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를 포르쉐답게

헤리티지에서 영감받는 포르쉐 디자인

헤리티지에서 영감받는 포르쉐 디자인

 

75년의 브랜드 역사는 곧 영감의 원천이라는 포르쉐의 디자인 철학을 소개한다.

 

포르쉐 브랜드 최초의 스포츠카 ‘356’과 그것을 오마주한 ‘비전 357’의 모습.

 

지난 4월 9일, 열흘간 킨텍스를 뜨겁게 달군 2023 서울모빌리티쇼가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전 세계 12개국, 163개 기업이 참가하고 약 51만 명의 관람객이 찾은 이번 페어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포르쉐 부스. 창립 75주년을 맞이한 포르쉐가 아시아 최초로 ‘비전 Vision 357 콘셉트’ 모델을 국내에 공개했기 때문이다. 올해 1월 독일에서 처음으로 공개한 ‘비전 357’에 많은 이가 열광한 이유는 하나다. 1948년 포르쉐라는 이름을 단 첫 스포츠카 ‘356’ 모델을 오마주했기 때문. 포르쉐의 창립자 페리 포르쉐가 “내가 꿈꾸던 차를 찾을 수 없어 직접 만들기로 결심했다”는 바로 그 차다. 포르쉐 356은 미드십 엔진(자동차의 앞바퀴와 뒷바퀴 사이에 엔진이 위치)을 갖춘 2인승 차량으로 이후 약간의 수정을 거쳐 1965년까지 7만8,000여 대를 생산했으며, 디자인 아이콘인 포르쉐 911의 뿌리가 된 모델. 오래전 단종된 이 모델을 75년이 지나 굳이 들춰낸 이유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포르쉐가 추앙하는 디자인 헤리티지에 대해 알아볼 차례다.

 

1948년 첫선을 보인 포르쉐 356의 당시 사진.

 

독일 본사에서 근무 중인 정우성 시니어 익스테리어 디자이너.

 

현재 포르쉐에서 생산되는 모든 차의 디자인은 독일 슈투트가르트 R&D 센터에 자리한 스타일 포르쉐 Style Porsche 팀에서부터 시작된다. 열 명이 채 되지 않는 익스테리어 디자이너들은 포르쉐가 75년간 쌓아온 디자인에서 미래의 디자인을 발견하고 새로움을 창조한다. 포르쉐는 스포츠카 브랜드 가운데서도 고집스러운 디자인 DNA를 고수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는 과정에서도 차폭과 넓이의 비례, 급격하게 경사진 루프 라인, 펜더보다 낮은 보닛, 코의 높이, V자형 리어 글라스, 운전자 중심의 레이아웃, 낮은 시트 포지션 등 익스테리어와 인테리어 모든 방면에서 ‘포르쉐를 누가 봐도 포르쉐처럼’ 보이게 만드는 아이덴티티를 반드시 준수하며, 이후 경쟁사들의 디자인, 개발 비용, 기술, 국가별 법규 등을 세세히 따져 세부적인 디자인 요소를 통해 각각의 개성을 불어넣는 것. 신차 기획부터 실제 양산까지는 대략 4년의 시간이 소요되는데, 디자인 과정은 크게 아이디어 스케치 과정인 아이디에이션 Ideation과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데피니션 Definition, 프로덕션 Production으로 나뉜다. 모든 과정에서는 VR과 3D 프린팅, 클레이 모델링 과정을 통해 시각화하며 세부적으로 끊임없이 조율해 나간다.

 

‘비전 357’의 스케치 모습.

 

스타일 포르쉐팀은 75년 역사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무엇보다 중시 여긴다.

 

“미래형 컨셉트카를 위해 우리의 전통을 돌아보는 것은 생각보다 역설적이지 않습니다. 헤리티지를 통해 오히려 풍부한 영감을 얻을 수 있거든요. 정체성이 분명하면서도 각기 다른 개성이 묻어나는 디자인을 할 수 있습니다.” 본사 최초 한국인 디자이너로 주목받은 정우성 시니어 익스테리어 디자이너가 최근 방한해 베일에 싸여 있던 양산차 모델 개발 프로세스를 간략하게 소개하며 밝힌 소감이다. 본사의 디자이너가 직접 내한해 업무를 소개하는 일은 전례 없던 행보. 그만큼 포르쉐가 디자인 헤리티지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100주년을 맞이할 2048년에도 포르쉐는 여전히 전통과 혁신 사이에서 포르쉐다운 포르쉐를 디자인하고 있을 것이다.

