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색과 익숙한 캐릭터들로 겹겹이 쌓아올린 캔버스.
그 너머엔 캐서린 번하드가 끈질기게 쌓아온 예술에 대한 진심 어린 사랑이 배어 있다.

작가의 작업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마지막 전시장에는 캐서린 번하드의 최신 신작 또한 전시되어 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Some of All My Work’입니다. ‘모든 것’을 지칭하는 All과 ‘일부’를 지칭하는 Some이 함께 쓰였다는 점이 흥미로운데요. 전시명 그대로 당신의 모든 작업 중 일부를 선보이는 본 전시에서, 그 ‘일부’를 고르게 된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워낙 많은 작업을 하다 보니, 아무리 대규모 회고전이라 해도 모든 작품을 가져올 수는 없었습니다. 이번 전시는 내 스튜디오와 개인 창고에 있던 작품 위주로 구성했고, 세인트루이스 스튜디오에 직접 방문한 큐레이터들과 함께 보관소, 아카이브까지 찬찬히 살피며 세심하게 셀렉했어요. 초기작인 슈퍼모델 작업부터 쿠키 몬스터, 나이키, 포켓몬 시리즈와 신작까지. 지금까지 작업한 시리즈 중에서 몇 점씩 골라 전시에 포함시켰습니다.
개인적으로 첫 번째 전시장에 있는 슈퍼모델 시리즈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캐서린 번하드 하면 떠올리는 유쾌한 캐릭터와 비비드한 색감의 작업물과는 다소 거리가 있죠. 전체 작품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요즘 제 작업들보다 확실히 어둡고 두텁죠. 대학 시절부터 거의 10년을 이렇게 작업해왔는데, 그러다 보니 질리더라고요. 제 작업은 모두 제 관심사에서 출발해요. 관심사가 자연스레 옮겨가며 작업 대상도 변했어요. 1980년대의 음악과 헤어스타일, 옷, 건축, 색감을 좋아해 그것을 스와치 시리즈에 녹여내기도하고, 모로코 러그에 빠져 해당 시리즈를 그리기도 했죠. 각각의 러그엔 악령을 쫓거나, 순산을 기원하는 등의 상징이 들어 있어요. 상징성과 연결되는 제 작업과 잘 맞죠. 나머지 시리즈도 마찬가지예요. 작업할 당시에 가장 관심 있는 주제, 그로부터 출발합니다.
예전엔 단일 오브젝트를 중심으로 그렸다면, 지금은 한 캔버스에 다양한 사물이 들어 있는 것도 변화의 한 부분일까요? 맞습니다. 하지만 늘 사물에 초점을 둔 점은 변하지 않아요. 화장지, 양말, 컴퓨터, 피자, 담배 같은 주변에서 볼 법한 일상적인 오브제가 중심이 될 때가 많죠. 한때는 제 아들이 포켓몬 카드를 엄청 모으는 걸 보고는 ‘이걸 그려야겠다’ 싶었어요 그렇게 탄생한 것이 포켓몬 시리즈입니다.

집 창고로 향하는 복도를 그대로 재현한 전시 공간.

초기작인 슈퍼모델 시리즈는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유쾌한 미소를 짓는 캐서린 번하드 작가.

세인트루이스 집의 샤워실까지 실제처럼 구현했다.
스튜디오를 재현한 마지막 전시장을 보고 당신의 작업 세계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바닥 곳곳을 물들인 물감 자국부터 영감 노트와 물감 팔레트, 여기저기 꽂혀 있는 포켓몬 카드, 책상 위 시리얼 박스와 과자 봉지 등은 모두 그림에서 본 익숙한 사물들이에요. 심지어 한쪽에 배치된 피자 박스는 우리 지역에서 유명한 이모스 Imo’s 피자예요. 책상 위 ‘럭키 참’ 시리얼은 제 신작에도 자주 등장하는데, 요즘 제가 빠져 있는 시리얼이고요. 초록 타일에 주황색 줄눈이 특징인 샤워실도 전시장에 재현했어요. 집에 샤워실이 네 개 있는데, 정말 이렇게 생겼어요. 제 작품 중 핑크 팬더가 목욕을 하는 <Tub Time>에서도 이 타일을 볼 수 있죠.
공간 그 자체도 하나의 예술작품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작품뿐만 아니라 작업 공간까지 비비드한 색채로 물들인 것을 보니, 당신에게 색이 갖는 의미가 궁금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집을 회색으로 칠한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색은 감정을 자극하잖아요. 기분을 좋게 만들고요. 작업할 때는 실물 색을 그대로 쓰는 편이고, 어울리는 조합을 생각해가며 작업하기도 해요. 그럴 때는 그날의 기분에 따라 보통 직관적이고 즉흥적으로 결정해요. 제 작업물이 가끔씩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것은 그 이유죠.
관객 또한 작업을 보면 직관적으로 반응하게 되죠. “예술은 사랑과 같다. 무슨 해석도 필요 없다”고 말한 샤갈의 말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현대 미술은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저는 그런 것보다는 그저 회화 자체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고,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립니다. 관객들도 그저 제 그림을 보고, 느낌을 받으면 되는 거예요. 제 작품을 좋아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고, 각자의 관점에 온전히 맡기는 거죠. 생각해보니 제 작품이 관객과 관객의 일상에 기쁨을 준다는 점에서 사회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렇다고 제 작품이 진지하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저는 매일 스튜디오에 가서 작업하는데, 이건 진지한 행위예요.
한때 컴퓨터와 기술의 시대에 붓을 들고 그림 그리는 일을 “무언가 원초적인 것”이라고 표현하며, “이 행위가 재미있다”고 말한 적이 있죠. 지금은 그로부터 기술이 더 발전해 AI가 그림을 그리는 시대가 왔습니다. 이를 예술이라 정의 내릴 수 있을까요? 그건 예술이 아니에요. AI가 만든 그림은 예술이라 칭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인간이, 인간의 손으로 만든 창작물만이 예술이라 불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은 보는 이의 기분을 좋게 하고, 볼 때마다 새로운 요소와 디테일을 찾게 되는 매력이 있죠. 감정이 없는 AI가 만든 그림이 이런 기쁨을 전달할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에 대한 감회가 더욱 남다를 것 같습니다. 당신의 예술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담은 세계 최초의 회고전이자 최대 규모의 개인전이 열리는 것이니까요. 정말 처음이죠. 지금 이곳에 있을 수 있어서 아주 좋고 행복해요. 그림 그리는 기쁨이 한국 관객들에게도 전달되면 좋겠어요. 이를 통해 영감을 받을 수 있다면 더욱 좋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