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식구가 함께 꾸민 그림 걸린 집

네 식구가 함께 꾸민 그림 걸린 집

네 식구가 함께 꾸민 그림 걸린 집

갤러리처럼 그림 작품이 걸려 있는 이 집에서 눈여겨봐야 할 또 하나는 컬러 매치다. 섬세한 컬러 감각으로 꾸민 네 식구의 집은 그래서 하얗기만 한 갤러리와는 다르다.


리 브룸의 금색 조명과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이 어우러진 화려한 다이닝 공간. 

 

그림이 걸려 있는 집은 많지만 온 가족이 그림을 좋아하고, 거기에 더해 벽 색깔까지 신경 쓴 사례는 흔치 않을 것이다. 동부이촌동에 위치한 80평대의 이 집은 가족 모두가 예술 작품에 조예가 깊다. 특히 그림을 모으고 있는 안주인 덕에 집 안에는 많은 그림이 걸려 있다. 한강이 바라보이는 넓은 창문이 백미인 이 집은 부부와 딸, 아들이 사는 네 식구의 보금자리다. 이사를 하면서 인테리어를 새롭게 했는데 구조를 완전히 뒤집기보다 가벽을 세우거나 공간 구획을 나누는 정도로만 구조 변경을 했고 대신 벽 도장이라든지 컬러 매치 등 디테일한 부분에 더욱 신경을 썼다. 집주인은 에스엘 디자인 이준현 대표와 임지영 실장에게 각각 인테리어 설계와 패브릭을 포함한 스타일링 컨설팅을 의뢰했다. 하지만 예민한 안목을 지닌 안주인은 소품 하나를 고르는 것까지 직접 관여해 집 안 곳곳에 그녀의 애정이 묻어 있다.

 

딸과 아들도 자신들의 방에 원하는 바를 직접 제안했다. 딸은 엄마처럼 민트 그린 컬러에 푹 빠져 있었기에 이를 중심으로 한 방을 원했고 아들은 빨간색을 좋아해 포인트 색깔로 활용했다. “같은 색깔이라도 공간에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확 달라져요. 엄마와 딸 모두 민트 그린 컬러를 좋아해서 각자의 방에 적용했는데 딸의 방과 부부 침실의 느낌이 전혀 다르거든요. 딸의 방은 민트 그린 컬러를 기본으로 했고 쿠션 커버나 커튼 등의 색상도 비슷한 톤으로 맞춰서 생기가 느껴지고요, 부부 침실은 좀 더 은은하고 깊이가 있어요.” 임지영 실장의 말처럼 이 집은 각 공간마다 적용한 색깔이 명확한 것이 특징이다. 거실은 기존에 사용하던 베이지색 가죽 소파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애초에 원했던 젊은 분위기에서 멀어졌지만 줄리언 오피의 작품 ‘Maria.4.’와 벽에 설치한 몬타나 시스템 가구가 어우러져 고급스러운 라운지 같다. 짙은 그린 컬러의 줄리언 오피 그림을 벽의 중앙이 아닌 한쪽 벽에 치우치게 걸어서 약간의 긴장감도 느낄 수 있다. 한강이 바라보이는 창문이 마치 액자처럼 배경 역할을 하는 거실은 해가 잘 들 때는 주방까지 햇빛이 들어와 공간을 밝히고 눈이 오는 날에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ㄷ자 형태로 배치한 이탈리안 모던 스타일의 거실.

 

 


줄리언 오피의 그림을 한쪽 거실 벽에 걸어 포인트를 주었다.


 


1 거실의 넓은 창문은 액자처럼 풍경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2 다이닝 공간에서 바라본 거실. 3 글래머러스한 디자인의 게스트 욕실. 4 빨간색으로 포인트를 준 아들 방. 가벽을 세워 책상 공간과 분리했다. 