 

창립 75주년을 기념해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특별 전시회. 포르쉐의 역대 자동차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자료제공: 포르쉐

CREDIT

에디터

TAGS
꿈의 모빌리티

현대모터스튜디오의 '홈 스토리즈' 전시에서 보는 미래

현대모터스튜디오의 '홈 스토리즈' 전시에서 보는 미래

 

근미래의 컨셉트카에서 시작해 과거 주거 환경의 변화를 거쳐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미래의 쉘터로 이어지는 현대모터스튜디오 부산의 <홈 스토리즈> 전시가 시작됐다. 이동 수단이 아닌 하나의 ‘집’처럼 확장될 모빌리티의 미래가 기다려진다.

 

집과 나만의 안식처가 그 어느 때보다도 새삼 중요해진 요즘, ‘미래에 우리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게 될까?’ 하는 질문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현대모터스튜디오 부산에서 진행 중인 <홈 스토리즈 Home Stories> 전시를 보고 나면 각자에게 맞는 답을 상상할 수 있을지도. 인간을 풍요롭게 하는 디자인의 힘 Design to Live by를 추구해온 현대모터스튜디오 부산에서 현재 진행 중인 <홈 스토리즈>는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과 협업한 이래 두 번째 프로젝트다. 전시는 현대자동차 아이오닉의 컨셉트카인 ‘세븐 SEVEN’에서 시작해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의 아카이브와 전시의 대미를 장식하는 스튜디오 스와인 Studio Swine의 몰입형 설치작품 ‘흐르는 들판 아래’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관람객은 공간을 넘나들며 그동안 인류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진화해온 주거 문화와 한 단계 진화한 모빌리티 그리고 미래의 주거 환경을 꿈꿔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흐르는 들판 아래
by 스튜디오 스와인

‘흐르는 들판 아래’에서 별을 쳐다보는 듯한 포즈를 취한 스튜디오 스와인의 알렉산더 그로브스.

 

전시는 스튜디오 스와인의 몰입형 설치작품으로 끝을 맺는다. 두툼한 커튼을 젖히고 들어가면 온통 푸른빛으로 감싼 공간에 들어서게 되는데, 뿌연 스모그와 천장에 달린 60개의 네온 튜브가 들판에 부는 바람, 별똥별 혹은 새의 움직임처럼 계속 움직이고 멈춘다. 갑자기 시공간을 초월해 전혀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스튜디오 스와인은 ‘에피머랄 테크’라고 이름 붙인 기술로 플라즈마를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네온 튜브를 만들었다. 플라즈마가 반응하면서 내는 소리는 눈을 감고 들으면 마치 귀뚜라미 소리 같기도 하다. 구불구불한 뱀 같기도 한 곡선의 벤치는 아이오닉 컨셉트카 세븐에서 사용된 것을 재활용한 것으로 스튜디오 스와인의 지속가능한 디자인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다.

 

INTERVIEW

<홈 스토리즈> 전시에서 몰입형 설치작품 ‘흐르는 들판 아래’를 선보인 스튜디오 스와인의 알렉산더 그로브스 Alexander Groves와 전시장에서 나눈 인터뷰.

 

세실 비튼의 서커스 베드를 본 후 커튼을 열고 들어서자 마치 순간이동한 것 같았다.

전시장에 들어오면 방향, 공간감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자세히 봐야 거울이 앞에 있다는 걸 알게 되는데 천장에 달린 네온 튜브는 그림자가 없어 마치 우주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만든다. 푸른빛과 미스트 같은 연기 그리고 네온 튜브의 빛과 소리만이 공간을 감싼다.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나?

정말 노력했던 부분은 전시에 사용되는 요소를 아주 최소화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긴 벤치는 아이오닉 컨셉트카 세븐에 사용된 섬유로 만들었고, 네온 튜브도 재활용할 수 있다. 또 플라즈마는 우주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인데 반응을 통해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 고유의 소리도 작품의 일부로 포함했다.

 

많은 소재 중에서도 플라즈마라는 소재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현대자동차에서 모빌리티, 쉘터, 지속가능성 등 큰 주제를 먼저 제안했고, 이에 맞는 작품을 구상하다 플라즈마에까지 이르렀다. 아이오닉 컨셉트카 세븐은 전기차로 아이오닉, 즉 이온은 전기적인 성질을 지닌 입자다. 플라즈마 역시 이온화된 기체인데 전기가 통할 수 있어서 이를 눈으로 보고, 소리로 들을 수 있게 해보고 싶었다. 우리 주변에는 에너지가 많지만 이를 보는 건 어렵지 않나. 전시에서는 이를 가시적으로 드러내고 싶었다.

