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벗어나 이곳으로, ③ 매일 만드는 아름다움

나무와 함께하는 일상이 담긴 작가 최성우의 파주 작업실

나무와 함께하는 일상이 담긴 작가 최성우의 파주 작업실

나무를 다루는 작가 최성우의 작업실을 찾았다. 작가의 손에서 만들어진 도구는 파주에서 보내는 그의 나날을 대변하고 있었다. 무해하고 소박한 모습으로.

 

한국의 메트로폴리스, 서울을 등지고 자신만의 터를 꾸린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 모두는 카페, 작업실, 전원주택처럼 다양한 형태로 새로운 곳에서 삶의 이상적인 균형을 찾는 일에 다시금 몰두하고 있었다. 마음에 내려앉는 평안, 예술적 성취, 자애로운 자연, 일과 일상의 밸런스 등 이유는 저마다 다를지 몰라도 지금을 개척하는 모두의 시도는 충만한 삶으로 향하는 또 하나의 답일 것이다.

 

최성우 작가는 작업실 한 켠에 자신이 제작한 목공예품을 진열해두었다.

 

나무를 다루는 작가 최성우.

 

모두에게 하루는 동등하게 주어질 테지만, 아침으로 둔갑한 오후가 누군가에겐 하루의 시작이 될 수도, 밤과 아침이 뒤바뀐 삶을 살아내기도 하는 등 그 모습은 실로 다양하다. 최성우 작가는 하루의 시작을 어슴푸레한 안개가 낀 산 언저리 모습으로 기억한다. 새벽같이 파주에 위치한 작업실로 출근해 산책하듯 작업실 뒷산을 거닐며 주변을 관찰하는 것으로 물꼬를 트기 때문. 최성우 작가는 2년 전쯤 파주에 공방 겸 숍인 일상의 도구점을 차렸다. 처음에는 집 한 켠에 방음 장치를 설치해 작업을 하다 자동차 정비소 지하로 옮기기도 했지만, 이내 파주로 넘어와 자리를 잡았다. 이유를 파고들자면 그의 독특한 이력부터 짚어봐야 한다. 엔진공학을 전공한 최 작가는 10년여 동안 외국계 자동차 부품 회사를 다녔다. 예술이나 목공과는 전혀 접점이 없지만, 프랑스 여행 차 방문한 퐁피두 센터에서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을 마주한 이후, 새로운 길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고.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쓰신 구본형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꿈을 찾고 싶다고 말했죠. 변화하기 쉽지 않은 나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어요.  덕분에 목공예를 하고 싶다는 결론을 내리는 데도 도움이 됐어요.” 구태여 목재를 선택한 데에는 어린 시절, 손재주가 좋았던 할아버지와 나무를 만지며 보냈던 시간이 정처럼 남아 있는 이유도 있었다.

 

세세한 목공 작업이 요할 때는 이곳에서 작업을 이어간다.

 

정갈하고 소박한 멋이 인상적인 다양한 기물. 은행나무를 모티프로 한 수저와 따스한 매력의 목공 제품을 보면 마음이 한층 따뜻해진다.

당시를 회상하던 그는 목표의 윤곽을 그린 시점부터 디자인 기초를 다지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마치 디깅 Digging이라도 하듯 주말마다 최경원 교수를 찾아가 색, 평면, 입체 구성 등을 배우며 디자인 지식을 하나둘 쌓아갔다. 목공 기술 또한 차근차근 배우기 시작했다. 특히 현재 작업실 옆에 위치한 반김 크래프트의 양병용 작가에게서 목재에 대한 지식과 이를 다루는 스킬에 대한 조언을 구할 수 있었다. “사실 지하에서 작업을 할 때만 해도 뻗어나가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햇빛이 들어오지도 않고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는 느낌까지 들었어요. 그때 작가님께서 자신의 작업실 옆 공간이 비어 있다고 얘기하셨어요. 작업에 대한 피드백을 받기 위해 종종 들렀던 곳인지라 익숙하니 잘됐다 싶었어요. 저를 파주로 오게 해주신 분인 거죠.” 처음 작업실로 쓸 공간을 마주했을 때는 아무것도 없던 빈 곳인지라 막막함도 느꼈었지만 최성우 작가는 하나하나 공간을 꾸려나갔다. 본래 좁고 단층이었던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복층형 구조로 내부를 재편하는 것을 시작으로, 지붕과 바닥까지 보수해 작가의 손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1층은 큰 나무덩이를 재단하는 기계실과 세심한 수작업을 하는 곳으로, 위층은 사포질과 옻칠을 위한 공간으로 두었다. 달라진 건 밝은 해가 들어오는 작업실뿐만이 아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고택이나 한옥을 공부했던 적이 있었어요. 공예를 알기 위해 삶의 모습도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시골이나 지방이라고 다 물 좋고 공기 좋은 건 아니에요. 그런데 파주는 되게 깨끗해요. 너른 평지도 있고, 작업실 뒤에는 산도 있어요. 제일 좋은 건 사계 같은 자연의 변화가 확실하게 느껴진다는 거예요. 서울에서는 추워지고 더워진다는 느낌만 근근이 느껴졌는데 말이죠. 더 민감해질 수 밖에 없게 되더라고요.” 작업 스타일이 한층 확장되는 것 또한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최성우 작가는 덧붙였다.

