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내는 집

비워내는 집

비워내는 집

화이트 큐브처럼 비워낸 집에 휴식을 담은 박광호, 변혜현 부부의 두 번째 보금자리를 찾았다.

 

주방의 프레임 너머로 바라본 거실.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드 세데 소파.

 

결혼 15년 차 부부이지만 이사는 처음이다. 오래 머물렀던 첫 번째 신혼집을 떠나 두 번째 보금자리를 마련한 박광호, 변혜현 씨는 갤러리처럼 새하얀 집을 만들고 싶었다. 한남동의 라샌독오스테리아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니 집에서만큼은 온전한 휴식을 취하고 싶었던 부부.

“매일 집을 보며 어떤 걸 뺄지 고민해요(웃음). 밖에서는 워낙 복잡하고 바쁜 하루를 보내기 때문에 깔끔하고 새하얀 집을 보는 게 좋더라고요. 가구도 최소한으로 두고, 불필요한 소품도 덜어내고 있어요.” 비워내는 과정을 반복하며 부부의 집은 오히려 갤러리의 화이트 큐브 같은 느낌이 완성됐다. 주인공인 부부만이 돋보이는 집은 모모모 스튜디오의 마미지 디자이너가 작업했다.

 

깔끔한 거실을 위해 소품을 한곳에 모았다. 선반 위 소품은 대부분 도쿄에서 구입한 것.

 

“마미지 실장님의 집을 매거진에서 우연히 보고 오래전부터 저장해두었어요. 스튜디오 같은 모습이 딱 원하는 스타일이었죠. 워낙 아티스틱한 센스가 있어 손잡이 하나도 믿고 맡겼어요.” 마미지 디자이너 역시 자신을 믿어준 부부에게 화답하듯, 부부의 첫인상을 고스란히 집에 담아냈다. “첫 만남부터 강렬했어요. 이탈리아 감성과 자유로운 분위기가 좋았죠. 그래서 집을 부부만의 쇼룸처럼 구성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매장 같은 느낌을 연출하고 싶어 벽과 천장을 하얀색 페인트로 마감했다. 석고 위에 바르는 매끈한 도장이 아닌 콘크리트 벽을 최대한 깔끔하게 살려 질감을 담은 것이 특징. 덕분에 어떤 가구와 액자를 놓아도 밋밋하지 않다.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셰프지만 주방은 2인 가족에 꼭 맞게 콤팩트하게 구성했다.

 

하지만 쇼룸처럼 넓고 쾌적하게 비워내기에는 오래된 아파트의 좁은 구조와 답답함이 고민이었다. 2005년 지은 주상복합아파트로 철거가 어려운 벽이 많아 구조적인 어려움이 있었던 것. 마미지 디자이너의 센스로 더 재미있는 집이 완성됐다. 먼저 답답하게 느껴졌던 낮은 층고부터 해결했다. 스튜디오처럼 배관이 그대로 보이는 노출 천장을 과감하게 시도한 것. 덕분에 키 큰 부부와 사이즈가 큰 가구가 돋보이는 스튜디오 느낌을 연출할 수 있었다.

 

 

철거가 어려운 주방 벽은 마치 프레임처럼 구성했다. 티타임을 위한 커피 캐비닛을 만들고, 천장에는 찻잔을 둘 수 있는 붙박이 선반을 달아 다이닝과 주방을 자연스레 구분했다. 새하얀 벽과 대비되는 짙은 우드 톤으로 마감해 시선을 사로잡는데, 그래서 더욱 복잡하지 않도록 심플한 주방으로 구성했다.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셰프이지만 2인 가족에 꼭 맞는 콤팩트한 주방이 깔끔한 부부의 성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침실에는 오직 침대와 허먼 밀러의 임스 스토리지 유닛 캐비닛만 두었다.