 

모빌리티와의 연관성은 어떻게 찾았나?

60개의 네온 튜브는 끊임없이 흐르고 이동하고 움직인다. 또 거울에 반사돼서 계속 뻗어나가는 듯한 뱀 모양의 벤치에서도 생동감과 운동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런 부분에서 모빌리티를 표현하고자 했다.

 

쉰다는 것은 에너지를 다 내려놓는 것이 아닐까. 전시는 오히려 에너지를 보여준다.

정신적인 휴식과 신체적인 휴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움직이는 물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편안한 벤치에 원하는 대로 앉아서 빛의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몸도 마음도 충분히 휴식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2017년 밀라노에서 브랜드 코스 COS와 협업한 <뉴 스프링> 전시는 나무에서 나오는 버블을 관람색이 가까이에서 보고 만질 수 있었다. 몰입형, 체험형 전시를 선호하나?

어떤 형태로든 새로운 느낌을 계속 전달하고 싶다. 혁신을 통해 새로운 기술, 새로운 프로세스를 발견하고 이를 보는 이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고 싶다.

 

해양 폐기물로 만든 시 체어 Sea Chair도 그렇고 지속가능한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이다. 전시 후에 버려지는 것을 최소화하고 가능한 한 재사용하려고 한다. <뉴 스프링>에서 선보인 나무 형태는 모듈식이어서 해체했다가 다른 용도로 여섯 번 정도 재활용했다(웃음).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것이 목표다.

 

아티스트로서 감각을 유지하는 비법이 있다면?

호기심인 것 같다. 한 가지만 일관되게 작업하는 작가에 대해 존경심을 갖고 있지만 스튜디오 스와인은 그런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다. 매번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고자 하고, 그것이 가능한지 아닐지를 끈질기게 탐구한다. 우리가 해온 프로젝트를 보면 해양 쓰레기부터 알루미늄 캔, 아마존 정글, 버블 그리고 플라즈마까지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으로 또 어떤 것에 관심이 생길지는 아직 모르겠다.

 

‘흐르는 들판 아래’를 보며 관람객이 느꼈으면 하는 것이 있는가?

우주와 생명체, 환경 등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또 경이로움을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 예술 작품과 교감하고 나면 좋은 감정을 갖게 되고, 이는 가까운 가족부터 주변으로 퍼져나간다고 믿는다. 우리의 작품이 선한 영향력으로 확대되기를 바란다.

 

전시의 두 번째 섹션에서는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의 아카이브를 네 개의 시대별로 나눠 구성했다.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의 큐레이터 요헨 아이젠브랜드는 1920~30년대 전시 섹션에서 관람객들이 세실 비튼의 화려한 침대와 바로 옆에 위치한 ‘프랑크푸르트 키친’의 대비를 즐겨주길 바랐다. © 현대모터스튜디오

 

 

신개념 모빌리티
아이오닉 컨셉트카 세븐 전시장 입구에는 녹색의 아이오닉 컨셉트카 ‘세븐’이 전시돼 있다. 자율주행 기능을 갖춘 세븐은 작은 쉼터나 라운지처럼 내부를 구성해 장시간 이동할 때도 쾌적하고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앞문과 뒷문이 마주보고 열리는 방식인 코치 도어를 적용해 넓은 개방감을 자랑하고, 좌석이 회전돼서 각자 원하는 방향에서 쉴 수도 있다. 근미래에는 차를 탄다는 개념 대신 신개념의 쉘터로 이동한다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질지도 모르겠다.