 

작업실 2층에는 옻칠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한지를 벽지로 사용해 은은한 빛이 들어온다.

그는 지천에 자란 나무를 관찰하며 목재를 보는 눈을 조금 더 넓힌 것은 물론, 썩고 뜯겨나간 나무 껍질과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이파리의 모습 등에도 주목했다. 늘 같게만 보였던 돌멩이가 지닌 각각의 디테일을 보면서 기존의 세공 방식에도 꽤 많은 변화를 시도했다. “이제껏 나무를 파내면서 세공하는 일반적인 크래프트 방식을 주로 활용했다면, 벚나무 껍질을 살짝만 다듬어 차 도구를 만든다든지 자연물이 본래 지닌 형태를 최대한 온전히 유지해보는 방식도 도전해요. 기존의 세공 방식을 그대로 쓰는 대신 목재의 종류를 바꿔보기도 하고요.” 재료에 대한 존중과 시도는 곧 작업에 대한 몰입으로 이어졌고, 괄목한 결과로 나타났다. 일상의 도구점을 운영하며 주로 숟가락이나 젓가락 등의 수저, 집기류를 선보였던 그지만, 자연물을 활용한 수저 받침, 다하 등 제품의 범주와 종류도 보다 넓혔다. 최 작가의 작업 범위가 확장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스스로 만들어내는 작품도 있는가 하면, 주문 제작을 통해 타인의 일상에서 필요와 쓰임에 맞춰야 할 때도 있었기 때문. “각자 손에 익는 손잡이 크기와 길이도 확연히 다른 만큼, 그분들을 위한 제품을 만들다 보면 더 유니크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해요. 가령 그립감을 키우기 위해 젓가락의 한 면을 더 잘게 각을 내 만드는 등 세세한 요소에 신경을 쏟는 것처럼요. 누군가의 필요와 쓰임이 곧 제게는 공예적인 성취로 바뀌는 거죠.” 볕이 들지 않는 지하에서 사계가 피부로 와닿는 이곳 파주 작업실로 오기까지 단 한 차례도 정체된 적 없었지만, 그는 나아가고 자라는 감각을 여전히 바란다고 말했다. 변치 않을 바람이라면 파주에서 자라난 그의 열망은 매일 조금씩 몸집을 키워나가지 않을까. 무해하고 아름다운 기물의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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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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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벗어나 이곳으로, ② 우리가 있는 곳

부부의 자유로운 영혼을 닮은 여주 카페 디아

부부의 자유로운 영혼을 닮은 여주 카페 디아

문복애, 박정환 대표가 여주에 카페를 오픈한 것은 계획적이라기보다는 운명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곳이 어디였든 이들 부부의 자유로운 영혼은 숨길 수가 없을 것이다. 이곳 카페 디아처럼 말이다.

한국의 메트로폴리스, 서울을 등지고 자신만의 터를 꾸린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 모두는 카페, 작업실, 전원주택처럼 다양한 형태로 새로운 곳에서 삶의 이상적인 균형을 찾는 일에 다시금 몰두하고 있었다. 마음에 내려앉는 평안, 예술적 성취, 자애로운 자연, 일과 일상의 밸런스 등 이유는 저마다 다를지 몰라도 지금을 개척하는 모두의 시도는 충만한 삶으로 향하는 또 하나의 답일 것이다.

