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가 교차하는 지점인 라오스. 상큼한 허브 고수와 민물생선 그리고 통통 튀는 찹쌀밥까지 동남아시아 음식을 처음 접하는 초보에게도 안성맞춤의 코스를 소개한다.
“No Coriander, please.”(영어) “No Cilantro, por favor.”(스페인어) “삐에팡 씨앙차이.”(중국어) “마이 싸이 팍치.”(태국어) 모두 다 향신료인 ‘고수’를 넣지 말아달라는 표현들이다. 내가 이 문장들을 다 외우고 있는 이유는? 당연히 고수를 엄청 싫어했기 때문이다! 지중해가 원산인 이 풀은 우리나라만 빼고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어딜 가든 안 먹는 곳이 없을 정도다. 하긴 우리나라에서도 일찍부터 사찰을 중심으로 고수를 재배해 김치로도 먹고 쌈으로도 먹었다고 한다. 파, 마늘, 부추, 달래, 양파 등 오신채를 먹어선 안 되는 스님들이 심심한 입을 달래기 위한 일종의 대체 향신료였던 셈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게 고수의 향은 오신채보다 더 강하다. 샴푸 향 같기도 하고 노린재의 방귀 같기도 한 그 냄새는 도무지 음식에서 나서는 안 되는 것으로 느껴지기 십상이다. 사실 위에 적은 표현들 중, 가장 먼저 배운 것은 이거다. “보 싸이 홈 뽐.” 태국말과 살짝 비슷한 감이 있기도 한 이 문장은 파사 라오, 즉 라오어語다. 2002년 고수와 처음 대면했던 곳, 내 두 번째 해외 출장지, 라오스의 수도 위엔짱(비엔티안)은 초여름부터 무더웠다. 하지만 갓 조연출 딱지를 떼고 해외 물을 먹기 시작했던 나에겐 라오스의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로웠다. 무엇보다 물가가 정말 환상적으로 쌌다. 특급 호텔에서 맥주 댓 병이 겨우 1만7천킵(1천7백원)이었으니, 길거리에서 사 먹는 국수는 5백원 미만이면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싼 국수라고 하더라도, 들어가는 재료나 맛은 만만치 않았다. 라오스에서도 여타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쌀국수를 즐겨 먹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베트남식의 가는 국수는 퍼, 그것보다 굵은 국수는 카오 삐악 Khao Piak이라고 부른다. 개인적으로는 씹는 맛이 더한 카오 삐악을 더 즐겨 먹었다. 배고플 때 식당에 가면 반찬에 먼저 손이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위엔짱의 노천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으레 먼저 상에 올라온 홈 라압 Hom Laap(민트 잎)이나 오이를 파득 Padaek(생선으로 만든 라오스식 된장)에 찍어 오독거리는 것이 자연스런 절차였다. 하지만 그 소쿠리 속에서 유독 멀찌감치 치워놓는 대상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홈 뽐 Hom pom이라 불리는 고수다. 먹을 때 넣지 않는다고 해도 끓이는 단계에서 들어간 것은 어쩔 수가 없으니, 아예 국수를 주문할 때 “보 싸이 홈 뽐!” 하고 외치게 된 것도 라오스에서 얻은 습관 중 하나였다. 홈 뽐만 사전 차단하는 데 성공한다면, 라오스에서의 식생활은 만족 그 자체였다. 동남아시아 음식을 처음 접하는 나에건 안성맞춤의 초심자 코스였던 셈이다. 라오스 음식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매 끼니 먹는 찹쌀밥이다. 라오스 북부의 몽족 마을에 여자 리포터와 함께 촬영을 간 적이 있는데, 마을 이장님이 꼭 점심을 자기 집에서 대접하고 싶다 하여 리포터가 대접받는 모습을 촬영하게 되었다. 이장님께서 아리따운 한국 아가씨가 대단히 마음에 들었던지, 본인이 찹쌀밥을 떼어 직접 먹여주셨다. 문제는 이장님이 방금 밭일을 마치고 갓 돌아와 손을 씻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손바닥 안에서 주물럭거린 찹쌀밥은 살짝 거뭇하게 색이 변해 있었고 반찬 국물에 찍어 리포터의 입 앞에 도달했을 땐 나조차 이걸 어째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 다행히 프로정신이 투철했던 그 리포터는 카메라 렌즈를 원망 담은 눈길로 잠시 째려보고는 그 밥 뭉치를 한입에 꿀떡 받아 삼켰다. 