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갤러리 중 하나로 손꼽히는 갤러리 크레오. 예술과 삶에 대한 철학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크젠토프스키 부부의 집을 소개한다.

피에르 구아리슈 Pierre Guariche의 CA21 캐피톨 Capitol 소파, 피에르 폴랑의 1인 라운지 체어, 콘스탄틴 그리치치 Konstantin Grcic의 히에로니무스 우드 Hieronymus Wood 체어 등 1인용 사이즈의 작은 라운지 체어 여러 개로 꾸민 거실. 커피 테이블은 프랑수아 보셰 François Bauchet의 켈라 Cellae, 왼쪽 벽면에 놓인 금속 작품 위 더 피플 워크 We The People Work는 단 보 Danh Vo, 천장 조명은 지노 사르파티 Gino Sarfatti의 2109/24, 벽에 걸린 사진 작품은 바바라 크루거 Barbara Kruger, 오른쪽 구석에 걸린 네온 사인 조명은 제이슨 로즈 Jason Rhoades의 스니즐, 블랙, 박스, 벨벳 Snizzle, Black Box, Velvet.

독특한 형태의 플로어 조명 체인 미네랄 트리플 Chaînes Mineral Triple은 로낭 & 부홀렉 디자인, 개미를 떠올리게 하는 엠브료 Embryo 체어는 마크 뉴슨 Marc Newson, 커튼 앞에 놓인 조각 작품은 데이비드 누난 David Noonan. © Alexandra de Cossette/Galerie Kreo

갤러리 크레오를 이끌고 있는 클레멘스와 디디에 부부. © Alexandra de Cossette/Galerie Kreo
파리의 한복판, 고전적인 벨 에포크 건물 안에 자리 잡은 클레멘스 Clémence와 디디에 크젠토프스키 Didier Krzentowski 부부의 아파트는 예술과 삶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하나의 캔버스 같다. 이곳은 시간이 겹겹이 쌓인 흔적과 생동하는 현재가 서로 대화하며 조화를 이루는 무대다. 클레멘스와 디디에는 1999년에 갤러리 크레오 Galerie Kreo를 설립하며 디자인과 예술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갤러리를 열기 전, 디디에는 명망 높은 스키 의류 회사 킬리 KILLY에서 가족 사업을 지원했으며, 스포츠 비즈니스 분야에서 활동했다. 클레멘스는 1992년 알베르빌 동계 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유명 디자이너 필립 스탁 Philippe Starck에게 성화 디자인을 의뢰하며 창의적인 프로젝트를 주도한 바 있다. 이러한 경험은 두 사람에게 디자인과 예술을 결합하는 안목을 길러줬고, 이는 곧 갤러리 크레오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다. 갤러리는 에이전시로 시작해 로낭 부홀렉 Ronan Bouroullec, 마크 뉴슨 Marc Newson, 피에르 샤르팽 Pierre Charpin 등과 협업한 뒤, 1999년 파리 13구에 첫 갤러리를 열었다. 이러한 활동은 그들의 철학이 반영된 삶의 공간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여러 가지 색상의 조명 갓이 인상적인 벽 조명은 지노 사르파티, 앞에 놓인 커피 테이블은 마크 뉴슨, 평화를 상징하는 로고를 새겨넣은 벤치는 버질 아블로, 푸른 색이 인상적인 라운지 체어는 알라인 리차드 Alain Richard. © Alexandra de Cossette/Galerie Kreo

콘스탄틴 그리치치의 천장 조명 트랜스포머스 LS4와 유리 테이블 반자이 Banzai. 레드 컬러의 좌판이 돋보이는 다이닝 체어는 로빈 데이 Robin Day, 오른쪽 벽면 가장 상단에 걸린 페인팅 작품은 A.R 펭크 Penck의 푸추라 Futura 2000. © Alexandra de Cossette/Galerie Kreo

알록달록 다채로운 색상으로 가득한 부부 침실. 지구본을 여러 개 이어 만든 천장 조명 워크 Work는 앙게 레치아 Ange Leccia, 허전한 침실 벽면을 가득 채운 문 형태의 작품 플라스터스 서로게이트 Plasters Surrogates는 알란 맥콜럼 Allan McCollum, 모듈형 유닛 수납장 쿠오버스 Quobus는 마크 뉴슨. © Alexandra de Cossette/Galerie Kreo

오른쪽 벽면 가장 상단에 달린 벽 조명은 피에르 폴랑, 침실과 동일한 마크 뉴슨의 수납장 쿠오버스, 바닥에 누워 있는 핑크색 하마 쿠션은 카스텐 휠러 Carsten Höller. © Alexandra de Cossette/Galerie Kreo

