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코닉한 가구와 빈티지 가구, 그리고 작가의 작품이 풍성한 레이어를 보여주는 세븐도어즈 민송이 대표의 집. 오랜 경력의 스타일리스트가 직접 만든 집에는 삶의 방식이 깃들어있다.

디자인 가구와 작가의 작품이 모여 있는 거실. 검은색 바닥재 덕분에 가구의 실루엣이 더욱 살아난다.

민송이 대표 집에 자주 놀러 오는 손님인 ‘수수’는 부모님의 반려견이다. 마라룽가 소파에 함께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한다.

오래된 고가구를 두었지만 현대적인 가구 디자인과 어우러져 지나치게 예스럽지 않다.

제작한 주방 가구는 냉장고를 비롯해 빌트인 수납공간을 만들어서 깔끔하게 유지할 수 있다.
리빙&공간 스타일리스트는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일까. 숍이나 카페, 백화점 등의 공간 연출부터 광고 콘텐츠, 브랜딩, 전시까지 말 그대로 리빙과 공간에 관련된 스타일링을 총괄하는 역할이다. 스타일링 스튜디오 세븐도어즈를 운영해오고 있는 민송이, 민들레 대표는 국내 리빙 업계의 손꼽히는 듀오 스타일리스트다. 오설록 티하우스를 비롯해 더 현대 서울의 식품관,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 북촌 설화수의 집 등 많은 이들이 즐겨 가는 공간에 세븐도어즈의 손길이 닿아 있다.

이사무 노구치의 조명이 보름달처럼 떠 있는 다이닝 공간. 좋아하는 그릇들은 벽에 설치한 가구 필라스터에 하나씩 올려두었다. 커튼으로 가린 부분은 식물과 항아리를 둔 베란다.
민송이 대표는 결혼 후 신혼집을 거쳐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했다. 바쁜 와중에 틈틈이 집을 다듬다보니 년 반이란 시간이 훌쩍 흘렀다. “스타일리스트로 일하며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그동안 공간을 연
출하며 좋아하는 스타일을 찾아가고 배우면서 예행연습을 해본 것 같아요. 이 집은 전실과 현관을 연결해서 구조를 변경했고, 그 외에는 바닥재와 주방, 욕실 등 스타일링 위주로 리모델링을 했어요. 또 가장 넓은 방은 제가 집에서 일할 때 사용할 작업방으로 만들고, 작은 방은 침실로 사용하게 됐는데요, 남편이 이해하고 배려해준 덕분이에요.” 무채색과 낮은 채도의 색상을 좋아하는 민송이 대표의 취향은 바닥재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선뜻 택하기 어려운 검은 원목마루이지만 집 전체의 인상을 묵직하고 차분하게 잡아준다. 스타일리스트로서 수많은 디자인 가구와 소품, 그리고 멋진 공간을 보고 만들어온 그녀에게 자신의 취향을 보여주는 일이 오히려 더 어려울 것 같았다. “집에 관해선 계획이나 의도가 별로 없는 편이에요. 해놓고 보니 혹은 지나고 보니 ‘아, 내가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하고알게 되는 거죠. 제 옷이나 갖고 있는 물건들을 보니 무채색이 많더군요.

오로지 수면에 집중할 수 있도록 검은색으로 마감한 침실. 침구 역시 무채색으로 선택해 이 집에서 채도가 가장 낮은 공간이다. 벽에 붙인 부부의 사진 한 장이 따뜻해 보인다.
가구는 오래 사용할 디자인을 고르는 편이고요.” 타임리스 디자인은 시간이 지나도 질리지 않고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을 일컫지만, 개인이 정의하는 바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오랜 시간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해오며 민송이 대표가 생각하는 오래 사용할 가구는 무엇인지 궁금했다.
“쉽게 질리지 않는 담백한 디자인의 가구죠. 그런데 가구란 내 마음대로 두기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집은 쇼룸이 아니니 모든 가구를 철저히 계획해서 둘 수 없고, 살면서 변수도 생기거든요. 지금은 집에 별로 어울리지 않지만 그냥 사용하고 있는 가구도 있고, 제 취향이 아닌데 이사할때마다 따라오는 가구도 있어요.(웃음) 촬영 후 버려질 것 같아 데려온 식물은 무럭무럭 크고 있고요. 저는 이런 것이 인연이라고 생각해요. 대신 가구들을 잘 조합해서 멋스럽고 쓰임에 맞게 두는 것이 제 역할이겠죠.” 민송이 대표의 말처럼 집 안에는 저마다 다양한 이야기를 지닌 가구와 물건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베란다에 옹기종이 모여 있는 항아리와 몇 점의 고가구는 어머니가 직접 장을 담그시던 항아리, 지방 여행을 하며 구입해 사용하다 물려주신 것들이다. 1814년부터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는 영국 총포상의 빈티지 유리장부터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구입하거나 주문 실수로 잘못 제작한 가구도 있다. 올록볼록한 형태가 반려견에게 훌륭한 쉼터가 되어주는 버블 소파는 원래 민들레 대표의 집에 있던 것. 반면 배송을 받기까지 긴 시간 기다림을 감내하며 구입하거나 샤를로트 페리앙처럼 좋아하는 디자이너의 하이엔드 가구도 있다. 스타일링의 힘은 시대와 스타일이 다른 사물들을 조화롭게 포용한다.