현대 아이오닉 컨셉트카 ‘세븐’은 자동차가 아니라 작은 라운지처럼 느껴진다. 개방감을 강조한 실내 인테리어는 장시간 운행에도 편안함을 선사한다. © 현대모터스튜디오

 

현대 아이오닉 컨셉트카 ‘세븐’은 자동차가 아니라 작은 라운지처럼 느껴진다. 개방감을 강조한 실내 인테리어는 장시간 운행에도 편안함을 선사한다. © 현대모터스튜디오

 

 

100년간의 주거 환경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

아이오닉 컨셉트카 세븐을 둘러보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면 <홈 스토리즈: 20개의 혁신적인 인테리어로 보는 100년의 역사> 전시가 이어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주거 공간은 시대에 따라 당시의 사회나 경제, 기술 등 다양한 요소의 영향을 받으면서 변화해왔다.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은 시대를 역행하는 순서로 네 개의 인테리어 변화기를 대표하는 가구와 사진, 영상 자료 등을 엄선해 소개했다. 기능을 넘어 새로운 자산, 자원으로써의 목적을 지니게 된 2000년부터 현재까지의 집에서 시작해 인테리어의 대격변 시기였던 1960~80년대, 자연친화적인 것을 추구했던 1940~60년대, 실용적이고 산업적인 발전을 이룩한 1920~30년대로 이어진다.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의 총괄 큐레이터인 요헨 아이젠브랜드는 “이미 알고 있는 논리를 예측하지 않고 한 시대마다 집중하길 바랐기 때문에 시대 흐름을 역순으로 구성했다. 유명한 작품부터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작품을 적절히 배치했고, 영상물도 함께 감상하면 흥미로울 것이다. 특히 장식적인 요소가 강한 세실 비튼의 서커스 침대 그리고 전혀 다른 스타일인 ‘프랑크푸르트 키친’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스몰 주택의 표본인 건축 스튜디오 엘리이의 아파트 ‘요지겐 포케토’, 최근 다시 인기를 얻고 있는 멤피스 시대를 대표하는 책장 ‘칼톤’, <홈 스토리즈>의 포스터이기도 한 건축가 리나 보 바르디의 집 ‘카사 드 비드로’,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을 이끈 핀 율의 오리지널 ‘치프테인 체어’, 현대 시스템 주방의 효시인 ‘프랑크푸르트 키친’ 등 각 시기의 특징을 알아볼 수 있는 마스터피스를 보며 흐름에 따라 변화해온 주거 문화와 환경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이 인기를 누렸던 1940~60년대는 건축과 자연이 가까워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오른쪽 흑백사진은 <홈 스토리즈> 전시의 포스터이기도 한 건축가 리나 보 바르디의 상파울로 집인 ‘카사 드 비드로’다. © 현대모터스튜디오

 

장식적이고 도발적인 디자인이 유행했던 멤피스 시대의 대표작인 ‘칼톤’ 책장.

 

현대 시스템 주방 가구의 효시인 ‘프랑크푸르트 키친’.

CREDIT

에디터

포토그래퍼

이현실

TAGS
Time Magician

시간의 흐름을 보는 스튜디오 웬의 오만 시계 프로젝트

시간의 흐름을 보는 스튜디오 웬의 오만 시계 프로젝트

 

시계가 아닌 시간을 보는 방법을 디자인한다. 스튜디오 웬은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세상의 시간을 새롭고 흥미롭게 바라보는 방법을 제시한다.

 

때에 따라 벽에 걸어 시계로 활용하거나 12개의 물결무늬가 만들어낸 은은한 그림자가 아름다워 오브제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해내는 고스트 클럭.

 

시계가 갖춰야 할 기본 요소인 시침과 분침, 초침이 없는 것은 물론 숫자도 없다.  매일 바라보는 시계를 남다른 시각으로 해석해낸 이는 스튜디오 웬의 김원영, 배민경 작가다. 두 작가는 시계를 물리적인 정보 전달로써의 개념보다 그 안에 담긴 이야기에 집중하고자 했다. ‘시간’이라는 일관된 주제로 ‘시계’라는 매개체를 통해 관람객과 소통하고자 한 것. “시간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다양한 형태로 담고 있어요. 모두가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지만 속도는 전부 다르거든요. 결국 어디서 차이가 나는지 따져봤을 때, 저마다 처해 있는 상황이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그러한 이야기를 작품에 담아내고자 합니다.” 개인 사정으로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배민경 작가를 대신해 김원영 작가가 찬찬히 작품 의도에 대해 설명했다.

 

인센스 스틱을 결합한 인센스 홀더 겸 시계. 시계의 움직임에 따라 인센스 스틱도 함께 돌아가면서 공간에 향을 더한다.

 

스튜디오 웬을 이끌고 있는 김원영 작가.

