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무대가 된 갤러리

역사가 무대가 된 갤러리

역사가 무대가 된 갤러리

다채로운 석재와 앤티크 가구가 완성하는 극적인 공간.

이브 생로랑과 피에르 베르제의 파리 아파트에서 영감을 받은 중앙 공간. 일라나 구어 Ilana Goor의 빈티지 체어와 피셔의 스툴, 화분 오브제가 놓여 있다. © Stephen Kent Johnson

강을 따라 이어지는 유서 깊은 항구 지역 시포트 Seaport에 오브제 디자이너 겸 아티스트 매튜 피셔 Matthew Fisher가 그의 첫 번째 갤러리 ‘엠 피셔 M. Fisher’를 열었다. 자신의 작업을 한데 모아 전시할 공간을 직접 구상하며, 어린 시절 발레 무용수로 활동한 그는 화이트 큐브 대신 연극 무대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을 선택했다. 부드러운 원목의 앤티크 가구와 맞춤 제작된 조명이 어우러진 이 공간은 크게 세 개의 방으로 나뉘지만, 마치 연극 한 편의 막이 오르내리듯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먼저 입구에 들어서면 시야가 탁 트인 첫 번째 공간이 펼쳐진다. 나뭇결이 살아 있는 원목 캐비닛이 벽을 따라 자리하고, 중앙에는 커다란 테이블 위로 다양한 고급 석제 촛대, 화분, 그릇, 조명 등의 오브제가 전시된다. 그 너머 중앙의 원형 홀은 이브 생로랑과 피에르 베르제가 함께 거주했던 파리 아파트에서 영감을 받은 공간이다. 아늑한 조명이 드리운 둥근 테이블 위에는 원재료의 결을 살려 다듬어진 대리석 볼들이 놓여 있다. 이어지는 공간에는 무대의 막이 내려진 듯 메탈릭한 실 커튼을 드리우고, 붉은 벨벳 소파와 천연 석재로 만든 스툴이 어우러져 극적인 분위기를 완성한다. 창문 너머로는 도심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작은 안뜰이 모습을 드러낸다.

팔레 가르니에의 화려한 무대 커튼에서 영감을 받은 안쪽 공간. 붉은 벨벳 소파와 석재 스툴이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 Stephen Kent Johnson

피셔의 대리석 콘솔 위에 배치된 아이비스 화이트 오닉스 조명과 유리, 석재 오브제. © Stephen Kent Johnson

브라질산 스톤 테이블을 중심으로 다양한 상록수가 녹음을 더하는 안뜰. © Stephen Kent Johnson

고대 건축과 19~20세기 유럽 장식미술에서 영감을 받은 피셔는 석재의 견고함에 유려한 움직임을 더하면서도, 그 안에 깃든 우연성과 시간성을 존중한다. 클래식한 비앙코 카라라, 선명한 결이 돋보이는 파오나조 대리석, 깊은 푸른빛을 띠는 빅토리아 블루 화강암, 은은한 초록빛이 감도는 링 베르, 부드러운 빛을 머금은 문스톤 오닉스까지. 전 세계 채석장에서 엄선된 희귀한 돌들은 그의 손을 거쳐 균열이 스며든 표면과 손때 묻은 질감을 간직한 채 조명, 트레이, 화분, 스툴, 오브제로 다시 태어나 무대 위 소품처럼 공간 속에서 제자리를 찾아간다. ADD 106 South St, New York, NY 10038 WEB www.mfisher.com (온라인 예약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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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뉴욕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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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지 않는 미술관

불타지 않는 미술관

불타지 않는 미술관

대화재에도 흔들리지 않은 LA 게티 미술관. 철저한 방화 시스템과 혁신적 설계로 예술품을 보호하며, 문화 유산을 지키는
모범적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위기 속에서도 예술을 보존하고 나누는 게티의 역할이 더욱 빛난다.

게티 미술관 전경.

로버트 어윈이 디자인한 게티 미술관의 센트럴 가든.

전 세계인 모두를 안타깝게 한 지난 LA 지역 산불 모습.