오랜 시간 부부의 감각적인 안목으로 수집해온 그림 작품들을 전시한 복도 공간. © Alexandra de Cossette/Galerie Kreo

두 개의 천장 조명은 사르파티, 체스판 모양의 거울은 알레산드로 멘디니, 세면대 위에 놓인 화병은 에릭 올로브손 Olovsson, 돗단배 형태의 욕조 바스 보트는 스튜디오 웨이키 소머스 Wieki Somers. © Alexandra de Cossette/Galerie Kreo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이 모이는 곳”이라며 자신의 집을 소개한 부부의 아파트는 마치 자화상처럼 두 사람의 철학과 감각이 여실히 들어나 있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도움 없이 본능적으로 꾸며진 이 집은 빈티지 가구와 현대 작품, 그리고 선사 시대의 운석 같은 독특한 물건으로 가득하다. 고전적인 벨 에포크 건물의 기둥에 석고를 벗겨내고 금속 지지대를 드러낸 거칠면서도 독특한 매력은, 표백된 나무 마루와 어우러져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층층이 쌓인 듯한 느낌과 차분함, 그리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길 원했어요. 대화와 사물 속에서 이야기가 펼쳐지는 따뜻하고 초대받은 듯한 분위기로요. 텍스처, 미학, 직물을 믹스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이를 통해 아늑함과 과감한 미학이 공존하는 공간을 만들어갑니다.” 부부는 자신의 집을 묘사했다. 최근 부부는 리퍼니싱을 통해 조명의 배치를 새롭게 했다. 오랜 시간 같은 위치에 머물던 주요 조명들에 변화를 줘 공간에 신선함을 불어넣었다. “조명은 단순히 공간을 밝히는 역할을 넘어, 그 자체로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위치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죠.” 이들 부부에게 리퍼니싱 과정은 미학적 변화를 꾀하기보다는 변화를 수용하면서도 안정적인 공간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색상 역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페라리 Ferrari 레드 테이블과 초록 카펫처럼 대담한 색상은 공간의 중심을 잡으면서도 전체적인 조화를 유지한다. 이러한 과감한 시도는 부부의 창의성과 자신감을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 디디에가 소중히 여기는 선사 시대의 운석은 단순히 예술품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부부가 추구하는 독창성과도 맞닿아 있다. “우리는 모방할 수 없는 고유한 물건에 끌립니다. 중세 이탈리아 램프가 현대 디자이너의 테이블 옆에 놓이고, 선사 시대 유물이 조용히 선반에 놓여 있는 모습 등 과거와 현재의 긴장감은 생동감을 주고 활력을 불어넣죠. 그것이 우리가 갤러리와 집에서 모두 지향하는 철학입니다.” 부부가 강조해 말했다.

민트색으로 색상에 변화를 준 공간. 네온 조명과 하이메 아욘의 벽 거울을 달았다. © Alexandra de Cossette/Galerie Kreo

소파와 스툴은 로낭 & 부홀렉 디자인, 커피 테이블은 피에르 샤르팽. 비교적 색감을 덜어낸 공간이지만 소파 위 컬러 패치 하듯 올린 다채로운 색감의 패브릭이 인상적이다. © Alexandra de Cossette/Galerie Kreo
침실의 작은 독서 공간처럼 상대적으로 단순한 코너도 부부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곳은 독특한 조명과 빈티지 가구로 꾸며진 고요하고 아늑한 휴식처로서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우리 집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공간입니다. 새로운 발견과 취향이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진화하죠. 하지만 그 안에는 언제나 일관된 이야기가 흐르고 있습니다.” 최근 콘스탄틴 그리치치 Konstantin Grcic의 작품을 집에 추가한 것도 그 일환이다. 그의 LED 조명은 부부가 수년 전에 소장한 테이블과 어우러지며 새로운 대화를 만들어냈다. 갤러리 크레오 역시 이들의 비전을 반영하며 진화하고 있다. 부부는 앞으로도 꾸준히 젊은 디자이너의 새로운 작품을 소개하면서도, 역사적인 작품의 가치를 기념하는 데 주력하리라 다짐했다. 파리의 이 특별한 집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대화를 나누는 장소다. 부부는 집을 통해 삶과 예술이 어떻게 어우러질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집은 열정과 기억, 타협하지 않는 철학이 모이는 공간입니다. 그리고 이곳은 온전히 우리의 것이죠. 집이란 우리의 이야기와 철학이 깃든 삶의 무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