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qua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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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에 나만의 가든을 만들며 사색을 즐길 수 있는 아쿠아스케이핑의 세계. JTK LAB의 강정태 소장이 알려주는 초보 물생활을 위한 지침서와 글로벌 디자이너의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수조 디자인 네 가지.

ADA의 아쿠아스케이핑 © Aqua Design Amano

어느 날 취미로 물고기를 기르는 한 연예인을 보고서 덜컥 ‘이거야!’를 외치며 수족관 용품점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아무런 준비 없이 하프문베타 한 마리와 작은 수조, 여과기, 먹이만 달랑 구입해와서 키운 지 이제 7개월차. 최소한의 준비물만 갖췄지만 무럭무럭 자라나 어느새 어엿하게 멋진 지느러미를 가진 푸른 물고기가 됐다. ‘물멍’이 하고 싶어 충동적으로 데려온 상황이라 물생활이 이렇게 어려운 고급 취미라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닫는 중이다. 물생활의 기본인 필수 행위를 잘 숙지하고 나면 물속 풍경을 아름답게 만드는 아쿠아스케이프로 자연스레 관심이 쏠리게 된다. 디자인 스튜디오 JTK LAB을 이끌고 있는 공간 디자이너 강정태 소장에게는 본업 외에 두 가지 ‘부캐’가 있다. 하나는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는 오디오 애호가, 또 다른 하나는 아쿠아스케이프 덕후. 아쿠아스케이프는 ‘아쿠아’와 ‘랜드스케이프’의 합성어로 수초, 돌, 유목 등을 활용해 수족관 안에 나만의 수중 정원을 만들어내는 예술적 활동이다. 누구보다도 디자인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강 소장에게 아름다운 물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알아야 할 필수 브랜드에 대해 묻자, 그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일본 수초어항 전문업체 ‘아쿠아 디자인 아마노(ADA)’를 추천했다. 크리에이티브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아쿠아스케이핑을 위한 제품과 물생활을 위한 팁을 알려줬다.

 

JTK LAB 강정태 소장 추천 아이템

10년 전, 사무실을 좀 더 창의적인 분위기로 만들고자 고민하다 ‘그린’이 창의성에 도움이 된다는 글을 읽었다. 그래서 미니멀한 가든 이미지를 보면서 이게 바로 우리가 하는 일과 연결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이와구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와구미는 일본어로 돌을 꾸미는 예술이다. 돌과 수초를 활용한 가든을 디자인하고 관리하는 것이 이와구미의 핵심이다. 랜드스케이핑과 가든 디자인을 통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고, 수초를 이용한 가드닝과 그것에 사용되는 장비들이 내게 큰 영감을 주었다.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조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여러 요소를 조화롭게 배치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이다. 자연에 가까운 환경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장비를 사용하는 것 또한 흥미로웠다. 이 모든 과정이 본업인 건축 디자인에도 큰 영감을 주었다. 또 다른 장점은 사색적인 면이다. 고민이 있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취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장비다. 다른 회사 제품과 달리 ADA 장비는 기능적이면서도 아름답다. 일본의 이와구미를 전 세계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한 회사다. ADA사의 ‘슈퍼 제트 Super Jet’ 여과기는 일반적인 플라스틱 마감이 아니라 스테인리스 재질의 하우징과 노출된 이와키사의 모터로 직관적인 디자인이 매우 멋진 제품이다.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디자인 컬렉션 중 하나일 정도. 개인적으로 ADA 제품을 너무 좋아해서 일본에 전시 보러 갈 때마다 긴자에 있는 수족관에 들렀고, 결국 멤버십 카드까지 만들었다. 현재는 해수로 취미를 바꿨지만, 당시에는 이와구미를 위한 돌을 찾아 다니느라 4~5시간을 운전해서 간 적도 있었다. 수초 관리는 햇빛 양과 비료 투입, 트리밍으로 쉽게 유지할 수 있다. 해수든 민물이든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레이아웃을 결정하고 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조 위치를 신중히 선택해야 하며, 직사광선이 들어오지 않는 곳에 배치하는 것이 좋다. 자연광 아래에서는 이끼 관리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동호회나 다양한 자료를 참고하면서 천천히 준비한다면, 멋진 수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Super Jet Filter 스테인리스로 제작한 여과기다. 모터계의 최고라 불리는 이와키 모터를 사용해 신뢰도가 높다. 실험실 장비 같은 구조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몸통은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져 있으며 마감도 좋아 10년 이상 사용하고 있다.

