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오늘

전통의 오늘

전통의 오늘

오래된 재료와 기법을 현대 감각으로 풀어낸 공간, ‘하우스 오브 신세계 헤리티지’는
전통을 일상의 언어로 재해석해 지금 이 순간의 한국을 보여준다.

편백나무로 만든 임정주 작가의 ‘솔리드 Solid’ 벤치와 암체어. 가구 위 화문석은 국가무형유산 완초장 이수자 허성자 작가. 대나무 스툴은 한창균 작가.

쌀포대, 비닐 등으로 예술 작업을 선보이는 김태연 작가의 밥멍덕.

국가무형유산 염장 보유자 조대용 장인의 발을 건 입구.

오늘날, 전통은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되어야 할까? 고이 간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누군가의 일상에 닿고, 시대의 언어로 다시 쓰일 수 있어야 한다. 방식은 달라도 그 과정에 필요한 것은 같다. 재료에 대한 감각, 삶에 대한 통찰. 요즘의 전통은 박물관보다 집과 식탁 등 손끝 가까이에 있다.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문을 연 ‘하우스 오브 신세계 헤리티지’는 그 움직임을 감각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백화점 한가운데 자리 잡은 이 작은 전통의 집은, 오래된 것을 단순히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누빔, 모시, 유기 등은 전통 공예 재료를 오늘의 언어로 풀고, 관람자의 삶 속으로 자연스럽게 옮긴다. 그 출발점은 보자기다. 개관전 <담아 이르다>는 우리 일생에서 ‘감싸고, 덮고, 싸서 전하는’ 행위에 담긴 의미를 다시 읽어냈다. 전통 공예의 재료와 기술, 그 안에 담긴 정신을 지금의 감각으로 풀어낸 전시다. 모시, 누빔, 완초 등 손으로 다듬어야 완성되는 재료들이 새로운 시선 아래 펼쳐진다. 쌀자루 포대와 비닐봉지를 직물처럼 활용한 김태연, 모시를 염색해 현대적 색감을 입힌 김나연 등 총 8팀(11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이들은 보자기를 단순히 직물이 아닌 ‘담아내는 행위’로 확장하며, 기억과 마음을 담은 다양한 오브제를 완성했다. 전시는 감상에 그치지 않는다. 재료의 감각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워크숍이 마련돼 있다. 작가들과 함께 누비고 엮으며, 손끝으로 전통의 시간을 따라가본다. 공예의 호흡, 기술, 시간성을 몸으로 이해하는 일이다.
지하 1층에 마련된 기프트 숍은 전시의 연장선이다. 일부 작품을 생활용품으로 구현한 제품들과 함께, 하우스 오브 신세계가 자체 기획한 오리지널 제품도 선보인다. 굽 접시, 유기 합, 차 도구처럼 손님을 대접하는 데 쓰이는 물건이 주류를 이루는 것도 인상적이다. 선물은 여전히 누군가를 향한 마음을 담는 수단이며, 브랜드는 이 ‘마음을 전하는 방식’에 주목했다. 5층에 위치한 ‘디저트 살롱’ 역시 같은 맥락 위에 있다. 차와 다과는 가장 섬세한 환대의 언어다. 신세계 한식연구소 셰프들, 전통 떡과 한과의 명인 서명환 선생이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한국 차 전문가 로해 서울의 김동현 디렉터는 한국 고유의 차를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냈다. 신세계의 동백꽃에서 모티프를 얻은 붉은 홍화차, 18세기 조선 이운해의 ‘부풍향차보’에 기초해 개발된 블렌드 티 4종이 대표적이다. 차와 페어링된 다과는 매달 계절에 따라 달라지며, 이 조합은 오직 하우스 오브 신세계에서만 만날 수 있다.

