지역에서 당시 가구 산업의 선구자로 불렸던 피에로 암브로시오 부스넬리 Piero Ambrosio Busnelli에 의해 설립됐다. 당시에는 현재의 브랜드명 대신C&B(Cassina and Busnelli)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점이 꽤나 흥미롭다.
남아메리카의 컬러풀한 직물에서 영감을 받은 패브릭을 사용해 역동적인 느낌을 내는 아웃 도어형 소파 리베스 Ribes.
스트라이프 패턴을 적용해 위트를 살린 세리 업 라운지 체어.
당시 전통적인 가구 제조 방식을 내세우며 이탈리아 가구계에서 큰 입지를 차지하고 있던 까시나와 손을 잡는 파격적인 행보로 그 시작을 알렸기 때문. 이와 동시에 독자적인 가구 제조 기술까지 하나둘 도입하기 시작하며 서서히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특히 그 당시 자주 사용되던 목제 프레임 대신 스틸 구조를 활용한 소파 프레임을 제작해 훨씬 내구성을 높인 기술과 함께 최초로 폴리우레탄 폼 몰딩 기술을 활용한 쿠션을 제작해 디자인의 폭을 넓힌 것은 엄청난 파급력을 불러일으켰다. 그때부터 꾸준히 이어온 새로운 재료와 기술에 대한 연구는 비앤비 이탈리아를 지탱하는 가장 큰 동력이다. 영원히 변치 않는 가치, 타임리스를 표방하는 디자인과 그에 기반이 되는 창의적 발상과 신선한 시도는 모두 소재에 대한 빈틈없는 연구와 앞서 말한 요소를 모두 현실화하는 기술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했기 때문. 미적, 실용적 측면을 갖춘 산업디자인에 주어지는 황금콤파스상을 네 차례나 수상한 것은 그들의 집중과 시도가 옳았음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타임리스를 추구하지만, 가장 동시대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비앤비 이탈리아는 트렌디한 컬렉션을 끊임없이 선보이고 있다.
암체어와 다이닝 체어 두 가지 버전으로 출시된 젠스체어.
드러운 곡선과 몸을 감싸는 듯한 높은 등받이의 아폴로 소파.
마리오 벨리니, 안토니오 치테리오, 나오토 후카사와 등과 같은 세계 적인 명성을 지닌 디자인 대가와의 협업을 통해 정체되지 않는 미학적 발전을 시도하고 있다. 이로 인해 마치 픽셀 같은 모듈형 소파 가구인 카멜레온 다 Camaleonda, 푹신한 폴리우레탄과 고리 모양의 가죽 벨트 같은 디테 일이 인상적인 아톨 Atoll, 마트 Mart 암체어 등 브랜드를 대표하는 감각적인 가구의 향연을 감상할 수 있게 된 것. 또한 비앤비 이탈리아의 사업영역은 주거 가구와 공용 공간 및 호텔 리조트 가구, 선박 가구 등으로 나눠 제조 및 공정 생산 과정을 분리할 만큼 체계적인 제조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데, 이는 디자인은 물론 기능성과 효율적인 부분에 까다로운 눈높이를 지닌 요즘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아웃도어 가구를 전문으로 선보이는 비앤비 이탈리아 아웃도어, 공용 공간을 고안한 비앤비 이탈리아 프로젝트와 같은 세부 라인과 함께 목제 프레임과 정교한 디테일 을 기반으로 프렌치 클래식 스타일의 가구를 선보이는 자매 격 브랜드 막살 토 Maxalto 등 여러 분야에서 비앤비 이탈리아와 동일한 가치관을 공유하 는 가구를 출시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인피니를 통해 비앤비 이탈리아의 가구 컬렉션을 만나볼 수 있다.
카멜레온다 소파
독 Dock 소파.
50주년 기념 세리업 라운지 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