Pro-Scissors Wave 프로시저스 웨이브 수초 가위. 수초 취미를 하게 되면 지속적으로 트리밍해야 자라나는 수초를 관리할 수 있다. 수술 장비처럼 아름답다.

AP Glass 먹이를 보관하고 윗부분을 눌러 일정량을 급여하는 유리통이다. 갖고 있기만 해도 뿌듯할 정도로 아름답다.

Cube Garden Superior 수조도 빼놓을 수 없다. 지금은 국산도 많이 좋아졌는데, ADA의 마감은 여전히 일등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는 로고에 집착하기도 한다. 보통 실리콘으로 마감을 하는데, 이 수조는 실리콘을 쓰지 않고 유리를 접합해서 만들어 모서리가 느껴지지 않는 궁극의 수조이다. 이 때문에 매우 고가인 제품이다.

 

 

CO² Twist Counter 수초를 키우려면 이산화탄소를 적절히 공급해야 한다. 지금은 디자인이 바뀐 CO² 공급량을 관찰하기 위한 유닛 중 트위스트 버블 카운터라는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버블이 밑에서부터 위로 회전하면서 올라가는 모습이 아주 아름답다.

Aquasky RGB II 60 건축 미학이 있는 조명이다. 현재 구형 제품을 쓰고 있는데 신형 역시 아름다워 추천하고 싶다.

 

물고기가 키우는 식물

벵자맹 그랭도르주 Benjamin Graindorge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국립 산업디자인학교(ENSCI)를 졸업했으며, 현재는 예술학교 에사드스 Esadse 교수다. 그는 지루함을 피하고자 새로운 것을 계속 탐험하며 디자인의 다양한 가치를 좇는다. 두엔데 스튜디오 Duende Studio와 함께 제작한 ‘플로팅 가든 Floating Garden’은 그 과정에서 탄생한 것. 단순한 디자인이지만 뛰어난 아쿠아포닉스의 작동 원리가 적용되었다. 물고기 배설물은 탱크를 통해 흘러 식물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식물 뿌리에 의해 여과된 깨끗한 물은 다시 어항으로 흘러 들어간다. 어항의 수질 개선과 식물의 영양 공급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설계가 돋보이며 미래 지향적 가치에 주목한 친환경적 시스템이 흥미롭다. WEB benjamingraindorge.fr

 

생명의 무한한 순환

홍콩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예술과 과학 기술의 결합을 즐기는 프랑스 디자이너 프랑수아 흐르토 Fraçois Hurtaud. 그의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제품 ‘에바 EVA’는 스마트 실내 농업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정원과 어항이 결합된 아쿠아포닉이다. 아쿠아포닉이란 물고기와 식물을 동시에 재배하는 수직형 농업 시스템이다. 에바는 이러한 과학 원리를 활용해 호수의 자연 생태계를 모방한 어항과 식물, 꽃 등을 키울 수 있는 정원으로 설계되었다. 물고기 배설물이 식물에게 영양분을 제공하고, 식물이 물을 정화시켜 생명의 무한한 순환을 완성하게 된다. 정원과 어항은 제품의 중심에 자리한 조명을 공유한다. 조명 빛은 넓게 확산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자연 환경을 모방해 빛은 정해진 시간이 되면 부드럽게 켜지고 꺼진다. 또한 스마트 전자 기기 기술을 활용해 작물과 어항 관리를 유지하며 온도, 습도, 수위 등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모니터링할 수 있다. WEB www.francoishurtaud.com

 

 

