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의 빛과 그림자

거장의 빛과 그림자

거장의 빛과 그림자

명과 암이 극명했던 자신의 일생만큼이나 극적인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보이는 카라바조의 작품 세계.

카라바조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 Boy Bitten by a Lizard>, 1595, 캔버스에 유채, 65.5×50cm, 개인 소장.

살인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뒤 도망자 신세로 말년을 보내다 사망한 화가 카라바조(본명 미켈란젤로 메리시). 그의 개인적인 삶에 대한 견해는 저마다의 가치관에 따라 평이 나뉠 수 있지만, 카라바조가 르네상스 이후 바로크 회화의 시대를 연 작가라는 사실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화풍으로 여겨지는 극적인 명암 대비와 일상적인 모습으로 치환된 종교적 주제, 이 둘의 시작점엔 카라바조가 있었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하는 <빛의 거장 카라바조 & 바로크의 얼굴들>은 사후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깊은 감동을 선사하는 그의 주요 작품과 동료 화가, 그리고 훗날 대담하고 생생한 그의 기법에 영향을 받은 ‘카라바조주의자’에 대해 폭넓게 다룬다. 전시는 총 6가지 섹션으로 나뉜다. ‘카라바조의 예술적 뿌리를 찾아서’, ‘카라바조와 거장들의 작업실’, ‘정물화의 변모’, ‘온건한 고전주의’, ‘카라바조의 동료와 대립자들’, ‘카라바조의 유산과 카라바조주의자들’이라는 테마로 전개되는 섹션은 카라바조의 유년 시절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영향을 주고받아온 동시대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함께 다룬다. 특히 ‘정물화의 변모’ 섹션 속 페데 갈리치아의 과일 정물화는 평소 동료 작가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아 명예훼손 소송까지 가기도 한 카라바조마저 감탄할 정도로 섬세한 묘사를 자랑한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명과 암이 극명했던 그의 일생만큼이나, 카라바조의 작품엔 빛과 그림자의 대비가 극명하다. 이런 대비는 대표작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에서도 잘 나타나는데, 카라바조의 얼굴이 투영된 소년의 고통스러운 표정은 어두운 배경 속 인물에게 강한 조명을 비추는 키아로스쿠로 기법을 통해 더욱 강조된다. 유리병 속 장미 줄기의 가시와 과일 속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도마뱀은 사랑의 쾌락을 단순간에 고통으로 바꾼다. 잔뜩 찌푸린 표정과 흐트러진 자세는 쾌락과 유혹의 부질없음을 보여준다. 실내 테니스 경기 도중 살인을 저지른 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카라바조의 표정이 이런 모습이었을까? 이후 교황의 사면을 기다리며 로마에서 도망쳐 이탈리아 곳곳을 떠돌던 그는 도망자 신세가 된 지 4년 만인 1610년, 포르토 에르콜레에서 사망했다. 사후 카라바조에 대한 평가는 비행과 범죄로 얼룩진 개인적인 삶으로 인해 다시 한 번 극명하게 갈리며, 그가 남긴 발자취는 오늘날까지 예술의 빛인 동시에 어둠으로 남았다. 미국의 미술사가 버나드 버렌슨은 “미켈란젤로 이후 이탈리아의 그 어떤 화가도 그만큼 영향을 미친 사람은 없었다”며 카라바조의 영향력을 평했다. 2025년 3월 27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층에서 만날 수 있다.

페데 갈리치아 <배가 있는 정물화 Still Life of Pears>, 1605, 패널 위 종이에 유채, 24×41cm, 밀라노, 파인아트 스튜디올로.

카라바조 <그리스도의 체포 The Taking of Christ>, 1602, 캔버스에 유채, 135×168cm, 우피치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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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문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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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선 미학

곡선 미학

곡선 미학

곡선의 유쾌함과 원목의 따뜻함이 만나 독창적인 생명력을 가진 가구가 탄생했다. 아트 퍼니처 디자이너 고재효의 예술적 오브제들.

고재효 작가의 대표 시리즈를 볼 수 있는 작업실 전경.

독특한 조형미의 아트 퍼니처를 선보이고 있는 고재효 작가.

