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함의 형태

담백함의 형태

담백함의 형태

자연미를 담은 따뜻하고 담백한 공간. 아키텍츠 601이 추구하는
지향점은 그 사무실에도 여실히 반영되었다.

담백한 자연미를 품은 심근영 소장의 공간.

카메라를 향해 미소 짓는 심근영 소장.

“‘내추럴하다’는 말보다는 ‘담백한 자연미를 가졌다’는 표현을 쓰고 싶어요.” 건축사사무소 아키텍츠 601을 운영하는 심근영 소장이 추구하는 공간은 확고하다. 한국적인 정서와 동양적인 미학이 녹아 있고, 편안한 온기가 스민 곳. 양재동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은 아키텍츠 601의 지향점을 그대로 반영한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아이디어가 잘 나오기도 하고, 클라이언트들이 방문했을 때도 우리 스튜디오가 지향하는 디자인을 자연스럽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방 한쪽을 장식한 청자와 달항아리, 그리고 가구와 조명 등 곳곳에서 자연미를 중시하는 심근영 소장의 취향이 묻어난다. 유행에 치우친 오브제보다는 직접 만든 원목 가구와 클래식한 디자인을 자랑하는 소품이 공간을 채운 것도 이 때문이다. 가장 애착이 가는 물건을 묻자, 잉고 마우러 Ingo Maurer의 조명이나 한스 베그너 Hans J. Wegner의 테이블 등 유명 디자이너들의 오브제를 제치고 망설임 없이 아키텍츠 601이 자체 제작한 의자라 답한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가 직접 디자인해 전시한 작품이에요. 급하게 제작하다 보니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아키텍츠 601만의 아트피스를 제작해 컬렉션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의 첫 단추를 끼워준 작품이죠.”

방처럼 꾸며진 개인 작업 공간. 정면의 빨간 의자는 아르네 야콥센의 릴리 체어.

심근영 소장의 취향이 묻어난 가구와 오브제들.

달항아리와 유기적인 조화를 이루는 원목 의자는 아키텍츠 601이 직접 제작했다.

심근영 소장의 방을 나서면 개방된 사무 공간이 펼쳐진다.

아키텍츠 601 사무실의 큰 특징은 공간을 나누는 인위적인 벽이 없다는 점이다. 대신 책장과 가구로 공간을 나눈다. 탕비 공간도 마찬가지. 보통 별도의 방에 마련된 탕비실과는 달리, 여기서는 가정집의 주방처럼 오픈된 공간이 찾는 이들을 맞이한다. “존을 구획할 때, 벽 대신 가구로 파티션을 나누고 싶었어요.” 공간을 나눈 책장엔 김환기, 양혜규 등 예술가와 관련된 서적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건축이나 인테리어에 대한 레퍼런스를 제공하는 책보다는 예술적 감흥을 느끼게 해주는 책에서 더 영감을 받아요.” 이타미 준의 작품을 담은 액자가 심 소장의 방 곳곳에 배치된 것도 비슷한 이유다. 스튜디오를 창업하기 전 이타미 준의 비오토피아 프로젝트에 함께한 경험은 지금까지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존경하는 대가는 너무 많지만, 바로 앞에서 눈빛을 주고받으면서 영감을 받은 최초의 인물은 이타미 준 선생님이었어요. 남들 다 퇴근하고 저 혼자 새벽까지 남아 일해도 지칠 줄 모르던 때였는데, 그때 선생님이 저보고 ‘더 큰 디자이너가 될 것 같다. 열심히 하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20년 가까이 된 그 한마디가 크고 깊은 뿌리가 되어 아직도 영감을 줘요.” 이곳에서 심근영 소장의 시간은 바쁘게 흘러간다. 현장에서 복귀한 뒤 팀원들이 모두 퇴근한 밤 스케치를 하거나, 때로는 주말에도 출근해 업무를 보고,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자기도 한다. 처음부터 ‘집 같은 분위기’로 구상한 그의 사무 공간엔 각 잡히게 정렬된 책 대신 조금씩 흐트러진 책들이 방 한쪽에 쌓여 있다. 정돈되어 있지만 경직된 분위기를 풍기는 곳보다는 사람 냄새가 나고 손이 가는 편안한 공간. 그것이 아키텍츠 601가 추구하는 온기이자 담백함일 것이다.

벽 대신 책장으로 파티션을 나눈 아키텍츠 601 사무실.

이타미 준의 작업 사진을 보관한 액자들이 벽면에 놓여있다.

귀여운 액막이 명태 소품이 미소를 자아낸다.