지하 1층에 위치한 하우스 오브 신세계 헤리티지 기프트 숍에서는 한국 공예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재질’이었어요. 짚풀, 옻칠, 누비, 유기 등 점점 사라져가는 한국의 재료들을 다시 들여다보고, 이를 이어가는 장인들의 손길을 오늘의 라이프스타일에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브랜드 론칭을 총괄한 김경은 디렉터의 말처럼, 하우스 오브 신세계 헤리티지는 장인과 손님을 잇고, 전통과 현재를 연결하는 공간이다. “전통은 지금도 쓸 수 있어야 의미가 있어요. 옛 방식을 그대로 쓰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가까운 형태로 풀어내는 거죠. 익숙지 않은 재료를 다시 친숙하게 만드는 것, 그 연결을 만드는 작업이 의미 있었어요.” 신세계는 오랫동안 외국의 아름다움을 누구보다 빠르게 소개해온 브랜드였다. 하지만 지금은 ‘가장 좋은 한국’을 이야기한다. 낯선 재료를 익숙하게 풀어내고, 잊힌 기술을 오늘의 삶에 연결하며, 전통은 다시 살아난다. 하우스 오브 신세계 헤리티지는 그 변화의 출발점이다.
ADD 서울시 중구 남대문로 42

최희주 작가의 코사지 조각보.

보자기를 탄생과 성장, 결혼 등 일생의 주기에 맞춰 다양하게 재해석한 <담아 이르다> 전시 전경.

기프트 숍에서 만날 수 있는 이인진 작가의 컬렉션.

하우스 오브 신세계 헤리티지 브랜드 론칭과 공간 설계를 총괄한 김경은 디렉터.

김나연 작가의 모시 밥멍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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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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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커져가는 이슬람의 문화와 예술

점점 커져가는 이슬람의 문화와 예술

점점 커져가는 이슬람의 문화와 예술

이슬람 문화와 예술이 세계 미술계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 Diriyah Biennale Foundation, Marco Cappelletti,

지난 1월,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열린 이슬람 아트 비엔날레.

카타르 도하에 위치한 이슬람 아트 뮤지엄.

1960년대 이후 현대미술 작품 가격이 급상승했지만, 이보다 더 가파르게 성장한 분야가 있다. 바로 이슬람 문화다. 2008년 카타르 도하에 최초의 이슬람 미술관이 설립되었고, 그 뒤를 이어 2011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이슬람관 리뉴얼 오픈, 2012년 루브르 뮤지엄의 이슬람관이 개관되었다. 2017년 아부다비 루브르 미술관 분관이 건립되며 가톨릭 문화의 예술품과 이슬람 문화재가 함께 전시 중이고, 2019년 카타르 도하에는 장 누벨 설계의 국립박물관을 개관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기간 중에는 회화 중심 미술관으로 준비 중인 헤르조그 드 뫼롱의 루사일 미술관이 사전 홍보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이와 같은 글로벌 뮤지엄의 변화 속에서 빠른 시간 내 소장품을 갖추어야 했던 수요는 이슬람 문화재의 가격을 끌어올렸다. 이슬람 문화를 아시아 문화로부터 분리하고, 또 별도의 전시 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그만큼 이슬람 국가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럽과 미국에 이어 아시아까지, 전 세계가 불경기로 허덕이고 있는 시기에도 여전히 경제적 희망이 있다고 여겨지는 곳은 바로 이슬람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비전 2030정책을 발표하며 신도시 ‘네옴시티’를 발표하자, 전 세계 비즈니스맨들이 사업권을 따내려고 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물론, 이슬람 국가 내부에서도 문화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석유 자본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가장 럭셔리한 호텔을 짓고, 세계 최고의 대학과 회사를 유치했지만, 출장 오는 사람은 있어도 그곳에 사는 가족은 적은 이유가 바로 문화적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석유의존형 부유국에서 문화와 예술이 있는 선진국으로의 도약만이 현재의 부를 영속화시키는 방편이 될 것이다. 또한 테러국인데다 여성을 억압한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이슬람 문화에 대한 세계인의 공감과 이해는 필수 선결 요소다.

이슬람 경전 쿠란, 매트로폴리탄 미술관 컬렉션.