 

거실 맞은편인 다이닝 공간은 금색이 지배한다. 천장에 리듬감 있게 단 금색 펜던트 조명은 최근 가장 떠오르는 영국 디자이너인 리 브룸의 작품이다. 조각을 한 듯한 크리스털 전구와 금색 보디가 만난 제품으로 불을 켰을 때 하나의 샹들리에처럼 강한 인상을 남긴다. 다이닝 공간에는 최근 엄마와 함께 그림을 고르는 딸의 손길이 닿아 있다. 주방에 건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She Walks in Beauty’는 딸이 선택한 것. 금색 조명과 식탁 위의 오브제와 데미안 허스트의 강렬한 나비 그림이 만난 다이닝 공간은 화려하다. 그림을 모아온 엄마와 이제 막 그림을 직접 고르기 시작한 딸이 함께 의견을 나누고 공간에 어울리는 그림을 건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흐뭇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그림이 많은 집은 대부분 ‘갤러리 스타일’로 꾸며 하얀 벽과 스팟 조명을 밝힌 정적인 분위기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집은 그림 작품이 많이 걸려 있지만 딱딱한 갤러리 느낌은 아니다. 임지영 실장은 지금의 벽 색깔이 한 번의 도장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고 전했다. “아무래도 그림을 모으는 가족이다 보니 그림이 걸리는 벽이 중요했어요. 일반적인 흰색으로 도장하면 새하얗기만 해서 차가워 보일 수 있거든요. 도브 컬러처럼 미묘한 색을 내기 위해 여러 번 도장을 했죠. 보기에는 그냥 흰색처럼 보여도 아주 미세한 색을 띠고 있어요. 그래서 그림만 걸어둔 복도도 차갑지 않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어요.” 

 

 


1 민트 컬러를 주로 사용한 딸의 방. 포근하고 여성스러운 분위기다. 2 리히텐 슈타인의 그림이 걸려 있는 아들의 방.

 

부부 침실은 화려함은 없지만 단아하다. 조지 나카시마의 책상을 주문하려고 했는데 방의 크기와 맞지 않아서 특별히 제작 주문을 해둔 상태다. 멋스러운 원목 가구를 한개 정도 두고 싶었던 안주인의 바람대로 책상이 오면 부부 침실은 제대로 모습을 갖출 예정이다. 침실 안쪽에는 욕실과 드레스룸이 이어진다. 건식 스타일의 욕실은 대리석을 사용해 바닥과 벽을 마감했고 욕조 맞은편에도 그림 작품을 두어 가족들의 작품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현관 쪽의 욕실은 골드 컬러 거울과 어두운 색깔의 타일이 어우러져 글래머러스한 스타일이고 딸아이 방에 딸린 욕실은 파란색 테두리가 포인트인 타일을 깔아 캐주얼하다. 이에 반해 대리석으로 마감한 부부 욕실은 환하고 고급스러워 용도가 같은 공간이어도 누가 주로 이용하느냐에 따라 스타일이 달라진다는 점이 재미있다. 보통 집을 공사하면 대부분 안주인의 입김이 가장 세기 마련이다. 가족들은 암묵적으로 엄마의 선택과 취향에 따르곤 한다. 하지만 이 집은 네 식구가 합심해서 집을 꾸몄다는 게 느껴졌다. 부부 침실의 암막 커튼 색깔 하나도 남편이 골랐을 만큼 보금자리를 위해 식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인테리어 업체에 그냥 맡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살 집에 가족들이 애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이 집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앞으로 더 많은 그림이 벽에 걸릴 것이고, 가족들에겐 그만큼 집에 대한 이야깃거리와 추억도 늘어날 것이다.

 

 


1 호텔처럼 고급스럽고 단정한 분위기의 부부 침실. 안주인이 좋아하는 민트 컬러와 짙은 푸른색을 매치했다. 2 대리석으로 마감한 안방 욕실. 욕조 옆 선반에도 작품을 올려두었다.

