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반기는 건 고양이 볼트다. 몇 해 전 집 근처에서 구조했을 때만 해도 손바닥만큼 작았던 볼트는, 이제 낯선 사람에게도 선뜻 털을 부비는 고양이가 되었다. 한편 그보다 먼저 구조된 고양이 피스는 그 반대였다. 새로 고친 집이 낯선 탓인지 사람들 시선을 피해 꽁꽁 숨어 있었다. 볼트가 향한 곳을 따라가보니 거실 창가, 햇빛이 가장 오래 머무는 자리였다. 보통은 베란다가 있을 법한 그 자리에는 마치 휴양지의 한 장면처럼 잎이 무성한 나무와 고사리, 딸기가 자라는 작은 정원이 있다. 화분을 늘어놓는 대신 청주 옛집 마당에 채송화와 맨드라미를 심던 기억을 더듬으며 배수 시설을 갖춘 작은 밭을 만들었다. 작은 정원이자 밭은 이제 계절마다 조금씩 다른 식물이 자리잡게 될 것이다. “늘 다른 사람 집을 고치다가 20년 만에 제 집을 고쳤어요. 90세까지 살 집이라는 생각으로요.” 앞으로 몇 번 더 고칠 일 없이 오래 머물 집이라는 생각이, 이번 공사의 유일한 출발점이었다.
싫어하는 것은 피하고, 사랑하는 것은 위하고

시작은, 말하자면 바뀐 생의 주기 때문이었다. 딸이 결혼하고 나서야 비로소 집에 손을 댈 여유가 생겼다. 오랜 시간 타인의 집에 대해서만 고민하고 정작 나 자신의 공간에는 무심했던 셈이다. 그렇다고 무슨 거창한 로망이 있었던 것도, 콘셉트를 세운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까지 집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시작하지 않았어요. 그냥 필요한 게 있으면 하는 거지.” 식물에 빛이 부족하면 조명을 달고, 통풍이 잘 되도록 창의 위치를 바꿨다. 고양이를 들이고 나서는 그들이 지낼 자리가 자연스레 생겼다. 바깥 풍경이 보이는 창가에는 고양이를 위한 자리가 있고, 숨고 싶을 때 마음껏 들어가라며 옷장에 고양이를 위한 작은 입구도 만들어두었다. 결국 모든 건 생활이 시키는 대로 따라간 결과였다.


방 기능도 바뀌었다. 딸이 쓰던 방은 식탁이 놓인 다이닝 공간이 되었고, 예전 드레스룸은 재봉틀을 들인 작업실로 바뀌었다. “드레스룸은 그대로 둬봤자 창고가 되겠더라고요. 불편한 것을 싫어해 필요한 것을 생각하며 방의 기능을 바꿨어요.” 욕실도 모양새가 달라졌다. 처음엔 큰 욕조를 아예 없애려다 마음을 바꿔 반신욕이 가능한 크기의 욕조로 대체했다. 고치고 나니 훨씬 편해졌다. 크게 뜯어고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필요에 따라 조금씩, 오랜 시간에 걸쳐 고칠 부분이 쌓여 생각대로 바꾼 결과다. 집 안 곳곳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장치들이 숨어 있다. 손자국이 남는 게 싫어서 매끈한 홈을 파 넣었고, 필름지 입힌 신발장 앞에서는 도무지 살 자신이 없어 결국 다 걷어내고 원목으로 새로 짰다. ‘꼴 보기 싫은 걸’ 가리는 것, 그러다 보니 지금의 집이 완성되었다. 몰딩, 걸레받이, 필름지. 이 세 가지가 유독 ‘꼴 보기 싫었던’ 것들이다. “이 세 가지를 안 보려다 보니 이런 집이 되었어요.” 추상적인 콘셉트 안에 집을 끼워 맞추기보다 오랜 시간 쌓아온 취향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태어난 결과였던 셈이다. 신경옥의 집은 여느 다른 집의 벽면과는 다른 모습을 지녔다. 목조를 곧게 세우는 대신 사선으로 둘러, 바닥 면적을 조금이라도 더 넓게 쓸 수 있게 했다. 목조가 시작되는 지점은 그대로 선반처럼 남겨 물건을 얹을 수 있게 했고, 소파 뒤편에는 벽화 같은 장식장을 짜 넣어 아끼는 소품들을 하나씩 두었다. 공간을 낭비하지 않으면서도 아끼는 물건을 배치했다. 베란다의 작은 정원은 안방으로도 이어진다. 그녀는 여행을 좋아해 오랫동안 두루 다녔지만, 이제는 여행보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날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집 안에 휴양지의 한 장면 같은 자리가 하나쯤 필요했다는 것. 그것이 이 작은 정원을 만든 또 다른 이유다.

시간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들

“이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을 꼽으라면 주방이에요. 다른 공간보다 작은 디테일이 많이 들어갔거든요.” 그 말대로 주방에는 유독 촘촘한 손길이 배어 있다. 넓지 않은 면적을 두고 그는 “맥시멈으로 꽉 채웠다”고 말했다. ㄱ자로 동선을 짜되 실제 자신이 오가는 걸음 폭에 맞춰 치수를 냈고, 공간이 좁아지는 구간은 사선으로 깎아 답답함을 줄였다.

싱크대 상판은 남양주의 한 스테인리스 공장까지 손수 찾아가 그림을 그려가며 맞췄다. 이음매 없이 한 판으로 짜달라고 했고, 싱크대 사이즈에 맞는 수전은 지인을 통해 따로 공수해왔다. 요리는 자주 하지 않아서 상부 수납장을 모두 없애고 하부장에 모든 수납을 하게 했다. 주방은 신경옥의 취향이 촘촘하게 담겨 있다. 오래된 소반의 다리를 떼어내고 상판만 살려 사용하는 도마도 그렇고, 용평 바닷가에서 주워 온 나뭇조각 하나도 그렇다. 새로 산 것보다 손에 익은 것, 매끈하게 다듬어진 것보다 시간을 담은 것. 공간과 사물을 오랜 시간 들여다보며 생긴 취향은 조명에도 드러난다. 오래된 어항을 조명으로 바꾸고, 애정하던 잉고 마우러의 조명을 자신의 방식대로 새롭게 만들기도 했다. ‘신경옥 작업실’ 에서는 오래된 바지 한 벌이 앞치마가 되고, 잘 입지 않는 블라우스가 가벼운 가방이 되기도 한다. 버리고 사는 대신, 다른 역할을 부여하며 신경옥의 오랜 물건들이 새로워진다.

나이 듦이 준 자유


나이가 들며 알게 된 기쁨이 있다. 안 해도 되는 걸 안 할 수 있는 자유가 그것이다. 아이들은 더 이상 내 돌봄이 필요하지 않고, 일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안 해도 되는 자유. 더불어 예전엔 손도 안 대던 것들에 눈길이 가기도 했다. 이를 테면 빨간색에 대한 시도가 그렇다. 예전에는 색 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처음 집을 고칠 때 화이트만으로 채울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평소에는 절대 신지 않았을 빨간 운동화를 충동적으로 신어보게 됐고, 그 순간 처음으로 빨간색의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그 경험은 곧장 인테리어로 옮겨졌다. 작은 주방에 빨간색과 흰색 타일을 함께 써보기로 한 것은 그래서였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 시간이 지나 변한 것,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아 아름다운 것, 시간이 지나 변해 아름다운 것. 이것들이 모여 오늘의 신경옥 집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