곡선이 살아 숨쉬는 원목 가구로 공간에 생동감을 더하는 고재효 작가. 그는 스튜디오 효시를 운영하며 독창적인 아트 퍼니처를 선보이고 있다. 곡선을 활용한 디자인 가구는 많지만, 그중에서도 고재효 작가의 작업은 유독 시선을 사로잡는다. 유머러스하고 귀여운 매력에 위트를 더한 그의 가구는 볼드한 실루엣과 강렬한 존재감이 느껴진다. 단순히 실용적인 가구를 넘어 예술적 오브제로 자리 잡으며 아트 퍼니처 분야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확립해가고 있다. 효시라는 이름에는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나무라는 재료의 본질에 집중하고 물성을 탐구하며, 새로운 표현 방법을 모색하려는 그의 철학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의 여정은 가구 회사에 몸담던 시절, 목공예의 개성을 찾고자 하는 갈증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을 방문하며 전환점을 맞는다. 단순한 생활 도구로 여겨지던 가구가 그곳에서는 예술적 표현의 도구로 확장된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는 가구를 통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마음먹는다.

새롭게 시도 중인 목업과 스케치를 붙여둔 작업실 벽면.

깔끔하게 정돈된 기계실.

“목공에서는 직선 위주의 가구가 많아요. 하지만 직선으로만 풀어내면 디자인의 한계가 있을 것 같아 곡선 작업을 시도하게 되었어요. 원하는 디자인을 먼저 구상한 뒤, 이를 목공으로 어떻게 풀어낼지 고민하며 접근합니다.” 고재효 작가의 작업은 이러한 과정에서 태어난 독창적인 형태들로 가득하다. 의자를 겹쳐 쌓은 모습에서 영감을 얻은 ‘오버랩 시리즈’, 나무가 유쾌한 나선형 곡선을 그리는 ‘컬리 시리즈’ 등 그의 가구는 단순히 기능적인 도구를 넘어 공간에 독특한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특히 컬리 시리즈는 그의 작업 세계를 대표하는 예로, ‘컬리 루프 Curly Loop’라는 키워드 아래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며 디자인 철학과 실험적 접근을 압축적으로 담아냈다.

자투리 원목 소재로 만든 작은 가구 조각들. 

“컬리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개인적인 슬럼프를 극복하고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지금은 의자와 스툴 위주로 작업하고 있지만, 앞으로 더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작업이라 나 스스로도 기대가 큽니다.” 이 시리즈는 지난 7월 갤러리은에서 열린 아트 퍼니처 전시 <가구찬가>에서 한 단계 더 확장되었다. 곡선형 디자인을 기반으로 룸 디바이더와 스탠드 조명을 선보이며, 의자와 스툴 중심이던 작업에 변화를 주기 위한 첫 시도를 했다. 이 외에도 테이블이나 서랍장 같은 가구나 벽 조명, 조형 오브제 등을 포함한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다.

최근 그는 과감한 색감과 나뭇결 텍스처를 살린 작업으로 또 다른 변화를 모색 중이다. 나뭇결에만 색을 입히는 기법을 통해 나무 고유의 질감을 살리면서도 블루, 버건디 같은 실험적인 색감을 더하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이는 전통 원목 가구의 틀을 벗어나 새롭고 독창적인 표현을 만들어내기 위한 과정이다. 오는 12월 공예트렌드페어에서는 컬리 시리즈의 확장된 작업과 더불어 한옥 지붕의 접상에서 영감을 받은 벽 조명을 선보일 계획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곡선처럼 그의 디자인 세계는 새로운 변주를 기다리고 있다. 고재효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가구는 단순한 생활 도구를 넘어, 공간에 독창적이고 예술적인 생명력을 불어넣는 존재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작업실 한쪽에 놓인 OLD 체어.

SPECIAL GIFT 고재효 작가에게 증정한 끌레드뽀 보떼의 더 세럼 II는 피부에 고르고 빠르게 흡수되어, 피부 본연의 힘을 일깨워주고 짧은 시간 안에 피부 속부터 빛나는 결빛 광채를 선사한다. 50mL, 34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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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그래퍼

류주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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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도요의 자연주의 건축

이토 도요의 자연주의 건축

이토 도요의 자연주의 건축

기후 변화의 시대를 맞아 미래 건축은 어떻게 진화해야 할까? 2012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황금사자상과 2013년 프리츠커상을 받은 건축 거장 이토 도요를 광주에서 만났다.