 

 


조지 나카시마의 책상을 둘 안방의 창가 공간. 암체어도 민트색으로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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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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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Save the B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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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영불 해협을 건너 파리에 홍보 에이전시를 설립한 알렉산드라 포스터 버네임은 지극히 영국적인 스타일 대신 다양하고 솔직한 인테리어를 좋아한다. 반짝이는 오브제와 디자인 작품, XXL 크기의 거울로 꾸민 그녀의 집은 컬러풀한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릭 레비의 조각품에 기댄 알렉산드라. 그녀 뒤로 벤 Ben의 작품이 눈에 띈다. 이 작품에는 작가가 끊임없이 탐구하는 주제인 ‘또 다른 생각 Une Autre Idee’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홍보 에이전시 APR을 운영하는 알렉산드라 포스터 버네임 Alexandra Poster Bennaim은 좋은 취향이 종종 코드화되는 세상에서 ‘어떤 것을 좋아해야 한다’ 또는 ‘좋아하지 말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저는 반짝이는 건 뭐든 좋아해요.” 그녀는 블링블링한 취향을 밝히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두 아들과 살고 있는 파리 서쪽의 아파트에 대해 이야기한다. “얼마 전 이사 간 새집에는 소품과 오브제를 많이 늘어놓아 따뜻하면서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물론 아름다운 디자인 작품도 빼놓을 수 없지요. 오래전부터 디자인 작품을 정말 좋아했는데 이제는 제 일과도 떼어놓을 수 없게 되었죠.” 알렉산드라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니콜라 트루셀 Nicolas Trousselle과 함께 집 안을 다시 꾸미면서 두 아이들의 의견도 수용했다. “물론 아이들이 내가 좋아하는 디자인 거장에 대해 말하면 알아듣고 내 세계를 이해해주었으면 하지만, 아이들이 집을 편안하게 느끼기를 바랐죠.” 그렇지만 타고난 천성은 어쩔 수 없는 법. 알렉산드라는 자신의 독창적인 세계를 맘껏 펼치지 못하고 자제해야만 하는 것이 정말 힘들다. 눈썰미가 날카로운 사람이라면 가구 위에 조용히 앉아 있는 개구리들을 진작 발견했을 것이다. ‘개구리 frog’는 영국 사람들이 개구리 뒷다리를 먹는 프랑스인들을 낮춰 부르는 말이기도 한데, 이것이 그녀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어렸을 때부터 개구리를 모았어요. 개구리는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동물이죠. 그래서 집 안 곳곳에 개구리를 풀어놓았어요.” 온통 거울로 된 화장대는 어려서부터 정말 갖고 싶었던 것으로 그녀의 취향을 저격한 물건이다. 이 화장대는 트리 프로그 Tree Frog 제품으로 온라인으로 구입했다. 집 안 곳곳에 놓인 거울까지 블링블링하게 꾸민 이 집은 여러 가지 스타일을 뒤섞고 색상을 가미하는 그녀의 확고한 취향과 개성을 엿볼 수 있다.



거실 바닥에 깔아놓은 카펫은
라 매뉴팩처 드 코골린 La Manufacture de Cogolin의 코르델 Cordelles 컬렉션 중 ‘에피 Epi’ 제품. 플로어 조명 ‘플루트 매그넘 Flute Magnum’은 폰타나 아르테 Fontana Arte 제품으로 노바루체 Novaluce에서 구입했다. 벽에 건 나무 판화는 조에 우브리에 Zoe Ouvrier의 작품. 한 쌍의 암체어 ‘팔콘 Falcon’은 1970년 시구르드 로셀 Sigurd Rosell이 디자인한 제품이다. 쿠션 ‘프레셔스 Precious’는 크리스찬 라크르와 메종 Christian Lacroix Maison이 디자인했다. 소파 앞쪽에 있는 낮은 테이블 ‘넴페아 Nymphea’는 해밀턴 콩트 파리 Hamilton Conte Paris 제품이다. 테이블 위에 놓은 작은 세라믹 그릇 ‘시칠리아 Sicilia’는 사라 라부안 Sarah Lavoine. 암체어 옆에 놓고 탁자로 활용하는 스툴 ‘봉봉 Bonbon’은 루카 니케토 Luca Nichetto가 베레움 Verreum을 위해 디자인한 것이다. 촛대는 조이 드 로한 샤보 Joy de Rohan Chabot 제품. 왼쪽에 있는
‘문 테이블 Moon Table’은 오크르 Ochre 제품이며 그 위에 아릭 레비가 디자인한 ‘솔리드리퀴드 SolidLiquid’가 놓여 있다.