 

침실 역시 구조적인 한계를 활용해 다른 집과는 다른 특별함을 담았다. 서비스 면적인 베란다를 확장해 침실로 만든 것. 레스토랑 업무를 늦게 끝낸 부부가 집에 돌아와 잠만 자는 공간이기 때문에, 침대 하나와 허먼 밀러의 캐비닛만 놓아 아늑하게 꾸몄다. 덕분에 침대와 마주 보는 창문 너머로 커다란 나무가 드리운다. 침실로 이어지는 전실은 남편을 위한 드레스룸으로 꾸몄다. 옷을 워낙 좋아해 사계절 옷을 보관하기에는 부족했던 수납공간. 옷을 보관하는 드레스룸은 현관 앞에 따로 마련하고, ‘옷을 즐길 수 있는’ 쇼룸 같은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다. 붙박이장 앞으로 액세서리를 정리한 아일랜드형 가구를 두었고, 텍타의 자전거 걸이를 행어처럼 활용했다. 덕분에 드레스룸이 두 개인 독특한 집이 만들어졌다.

 

박광호, 변혜현 부부와 함께 사는 강아지 알렉산더와 페르난도, 곤잘레스.

 

보통의 집이라면 안방으로 두었을 위치에는 아내의 서재를 마련했다. 업무를 보는 공간이면서 집에 귀가해 홀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각자의 공간을 마련한 것. “집에 돌아오면 남편은 거실의 소파에, 저는 서재의 마라룽가에 앉아 각자의 시간을 보내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보내는 시간이 부부에게도 필요한 것 같아요.”

 

서재에 깐 보테가 베네타 제품의 비치타월에 앉아 휴식을 취하거나 기도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 역시 서재에 평온히 앉아 기도하는 순간이다. “도쿄 여행 중에 편집숍에서 구매한 비치타월이에요. 마라룽가 소파와 색깔이 잘 어울려 바닥에 깔아두었어요. 최근에는 타월 위에 앉아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곤 해요. 물론 저보다 알렉산더가 더 좋아하는 것 같긴 해요(웃음).” 밋밋하게 보였던 새하얀 집은 알고 보면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며 구석구석 꽉 채운 것. 집에서 온전한 휴식을 만끽하고 바쁜 일상을 그려나갈 부부의 앞날을 응원하고 싶다.

CREDIT

에디터

포토그래퍼

임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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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 시크한 감성의 아파트 리노베이션

프렌치 시크한 감성의 아파트 리노베이션

프렌치 시크한 감성의 아파트 리노베이션

다리 한쪽은 파리에, 다른 한쪽은 뉴욕에! 프렌치 아메리칸인 가족을 위해 인테리어 디자이너 마리 르 마게레스는 아파트를 시크하고 쿨한 감성으로 리노베이션했다. 정말 생제르맹 데 프레 스타일이다!

 

알라스테어 매그날도 Alastair Magnaldo의 사진 두 점으로 하늘과 바다를 담았다. 천장은 오베를레 에 로랑의 도움으로 전부 복구했다. 아르트롱가 Arteslonga의 카나페에 놓은 쿠션은 린델&코 Lindell&Co. 태피스트리는 툴르몽드 보샤르 Toulemonde Bochart. 낮은 테이블은 구비 Gubi. 조명은 아지아티드 Asiatides. 쿠페 잔은 AMPM. 포토북은 프린트웍스 Printworks. 펜던트 조명 ‘텐스 Tense’는 뉴 웍스 New Works. 커튼은 르 몽드 소바주 Le Monde Sauvage. 벽은 패로&볼 Farrow&Ball의 ‘스트롱 화이트 Strong White’로 칠했다.

 

“가구부터 침구까지 거주할 수 있는 준비가 된 집이에요. 그러니 트렁크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죠.” 실내 건축 사무소 뮈르&메르베이유  Murs&Merveilles를 운영하는 마리 르 마게레스가 웃으며 말한다. 그는 룩상부르크 공원 옆에 있는 이 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리노베이션했다. 프렌치 아메리칸인 르노와 에린 부부 그리고 12살, 10살, 9살, 7살인 네 아이는 1년의 일정 기간을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멀지 않은 집에서 살고 있고, 그 외의 시간은 파리에 머무른다.

 

다이닝룸에는 천국을 보여주는 듯한 르 그랑 시에클의 벽지를 액자처럼 붙였다. 태피스트리는 툴르몽드 보샤르. 의자와 테이블은 구비.