이토 도요가 광주폴리에서 선보인 ‘옻칠 집’은 세계 최초로 옻칠을 건축 구조재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토 도요는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왔고, 자연 소재의 재료를 건축에 사용하고 있다. © FUJITSUKA Mitsumasa

‘광주폴리’가 무엇인지 아는가? 올해 5차를 맞은 광주폴리는 도시 재생을 위해 만든 시민들의 공간을 뜻한다. 이번 5차 광주폴리에서 선보인 건축 작품 4개를 포함해, 모두 32개의 건축 작품이 광주 시내 곳곳에서 ‘광주폴리 둘레길’을 이루고 있다. 배형민 총감독이 선정한 이번 광주폴리의 주제는 ‘순환폴리 Re:Folly’다. 지역 인근에서 발견한 친환경 자원을 연구 개발하고, 재활용 건축을 제안함으로써 기후 위기 시대의 건축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했다.

건축가 조남호가 선보인 ‘숨쉬는 폴리’는 다공성 목구조로 획기적 냉난방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건축가 그룹 바래 BARE가 만든 ‘에어 폴리’는 해조류로 만든 생분해성 비닐로 만든 재활용 건축이다. 건축가 그룹 아틀리에 루마(프랑스), 어셈블(영국), BC 아키텍츠(벨기에)가 선보인 ‘이코한옥’은 광주의 버려진 한옥을 멋지게 복구하며 굴, 꼬막, 미역, 다시마, 볏짚, 왕겨를 친환경 건축 재료로 제안했다. 국제적 건축가 그룹이 복구한 한옥이어서 그런지 이국적 정취를 풍긴다.

제5차 광주폴리에서 총 4개의 작품이 선보였다. 옻칠 집은 아름다운 정원과 함께 시민 휴식처로 쓰인다. © 김현수

일본 건축가 이토 도요가 만든 ‘옻칠 집’은 세계 최초로 옻칠을 건축 구조재로 활용해 자연 재료의 가능성을 넓혔다. 생산 가공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기에 산림자원의 업사이클링에 기여한 프로젝트다. 광주폴리 오프닝을 축하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이토 도요를 만나 친환경 건축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옻칠 집은 이렇듯 모형을 여러번 만들었고, 결국 도전에 성공했다. © Courtesy of Toyo Ito&Associates, Architects and Kanada Mitsuhiro

이마바리 이토 도요 건축 뮤지엄의 아름다운 전경.

이번 제5차 광주폴리에서 옻칠 집을 선보이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원래 돔 형태의 건축물을 만들고 싶었다. 돔 형태는 콘크리트로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서 최대한 얇은 콘크리트 돔을 지으려고 했는데, 협업 파트너인 토키 켄지 교수(미야기대학)와 카나다 미츠히로 교수(도쿄예술대학)가 옻칠 소재 건축을 제안했다. 그 둘은 오랫동안 옻칠 연구를 해온 전문가이다. 한국 스타일 옻칠과 일본 스타일 옻칠 패널을 모두 만들어서 강도 테스트를 했는데, 일본 옻칠이 좀 더 강해서 이번 옻칠 집에 적용했다. 어떤 이유로 약간의 차이가 생겼는지는 아직 분석하지 못했다. 이번 옻칠 집을 만들면서 처음부터 어려운 도전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앞으로도 옻칠을 이용해 엄청난 건축물을 짓는 것은 어렵겠지만, 우리 아시아인은 나무를 이용한 건축에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이용한 지속 가능한 건축물을 짓는 것은 지향해야 한다고 본다.

당신은 나가노현의 전원에서 자라 도쿄의 휘황찬란한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도시적인 건축을 추구하다 다시 자연에서 영감을 받는 건축으로 넘어오게 된 이유가 있는가? 한국 건축계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듯이, 나도 처음에는 유럽에서 들어온 현대 건축 기법을 많이 생각하면서 건축을 했다. 메이지유신 이전에는 일본이 목조 건축만 있었기 때문에 예전의 일본은 자연주의 건축을 추구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렇듯 일본도 예전에는 자연 친화적인 건축을 하다 메이지유신 이후 철근 콘크리트를 이용한 근대 건축물을 지으면서 자연과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됐다. 시대의 흐름으로 인해 그때는 모두 그것이 옳다고 판단해서 추종했지만, 지금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오다 이번 웇칠 집이 나오게 된 것이다. 자연 친화적인 건축은 오랫동안 계속 생각해온 화두다. 예전 올림픽 스타디움 설계 공모에서 150cm 정도 두꺼운 나무 기둥을 제안했는데 탈락한 적이 있다. 올림픽 스타디움 설계 조건이 목재를 많이 사용하는 것이었는데, 큰 스타디움 자체를 목조 건축으로 짓기 어렵기에 목조와 철근 건축물을 제안했던 것. 하지만 심기일전해서 새로운 건축물에는 나무 기둥을 사용하게 됐다.

