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각지의 제철 식재료와 향토 음식 전문가들에게서 전수한 오랜 손맛은 박주은 셰프의 한식을 이루는 바탕이다. 그가 ‘레스토랑 주은’을 통해 말하는, 지금 이 순간 가장 한국적인 맛.

“오늘도 청량리 경동시장에 다녀왔어요.” 올해 초 첫 미쉐린 스타 수상 이후, 달라진 일상을 기대하며 물은 질문에 박주은 셰프는 의연하게 답했다. ‘레스토랑 주은’(이하 주은)은 그의 이름을 앞세워 만든 한식 공간이다. 2022년 오픈 이래, 계절을 담은 전통 한식을 코스로 풀어내고 있는 이곳은 ‘2026 미쉐린 가이드 서울·부산’에서 새롭게 1스타를 획득했다. “지난 4년이 쉽지 않은 시간이었던 건 사실이에요. 저만의 색을 찾아가는 시간 속, 계속 고민하며 많은 것을 시도해왔습니다. 미쉐린 스타를 수상했다고 해서 무언가 크게 달라졌다고 느끼진 않아요. 아직은 무언가를 더 해볼 수 있는 시작점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수상 이후 예약 손님이 늘어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박주은 셰프의 일상에 큰 변화가 찾아온 것은 아니다. “지방 일정이 많은 건 변함없어요. 영암에는 주기적으로 장을 담그러 가고, 통영 등지에서는 향토 음식을 전문으로 만드는 선생님들을 찾아뵙고 수업을 듣기도 하죠. 울산 언양장에는 좋은 식재료가 많아서 장을 보러 가고요. 곧 버섯철이 되면 강원도도 들러볼 예정입니다.”

그가 한식을 시작한 배경엔 정체성에 대한 성찰이 자리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남극세종과학기지에서 주방보조로 근무하고, 호주와 덴마크에서 요리 수련을 할수록 한식에 대한 열망은 오히려 깊어져갔다. 이후 조희숙 셰프의 ‘한식공간’ 오픈 멤버로 합류하게 된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9년 전, 제가 스물아홉 살 때 막내로 들어갔어요. 그때 요리사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식자재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태도를 배웠죠.” 이러한 태도는 지금의 주은에서도 유효하다. 최대한 국내 로컬 식재료를 버려지는 재료 없이 사용하는 것. “결국 식재료를 소중히 다루고, 제대로 이해해야 더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있더라고요. 우리는 식자재가 있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는 직업인데, 그걸 낭비하고 함부로 버린다면 결국 좋은 음식을 만들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코스 중 제공되는 한상차림은 주은이 고수하는 시그니처 형식 중 하나다. “다른 코스에 비해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인 만큼, 많은 다이닝 레스토랑에서는 한상차림을 없애는 추세이기도 해요. 투박해 보일 수도 있지만, 저는 아직은 그것을 갖고 가고 싶어요. 그 형태 안에 제가 기억하는 한식의 정서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박 셰프가 생각하는 한식의 매력 역시 그 기억의 연장선에 있다. “가장 큰 매력은 결국 우리 것이라는 점이에요. 배우들이 자기 모국어로 연기할 때 훨씬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듯, 우리에겐 한식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동시에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은의 음식에는 셰프 스스로 정한 경계가 있다. 버터나 치즈, 트러플 같은 해외 식재료를 멀리하고, 조미료 사용도 일절 배제한다. 그 대신 직접 담근 장과 식초, 제철 식재료가 맛의 중심이 된다. “버터나 치즈를 넣으면 맛을 더 끌어올릴 수는 있겠죠. 하지만 주은은 한식당이에요. 해외 식재료를 사용하는 순간 우리가 추구하는 한식의 방향과 멀어질 겁니다. 그래서 일부러 경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더 맛있게 만드는 방법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 경계는 음식에만 머물지 않는다. 주은의 공간에는 한국 작가와 명인들의 손길이 두루 스며 있다. 식기와 기물은 물론, 벽지와 미디어 아트까지 한국적인 미감을 보여줄 수 있는 요소들로 채웠다. “음식뿐 아니라 공예품과 공간까지 함께 보면서 한국의 미를 두루 경험할 수 있는 곳이기 바랐습니다.” 벽에는 장응복 작가가 ‘금강산도’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을 사용했고, 식기 또한 가능한 한 국내 작가들의 그릇을 쓴다. 지방 답사 갈 때면 팀원들과 함께 공방이나 명인들을 찾아가기도 한다. “최근에는 떡살과 다식 틀을 만드는 명인 분을 만나봤어요. 그분의 작품을 직접 써보니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요즘 박주은 셰프의 관심은 젓갈로 향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자극적인 오징어젓과 낙지젓 너머엔 다양한 또 다른 세계가 있다. “흔히 젓갈 하면 고추장과 물엿이 들어간 빨간 젓갈을 떠올리잖아요. 저도 그 맛을 좋아하지만, 조개젓이나 전어 내장으로 담그는 밤젓 등 지역마다 훨씬 다양한 종류와 맛이 존재해요. 이런 잊혀가는 음식을 연구하고, 오늘날 세대에게 다시 알리는 것도 제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그가 주은을 통해 지키고자 하는 것은 한식의 본질에 대한 감각이다. “누군가 주은에 대해 얘기할 때, ‘여긴 진짜 한식을 다루는 곳’이라는 말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퓨전을 하거나, 서양식 터치가 가미되지 않은 곳이요.” 그 마음은 결국 매일의 음식 앞에서 다시 단순한 목표로 이어진다. “저는 오늘보다 내일의 음식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기 바라요. 오늘 실수한 것이 있다면 내일은 하지 않고, 건강한 재료를 쓰며 하루하루 나아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갈 수 있겠죠?” 한식의 중심지 서울에서 가장 한국적인 음식을 선보이는 박주은 셰프. 사라져가는 고유의 것을 탐구하고, 잊혀가는 맛을 되살리며, 자신만의 한식을 향해 묵묵히 정진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