 

독서하기 좋은 분위기. 카사망스 Casamance의 핑크색 벨벳을 입은 벤치는 둥근 벽과 어우러지게 디자인했다. 그 위에 놓인 쿠션은 린델&코. 암체어와 낮은 테이블은 구비. 태피스트리는 툴르몽드 보샤르. 펜던트 조명 ‘텐스’는 뉴 웍스. 알라스테어 매그날도의 사진 작품은 옐로코너.

 

“파리에는 집을 마련한 적이 없었어요.” 오랫동안 사무실로 쓰인 이 집은 전부 새로 고치고 욕실과 식사 공간이 있는 주방, 침실을 만들어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오스만 시대의 웅장한 느낌을 해치는 건 말도 안되죠. 몰딩이나 코너의 클래식 코드를 복구해서 이 집의 우아함을 드러냈어요. 그리고 르 그랑 시에클 Le Grand Siecle의 파노마라 벽지를 그림처럼 둘러 둥글게 이어지는 거실을 극장처럼 만들었습니다. 카나페는 르노와 에린의 바람대로 벽의 곡선과 잘 어우러져요. 모든 가구는 이 집에 맞춰 주문 제작했어요.”

 

벽에 칠한 파란색 페인트는 패로&볼. 파노라마 벽지는 르 그랑 시에클. 벽 조명은 매직 서커스 에디션스 Magic Circus Editions. 카사망스 벨벳을 입은 벤치에 있는 쿠션과 태피스트리 ‘롤로 Rollo’는 린델&코. 사이드 테이블과 그 위의 꽃병은 CFOC. 검은색 꽃병은 헤이 Hay.

 

테라코타 톤을 더한 어두운 색감과 르 그랑 시에클의 꽃 벽지로 밀도를 높인 주방. 인덕션은 밀레 Miele. 밝은 색 호두나무 테이블은 맞춤 제작. 의자 ‘C-체어’는 구비 제품으로 실베라 Silvera에서 구입. 벤치는 노빌리스 Nobilis의 패브릭 ‘막시모 Maximo’로 커버링했다. 쿠션은 CFOC. 유리잔은 자르 세라미스트 Jars Ceramistes. 펜던트 조명 ‘멀티-라이트 Multi-Lite’는 구비.

 

어린 시절의 한 부분을 다사 거리(rue d’Assas)와 룩상부르크 공원을 오가며 보냈고 공원과의 접근성을 맘껏 누렸던 르노에게 이런 ‘리브 고슈 Rive Gauche’의 감성은 메디치 분수와 벽을 기어오르는 배나무들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가 걸어다녔던 프랑스식 화단을 떠올리게 한다. ‘뭔가 결점이 있고 벽은 종종 삐뚤어져 있어 부자연스럽거나 엄격하지 않은’ 이 동네는 푸르스트의 마들렌 맛을 지니고 있다.

 

페인트는 패로&볼. 벽 조명은 플로스 Flos. 침구는 메르시 Merci. 기하학적인 패턴의 쿠션은 CFOC. 침대 뒤에 있는 조각은 아멜리 도퇴르 Amelie Dauteur의 작품. 알라스테어 매그날도의 사진 작품은 옐로코너. 꽃병은 더콘란샵 The Conran Shop. 펜던트 조명은 파올라 나보네 Paola Navone 디자인으로 제르바소니 Gervasoni. 세로 선이 이어지는 침대 헤드보드는 오락 데코 Orac Decor.

 

영국식 정원 같은 욕실. “에린이 꽃이 가득한 욕실을 원했어요!” 리플 페이퍼 코 Rifle Paper Co.의 벽지로 리버티 Liberty 분위기를 연출했다. 페인트는 패로&볼. 세면볼은 알라프 Alape. 거울은 에노 스튜디오 ENO Studio.

CREDIT

stylist

비르지니 뤼시-뒤보스크 Virginie Lucy-Duboscq

photographer

베네딕트 드뤼몽 Benedicte Drummond

writer

이자벨 스왕 Isabelle So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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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인플루언서 수리의 파리 아파트

패션 인플루언서 수리의 파리 아파트

패션 인플루언서 수리의 파리 아파트

아트와 패션 월드를 종횡무진 누비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산하는 수리. 그녀의 파리 아파트는 예술을 향한 정체성과 비전을 품은 살롱이다.