기후 현의 미디어 코스모스는 지붕은 목재이고, 2층과 바닥은 콘크리트 소재다. © Kai Nakamura

2015년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에서 대나무로 만든 야외 건축물 <윤무>를 선보인 바 있다. 광주와의 인연이 흥미롭다. 담양 소쇄원에서 본 대나무 숲에서 영감을 받아서 작은 섬을 만들었다. 대나무를 건축에 사용한 것은 나도 처음이라서 흥미로웠다. 대나무 건축의 지속 가능한 아이디어를 직접적으로 적용한 적은 없지만, 나의 작품 세계에 좋은 영향을 주었다. 대나무는 동남아시아에서 많이 사용하는 공예 소재이지만 현실적으로 설계에 바로 응용하기는 어렵다. ‘윤무’나 ‘옻칠 집’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광주가 새로운 것을 원한다는 것을 알았고, 이런 도전은 나를 건축가로서 건강하게 만든다. 일본에서는 이런 특별한 프로젝트가 불가능하다. 일본 건축계는 새로운 도전에 관심이 없어서 아쉽다.

옻칠을 연구한 대학 교수들과의 협업에 대해 상세히 말해달라. 나와 토키 켄지 교수는 예전에 함께 일한 적은 없고, 카나다 미츠히로 교수는 미디어 코스모스 등 오랫동안 협업해왔다. 토키 켄지 교수와 카나다 미츠히로 교수는 같이 옻칠 가구 브랜드도 운영하는 전문가들이다.

옻칠이 아시아에서 1500년 동안 사용해온 재료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더 연구하고 발견할 것이 있어 흥미로웠고, 이 세상 모든 소재에 이러한 생각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여태까지 건축을 완성하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배울 수 있었다.

옻칠 집을 만들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나? 힘들었던 에피소드는? 완성되었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다.(웃음) 이번 옻칠 집은 다른 소재의 구조 없이 옻칠로만 만들어진 전례 없는 건축물이기 때문에, 건축가로서 중간중간 계속 멈추면서 해결해나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천연 소재를 이용할 때는 스피드 업 해서 빨리 진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천연 소재는 자연의 흐름이 있기 때문에, 현대 사회의 싸고 빠르고 많이 진행하는 흐름에 맞출 수 없다. 예를 들어 옻칠을 강제로 빨리 말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옻칠을 바르고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우리 선조의 리듬 속에서 지속 가능한 건축을 짓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토키 켄지 교수와 카나다 미츠히로 교수도 내 의견에 동감한다. 완전히 옛 방식 그대로는 아니지만, 21세기 시선으로 보면 그래도 여전히 느리게 진행되었다. 옻칠 패널을 만들고 준공까지 6개월이 걸렸는데, 이는 사실 과거 방식으로는 불가능한 시간이다. 옛날 기술을 존경하면서도 현대 기술로 발전 진행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현대적 구현 방법의 조화 속에서 지속 가능성을 찾아내는 것이 가장 즐거웠다. 새로운 작업을 하려면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미리 알수는 없는데, 그런 일을 모든 사람이 다 하고 싶어하는 것은 아니다. 광주폴리 측에서 격려와 용기를 주어서 세계 최초의 옻칠 집을 짓게 되었다. 해외 각국의 건축주들도 이번 프로젝트를 흥미로워한다. 새로운 과제에 도전하는 것은 즐기지 않으면 해낼 수 없다. 광주폴리 측의 도움이 컸다. 감사하다.