한두 개씩 구입하다 보니 개수가 늘어난 소반. 오브제 역할도 하지만 필요할 때마다 내려서 요긴하게 사용한다.

실제 영국 총포상에서 사용했던 빈티지 가구. 유리 표면의 글씨도 잘 보존돼 장식적인 역할을 한다.

사용하던 침대 헤드보드를 선반으로 탈바꿈했다. 좋아하는 캐릭터 작품을 비롯해 남편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방.

재택 업무가 이뤄지는 작업방은 보통 침실로 사용하는 가장 넓은 방이다. 작업 중 샘플을 봐야 할 땐 테이블에 늘어놓기도 하고, 민들레 대표와 함께 야근하다 쉬기도 하는 공간이다.

작업방과 이어지는 욕실 파우더룸. 계획대로 마감이 되지 않았지만 그 자체로 그냥 두어 오히려 재미있는 공간이 됐다.

방을 화사하게 밝혀주는 커다란 그림 작품은 어머니가 그려주신 것.
이 집에서 가구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것은 곳곳에 배치된 작품이다. 현관 벽에 걸린 문형택 작가의 작품을 시작으로 복도는 물론 주방, 작업 방, 거실에도 작품이 놓여 있다. 옥션이나 페어에 갈 때마다 한두 개씩 구입하다 보니 꽤 많아졌다. 민송이 대표는 이미 유명하거나 가격이 오를 것 같은 작품보다는 오래 두고 보고 싶은 작품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특히 서예가 평보 서희환 선생의 작품은 수수하면서도 독특한 글씨체가 마라룽가 소파나 버블 소파 같은 현대적인 가구와 힘있게 어우러지며 거실에 개성을 더한다. 공간을 넓게 사용하기 위해 베란다를 확장하는 사례가 많은데, 집의 모든 베란다를 그대로 둔 점도 의외였다. “식물에 물을 주거나 장담글 항아리도 두어야 하고요. 확장을 하면 공간이 연장되긴 하지만 그만큼 눈에 보이는 면적도 늘어나요. 직업 특성상 짐이 많아서 보관할 곳도 필요하고, 또 안마의자나 러닝머신같이 필요하지만 거실이나 방에 두기 조금 부담스러운 기기도 베란다에 두었어요. 아! 주방 옆 베란다에는 식용식물을 재배할 수 있는 가전인 ‘틔운’을 두었는데요, 만족도가 정말 높아요. 이걸로 로메인, 비타민, 상추 등을 재배해서 먹었는데 재미도 있고 수확하는 즐거움도 있는 아파트용 텃밭이에요.” 민송이 대표의 말에 공간을 넓힌다는 이유로 베란다를 무조건 확정하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구경하며 이것저것 물어보고 그에 담긴 이야기를 들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던 민송이 대표의 집은 든든한 포만감을 주는 공간이었다. 멋스러운 집을 만드는 일은 노련한 스타일링에 달려 있지만, 실은 작은 물건 하나에 담긴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강약조절을 하며 균형을 맞추는 민송이 대표의 삶의 방식에서 비롯됐다. 잘 꾸며진 공간이 때론 머무는 이에게 괴리감을 줄 때가 있는데, 다정하고 따뜻한 스타일리스트가 완성한 집에선 초대한 이의 환대만이 느껴졌다.

민들레 대표가 오면 머무는 게스트룸. 침대 안쪽 공간은 리모델링하다 우연히 벽 너머에서 발견하게 된 비밀스러운 공간이다.

자연스러운 색채의 형상이 아름답게 보이는 정진서 작가의 작품이 놓인 복도. 옆에 비어 있는 캔버스는 어떤 작품이 걸릴지 아직 미정인 상태라 그대로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