 

프렌치 특유의 하얀 몰딩 장식이 돋보이는 수리의 파리 아파트. 소파와 화이트 시멘트 소재의 테이블은 몰테니앤씨 제품.

 

수리를 처음 본 건 몇 해 전 바젤에서였다. 아트 바젤 VIP 프리뷰 데이, 드레스와 하이힐 차림으로 참석한 그녀는 갤러리스트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작품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베니스 비엔날레, 파리플러스, 아트 바젤 홍콩 등 세계의 주요 아트 이벤트에서 마주쳤다. 지난해 파리 프티팔레에서 열린 우고 론디노네 전시 오프닝 파티에서 다국적 컬렉터들이 그녀에게 어떤 작품이 좋은지, 어떤 작품을 구입했는지 묻고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지켜보았다 (이후 그녀는 국제갤러리 파리지사의 디렉터로 지사 오픈을 돕고 총괄했다).

 

다이닝룸에 놓은 캐비닛은 이스턴에디션, 스피커는 뱅앤올룹슨 베오사운드 A9 김창렬 물방울 에디션 제품. 벽에 건 페인팅은 아이가나 갈리 작품이며 금속 바스켓과 촛대는 윤여동, 테라코타 화병은 아니사 케르미쉬 Anissa Kermiche 작품.

 

최근에는 몰테니앤씨의 글로벌 앰버서더로 촬영한 영상이 공개됐고, 이 모든 상황과 동시에 그녀의 인스타그램에는 밀라노와 파리 패션위크의 프런트로와 패션 하우스의 프라이빗 파티 풍경들이 올라왔다. 많은 독자는 이쯤 되면 그녀의 정체성이 정확히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 독립 큐레이터, 패션 인플루언서, DJ 등 광폭의 활동 반경에 한 이탈리아 매체에서는 그녀를 일컬어 ‘르네상스 우먼’이라고 칭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다이닝룸은 지인들을 초대해 직접 만든 요리를 대접하는 디너 파티를 좋아하는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공간일 것이다.

 

서울에서 다양한 패션 행사와 파티를 마치고 긴 비행시간을 거쳐 파리 8구에 위치한 아파트로 이제 막 도착한 그녀와 소파에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예술에 있어 언제나 가장 중요한 도시인 파리와 지금 가장 핫한 아트 시티로 등극한 서울, 이 두 도시를 오가며 많은 시간을 비행 이동으로 할애하는 그녀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일까?

 

고대의 지혜, 우주의 질서 그리고 심오한 신비에 의해 생성된 빛을 표현하는 작가 아이가나 갈리의 작품을 리빙룸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었다. 유기적 라인이 돋보이는 세라믹 작품은 시몬 보드머-터너 Simone BodmerTurner 작품.

 

채광이 풍부하고 프렌치 장식 요소가 돋보이는 아파트의 메인 벽난로. 지오 폰티 디자인의 라운지 체어와 커피 테이블은 몰테니앤씨, 도자기 소품은 터키 여행에서 사온 것이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10대 초반부터 정말 다양한 아파트에서 살아봤어요. 파리에서만 다섯번째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까요. 어머니가 인테리어 디자이너여서 어릴 때부터 공사 현장이 익숙한 환경에서 자라 공간의 본질을 보는 눈이 생긴 것 같아요. 저만의 아파트를 고를 때는 언제나 첫인상이 중요하고요. 지난여름 이사한 이곳은 처음부터 폭 안기는 느낌을 받았다고 할까요. 햇빛이 가득 들어오는 채광에 거실과 다이닝룸 그리고 개인공간이 독립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구조를 보자마자 영감이 떠올랐어요. 20세기 거트루트 스타인 파리 살롱이 그러했듯 문화적 배경과 분야, 세대 등의 경계없이 모여 예술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살롱 역할이 중요했거든요.”

 

나무의 나이테 같은 표현이 돋보이는 장광범 작가의 작품을 놓은 다이닝룸 벽난로. 의자와 스툴은 이스턴에디션 제품.

