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중심, 생제르맹 데프레에 자리한 한 저택에서 예술과 일상을 조화롭게 엮어가는 컬렉터 미뇽 유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역사와 현대, 한국과 프랑스를 잇는 그녀의 공간 속으로.

클래식한 스타일과 현대적 감각이 어우러진 거실. 벽난로 위에는 장 미셸 오토니엘의 에디션을 걸었다. 부채 모양의 플로어 조명 ‘Pair of Butterfly’은 토비아 스카르파 Tobia Scarpa 디자인으로 플로스 Flos. 알루미늄 소재의 로 체어는 니콜라스 자노니 Nicolas Zanoni.

<That’s a Mignon Show> 전시를 선보인 미뇽 유와 그라지엘라 세메르시안.
지난해 10월, 파리 아트 위크 기간에 다양한 갤러리와 개인 컬렉터들이 전시를 열자 도시 곳곳이 예술로 가득했다. 그중에서도 파리 기반의 컬렉터 미뇽 유 Mignon Yoo의 자택에서 열린 <That’s a Mignon Show>는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았다. 미뇽 유는 파리와 런던에서 금융업에 종사하면서 한국 현대미술을 유럽에 소개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파리에서 태어나 자란 그녀는 어릴 적부터 박물관과 미술관을 자주 방문하며 예술적 감각을 키웠고,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하며 한국 미술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첫 아트 컬렉션은 이우환의 판화 작품으로 시작되었으며, 이후 경매를 통해 다양한 한국 작가의 작품을 수집해왔다. 현재는 마그나 갤러리 Magna Gallery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파리에서 활동하는 한국 작가들과 교류를 통해 그들의 작품을 널리 알리고 있다.
<That’s a Mignon Show> 전시는 아트 딜러 그라지엘라 세메르시안 Graziella Semerciyan과의 인연에서 시작되었다. 온라인 갤러리를 운영하는 그녀가 오프라인 전시 공간이 없어 지인 집에서 전시했다는 소식에 “언젠가 우리 집에서 한국을 주제로 전시해보자”는 농담이 시작이었다. 특히 2025년은 한국-프랑스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해로, <한국의 유산 Korean Legacy> 전시를 기획하던 중 이를 홍보하기 위해 3주 만에 팝업 전시를 열게 되었다. 자신의 아트 컬렉션과 함께 마그나 갤러리 및 그라지엘라가 선보인 작품들이 전시되었고, 이슬기, 이은영, 채성필 작가의 작품을 소개했다. 5일간 진행된 전시에는 약 700명의 방문객을 맞으며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특히 현지 컬렉터와 아트 관계자들이 한국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하고 큰 관심을 보였으며, 몇몇 작품은 전시 중 문의가 들어와 실제 거래로 이어지기도 했다.

1980년대 아르망이 디자인한 계단. 아카이브 속 오리지널 디자인을 참고해 복구했다.

다이닝 룸 옆, 계단 아래에는 이배 작가의 작품을 세워두었다.

거울은 세르반 이오네스쿠 Serban Ionescu, 조명은 마리옹 마일랜더.
전시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 것은 바로 그 장소였다. 파리 중심부 생제르맹 데프레에 위치한 그녀의 집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닌 예술적 역사와 깊이가 있는 곳이다. 17세기 ‘헤라클레스 호텔 Hotel d’Hercule’이라는 이름의 호텔 파티큘리에 Hotel Particulier(개인 대저택)로, 오랜 역사속에서 수많은 예술가가 아틀리에로 사용했던 공간이다. 저명한 아트 평론가이자 갤러리스트인 자크 푸트만 Jacques Putman과 그의 아내이자 디자이너 앙드레 푸트만 Andree Putman, 1990년대에는 사진작가인 피터 린드버그 Peter Lindbergh가 살았다. 흥미롭게도 바로 옆 건물은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그린 곳이기도 하다. 미뇽 유의 집은 1980년대에 프랑스 조각가 아르망 Arman이 거주하며 작업실로 사용했던 곳인데, 여전히 그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리노베이션 당시 미뇽 유는 현대적 감각을 더하면서도 예술적 본연의 모습을 보존하기 위해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인테리어 디자이너 마리옹 마일랜더 Marion Mailaender와 함께 작업하며, 클래식 스타일을 현대적이고 기하학적인 디자인으로 재해석했다. 침실 디자인은 아르망 스타일과 현대적 요소가 잘 어우러져 있으며, 바닥 카펫은 지오 폰티 Gio Ponti에게 영감을 얻은 블루 컬러로 선택했다. 또한 낡은 주방은 서재로 바꾸고 다이닝 룸 옆 복도와 창고를 털어내 오픈키친을 만들어 공간을 더 넓고 유연하게 변형했다. 이 집의 하이라이트는 아르망이 디자인한 메인 계단인데, 콘크리트를 나무 널빤지 모양으로 조각한 독특한 디자인이 돋보인다. “시간이 지나면서 페인트가 덧칠해지고, 클램프 대신 난간이 설치되어 있었어요. 아르망의 오리지널 디자인을 복원하기 위해 아카이브를 참고해 가장 비슷하게 재공사를 했습니다. 특히 나무 널빤지 결 사이로 스며든 페인트를 하나씩 긁어낸 작업이 기억나요.”

따뜻한 우드 톤 인테리어와 현대 작품이 어우러진 모습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빈티지 타일 장식과 디테일한 노빌레 테이블 Nobile Tables.
그녀는 앞으로도 이 특별한 공간을 활용해 다양한 예술적 이벤트를 개최할 계획이다. “저는 운이 좋게 파리 시내 중심지에 위치한 크고 멋진 집에 살고 있어요. 일상적으로 거주하는 공간이다 보니 때때로 그 행운을 잊기도 하지만, 이 특별한 공간에서 예술적 혜택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어요.” 그녀는 이 공간이 많은 사람에게 예술과 문화의 풍부한 경험을 제공하는 장이 되기 바라며, 한국 미술이 더욱 넓은 세계와 연결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힘쓸 계획이다.

클래식한 거실과 대비를 이루는 모던한 디자인의 침실. 블루 카펫과 수직적인 화이트 캐비닛, 노출 콘크리트 계단과 현대적인 가구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짙은 원목으로 마감해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한 서재. 데이 베드는 선명한 색감의 킬림(페르시안 직조)으로 맞춤 제작했다. 바로 옆 그로토 암체어 Grotto Armchair는 빈티지 제품. 오른쪽 벽의 아트워크는 이은영.

이우환 화백의 작품을 걸어둔 현관.

메자닌 형태의 거실에서 계단을 내려오면 다이닝 룸과 연결된다. 벤치는 크바드랏의 패브릭을 사용해 자체 제작했다. 패브릭 의자는 노빌리스 Nobilis. 천장 조명은 알바 알토.

나탈리아 트리안타필리 Natalia Triantafylli가 3D 프린팅과 세라믹으로 제작한 작은 거울 오브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