어항 속 피어난 화초

프랑스 파리에 본사를 둔 스튜디오 5.5는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디자이너 네 명이 뭉쳐 설립한 콜렉티브 디자인 스튜디오다. 건축, 공간, 그래픽, 브랜딩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무한한 디자인 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그들의 자유롭고도 실험적인 아이디어는 보는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탈리아 유리공예 브랜드 살비아티 Salviati를 위해 제작한 투명 유리병 ‘O’ et ‘O,O’는 무색의 단순한 디자인처럼 보이지만 어항 속 작은 꽃병이 숨겨져 있다. 마치 물방울을 떨어뜨린 듯한 유기적 형태가 특징. 제품명의 ‘O’는 무중력 상태의 물 분자를 의미한다. 5.5 디자이너들의 재치 있는 네이밍을 더하니 디자인이 더욱 돋보이는 듯하다. 디자인의 모든 영역을 넘나드는 스튜디오 5.5의 도전적인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WEB 5-5.paris

 

가정용 냉장고 수족관

200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등장한 ‘로카보레스 Locavores’는 자신을 ‘도시 주변 반경 100마일에서 생산된 음식을 먹는 요리 모험가 집단’으로 정의하며 식품의 추적 가능성을 보장하는 동시에 운송에 내재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활동한다. 프랑스 디자이너 마티외 르와뇌르 Mathieu Lehanneur는 이들의 영향력에 힘을 실을 수 있는 가정용 수족관 로컬 리버 Local River를 고안했다. 로컬 리버는 100% 추적 가능한 신선한 식품에 대한 일상적인 요구를 충족시키고자 고안된 가정용 물고기 양식장이다. 많은 해산물이 과잉 어획으로 인해 점차 공급량이 감소함에 따라 생선 양식장에서 재배된 내수면 생선(송어, 장어, 뱀장어, 잉어 등)의 회복을 위해 제작한 것. 수족관 상단부에 설계된 작은 정원 속 식물은 질산염이 풍부한 물고기 배설물에서 영양소를 받는다. 식물은 물을 정화하고 물고기가 살 수 있는 생태계 균형을 유지하는 자연 필터 역할을 한다. TV 수족관을 대체해 장식적이면서도 기능적인 ‘냉장고-수족관’ 역할을 목표로 한다. WEB www.mathieulehanneur.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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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assistant editor

채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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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ictorian House

The Victorian House

The Victorian House

1900년대 초 빅토리아 시대 주택이 한 가족을 위한 아늑한 안식처로 되살아났다. 미니멀리즘과 모던함이 조화를 이루는 북아일랜드 하우스.

차분하면서도 아늑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거실.한쪽은 높은 층고로 설계해 개방감을 더했다.

집 안뜰에서 바라본 전경. 이 집은 20세기 초 지역의 상징인 붉은 벽돌로 지어졌다.

“북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 Belfast는 최근 몇 년간 디자인 전문가와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들며 떠오르고 있는 도시입니다. 우리에게 의뢰한 이 집은 20세기 초 빅토리아 양식으로 지어졌으나 120년간의 오랜 세월로 인해 심하게 손상되어 있었습니다. 우리의 가장 큰 임무는 빅토리아 시대의 요소를 보존하는 것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나 건축학적으로 의미 있는 집이기 때문이죠.”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허치 디자인 HUTCH design의 대표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 크레이그 허친슨 Craig Hutchinson이 말했다. 리모델링 이전에는 3개 아파트로 나뉜 3층 집이었다. 방은 다소 비좁았고, 복도는 어둡고 습했으며, 천장은 낮았다. 결국 모든 층의 전체 레이아웃을 바꿔야만 했다. 내부 단열재는 물론 지붕과 창틀까지 새롭게 바꿨다. 1층에는 응접실을 제외한 거실과 주방, 식당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배치하고, 2층과 3층에는 홈오피스와 마스터 침실, 아이들 방을 배치했다. 입구를 지나면 높은 층고의 거실과 식사 및 주방 공간이 나온다. 거실과 주방에서 전면의 테라스부터 후면의 안뜰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탁 트인 시야를 자랑한다. 디자인부터 기획, 규제 승인, 건축, 인테리어, 스타일링까지 모두 3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허치 디자인 대표이자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크레이그 허친슨.