“거실에는 거울이 많아요. 내가 꾸민 데커레이션을 비추고 공간을 더 넓어 보이게 하죠.” 

 

오른쪽 벽에 걸어놓은 거울은 트리 프로그 제품. 앞쪽에는 해밀턴 콩트 파리에서 구입한 낮은 테이블 ‘넴페아’가 있고 그 위에는 사라 라부안의 세라믹 그릇 두 개가 놓여 있다. 소파 ‘루이스 업 Lewis up’은 메리디아니 Meridiani 제품. ‘퀴리티바 Curitiba’ 쿠션은 디자이너스 길드 Designers Guild 제품이다. 퍼 담요는 조프리츠 Zoeppritz, 커튼 ‘라이트 Light’는 마두라 Madura, 왼쪽의 낮은 테이블 ‘붐 Boom’은 메리디아니 제품. 꽃병 ‘아리아 아쿠아 Aria Aqua’는 켈리 호펜 Kelly Hoppen, 파란색 래커를 칠한 트레이는 콤파니 프랑세즈 드 로리앙 에 드 라 신 Compagnie francaise de l’Orient et de la Chine 제품이다. 소파 위에 있는 파란 담요는 콩파니 프랑세즈 드 로리앙 에 드 라 신 제품이며 그 앞에 놓은 쿠션은 르 마나슈 Le Manach의 ’플레슈 Fleche’와 디자이너스 길드의 ‘카리브 Caribe’다.



HMD 인테리어스 HMD Interiors의 수납장 위에는 해밀턴 콩트 파리에서 구입한 테이블 조명 ‘생 마르탱 Saint Martin’이 있다. 꽃병은 켈리 호펜, 금색 촛대는 카르텔 제품. 유리 상판을 올린 테이블에는 HMD 인테리어스의 빨간색 의자를 매치했다. 그릇 ‘젤리스 패밀리 Jellies Family’는 파트리시아 우르퀴올라가 디자인한 것으로 카르텔. 벽에 걸어놓은 컬러풀한 그림은 존 원 Jon One의 작품이다.



식탁은 피터 존스 UK Peter Jones UK, 파란 의자 ‘C1715’는 22 에디시옹 디자인 22 Edition Design 제품. 파란색 래커를 칠한 사각 트레이와 원형 테이블 매트는 콤파니 프랑세즈 드 로리앙 에 드 라 신 제품이다. 쌓아놓은 그릇은 사라 라부안의 시칠리아 컬렉션이며 키친 클로스는 노엘 Noel 제품. 창밖에 보이는 차양 ‘포멘테라 Formentera’는 마두라에서 구입한 것. 식탁 옆쪽 벽에 걸어놓은 필립 스탁의 거울 ‘프랑수아 고스트 Francois Ghost’가 조리대까지 비추며 공간을 더 넓어 보이게 한다. 조리대 위의 꽃병 ‘시부야 Shibuya’는 크리스토페 필레트 Christophe Pillet가 디자인한 것으로 카르텔 Kartell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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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포토그래퍼

디디에 델마 Didier Del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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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린 케이방 Carine Keyvan photographer

안도 다다오가 혜화동에 지은 건축물

안도 다다오가 혜화동에 지은 건축물

안도 다다오가 혜화동에 지은 건축물

건축가 안도 다다오와 재능그룹이 만났다. 교육에 있어서 비슷한 신념을 가진 이들은 100년 동안 사람들이 드나들기 바라는 마음으로 문화센터와 크리에이티브 센터를 지었다.