망개와 함께한 문복애, 박정환 부부

아직 익지 않은 벼가 촘촘하게 심어진 논길을 따라 들어가면서 약간의 의구심이 들었다. ‘정말 이 길이 맞을까’ 하는 걱정도 잠시, 펼쳐진 논밭 옆으로 흰색 단층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나타난 현대식 건물이 주변의 자연과 묘하게 어우러졌다. 오픈한 지 올해 3년째인 카페 디아는 국내에 숨겨진 곳을 찾아다니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점점 알려졌다. 바쁜 주말에는 아르바이트 직원이 있지만 평일에는 문복애, 박정환 씨 부부가 운영한다. “저는 잡지사의 포토그래퍼였어요. 일을 하다 화가인 남편을 따라 뉴욕 맨해튼에서 15년을 살았죠. 더 일찍 돌아올 계획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긴 시간을 보냈네요. 한국에 돌아온 후 뭔가를 배우고 싶어서 압구정동에 있는 허형만 커피에서 핸드 드립을 배웠어요. 집에서도 해보고 지인들에게도 커피를 내려주며 즐거운 취미로 즐겼죠. 그러다 이곳 여주에 카페를 내게 됐어요.” 문복애 대표가 커피를 내리며 카페 디아의 시작을 설명했다.

 

남동생이 가져다준 버려진 벽돌을 쌓아서 만든 옥상 의자와 벤치.

 

논길을 달리다 보면 흰색 단층 건물인 카페 디아가 불쑥 나타난다.

 

카페 디아는 창문 어디에서든 자연이 작품처럼 보인다.

 

20년 넘게 버려져 낡고 손볼 것이 많았던 식당 건물을 허물고 내부 인테리어는 온전히 부부가 맡았다. “우리 부부는 많은 것을 새로 구입하기보다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하자는 주의예요. 지하에 화가인 남편의 작업실이 있어서 벽에 작품을 걸 수 있었고, 뉴욕에서부터 사용했던 가구와 소품, 주변 친구들의 준 물건들을 배치했죠. 식물도 양재동에서 직접 사다 나르고, 이리저리 테이블도 옮겨보면서 천천히 완성했어요”라는 아내의 말에 “오합지졸이에요(웃음). 하나의 컨셉트로 밀어부친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 지금의 모습이 된 거예요”라며 박정환 화가가 거들었다. 오픈 스튜디오처럼 하나로 뚫려 있는 공간은 정해진 컨셉트는 없었지만 그렇게 둘만의 색깔로 야금야금 채워졌다. 두 사람이 운영하다 보니 모든 것이 조금은 더디게 진행됐지만 부부는 이곳에 진심이었다. 특히 살짝 데워서 나가는 직접 만든 레몬 케이크는 이것 때문에 찾아오는 이들이 있을 만큼 폭신한 맛이 매력적이며 원두를 계속 신선하게 유지하고 판매할 수 있는 소량 로스팅 기계는 박정환 작가의 담당이다.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존재가 또 있다. 반려견 망개다. 어느 날 꼬질꼬질한 모습을 한 채 카페로 총총 걸어와 문복애 대표의 무릎에 탁 안겼다는 망개. 이 또한 계획에 없던 인연이었을까. 마침 놀러 온 친구들이 문 대표가 좋아하는 망개떡을 사왔는데, 덕분에 망개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고 했다. “강아지를 키울 생각이 전혀 없었거든요. 망개가 온 다음 날 검진만 간단하게 하고 병원에 서 보호소로 보냈어요. 그런데 꿈에도 나오고, 마음이 쓰여서 가족이 나타나지 않으면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죠. 망개를 찾는 가족은 나타나지 않았고 그렇게 또 계획에 없던 일이 생겼네요(웃음). 겁이 많고 소심하지만 카페 디아의 마스코트에요.”

 

커피도 만들고 케이크도 굽는 널찍한 카페 주방.

 

차양을 멋스럽게 내린 테라스.

 

살짝 데워서 나가는 레몬 케이크. 따뜻한 달짝지근함이 금세 기분을 좋아지게 만든다.