 

스튜디오 웬의 첫 시도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시계의 모습에서부터 출발한다. 손목시계 형태의 그리드 Grid와 디 프로스트 D. Frost가 결과. 그리드는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는 시, 분침의 일반적인 움직임에서 벗어나 시침과 분침이 수직과 수평으로 움직이면서 직교하는 교차점으로 현재의 시간을 나타내는 방식이다. 하루가 끝날 즈음이면 좌표가 아래로 내려가 있어 시간의 흐름을 면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한 것. 시곗바늘이 없는 원형의 손목시계 디프로스트는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반투명 유리 아래로 좌판이 회전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현재의 시간은 유리와 맞닿아 있어 선명한 상으로 맺히지만 지난 과거와 미래의 시간은 유리 표면으로부터 멀어져 흐릿하게 표현되어 현재에 집중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디자인인 셈. 하지만 이 창의력 넘치는 발상은 아쉽게도 컨셉트 모델링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조금은 무모했던 것 같아요. 이 두 작품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 을지로에 있는 시계 장인을 찾아갔는데, 저희의 아이디어를 듣더니 빨리 스위스로 가라고 하시더군요(웃음). 디지털로 프로그래밍했지만, 이걸 아날로그로 보여주는 과정은 쉽지 않았어요. 죽기 전에는 만들어보리라 다짐하고 숙원 사업으로 그쳤죠.” 애정을 담았던 초기 작업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실행 가능한 아이디어를 다시 구상했다.

 

최근 시작한 회화 작품 시리즈. 카툰 형식으로 각 신마다 담긴 이야기가 흥미롭다.

 

시간의 흐름을 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손목시계 그리드.

 

조금 더 수월한 제작 방식과 실현 가능성을 고려해 탄생한 작품이 바로 고스트 클럭이다. 이는 눈금이나 숫자 없이 12개의 물결 위로 드리워지는 빛과 그림자의 명암 대비로 시간의 간격을 나타낸 작품이다. 유령이 고운 천을 뒤집어 쓰고 있듯 보이지 않는 시간을 은유적으로 담아낸 것. 고스트 클럭은 시계의 역할을 해내는 동시에 공간 속 아름다운 오브제로도 존재할 수 있어 많은 이의 관심을 끌었고, 이를 계기로 시계에 대한 열정은 더욱 과감해졌다. “대중과 빠르게 소통하고 단시간에 흥미로운 작업을 많이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시작한 게 오만 시계 프로젝트예요. 사실 오만 개의 시계를 만들어보자는 농담에서 시작한 프로젝트인데, 과연 어디까지 시계일 수 있을지 저희 스스로의 한계도 실험해보며 현재까지 작업을 이어오고 있어요.” 소재와 형태, 크기, 움직임까지 무엇 하나  겹치는 요소가 없는 시계를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바로 무게중심이다. 아주 얇은 알루미늄 침을 쓰는 일반 시계에 비해 부피도 크거니와 꽤나 묵직하기 때문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고.

 

현재의 시간에 집중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원형 손목시계 디 프로스트.

 

“오만 시계의 의미 자체가 조형적으로 변해 있을 때 시간이 흘렀구나를 알게 되잖아요. 마치 음식이 썩는 것처럼요. 직관적으로 시계가 보이는 것도 있지만 아슬아슬하게 움직이면서 만들어내는 조형적인 모습을 좋아해요.” 탄생 과정도 우연적으로 마주한 상황이나 갑자기 떠오른 영감이 시초가 된다. 칵테일 안에 담긴 체리에서 영감을 얻어 농구공같이 동그란 분침을 만든다든가 문득 인센스 스틱을 꽂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탄생한 인센스 홀더 겸 시계도 있다. 아이디어 뱅크인 이들이 매일 새로운 디자인을 구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최근에는 만화처럼 스토리를 담은 아크릴 회화 작업을 시작하기도. 스튜디오 웬은 자신들의 작품이 공간 속 시계로 기능하되 작품으로서의 가치도 동반되었으면 한다며 앞으로도 단 하나의 시계에 꼭 맞는 집을 지어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시간을 보는 방법도, 모습도 제각기 다른 매력으로 무장한 오만 시계 프로젝트 시리즈.

 

 

SPECIAL GIFT

김원영 작가에게 증정한 끌레드뽀 보떼의 더 세럼은 피부 본연의 힘을 일깨워 생기 있고 매끄러운 피부를 완성시켜준다. 또한 피부에 고르게 퍼지고 빠르게 흡수되어 24시간 보습 효과를 유지시키고 피부의 길을 열어 다음 단계 제품의 흡수를 높여준다. 50ml, 30만원.

CREDIT

에디터

포토그래퍼

이현실

TA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