“우리는 가구를 비롯한 다양한 예술 작품을 큐레이팅하는 데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지역 작가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여러 장인에게 가구 소싱을 의뢰했죠. 대리석 세면대와 벽난로부터 보겔 스튜디오 Vogel Studio의 테이블, 프레드 릭비 Fred Rigby의 흑단 소재 책상, 도예가 데렉 윌슨 Derek Wilson의 작품, 아일랜드 예술가 루이스 르 브로키 Louis le Brocquy의 벽 설치 작품 등을 배치했습니다. 그 외에도 피에르 잔느레와 게리트 리트벨트의 빈티지 체어를 배치해 따뜻한 분위기를 더했습니다.” 응접실 처마 장식과 벽 몰딩, 천장 장식 등에서는 빅토리아 시대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1층을 제외한 2, 3층은 기존 바닥을 최대한 복원하고 천연 오일로 마감해 내구성을 더했다. 질감이 살아 있는 뉴트럴 톤의 팔레트를 선택해 집이 전반적으로 차분하면서도 따뜻한 분위기가 흐른다. 또한 아치형 천장과 원통 구조 샤워실 등의 곡선 디자인이 우아한 분위기를 배가시킨다. “다소 열악한 기존 환경에다 섬세한 조율 과정으로 인해 리모델링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하지만 이 다섯 명의 가족에게 꼭 필요한 집으로 완성된 것 같아 기쁩니다. 누구에게나 따뜻함을 선사하는 집이거든요.”

거실에서 바라본 다이닝룸 모습. 오른쪽 벽에는 히든 도어 뒤 쪽으로 수납장을 짜넣었다. 왼쪽에는 주방이 자리한다.

복도에는 아치형 천장을 적용해 우아한 분위기를 더했다.

다양한 현대 조각품과 가구 등을 세심하게 선별해 통일된 분위기가 느껴진다.

2층으로 향하는 계단 한쪽에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작은 공간을 마련했다.

차분하면서도 질감이 있는 소재 팔레트를 적용한 다이닝룸.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의 목재 가구와 잘 어우러진다.

맞춤 제작한 대리석 벽난로가 존재감을 드러내는 응접실 모습.

2층 난간에는 테이블과 의자를 배치해 간이 서재를 조성했다.

자연광을 집 안으로 들이기 위해 일부러 낸 채광창.

창문 너머로 울창한 숲이 펼쳐지는 홈오피스 모습.

파스텔 톤이 돋보이는 아이방.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다락방이 나온다.

아늑한 분위기의 침실.

자연 채광 덕분에 안으로 식물을 들인 복도. 뒤쪽 벽면에는 히든 도어가 숨겨져 있다.

맞춤 대리석으로 제작한 세면대를 배치한 욕실.

원형 구조로 재미를 더한 샤워실.

CREDIT

에디터

포토그래퍼

헬렌 캐스카트 Helen Cathcart

styling

사라 빅스 Sarah Bi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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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에리 르메르의 안식처

티에리 르메르의 안식처

티에리 르메르의 안식처

프랑스를 대표하는 모더니즘. 인테리어 디자이너 티에리 르메르가 사는 곳.

티에리 르메르의 아이코닉한 가구, 니코 소파와 쿠막 암체어, 헬멧 사이드테이블이 놓인 거실. 커피테이블은 청동 장인에게 커스텀 제작했다. 오른쪽에는 르메르가 프랑크 오몽 Franck Aumont과 협업한 세라믹 램프, 왼쪽에는 장-피에르 가로와 앙리 드로드의 70년대 빈티지 조명을 놓았다. 텍스처가 들어간 양모 카펫 역시 티에리 르메르 제품.

니코 소파에 앉아 포즈를 취한 티에리 르메르.

세라믹 아티스트 프랑크 오몽과 협업해 제작한 램프.

프랑스에서 티에리 르메르 Thierry Lemaire라는 이름이 가진 영향력은 매우 크다. 파리 오스마니안 아파트와 해외 별장, 요트, 프라이빗 젯 등 하이 엔드 인테리어 시장을 이끄는 인물인 동시에 프랑스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 궁의 선택을 받은 디자이너이기 때문이다. 1973년 퐁피두 대통령이 피에 르 폴랑에게 의뢰해 대통령 관저의 가구를 채운 이후 처음으로 이루어진 실내 리노베이션에서 대통령 집무실 책상과 살롱의 대형 소파를 포함한 가구와 소품 7점이 티에리 르메르에 의해 제작되었다. 티에리 르메르는 최근 이사한 생-제르망-데-프레 아파트에서 대통령 이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가구들과 함께 디자이너 특유의 조용한 삶을 즐기고 있다. 사무실과 갤러리가 있는 보나파르트가 Rue Bonaparte에서 3분 거리의 옛 수도원 건물인 아파트는 놀랍게도 들라크루아 박물관을 마주하고 있다. 시내 중심에 있지만 창문 너머로 박물관의 정원이 보이고 새 소리가 들리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아끼는 황동 말 머리 조각상에 맞춰 커스텀 제작한 테이블 주변에는 빈티지 가구와 소품만 매치했다. 벽에 걸린 소가죽으로 만든 작품은 헝가리 아티스트 피에레 세케이 Pierre Székely의 1979년 작품.