주변 환경이 아름다워 어떻게 이런 곳을 찾았는지 궁금했지만 돌아온 답은 의외였다. “카페를 오픈할 때 땅을 보러 다닌 것도 아니었고 꼭 여주를 고집했던 것도 아니었죠. 저와 남편은 지역이 그렇게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서울에 오픈했다면 또 그런 대로 우리만의 색깔을 지닌 공간을 만들어갔을 거예요.” 왠지 멋진 경치 때문에 이곳을 찾았다던가 혹은 서울이 지겨워져서라는 예상 답안이 빗나간 순간이었다. 카페 디아를 찾은 어떤 손님은 처음에 이곳이 상업 공간이 아니라 두 사람의 집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어서 약간의 불편함이 느껴졌다고 했다. 지금은 단골이 됐지만 그때 손님이 말한 느낌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고 문복애 대표는 말한다. 사는 집처럼 느껴질 만큼 부부의 자유롭고 꾸밈없는 모습이 이곳에 반영돼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뉴욕 맨해튼의 활기찬 분위기, 일본 어느 카페의 빈티지한 분 위기, 자연스러운 차양을 내린 테라스에서 느껴지는 휴양지의 분위기 그리고 시골 외갓집에 놀러 온 듯한 편안한 분위기까지 모두 느낄 수 있다. 문복애, 박정환 대표는 뉴욕에 있었던 15년을 ‘실컷 잘 놀았던’ 시간으로 이야기한다. 하천이 흐르고 산과 논밭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커피를 내리고, 그림을 그리는 지금의 시간을 부부는 나중에 어떻게 기억할까. 카페 디아를 다녀간 이들은 마음의 짐을 툭 내려놓고 싶을 때 다시 찾고 싶은 보물 같은 커피집으로 이 곳을 기억할 것이다.

 

천장에 달린 작품의 존재감이 큰 실내.

 

벽에 걸린 보라색 작품은 박정환 작가의 작품. 빈티지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의 카페에 화룡점정이다.

 

조금씩 손을 보고 있는 정원은 어디에 앉아도 명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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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그래퍼

박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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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벗어나 이곳으로, ① 풍경을 담은 주택

자연의 소리와 함께 일과 삶의 밸런스를 맞춰나가는 부부의 집

자연의 소리와 함께 일과 삶의 밸런스를 맞춰나가는 부부의 집

꿈에 그리던 전원주택 생활을 이뤄낸 부부는 바람 소리, 풀벌레 소리, 나뭇잎이 부딪치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누구보다 일과 삶의 밸런스를 맞추며 살아가고 있다.

 

한국의 메트로폴리스, 서울을 등지고 자신만의 터를 꾸린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 모두는 카페, 작업실, 전원주택처럼 다양한 형태로 새로운 곳에서 삶의 이상적인 균형을 찾는 일에 다시금 몰두하고 있었다. 마음에 내려앉는 평안, 예술적 성취, 자애로운 자연, 일과 일상의 밸런스 등 이유는 저마다 다를지 몰라도 지금을 개척하는 모두의 시도는 충만한 삶으로 향하는 또 하나의 답일 것이다.

 

지하층을 최대로 계획하고 작은 볼륨의 지상 층을 감싸안는 듯한 형상의 유기적인 곡선을 만들어낸 외관. 이보미 세라미스트 부부의 용인 주택은 아키텍츠 601의 심근영 소장이 건축했다.

 

바깥 풍경을 고스란히 실내에서도 감상할 수 있도록 거실에 커다란 통창을 만들었다. 이보미 작가와 그녀의 남편 윤제호 디자이너.

 

독일어로 경관, 풍경 등을 의미하는 란트샤프트 Landschaft로 이름 지은 이 주택은 이 보미 세라미스트와 남편 윤제호 디자이너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과 고양이 랑이가 함께 살고 있다. 부부는 대학을 졸업한 후 일찍 결혼해 베를린으로 유학길에 올랐고, 2018년 부부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합정동에서 2년간 작은 작업실을 꾸리고 지내다 외곽에 집을 짓고 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실현 하기 위해 아키텍츠 601의 심근영 소장을 찾아갔다. “먼저 갤러리 같은 건물을 원했어요. 심플하면서도 구조적으로 재미있는, 조형적 요소가 있는 건물이었으면 했어요. 또 작업실과 주거가 같은 건물에 있기 때문에 일하러 갈 때와 집에 갈 때의 마음가짐이 바뀔 수 있었으면 했어요”라며 부부가 입을 열었다. 물론 실내도 중요하지만 건축가가 지은 집은 외관에서부터 차별성을 띠기 마련. 일반적인 주거 형태에서는 보기 힘든 갤러리처럼 웅장한 입구가 눈길을 끌었다.

