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 NR디자인이 과천에 위치한 알레 434농장 한 켠에 새 둥지를 틀었다. 나무처럼 편안하고 자유롭지만 밀도 있는 사무실을 찾았다.
↑ 각 지역에서 온 빈티지 가구들이 조화를 이룬 김나리 실장의 사무실. 알바 알토의 조명 A330 아래 요시모토 나라의 ‘아오모리의 개’가 눈에 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김나리 대표에게 남아도는 시간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아침부터 자정까지 매일 계속되는 바쁜 일정이기에 그녀는 자신만의 은신처가 더욱 절실했다. 바로 사무실이다. “논현동 사무실에서 과천으로 이사 오기까지 1년 정도 고민한 것 같아요. 직업상 도심을 오갈 일이 많지만 10여 년 동안 쉼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것 같아 한 박자 쉬어갈 공간이 필요했어요. 아름다운 농장이 있는 이곳에서 좋아하는 요리도 만들고, 책도 보며 휴식을 취하고 일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이사하게 되었어요.”
2003년 오픈한 NR디자인은 인테리어 디자인 설계, 시공을 전문으로 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다. 그동안 레스토랑 그랑시엘과 시오코나 라보, 카페 코코브루니, 나폴레옹 베이커리 등 상업 공간의 디자인을 비롯해 건축가와 협업한 아트 센터 나비, SK 최태원 회장의 개인 주택, 그리고 최근에 완성한 SK의 MS연구소도 김나리 대표의 손끝에서 비롯되었다. 대학에서는 주거학을 전공했지만 어린 시절 부모님의 영향으로 그림이나 디스플레이와 관련된 인테리어를 접할 일이 많았다. 그리고 내재된 미술 감각과 예민한 감수성으로 지난 10년간 공간에 아름다움을 불어넣는 작업을 계속해올 수 있었던 것. “옴니 디자인의 이종환 사장님과 모노콜렉션의 장응복 선생님은 저를 이끌어주신 스승이세요. 옴니 디자인에서 8년, 모노콜렉션에서 1년 동안 일하면서 두 스승님이 가지고 있는 좋은 디자인 감각을 배울 수 있었어요.”
왼쪽 너른 창문 앞에 만든 한식 공간.
오른쪽 클래식한 저그와 작은 화병을 활용한 꽃 장식.
NR디자인은 여느 디자인 사무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사무 공간보다는 커다란 그릇장과 아일랜드 공간의 비중이 큰 것이 새롭다. 오븐을 갖춘 작은 주방과 아일랜드 주변으로 여러 개의 테이블을 배치해서 언뜻 보면 쿠킹 스튜디오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 ”이사를 계획하면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책을 모아놓을 수 있는 공간과 그동안 컬렉션해온 그릇을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 커다란 아일랜드 식탁을 만들어 지인들과 파티를 즐길 수 있도록 했고요.” 그동안 컬렉션해온 그릇과 부모님께 물려받은 한식기의 양만 봐도 요리 전문 스튜디오가 부럽지 않을 정도. 그리고 연말 파티 때 보여준 요리 솜씨와 테이블 세팅에서도 요리에 대한 열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간은 크게 사무실, 창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개인 공간으로 나뉜다. 아일랜드를 중심으로 왼쪽으로는 김나리 대표의 사무 공간과 오른쪽 뒤로는 원목 문으로 차단된 개인 룸이 자리한다. 자질구레한 소품을 모아둔 창고와 주방, 개인 공간으로 통하는 입구를 제외한 나머지 공간은 서로 소통하는 구조를 띤다. ”폐쇄적인 공간 구성을 선호하지 않아요. 구조 자체가 가지고 있는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활용하는 것을 좋아해요. 예컨대 직원들의 공간과 제 사무실이 기둥 하나로 시선을 살짝 피할 수 있는 것처럼요.” 중첩된 레이아웃과 원목 가구, 한국적인 소품, 현대의 디자인이 믹스&매치된 사무실은 한마디로 규정짓기 어려운 김나리 대표만의 스타일로 채워졌다. 시간의 더께를 입은 가구와 소품들은 곳곳에서 훈훈함을 더하고 있고, 마하람의 폴스미스 원단과 미나 피호넨의 패브릭으로 제작한 의자와 스툴은 현대적인 디자인 가구와 어우러져 포인트 역할을 하고 있다. “책상 옆에 있는 찬장은 근대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부모님이 물려주신 거예요. 책을 수납한 수납장은 북유럽의 근대 제품, 그리고 책장은 30년 전 아버지가 쓰시던 리바트 책장이에요. 이 공간은 각 지역의 빈티지들이 모여 한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창문 너머로 보이는 자연, 빛으로 충만한 사무실.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휴식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이곳은 그녀만의 파라다이스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곳을 오가는 많은 사람에게까지 좋은 영감을 나눠줄 공간으로 자리할 것 같다.
↑ NR디자인의 김나리 대표.
위 왼쪽 비트라 뮤지엄에서 사온 미니어처.
위 오른쪽 책상 반대편에 놓인 메모 보드.
아래 요리 전문 스튜디오 부럽지 않은 사무실. 너른 수납장 안에는 컬렉션해온 그릇들이 가득하다.
에디터 박명주 l 포토그래퍼 박성훈(달링하버 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