그리고 이어진 멘트. “간장에 찍지 않아도 밥맛이 짭짤하네요.” 손 안에서 밥을 주물럭거리는 이유는 그렇게 해야 찹쌀밥 낱알의 까끌거림이 덜해지고 한 덩어리의 인절미처럼 쫄깃해지기 때문이다. 이 찹쌀밥과 환상의 궁합을 이루는 음식이 바로 ‘라압’이다. 라압의 주인공은 ‘홈 라압’이라고 부르는 민트 잎이다. 우리나라에선 모히토를 마실 때에나 들어가는 민트 잎이 여기선 당당히 음식의 주재료 역할을 한다. 함께 들어가는 부재료에 따라 라압 빠(생선살), 라압 까이(닭고기), 라압 무(돼지고기), 라압 느어(쇠고기) 등으로 달라지는데, 요는 신선한 민트 잎에 잘게 간 고기를 넣고, 남빠라는 젓갈과 라임즙으로 간을 해 무치는 것이다. 어질어질한 더위에 입맛을 잃었을 때, 상큼한 민트 잎과 라임이 들어간 라압만큼 적절한 처방도 드물다. 여기에 찹쌀밥을 곁들이면 영양 면에서나 맛에서나 흠잡을 데 없는 라오스의 가정식 백반이 탄생한다. 라오스의 가정식 백반에서 빼놓아서는 안되는 한 가지가 더 있다면 바로 ‘땀막훙’이다. 라오어로 ‘땀’은 절구에 넣고 빻는 것을 의미하고, ‘막훙’은 그린 파파야를 말한다. 즉, ‘절구에 넣고 빻은 그린 파파야 샐러드’다. 빻을 땐 남빠와 설탕, 라임 그리고 매운 고추가 들어간다. 무보다 더 슴슴한 파파야의 맛에 젓갈의 감칠맛과 고추의 매운맛 그리고 라임의 상큼한 맛이 합쳐져 만들어내는 앙상블은 생각보다 오묘해서 쉽게 중독되곤 한다. 알맞게 식은 찹쌀밥과 땀막훙을 맨손으로 집어서 입안에 밀어 넣는 그 때의 느낌을 생각하는 지금도 입안엔 침이 한가득이다. 그렇게 피해 다녔던 홈 뽐과 예상치 못한 재회를 한 것은 2005년, 세 번째로 라오스 취재를 갔을 때였다. 한국에서 카메라 감독과 리포터를 대동하고 간 취재였기에 음식을 고를 때도 가급적이면 너무 낯설지 않은 것을 선택하려 나름 애를 썼다. 도착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저녁 식사로 ‘똠얌빠’를 시켰는데, 한식으로 치면 생선 지리에 해당하는 국물 요리였다. 보글보글 끓으며 신선로에 담겨 나온 모양새가 너무나 맛나 보여 코를 박고 먹기 시작했는데, 정신없이 흡입하는 와중에 주위를 둘러보니 카메라 감독과 리포터는 벌써 식사를 마친 눈치였다. “아니 왜 벌써 수저를 놓아요? 이 생선국 정말 맛있는데? 좀 더 드시죠?” “그게… 향이 너무 강해서 우린 못 먹겠어.” “네? 여기엔 홈 뽐도 안 들어가 있…”까지 말하고 국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용산에 조성된 서울숲처럼 초록을 뽐내고 있는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듬뿍 들어간 홈 뽐이다. “아하…! 이게 왜 향이 느껴지지 않았지…?” 해답은 간단했다. 여러 날에 걸친 라오스 취재 동안, 피해 다닌다고 다니긴 했지만 어쩔 수 없이 홈 뽐을 먹어야 할 기회도 많이 있었고 그런 경험이 반복되다 보니 그 향에 익숙해졌던 것이다. 결국 그날 밤, 나는 맛있는 똠얌빠를 독차지하고 느긋하게 즐길 수 있었다. 다른 나라에 가서 낯선 풍습이나 낯선 문화 때문에 그 나라 자체에 대한 인상까지 흔들리는 경험을 하는 사람들에게 난 종종 이 이야기를 한다. 무엇이든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것이 나타나면 금세 ‘옳다’, ‘그르다’는 판단을 내리려 하지 말고 일단 회색 지대에 남겨놓고 보자는 것이다. 충분한 정보와 경험이 모이면, 그때 가서 자연스럽게 판가름이 나기 마련이다. 그게 진짜 옳은 건지, 그른 건지, 나에게 맞는 건지, 아닌 건지. 처음 홈 뽐과 인연을 맺은 지 12년이 지난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홈 뽐, 팍치, 코리앤더, 실란트로, 씨앙차이가 들어가지 않은 현지 음식은 어딘지 허전하다고 생각하는, ‘고수 덕후’의 증세를 나타내고 있다. “싸이 홈 뽐 라이라이!(홈 뽐 많이 넣어주세요!)”
글 탁재형(다큐멘터리 PD) | 에디터 이경현 | 일러스트레이터 김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