과거 교육의 중심지이자 선비들이 드나들던 혜화동 골목길. 그중에서도 창경로 35길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과거 급제를 기념하는 어사 행진의 길이었고 1900년대 초에는 근대화의 상징이었던 전차가 지나가던 길목이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고즈넉한 창경로35길에 회색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섰다. 기하학적인 구조, 뾰족한 삼각형 창문, 일정한 간격으로 표시돼 있는 동그란 콘 자리 등 모던하고 구조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는 건축물은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재능문화센터(이하 JCC)와 JCC크리에이티브 센터다. JCC와 JCC 크리에이티브 센터는 안도 다다오가 처음 서울 사대문 안에 지은 건축물이다. 설계를 의뢰한 재능그룹은 ‘스스로 학습 시스템’을 개발하고 보급해온 재능교육에서 시작된 회사로 현재 교육과 관련한 다양한 사업을 펼쳐 평생교육을 실현하고 있는 교육문화그룹이다. 재능그룹의 박성훈 회장은 교육 못지않게 건축과 문화, 예술에도 관심이 많아 JCC와 JCC 크리에이티브 센터를 짓기로 결정했을 때 평소 좋아했던 안도 다다오에게 건축 설계를 의뢰했다. 안도 다다오는 재능그룹과 함께 ‘창의적인 생각을 실험할 수 있는 공간’, ‘교육적인 사고를 길러낼 수 있는 공간’, ‘예술적인 열정을 길러낼 수 있는 공간’이라는 세 가지 철학을 건축에 반영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가장 잘 다루고 잘할 수 있는 콘크리트 소재와 구조로 비슷한 듯 다른 성격의 두 건물을 지었다. 그는 문화센터 내의 전시 공간에서 상영되고 있는 인터뷰 영상에서 ‘꿈과 개성, 철학이 담긴 100년 건물’을 짓고 싶었다며 교육과 문화, 예술의 중요성을 힘주어 말하기도 했다. 그가 설계를 맡은 지 약 3년의 시간이 지난 2015년 11월, 혜화동에 두 개의 건축물이 방문객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콘크리트로 담백하게 지은 JCC크리에티티브 센터.

비스듬한 언덕 형태의 골목길에 세워진 첫 번째 건물인 JCC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전시와 공연을 즐길 수 있는 문화센터로 소규모 콘서트홀부터 전시 공간, 카페와 라운지 등을 갖추고 있다. 안도 다다오는 건물 내부의 각 층을 나선형처럼 유연하게 이어지는 계단으로 연결했고 삼각형 형태로 창문을 설계해 빛에 따라 공간이 달라 보이도록 했다. 현재 <길 위의 공간>이란 개관 전시가 진행되고 있는데 혜화동길에서 발견한 다양한 기억과 이야기를 9명의 작가가 자유롭게 작품으로 풀어낸 전시다. 1층 메인 전시 공간에서는 전시장 전체를 바코드의 색 띠로 도배하고 거울 반사를 활용한 양주혜 작가의 작품이 전시 중이다.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느낄 수 있는 경쾌한 전시다. 김종구 작가의 전시를 볼 수 있는 4층 전시 공간은 사선 형태의 삼각형 창문을 통해 혜화동의 모습을 전시 공간 안으로 끌어들였다. 김종구 작가는 광목 위에 녹슨 쇳가루로 깊은 명암이 느껴지는 풍경을 표현했는데 삼각형 창문으로 보이는 혜화동의 모습과 어우러져 명상을 하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차분해지는 공간이었다. 4층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비상계단은 아마 이곳을 찾는 이들이 가장 흥미로워할 전시 공간이다. 우중충하고 어두워, 때론 무섭게 느껴지는 비상계단에 작가 박여주는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빔 조명을 쏘았다. 다른 작가들이 수평적으로 작품을 전시한 데 반해 그녀의 작품은 안도 다다오의 건축을 수직으로 돌아보게 한다. 계단으로 한 층씩 오르거나 내려가다 보면 마치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1 녹슨 쇳가루로 풍경화를 그린 김종구 작가의 작품. 2 재능그룹 본사가 바라보이는 옥상. 3 옥상에는 봄부터 다양한 식물을 심어 가꿀 예정이다.