창문 너머로 들라크루아 박물관의 정원이 보인다.

티에리 르메르가 말한다. “생-제르망-데-프레를 좋아해요. 인생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내 익숙하기도 하지만 여기엔 멋진 카페와 비스트로 외 에도 문화적으로 필요한 모든 것이 있어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이 지역이 멋지다는 것을 알죠.” 이런 이유로 혼자 지낼 아파트를 찾던 중 발견한 들라크루아 박물관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80㎡ 공간은 그를 설레게 했다. 다소 작은 크기지만 실제보다 넓어 보이도록 한쪽 벽에 거울을 설치해 아쉬움을 해결했다. 식사는 주로 레스토랑에서 해결하니 주방이 클 필요 없으며, 잦은 해외 출장과 주말마다 파리를 벗어나 짧은 여행을 즐기는 라이프스타일에 이 정도 크기가 오히려 적절했다.

청동 장인이 제작한 커피테이블 위에는 여행지에서 가져온 돌과 오브제가 놓여 있다.

인테리어는 자연스럽게 보나파르트가 갤러리의 연장선처럼 그가 자주 묘사하는 ‘구름 속’에 있는 듯한 차분한 무드로 완성됐다. 갤러리와 다른 점은 직접 컬렉팅한 미술작품과 골동품이 함께 어우러져 사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는 것. 거실에는 엘리제궁 살롱에 놓인 니코 Niko 소파가 티에리 르메르의 또 다른 시그니처 디자인 중 하나인 쿠막 Koumac 암체어와 마주하고 있다. 엘리제궁에서 여럿 사용 중인 헬멧 Hellmet 사이드 테이블도 보인다.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피스를 굳이 뽑자면 니코 소파와 쿠막 암체어예요. 니코는 이 공간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고, 쿠막은 맨 처음 디자인한 가구라 애착이 가요. 약 15년 전 프로젝트에 어울리는 의자가 필요해 직접 스케치해서 제작한 것이 쿠막이었죠.” 완전히 온몸을 담을 수 있는 넓은 사각의 디자인과 편안한 착석감에 회전도 가능한 쿠막 암체어는 현재까지 사랑받는 모델이다.

목재 대들보의 브라운과 화이트 벽 사이에 존재하는 중립적 컬러로만 채워진 거실은 넓은 창의 햇살과 함께 밝고 편안하다. “커리어 초반에는 색 쓰는 것을 좋아했지만 경력이 쌓이면서 분위기가 바뀌고 있어요. 공간이 가진 미적 기준을 삶의 즐거움 창조라는 목적에 맞추려다 보니 현재 모습으로 진화된 것이 아닐까요. 유행을 제시하는 것보다 평생 즐길 수 있는 미감을 창조하는 것이 클라이언트의 삶은 물론 환경적으로도 중요하니까요.”

생 디에 Saint Dié에 있는 폴 에벨 학교의 건축 요소로 사용된 1953년 장 푸르베 작품. 바닥에는 티에리 르메르 플로어 램프와 빈티지 조각상을 놓았다.

스테인리스 스틸을 사용한 미니멀한 주방에서는70년대 올빼미 얼음통 같은 앤티크와 세라믹 작가들에게 의뢰해 제작한 제품을 함께 사용한다. 기하학 형태의 그림은 브라질 작가 조아우 카를루스 가우바우 Joao Carlos Galvao 작품.

