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산업 디자이너이자 가구 브랜드 피트 하인 에이크 Piet Hein Eek는 버려진 건축물의 잔해와 고재 등의 폐목재를 재활용한 스크랩우드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디자이너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스크랩우드란, 색상과 패턴이 각양각색인 조각목을 이어붙여 새로운 가구로 창조하는 방식으로, 대량생산되는 제품과 달리 저마다의 고유한 패턴과 컬러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희소성을 지녔다. 그는 브랜드를 창립한 이후 그저 바라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과 긴밀히 교감하며 온전히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고민했고, 그가 내린 결론은 호텔이었다. 구상하는 데만 4~5년이 걸렸고, 이를 실행하는 데 또다시 5년이 걸렸다. 10년이라는 긴 세월이 소요된 만큼 그 완성도는 가히 남달랐다. 구석구석 하나도 빼놓을 수 없을 만큼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피트 하인 에이크 호텔은 그의 마스터피스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디자인과 예술로 가득 찬 이 호텔에 대해 피트 하인 에이크와 이야기를 나눴다. 코로나19 시대에 새로운 소통창구로 자리 잡은 줌 Zoom을 통해서 말이다.
10여 년간 호텔 설립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고 들었다. 가구 브랜드를 넘어 특별히 호텔을 계획한 이유가 있나? 10년 전에 이 건물을 매입했다. 사람들에게 우리의 브랜드를 온전히 경험하도록 하기 위한 장소로 호텔이 매우 적합했다. 호텔에 대한 전반적인 아이디어를 구상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4~5년 또 이를 실제 실행하는 데만 5년이 걸렸다.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과는 매우 훌륭했다.
건물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하다. 외관의 벽돌에서부터 세월이 느껴지는데, 오래된 건물을 개조한 것인가? 네덜란드의 에인트호벤에 있는 이 건물은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글로벌 브랜드 필립스의 오래된 공장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이 지역은 공장 주변에 아무것도 형성되어 있지 않은 황량한 땅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호텔을 구축해 나가기 시작할 무렵부터 서서히 이 건물을 주축으로 주택과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고, 이내 호텔이 지역의 중심이자 가장 큰 건물로 자리 잡았다.
오래된 필립스 공장을 피트 하인 에이크의 영혼이 담긴 호텔로 구성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시한 부분은 무엇인가?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최고의 경험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로비와 레스토랑 그리고 특별히 제작된 공간을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디테일로 정말 완벽하게 채웠다. 이곳에 피트 하인 에이크의 공장이 함께 있기 때문에 호텔 구성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직접 제작할 수 있었다. 이는 상당히 이례적인 여건이라고 생각한다. 내부에 공장이 자리한다는 것은 많은 가능성을 제공하고 또 우리가 만드는 것을 실제로 보고 느끼고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완성할 수 있었던 프로젝트였다. 호텔 내부를 둘러보면 건물의 품격과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자부한다.
수많은 아티스트의 손길을 거쳐 호텔이 완성되었다. 아티스트와의 협업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었나? 현재 13개의 객실을 갖추고 있으며, 추후 14개로 늘어날 예정이다. 함께한 아티스트는 모두 우리와 지속적으로 협업을 진행하고 있는 소속 작가를 비롯해 피트 하인 에이크의 갤러리 출신이며, 그중 13명과 함께 호텔 객실을 완성했다. 선정 기준은 객실마다 서로 다른 예술 감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꾸렸으며 실내를 가득 채운 가구와 작품은 모두 우리와 협업한 컬렉션이다.
13개의 객실을 디자인한 기준과 그 내러티브가 궁금하다. 13개의 객실을 통해 13가지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표현하고자 했다. 빈티지 가구부터 오래된 골동품에 이르기까지 호텔을 위한 단 하나의 컬렉션으로 채웠다. 침대와 책상, 의자, 심지어 오래된 전화기까지 서로 어우러질 수 있도록 새로이 단장했다. 또 13개의 객실을 구리와 스테인리스, 황동을 주재료로 쓴 세 가지 타입으로 나누었으며, 패브릭 침대와 커튼 또한 두 가지 색상으로 나눠 조금씩 다른 성격과 컨셉트를 느낄 수 있도록 차별성을 뒀다.
한국에서는 재활용 가구가 주는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다가오기도 하는데, 네덜란드의 디자인 산업과 당신에게 재활용이란 어떤 개념인가? 내게 있어 재활용 소재는 다른 사람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 디자인 작업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폐목재와 고재 등을 사용한 가구의 개념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디자인 산업에서 주요 토픽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환경이라는 주제가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급부상했으며 지금에 와서는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다. 버려진 건축물의 잔해와 고재 등 폐목재를 재활용한 스크랩우드 시리즈를 처음 시작한 것은 맞지만, 이것이 발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는 분명 이 방법을 고안해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큰 차이점이 있다면, 소재와 질감, 디테일에 가치를 더해 더욱 폭넓고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가구를 제작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시도가 재활용뿐만 아니라 디자인 산업에 또 다른 미적 감각을 부여한다고 생각한다. 즉 버릴 필요 없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좋은 것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단시간에 쓰고 버려지는 단발성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형형색색의 마시멜로를 붙여놓은 듯한 벽이 돋보이는 더 미팅 룸 The Meeting Room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하다. 개념 자체는 회의와 미팅이 가능한 다기능 공간이다. 설계를 위해 만난 디자인 스튜디오 화이트 노스 다다 White Noise DaDa가 첫 미팅 때 보여준 프레젠테이션은 무척 흥미로웠다. 이곳에는 숨겨진 문이 있는 거대한 벽이 있는데, 이를 컬러풀하게 채색한 매트리스 폼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자칫 벽돌처럼 보이지만 모두 매트리스 폼으로 만든 것이다. 처음 이들의 계획을 들었을 때는 터무니없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걱정이 무색할 만큼 멋스러운 결과물이 탄생했다. 더 미팅 룸은 호텔을 대표하는 시그니처 장소가 되었다.
온통 푸른색으로 물들인 더 나이트 워치 The Night Watch 룸의 컨셉트는 무엇인가? 아쉽게도 이곳은 투숙객이 잠을 잘 수 있는 방은 아니다. 이름에서도 느껴지다시피 고전적인 단어이자 역사상 가장 유명한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의 ‘야경 Night Watch’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 방은 다기능적인 공간이자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젊은 예술가 퇸 웻츠 Teun Zwets가 작업장에서 쓰다 남은 재료와 페인트를 칠해 완성했다. 낮에는 모든 방문객들이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지만 밤에는 호텔의 안전을 지키는 나이트 워치, 즉 주변의 안전을 감시하고 지키는 곳으로 활용된다.
개인적으로 특별히 마음에 드는 공간이 있나? 로비다. 가구와 식물이 한데 어우러져 녹색이 가득한 로비는 단연 최고라고 생각한다.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 역시 집처럼 정말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호텔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게스트들에게 편안하면서도 온전한 쉼을 제공하는 것이다.
단순히 하룻밤 머무는 것을 넘어 투숙객들이 무엇을 느꼈으면 하나? 많은 방문객들이 호텔의 디자인과 높은 완성도에 즐거워하며 놀라곤 한다. 객실에 들어서면 다양한 색상의 가구와 소재 등이 어우러져 우리가 표현하고자 한 디테일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하지만 보여지는 것만이 최종 목표는 아니다. 사람들에게 디자인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모두의 삶과 경험을 향상시키는 것임을 항상 일깨워주고자 한다. 호텔에 머물면서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직접 만져보고 느끼며 다양한 경험을 얻어 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