맨 아래층에 위치한 콘서트홀도 남다르다. 일본의 나가타 음향에서 참여해 바깥으로부터 소리를 완전히 차단하며 객석 의자도 일본의 고도부키 의자를 사용해 시간이 흘러도 삐걱거리는 소리 없이 오랫동안 튼튼하게 사용할 수 있다. 리듬감 있는 나무 벽면도 인상적이다. 높이가 전부 다른 나무 패널로 벽과 천장을 마감해 소리의 반사를 조절하고 모든 객석에서 음악을 고르게 즐길 수 있다. 사방을 나무 패널로 마감한 콘서트홀에 앉아 있으면 외부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아 마치 우주나 무중력 공간에 있는 것 같은 고요함을 경험할 수 있다. 단단하고 모던한 콘크리트 건축물 안에 문화와 예술이라는 포근한 감성을 담은 것이 JCC 문화센터라면 언덕길을 조금 더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JCC 크리에이티브 센터는 좀 더 사무실 같은 분위기다. 이곳은 재능교육의 다양한 연구와 개발을 진행하는 센터로 재능그룹의 일부 직원들이 상주하고 있다. 크리에이티브 센터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이 그렇듯 외부 환경과 자연을 끌어들인다. 특히 옥상정원에서는 남산까지 바라보이는 조망을 즐길 수 있으며 봄부터 다양한 식물을 심을 예정이다. 센터를 천천히 둘러보니 특이한 점이 눈에 띄었다. 안도 체어라고 이름 붙인 벽 고성식 의자도 두 개, 배수관도 두 개, 옥상의 기계 설비도 두 개다. 안도 다다오는 무엇이든 한 쌍으로 설치하는 것을 좋아해 굳이 필요 없는 것들은 가짜 모형을 만들어서라도 꼭 두 개를 맞춘다. 이런 강박에 가까운 취향과 철칙이 오늘날 그를 개성이 강한 건축가로 만든 것은 아닐지. 안도 다다오가 이번 설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중 하나는 ‘오픈 마인드’다. JCC는 비스듬하게 경사진 보행자 골목에서 누구든 쉽게 필로티 구조의 건물로 들어올 수 있고 건물 외부를 통해 오르고 내려오면서 주위의 풍경을 유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건물 내부에 폴딩 도어가 많은 것도 그런 이유다. 평소에는 막아두었다가 언제든 접어서 외부와 연결될 수 있는 폴딩 도어는 안도 다다오가 좋아하고 자주 사용하는 창문 형태 중 하나다. 콘크리트로 지어져 내부가 꽉 막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이곳을 방문한 이들은 건물 안에서도 충분히 자연과 맞닿을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모든 것을 온화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오픈 마인드를 지니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1 김종구 작가의 작품과 삼각형 창문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4층 전시 공간. 2 지하 콘서트 홀부터 지어지는 나선형 계단. 3 JCC크리에이티브센터 내의 R&D 사무실.

안도 다다오는 전문적인 건축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세계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감상과 영감을 주춧돌로 삼아 세계적인 건축가가 됐다. 책으로 얻을 수 있는 지식도 중요하지만 재능그룹에서 문화센터와 크리에이티브 센터를 지은 이유는 많은 이들이 문화 생활을 통해 교양을 쌓고 시야가 넓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혜화동은 대학로와 가까워 각종 공연과 연극, 길거리 축제, 주말 시장 등 다양하고 풍요로운 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동네다. 혜화동에 교육과 문화를 이끄는 재능그룹의 문화센터와 크리에이티브 센터가 지어졌고 이것이 교육의 진정한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혜화동으로 향할 이유는 충분하다.



1 콘크리트 건물 구조 사이로 햇빛이 아름답게 내려오는 JCC크리에이티브 센터 지하. 2 오디토리움에 들어가기 전에 이용할 수 있는 널찍한 라운지.



1 벽과 천장을 나무 패널로 마감해 완벽한 음향을 선사하는 콘서트홀. 2 좌석 아랫부분을 누르면 의자가 나오는 오디토리움. 3 김용관 작가의 팝아트적인 시트지 작품 카페 전시 공간.


1 오디토리움은 계단식 구조로 세미나, 강연 등이 이뤄진다. 2 1층에서 전시 중인 양주혜 작가의 바코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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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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