한 가지 톤 컬러로 공간을 채우는 일은 자칫하면 지루할 수도 있다. 그래서 티에리는 다양한 질감을 의도적으로 혼합해 리드미컬함을 더했다. 양모 소재의 카펫, 소가죽, 청동, 직물, 세라믹이 혼재한 거실 풍경은 단순하지만 경쾌하고 아름답다. 다양한 소재 외에 다양한 시대의 혼합 또한 그가 강조하는 중요한 디자인 요소다. 커스텀 제작한 다이닝 테이블 주변으로는 50년대 빈티지 의자가, 바닥에는 70년대 만들어진 장-피에르 가로 Jean-Pierre Garrault, 앙리 드로드 Henri Delord의 조명, 그리고 브뤼셀 벼룩시장에서 발견한 60년대 청동 샹들리에와 2000년대 티에리 르메르 가구들의 조화는 멋진 균형을 보여준다. “여기에 돌로 제작한 장식장을 들이고 싶었는데 자리가 없어 포기했어요. 돌로 만들어진 모던한 의자, 아니면 루이 16세 스타일의 의자가 놓인다고 해도 어울릴 거예요. 티에리르메르 가구로만 100% 공간을 채우는 것은 내겐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과거와 현재의 스타일을 혼합하는 것이 진정한 멋이라고 생각해요.”

알루미늄 소재 티에리 르메르의 트위스트Twist 콘솔 위에는 여행지에서 하나둘씩 모은 빈티지 대리석 컬렉션이 있다. 그림은 부다페스트 여행 중 구입한 헝가리 작가 게저 베네 Géza Bene의 1953년 작품.

빈티지 소품과 공예품으로 채워진 현관 장식장.

오랜 기간 펜디 카사와 꾸준히 협업해오고 있다. 주로 PAD런던을 통해 고객을 만나는 그는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두바이, 싱가포르, 베이루트, 스위스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위해 이동이 잦은 편이다. 올해는 생트로페에서 첫 번째 호텔 프로젝트가 예정되어 있다. 진정한 글로브 트로터에게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퇴근 후 텔레비전을 틀고 소파에 앉아 샴페인 한 잔을 하거나 침대에 누워 책을 읽는 것으로 채워진다. 요리는 거의 하지 않고 사무실 근처 ‘라 샤레트 La Charette’를 가거나 대접을 해야 하는 경우라면 ‘르 볼테르 Le Voltaire’를 선호한다. 파리 문화가 영감의 원천이긴 하지만 새로운 여행지 경험 또한 그의 삶에선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집 안 곳곳에는 여행지에서 발견한 재미있는 오브제들이 한가득이다. 침실의 트위스트 Twist 콘솔 위를 가득 채운 장식품, 거실의 커피테이블 위에 놓인 돌, 세라믹, 청동, 크리스털 소재의 오브제, 현관 장식장의 다양한 조각상 등은 전부 여행지의 추억이다. 통일된 안목으로 선택된 기념품들은 전통적인 소재를 선호하는 집주인의 확연한 취향을 보여준다.

침대 헤드와 사이드테이블은 직접 제작했다. 바이론 Byron 의자는 티에리 르메르 제품.

실내건축과 가구 디자인 중 어떤 분야를 선호하는지 묻자, 티에리는 1950~60년대 건축가들이 일하던 방식을 선호한다고 했다. 즉, 건물 외관에서 시작해 건물 내부, 그리고 머무는 사람이 사용하는 숟가락 디자인까지 관여하는 방식을 말한다. 건축가가 클라이언트를 위해 A부터 Z까지 결정하는 프로젝트는 디자인의 일관성과 완성도를 높여줄 수밖에 없으니 당연하다. “가구를 디자인하는 일은 작은 건축물을 만드는 것과 같아요. 제작에 걸리는 기간이 몇 개월로 짧을 뿐이지 스케치를 시작하고, 구조가 결정되고, 제작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건축물을 올리는 것과 동일합니다. 그래서 가구 만드는 일도 너무 즐거워요.” 프로젝트마다 새로운 가구들을 제작하기 때문에 갤러리에는 6개월마다 새 제품이 소개된다. 파리 생-제르망-데-프레, 보나파르트가를 지난다면 티에리 르메르 갤러리에 들러 프랑스 대통령이 사용하는 가구들을 직접 체험해보라.

www.thierry-lemaire.fr

CREDIT

에디터

writer

양윤정

photographer

임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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