 

예술 기획 플랫폼인 메종수리 Maison Suri를 창업하고 끊임없이 흥미로운 일들을 벌이는 그녀에게 파리 아파트는 자신의 예술적 지향점을 품고 표현하는 공간이다. 지난해 프리즈 서울 위크 동안 빌라드파넬에서 연 <MIND:FULL:NESS> 전시에 이어, 올해 아트 바젤 파리플러스 위크를 기념해 그녀는 이 아파트에서 ‘Abundance(풍요)’라는 테마의 기획전을 열었다. 이들은 수리 자신이 먼저 좋아하고 팔로우하면서 작가들과 소통하고 함께 공감대를 형성해 섭외한 작가들이다. 여성적 직관, 영적인 다산 그리고 대안적인 형태의 지혜의 샘을 두드리고 탐구하는 동시대 여성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풍부함’의 다면적인 개념을 파헤치고자 하는 의미다. 아이가나갈리 Aigana Gali, 권죽희, 이유, 윤여동 등 세계 여러 도시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 그녀의 아름다운 아파트 공간과 어우러졌다.

 

메종수리 초반부터 함께한 이유 작가의 정형과 비정형이 공존하는 블랙 작품은 그녀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함께 매칭한 유기적 라인의 책상과 금속 사이드 테이블은 이스턴에디션 제품.

 

“시대상을 반영하는 플랫폼과 미디어가 너무 많은 시대잖아요. 그속에서 정작 자신의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과 방향을 찾기란 쉽지 않고요. 전형적인 화이트 큐브 공간이 아닌 개인의 삶이 스민 공간과 예술을 접목해 어떻게 예술을 향유하고 소비할 수 있는지 제시하고 싶었어요.”

 

생명의 에너지를 담은 아이가나 갈리 그림은 그녀가 최근 가장 좋아해서 다이닝룸에 건 작품이다. 캐비닛은 이스턴에디션 제품.

 

대화를 나누고 있는 오후, 거실 한쪽 벽을 채운 아이가나 갈리의 작품 아래로 창을 통해 쏟아진 햇빛이 아른거린다. 카자흐스탄 출신으로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가 자라난 초원의 영적인 에너지와 본질적으로 연결된 추상적 이미지가 파리의 전형적인 몰딩 장식과 부딪히고 공명하고 있었다. 자신이 시간을 보내는 공간을 어떤 예술로 채우느냐가 수집가의 취향을 대변한다. 갈수록 혼돈스럽고 위기감이 높아지는 시대상 속에서 잠시라도 마음의 풍요를 채울 수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지닌 작품들을 좋아한다고했다.

 

요리를 좋아하는 그녀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오픈형 아일랜드 키친.

 

수리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지만 그녀는 정작 자신의 배경에 대해 크게 떠벌리거나 부러 강조하지 않는 편이다. 그녀는 미국 조지 워싱턴 대학교에서 미술사 학사 과정을 마치고 파리의 아메리칸 유니버시티 오브 파리 American University of Paris와 소르본 대학, 뉴욕의 소더비 인스티튜트를 거친 학구적 배경과 더불어 예술에 대한 애정을 겸비한 컬렉터임에도 말이다. 그녀의 관심과 열정은 그런 피상적인 것보다는 자신의 비전을 어떻게 하면 구체화시키고 발전시킬 것인가로 향하고 있다.

 

파티가 열리면 가장 인기가 많아지는 빈티지 바 카트.

 

“한 레이블이나 카테고리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요. 우리가 무엇을 입고, 먹고, 보고,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고, 어떤 것으로 둘러싸여 있는지 그 총합이 우리 자신을 만들어 나가는 거잖아요. 저는 서로 다른 분야의 것들을 예술의 내러티브로 엮어 발생되는 에너지를 통해 삶을 본질적으로 아름답고 인간답게 만드는 일을 더 하고 싶어요.”

 

엔터런스 홀에 건 한지로 만든 작품은 수리 자신의 작품.

 

포근하고 둥근 시나몬 암체어는 몰테니앤씨 제품. 천장에서부터 내려오는 듯한 책과 종이 작품은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는 권죽희 작가의 작품.

CREDIT

에디터

writer

강보라

photographer

Jean-Pierre Vaillancou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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