이와 같은 대내외적 필요성에 의해 이슬람 문화를 주목하는 흐름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아랍에미레이트와 카타르에 이어, 사우디아라비아도 2023년 제다에서 이슬람 예술 비엔날레를, 디리야에서 현대미술 비엔날레를 개최했다. 알울라에는 베이루트 출신 여성 건축가 리나 고트메의 설계로 퐁피두 미술관 분관이 건립될 예정이다. 2030년 리야드 만국박람회를 유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올해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이슬람 문화를 주목하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런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에서는 <위대한 무굴: 예술, 건축, 풍요로움>(2024년 11월 9일 ~ 2025년 5월 5일) 전시를 통해 인도 무굴제국의 전성기던 1560 ~1660년 예술품을 소개했다. 인도의 유명 관광지 타지마할은 바로 이 시기에 이루어진 건축으로서 당대 이슬람 문화는 건축, 조경, 가드닝, 보석, 세밀화에 이르기까지 화려하게 번성했으며, 서구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 보스톤대학의 맥멀렌 미술관에서는 <창조의 경이: 이슬람 세계의 예술, 과학, 그리고 혁신> (2025년 2월 9일 ~ 6월 1일)이라는 전시회를 통해 이슬람의 천문학, 지리학, 의학, 건축이 예술과 교차하는 지점을 소개하고 있다. 이슬람은 기도와 라마단 등의 종교 행사에서 정확한 시간과 달력이 필요했기에 천문학이 매우 발달하고 더불어 수학 체계도 앞서 나갔는데, 이러한 지식이 유럽에 전달되어 근대 과학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서구 중심으로 역사와 문화를 배워온 우리에게 이슬람 문화는 낯선 존재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오랫동안 배제되어온 이슬람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문화적 다양성을 충족시켜줄 뿐 아니라, 새로운 창조성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 또한 자신의 문화를 사랑하고 적극적으로 미래에 도약하려는 태도는, 중국과 일본 문화 사이에 끼어 오랫동안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다, 이제서 K컬처로 도약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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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애(이안아트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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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출발의 온기를 담은 집

새 출발의 온기를 담은 집

새 출발의 온기를 담은 집

지난해에 이어, 종킴디자인스튜디오의 주거 공간 개선 프로젝트가 따뜻한 봄날과 함께 돌아왔다. 만 18세가 되면 시설을 떠나야 하는 보호종료아동, 이제는 ‘자립준비청년’이라 불리는 이들의 첫걸음을 응원하고자 다시 한 번 뜻을 모았다. 종킴디자인스튜디오는 공간 디자인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2023년 JKDN을 설립한 이래, 매년 공간 개선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다. 올해 역시 서울시 자립지원 전담기관과 함께 그룹홈에 거주 중인 두 청년의 보금자리를 새롭게 단장했다. 2002년생과 2005년생인 두 청년이 함께 살고 있는 이번 그룹홈은 26년의 시간이 쌓인 노후한 상태였다. 삐걱거리는 목재 창호, 제대로 닫히지 않는 문, 단열되지 않아 겨울철 외풍이 심한 창문, 일상에 불편함이 컸던 욕실과 도어 등 전반적인 생활 환경 개선이 절실했다. JKDN은 내부 창호를 전면 교체해 단열성과 정온성을 확보하고, 어두운 무채색의 분위기에서 벗어나 그린과 레드 등의 포인트 컬러로 공간에 활기를 더했다. 기존 차갑고 침체돼 있던 집이 따뜻한 감정이 머무는 곳으로 탈바꿈했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도 프로젝트는 놀라운 응집력으로 완성됐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팀원 30여 명이 가구 조립부터 마무리 청소까지 손발을 맞췄고, 협력 업체들도 지원해 힘을 보탰다. 지난 5월 7일, 현장에는 웃음과 따뜻한 인사가 오갔고, 두 청년은 바뀐 공간을 바라보며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준비해온 편지를 낭독하며 고마운 마음을 전한 한 청년의 모습에서 이 공간이 단지 머무는 장소가 아닌 ‘시작의 힘’이 되어줌을 보여줬다. 프로젝트를 마친 JKDN은 일회성 변화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공사후 남는 자재를 재활용해 다음 프로젝트로 이어가는, 지속 가능한 디자인 방향인 것이다. “공간을 통해 응원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앞으로도 더 많은 청년의 집이 ‘좋은 기운이 남는 집’이 되기 바랍니다.” 김종완 소장과 JKDN의 다짐처럼, 이들의 디자인은 누군가의 삶에 진심 어린 응원의 메시지로 닿고 있다.

후원 브랜드
MDM PLUS(협찬), 계선(주방), 도시상사(벽지), 한솔홈데코(바닥재), 넥서스(타일),
오이코스(도장, 시공), 이엘시스템(위생기기), 두오모앤코(조명), 유앤어스(커튼),
오름앤컴퍼니(가구), 한일카페트(카펫), 키티버니포니(침구류), Bois(바닥재 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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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그래퍼

임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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