자코엔지 시민 극장 ZA-KOENJI Public Theatre의 외관. © Courtesy of Toyo Ito&Associates, Architects

싱가포르 난양 테크놀로지 대학은 계단과 엘리베이터만 콘크리트고, 나머지 구조는 모두 나무다. © Kai Nakamura

앞으로 옻칠 집이 어떻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하는지? 완성된 옻칠 집은 나도 오늘 처음 보았다. 창문으로 달이 비추는 것을 보면서 술 한잔 하고 싶은 마음이다.(웃음) 오프닝 기념으로 5시에 생황 연주를 한다고 들었다. 옻칠 집은 돔 형태이기 때문에 사운드가 좋다. 개인적 바람으로는 옻칠 집 안에 의자를 두면 좋겠다. 이 안에서 30분, 1시간 앉아 있노라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토키 켄지 교수와 카나다 미츠히로 교수의 말처럼 옻칠 집의 완성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건축물은 사람들이 이용하면서 키워나가는 존재다.

옻칠 집 이외에 자연주의 공법으로 만든 당신의 건축물은 또 무엇이 있는지 소개해달라. 민나 노 모리 기후 미디어 코스모스 Minna no Mori’ Gifu Media Cosmos, 오다테 주카이 돔 Odata Jukai Dome, 미토 시빅 센터 Mito Civic Center, 가이아 난양 테크놀로지 대학 Gaia – Nanyang Technological University 등 4개 건축을 소개하고 싶다. 오다테 주카이 돔은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오다테 지역의 스포츠경기장이다. 27년 전에 완공했고, 5년에 한 번씩 보러 간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안에 들어가면 나무 향기가 났다. 달걀을 반으로 자른 형상이며, 여름에는 차가운 공기가 들어와 상부로 빠져나가고 겨울에는 눈보라가 자동차의 공기역학적 디자인처럼 뒤로 빠져나간다. 가장 아래 콘크리트 위에 삼나무 목재를 이용한 프레임을 만들어서, 별도의 내부 구조 없이 구조체를 쌓아 올렸다는 것이 특징이다. 가장 위는 더블 구조여서 겨울에는 그 사이에 더운 공기를 넣어서 쌓인 눈을 녹인다. 기후 현의 미디어 코스모스는 카나다 미츠히로 교수와 협업한 건축이다. 지붕은 목재이고, 2층과 바닥은 콘크리트 소재다. 실내에 벽이 적고, 지하수를 끌어 올려서 온도를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자연의 힘으로 천천히 온기를 순환시켜서 사계절 공기의 흐름을 잘 이용했다. 기후현은 일본에서도 여름에 많이 더운 곳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습기 뺀 공기를 순환시켜 냉방 온도를 낮추지 않아도 쾌적함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카나다 교수의 제안으로 만든 2층 목재 구조가 매력적인데, 곡면을 만들기 힘들어 얇은 편백나무를 겹쳐서 강한 구조체를 만들었다. 1층은 콘크리트 축으로 지탱하는데, 워크숍을 진행하는 공간도 있고 학교 끝난 아이들이 자주 이용한다. 2층 원형 장소는 독서를 위한 최적의 환경이다. 주변에 서가를 두고 글로브라고 불리는 큰 우산 아래에서 독서를 한다. 높은 곳에서 자연광이 들어오면 우산 같은 공간에서 부드러운 빛이 되어 비춘다. 이번 옻칠 집을 만들 때는 불이 나면 타서 사라지게 했지만, 미디어 코스모스와 같은 대규모 건축은 화재가 났을 때를 위한 방재 논의가 있었다. 아래 놓인 벽을 콘크리트로 만들어서 불이 나더라도 확산되지 않는다는 실험을 거쳐 허가를 받았다. 가구도 스테인리스로 만들었고, 쿠션도 놓을 수 없었다.