 

심근영 소장은 유기적인 곡선의 흐름과 현대적 감성이 묻어나는 이보미 작가의 도예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외부 진입 계단을 설계했다.

 

건물 진입로에 있는 선큰에는 대나무 정원을 만들어 작업실에서도 자연경관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이곳으로 이사한 뒤 이보미 작가와 그녀의 가족은 정원에 꽃도 심고 나무도 심으며 전원 라이프를 오롯이 즐기고 있다.

 

실내에서도 자연을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설계한 중정. 특히 어머니는 아침마다 중정 테라스에 앉아 차를 마시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건폐율이 20%밖에 되지 않는 대지의 조건으로 지하층을 최대로 계획하고 작은 볼륨의 지상층을 감싸안는 듯한 형상의 유기적인 곡선을 만들어냈어요. 웅장해 보이는 건축적 볼륨, 즉 조형미적인 의미도 갖지만 부부의 도예 작업에서 영감을 받은 부분이 크게 작용했어요.” 심근영 소장이 설명했다. 그는 단순함 가운데 한국적인 선의 흐름과 중첩의 미학이 현대적인 감성으로 완결된 부부의 도예 작품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주택의 선과 볼륨 그리고 외부 진입 동선인 계단의 조형적 형태를 결정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건축 설계의 핵심은 바로 중정이었다. 중정을 통해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허물고, 서로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실내에서도 자연을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한 것. “빛이 들어오는 방향에 따라 변화해요. 또 비가 올 때는 빗방울이 창에 맺히고 가을이 오면 단풍이 지는 등 날씨와 계절에 따라 집의 모습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특히 어머님, 아버님은 저희보다 일찍 일어나시는 편이라 매일 아침 테라스에 앉아 차를 마시며 정원을 둘러보시죠. 저희 부부도 마찬가지고요.” 남편 윤제호 씨가 말했다. 집에서는 중정을 통해 자연을 느낄 수 있다면, 지하에 자리한 작업실에는 건물 진입로에 있는 대나무 정원이 보이는 커다란 선큰을 계획했다. “4m가 넘는 고저차가 심한 경사지의 특성을 활용해 채광이 잘 드는 선큰을 만들었어요. 여름에는 바람이 통해 하나의 숨결이 되어주고 겨울에는 안락하고 따뜻한 흙과 나무의 채취를 안겨줘 주택의 서정적 경험을 더해주기를 바랐어요.” 심근영 소장이 덧붙였다.

 

1층 현관 입구에서 내다보이는 중정.

 

작가 부부가 좋아하는 덴마크 가구와 각종 빈티지 소품으로 꾸민 아늑한 거실과 주방.

 

주거 공간과 달리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해 중성적인 매력을 한층 강조한 이보미 세라미스트의 작업실 겸 쇼룸.

사실 일과 생활을 분리해놓지 않고 평소에도 일 생각을 많이 할 만큼 워커홀릭인 이들 부부에게는 한 건물에 두 공간이 존재하지만 공간적, 정서적, 심리적으로 분리될 수 있는 요소가 필요했다. “작업실은 조금 더 날것의 느낌이랄까요, 중성적인 분위기였으면 했 어요. 그렇다고 너무 차갑지는 않게요. 집에는 저희 부부가 좋아하는 덴마크 작가의 가구와 베를린에서 사 모은 빈티지 소품을 활용해 간소 하지만 아늑한 분위기로 꾸몄어요.” 이보미 작가가 말했다. 여기에 심 소장의 전문적인 손길을 거쳐 기능에 따라 조망, 컨셉트, 재료의 물성, 조도 등에 변화를 주어 서로 다른 감각을 경험할 수 있는 장소로 완성했다. 전원 라이프를 꿈꿨던 이들 가족에게는 각자만의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우선 이보미 세라미스트는 관심에도 없었던 식물과 꽃 이름을 하나 둘씩 알아가는 재미가 생겼으며 남편 윤제호 씨는 최근 등산에 재미를 붙였다. 어머님, 아버님에게도 물론 변화가 생겼는데, 특히 인터넷 사용이 익숙지 않은 아버님은 며칠 전 불을 피우는 화로를 구입해 불멍을 시작했다고. 또 주변 사람들로부터 얼굴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한다. 역시 자연과 함께하는 삶은 우리의 모습도 변화시킨다는 말을 다시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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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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