건축사사무소답게 곳곳에서 입체 도면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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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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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연 작가

김수연 작가

임서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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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백화점이 한국적 라이프스타일의 본질을 조명하는 브랜드 하우스오브신세계 헤리티지를 론칭한다. 공예의 귀한 가치와 정성이 담긴 선물을 제안하는 이 공간은 전시와 워크숍, 디저트 살롱, 기프트 숍을 아우르며 전통과 현재를 잇는 복합문화 공간으로 구성된다.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새롭게 문을 여는 ‘더 헤리티지’와 함께 공식 공개되며, 하우스오브신세계 헤리티지는 이곳 5층과 지하 1층에 자리한다. 더 헤리티지는 근대 건축의 아름다움을 복원한 공간으로, 한국의 미감과 문화를 품은 새로운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오픈을 기념해 개최되는 첫 전시 <담아 이르다>는 우리 일상의 중요한 순간을 감싸온 ‘보자기’에 주목한다. 전통 보자기와 함께, 현대 섬유공예 작가 8팀의 시선을 더한 작품을 통해 보자기의 조형성과 삶의 지혜, 그 안에 깃든 문화를 되새긴다. 전시는 6월 15일까지 이어진다. ADD 서울시 중구 소공로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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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의 대중화, 프렌치 월페이퍼

럭셔리의 대중화, 프렌치 월페이퍼

럭셔리의 대중화, 프렌치 월페이퍼

한때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아름다운 벽지는 18세기 중산층의 손끝에서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기술과 취향,
그리고 시대를 담은 프랑스 벽지의 예술적 가치가 다시 조명되고 있다.

뉴욕 RISD 미술관에서 열리는 <프렌치 월페이퍼의 예술> 전시는 5월 11일까지 진행된다. © courtesy RISD

1840년대 베니스 풍광을 담은 벽지. © courtesy RISD

봄이 왔다. 굳이 이사를 가지 않더라도, 신선한 변화를 위해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은 도배가 아닐까? 바로 이때 화사하고 우아한 포인트 벽지를 찾기도 하는데, 벽지 문화는 언제부터 왜 시작된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전시회 <프렌치 월페이퍼의 예술>이 뉴욕 RISD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벽지는 집을 장식하는 ‘재료’ 정도로 여겨졌기에 시간이 흐르고 취향이 변하면 그저 버려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는 그 시대의 사회상과 취향, 기술, 나아가 사회적 맥락과 경제 상황까지 알아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후아드 Huard 컬렉터 부부는 1920~30년대에 버려진 벽지를 열정적으로 수집했고, 그 가치를 알아본 미술관은 1934년 컬렉션을 인수했다. 소장 컬렉션 500여 점 중 이번 전시에는 벽지, 도안 등 100여 점이 소개된다. 벽지 예술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종이 재료의 취약성 때문에 앞으로 이러한 전시는 볼 기회가 많지 않을 듯하다.

아르 데코 감성의 뒤낭 컬렉션은 드 고네이 제품으로 유앤어스에서 판매. ⒸAlexandra Shamis

꽃과 새, 화병 등을 회화적으로 그려낸 피에트라 뒤라 컬렉션은 드 고네이 제품으로 유앤어스에서 판매. ⒸAlexandra Shamis

벽지를 탄생시킨 주인공은 신분이 점점 높아지고 경제력을 확보하게 된 18~19세기의 중산층 시민이다. 그들은 왕궁이나 귀족의 저택 벽을 장식하던 아름답고 화려한 프레스코 혹은 타피스트리 대신 종이를 바르기 시작했다. 또한 18세기 중후반 목판인쇄 기술의 보급으로 화려한 패턴과 섬세한 장식이 대량생산하게 되어 그 영향을 미쳤다. 화가에게 주문하거나 타피스트리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름다운 벽지는 신분의 벽을 넘어선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허락된 사치스러운 인테리어인 셈이었다. 장식의 주제는 대체로 신화나 목가적 풍경, 전원생활, 혹은 이국적인 도시 풍경으로 로코코 궁중 문화에 대한 동경을 표출했다. 이 시기 인쇄술은 종이에만 적용된 것은 아니었다. 천에도 인쇄할 수 있게 되면서 ‘투왈 드 주이 Toile de Jouy’라는 것도 유행하게 되었는데, 이는 당시 인쇄산업의 근거지였던 주이 장 조자스 Jouy-en-Josas의 지명을 따서, ‘주이 지역의 천’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목판에서 동판으로, 기계식 롤러프린트 등 인쇄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무늬는 단순한 것에서부터 정교한 것으로, 또 점차 풍경화나 역사화 같은 대형 파노라마 장면까지 구현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같은 무늬를 인쇄해 천은 커튼으로, 종이는 벽지로 통일감 있는 실내 인테리어를 구성하기도 했다. 수작업처럼 보이지만 기계화로 대량 확산되었던 중산층의 문화는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섬세한 손기술로만 구현이 가능한 희귀한 작업이 됐다. 기술을 재현해내는 과정에서 이왕이면 가장 어려운 과정에 도전하는 벽지 전문가들도 생겨나고 있다. 주로 중국이나 프랑스에서 상류층을 위해 제작한 직접 손으로 그리거나 목판 인쇄 후 수작업으로 색을 채워넣는 벽지가 대표적이다. 이처럼 벽지의 문화도 제작 방식, 크기, 용도, 계층 등에 따라 다양한 층위가 있다. 그동안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던 ‘벽지 예술’에 대한 새로운 토대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는 컬렉터와 디자이너 모두의 관심을 끌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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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애(이안아트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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