미토 시빅 센터와 가이아 난양 테크놀로지 대학에 대해서도 설명해달라. 미토 시빅 센터는 미토 도시의 시민회관이다. 역시 카나다 교수와 협업한 목재 철골 건축이다. 목재가 큰 비를 맞아서 망가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금속 커버를 추가했다. 2000석 극장은 콘크리트로 감싸 있고, 이를 둘러싼 내부는 목구조라서 잘 타지 않는다. 인근에는 미토시립미술관이 있고, 그 반대편에는 백화점이 있다. 상업과 문화적 입지를 모두 가진 곳에 위치하기에, 이곳 시민회관에 공연이 없더라도 시민들이 오기 바라는 마음으로 책 읽고 공부할 수 있는 공간도 추가했다.싱가포르 난양 테크놀로지 대학은 지난해 완공했다. 계단과 엘리베이터만 콘크리트고, 나머지 구조는 모두 나무다. 미토 시민회관과 달리, 외부에도 나무가 잘 보이게 발코니와 같은 벽을 노출시켰다. 위아래에는 교실이 있고, 중앙에는 공기가 순환되는 학생을 위한 살롱 공간이 있다. 길이 200미터의 6층 건물이 아름답다. 싱가포르에서 이렇게 큰 목조 건축은 처음이고, 일본에도 이런 대규모 목조 건축이 늘어나기를 기대한다. 아시아에서는 나라마다 목재 건축에 대한 전통이 있어서 애착이 큰다. 옻칠 역시 이번에 건축 소재로서 가능성을 발견했으니, 작은 부분이라도 함께 사용하면서 가능성을 생각해보면 좋겠다.

미토 시빅 센터의 2000석 극장은 콘크리트로 감싸 있고, 이를 둘러싼 내부는 목구조다. © Kai Nakamura

이번 광주폴리의 주제는 ‘순환 폴리’다. 미래 건축의 지속 가능성은 어떻게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모순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웃음) 화재를 방지하기 위해서 난연 소재를 사용하라고 추천하는데,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잘 타는 소재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 아이러니다. 지속 가능성을 위해 모두가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데, 이런 모순 속에서 밸런스를 이상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 기후현의 미디어 코스모스같이 새로운 건축 공법을 찾는 것을 추천하며, 옛날의 삶과 좀 더 가까워지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사랑받지 못할 건축물은 당연히 지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린이를 위한 건축학교는 요즘도 운영하는지? 건축가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건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아직도 유효한지? 그렇다. 건축가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건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 없다. 부모의 지식이 어린이에게 전달되어야 하고, 어린이가 상식을 부수는 과정 또한 중요하다. 그래서 어린이를 위한 건축학교를 10년 넘게 운영하고 있다. 우리 학교에 참여한 어린이가 커서 건축학도가 되기도 하며 좋은 순환을 만들어내고 있다. 10~12세 어린이 40명을 매년 만나고 있다. 내가 직접 강연하고 과제도 내주어 최종 코멘트를 해준다. 우리는 건축이 중력의 영향을 받는 것을 알지만, 어린이는 이를 모르기 때문에 자유롭게 상상하고 새로운 건축을 제안할 수 있다. 대학생들이 어린이를 지도하는데, 이들도 어린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받을 것.

건축가로서 생각의 변화를 갖게 된 계기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동일본 대지진 프로젝트 때문인가? 건축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달라.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가치관과 세계관이 변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과 문제 해결을 위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영향이 건축물에 자연스럽게 반영된 것 같다. 건축가의 사회적 책임은 이전부터 공감하고 있었지만, 대지진이 또 다른 계기가 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지진을 겪고 피난민을 위한 집 ‘집합주택’과 마을회관 역할을 하는 ‘모두의 집’을 만들어 기부하고 있다. 14채를 지어 기부했고, 100건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프리츠커상에 관해서 말하자면, 상을 받고 나서 일이 늘지는 않는 것 같다. 설계비가 올랐을 것이라는 걱정 때문에 오히려 일이 줄기도 했다. (웃음) 내가 생각하는 건축 세계의 중요한 계기는 센다이 미디어 센터 완공이다. 센다이 미디어 센터 이전에는 내 건축이 사회에서 받아들여진다는 것에 의문을 가졌으나, 완공 이후에 센다이 시민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사람을 위한 건축을 만든다는 것에 깊이 공감하게 됐다.

앞으로 있을 새로운 계획은? 중국과 대만에서 새로 짓고 있는 건물이 있다. 지난해 대만에서 공모전에 선정되었는데, 완공하려면 10년 정도 걸릴 듯하다. 대만에서 설계한 열 번째 건축이다. 친환경적인 공법으로 만드는 어린이를 위한 건축물이다. 한 나라에서 큰 프로젝트를 하게 되면 연이어 수주가 이어진다. 한국에서 선보인 본격적인 건축 작품은 아직 없다. 앞으로 한국에서 큰 건축물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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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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