지난 1월 초, 미국 LA 지역에 일어난 거대한 산불은 세계인 모두를 안타깝게 했다. 건물 1만2000여 채가 파괴되었고, 10만 명 이상의 주민이 대피해야 했다. 사망자가 24명이나 발생하는 등 약 한 달 동안 지속된 화재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다. 불길이 번져가면서 사람들이 걱정한 또 하나의 요충지는 바로 LA 게티 미술관이다. 부지 면적 약 46만8377㎡(14만 평)에 6개 건물과 가든으로 이루어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대형 미술관이자 가장 큰 미술도서관이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약 13만 점에 달하는 소장품 중에는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는 반 고흐의 아이리스, 렘브란트의 자화상 등이 있으며, 로마 및 에트루리아의 유물에서부터 현대 사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포함한다. 다행히 화재는 게티 미술관 인접 2km 부근에서 멈췄다고 한다. 그러나 화재에 대비해 소장품을 옮길 필요는 없었다. 1974년 리처드 마이어 설계로 미술관을 계획할 때부터 철저히 방화 시스템을 갖춰 지어졌고, 관리도 철저했기 때문이다. 설계에서 시공까지 13년이 걸려 1997년 개관한 미술관은 철저한 방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미술관의 첫인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하얀 베이지 톤의 돌 건물이 바로 내화성 석회암 재료인 트래버틴이며, 지붕은 잘게 자른 돌로 덮어 불씨가 붙지 못한다. 주변 조경도 내화성이 뛰어난 관목으로 조성했다. 빨리 타지 않는 참나무, 물을 많이 함유하는 아카시아 등을 선택하고, 상시 잡초를 제거하는 등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지하에는 약 380만L의 물이 저장된 물탱크가 있고, 파이프에는 스프링쿨러가 연결되어 있다. 단, 미술 작품이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건물 내부의 스프링쿨러는 최후의 수단으로 작동한다. 각 전시실은 독립형 구조로서, 건물 안에 또 다른 작은 박스가 있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화재 시 자동 방화문이 닫혀 불길 번짐을 막아주고 연기를 차단하는 특수 공기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이번 화재는 게티 미술관의 진가를 다시 한 번 확인한 계기였다. 게티 미술관은 지진에 대해서도 철저한 대비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이번 화재를 계기로 세계 각국의 언론이 게티 미술관의 철저한 화재 대비 시스템을 분석하며, 문화 기관의 모범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그동안 미술품 창고에서 화재가 일어나 큰 손실을 보았다는 뉴스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2004년 영국 런던의 모마트 미술품 창고의 화재로 유명 컬렉터 찰스 사치의 소장품이 불타버린 사건은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고, 지난 2월 초에는 용산 국립한글박물관 공사 중 화재로 인해 일부 소장품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송하는 사건도 있었다. 이번 LA  재로 예술가 또는 컬렉터의 집이나 창고에 있는 작품들도 상당수 손실되었을 것이다.

적극적인 구호 활동을 펼친 프리즈 로스앤젤레스.

게티 미술관에서는 ‘LA 아트 커뮤니티 화재 구호 기금’을 긴급 발족시켜, 예술가와 예술 종사자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운동을 진행 중이다. 주요 미술관과 재단이 기금 모음에 협력할 뿐 아니라, 게티 미술관 홈페이지 메인에 이 프로젝트를 소개해서 누구나 전자 결제를 통해 소액 지원금을 즉시 건넬 수 있게 한 것도 인상적이다. 또한 피해를 입은 예술가와 예술 종사자는 즉시 긴급 지원금을 신청할 수도 있다. 프리즈 아트 페어의 개최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지만, 예정대로 문을 열어 구호 활동과 적극 연대하는 정책을 마련했다. 화재로 인해 아트 페어에 참여하지 못한 갤러리를 위해 부스 한쪽에 작품 전시 공간을 내주거나, LA 거주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적극 소개하고 판매 수익금을 기증하는 등이다. 뜻밖의 화재였지만, 이로 인해 LA 아트 커뮤니티의 결속력과 화재에 대한 경각심은 더욱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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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애(이안아트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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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시의 새로운 시작

메르시의 새로운 시작

메르시의 새로운 시작

파리의 대표 편집숍 메르시가 파리 중심부에 ‘메르시 #2’를 오픈하며 새로운 장을 열었다.

테이블웨어, 테이블 리넨, 욕실 용품 등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제품을 만날 수 있는 메르시의 두 번째 매장.

2017년 파리 편집숍의 대명사이던 ‘콜레트’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뒤, 가장 많은 이들이 찾는 편집숍은 마레 지구에 위치한 ‘메르시 Merci’일 것이다. 2009년 창립된 메르시는, 1975년 프랑스 아동복 브랜드 봉쁘앙 Bonpoint을 설립한 마리 프랑스 & 베르나르 코엔 부부의 독특한 창업 정신을 바탕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들은 매장의 수익금을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어린이와 여성, 그리고 프랑스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르시는 카페, 북스토어, 부티크를 아우르는 복합문화 공간으로 문을 열며, 파리의 디자인과 라이프스타일 유행을 선도하는 곳으로 자리 잡았다. 마레 지구의 중심이 아닌 곳에 위치했지만, 건강한 식사와 커피를 즐기며 프랑스와 여러 나라에서 온 스타일리시한 의류와 디자인 소품을 만날 수 있어 인근 지역을 힙한 명소로 탈바꿈시킨 곳이다. 이곳은 파리지앵뿐 아니라 파리를 찾은 관광객도 꼭 방문해보아야 할 명소로서, 메르시 로고가 새겨진 에코백은 기념품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유니섹스 패션과 다양한 컬래버레이션 제품도 다양하게 선보일 예정이다.

한편, 15년 넘게 사랑받아온 메르시가 2025년을 맞이해 새로운 도전을 한다. 그동안 메르시 매장은 면적 1500㎡의 큰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찾는 고객이 많아 공간이 여유롭지 못한 점이 한계로 지적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메르시는 3월 루브르 박물관 인근 파리 중심부에 ‘메르시 #2’ 매장을 오픈하며 접근성을 높였다. 이곳에서는 마레 지구 매장의 대표적인 아이템을 만나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 일본 등 세계 각지 예술가들이 참여한 독점 작품들도 전시되고 있다. 특히 2호점은 유니섹스 패션과 다른 브랜드와의 협업 제품, 한정판 등을 선보이며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온라인 유통이 점점 커지는 시대에서 메르시는 단순한 매장이 아닌 파리지앵 삶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다. 이제 파리를 찾으면 꼭 가봐야 할 필수 방문지가 한 곳 더 추가되었다. ADD 19 Rue de Richelieu, 75001 Paris INSTAGRAM @merci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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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병관(파리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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