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한 조용한 언덕 위에 18세기 저택을 복원해 만든 와이너리 겸 레지던스 빌라 비온델리.
한 가족의 삶과 취향이 축적된 이곳은 건축, 와인, 예술이 자연스럽게 스며든 환대의 장소가 되었다.

18세기 귀족 저택을 개조해 와이너리 겸 레지던스로 꾸민 빌라 비온델리 전경.
만약 이탈리아의 삶이 가장 정제된 형태로 구현될 수 있다면, 그 풍경은 아마도 프란치아코르타의 한 조용한 언덕 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밀라노의 도시성과 베네치아의 낭만 사이, 고요한 포도밭 위에 자리한 빌라 비온델리 Villa Biondelli는 18세기 귀족 저택을 개조한 와이너리 겸 레지던스다. 건축과 디자인, 역사와 환대가 밀도 높게 응축된 독립적인 이 공간이 처음부터 와이너리로 운영된 것은 아니었다. 이곳은 이탈리아 최초의 테크니컬러 애니메이션 의 제작지였다. 당시 이 빌라를 소유한 이탈리아 대사 주세페 비온델리 Giuseppe Biondelli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밀라노의 공습을 피해 가족의 여름 저택을 제작사 IMA에 개방했다. 이후 4년에 걸쳐 수십 명의 작화가와 색채 담당 인력이 이곳에 머물며 작업을 완수했다. 이후 가족의 유산을 물려받은 현 운영자 요스카 비온델리 Joska Biondelli는 이 공간이 지닌 역사적 서사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현재의 빌라 비온델리로 재구성했다.

다양한 문화의 색과 질감을 공간에 녹여낸 빌라 내부.
2016년 시작된 복원 작업은 인테리어 디자이너 프란체스카 라피치렐라 브라스 Francesca Lapiccirella Brass가 총괄했다. 그는 기능과 장식, 예술과 거주의 경계를 넘나들며, 세월의 흔적이 남은 건축적 요소와 가족의 사적 유산을 현대적 언어로 다시 엮어냈다. 내부는 이국적이고도 절제된 감각으로 채워졌다. 인도, 우즈베키스탄, 남미, 아프리카 등지에서 수집한 직물로 다양한 문화의 색과 질감을 공간에 녹여냈다. 또한 천장 몰딩, 가구, 조명에 이르기까지 모두 맞춤 제작되어 하나의 통일된 미학적 서사를 구성했다. 베네치아 전통 방식으로 마감한 테라조 바닥, 복원된 페인팅 창호, 19세기 목재 조각 가구 등은 이 공간이 시간의 층위를 간직하고 있음을 조용히 드러낸다. 이곳 객실은 총 11개로, 모두 의 등장인물 이름을 본따 고유의 색과 구조로 디자인되었다. 각 객실은 올리브 그린, 테라코타, 인디고, 머스터드, 멜란지 등 시간과 채광에 따라 변하는 깊은 색감으로 채워졌으며, 침대 헤드보드는 실크와 리넨, 또는 빈티지 수자니로 맞춤 제작되었다. 욕실 또한 예외는 아니다. 투스카니 지방에서 채석한 석재로 만든 샤워받침과 짙은 톤으로 가공한 황동 수전은 피렌체 장인들이 맞춤 제작한 것으로, 일부 스위트룸에는 원목으로 마감된 블루 또는 옐로 컬러 욕조가 설치되어 있다.

빌라 비온델리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 등장인물의 이름을 본따 만든 ‘술탄 자파 룸’은 이국적인 직물과 색채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공용 공간 또한 인상적이다. 기둥이 늘어선 야외 회랑을 개조한 겨울 정원은 현재 로비이자 조식 공간, 행사장으로 활용된다. 이 공간은 밀라노 기반 아티스트 듀오 픽타 랩 Picta Lab의 핸드 페인팅 벽화로 장식되었는데, 열대 식물과 앵무새가 그려진 벽화는 환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빌라 중앙의 계단 하단에는 19세기 대리석 욕조를 개조한 분수가 설치되어 있고, 테이스팅룸 중앙에는 16세기 천장 장식 일부를 복원해 만든 대형 테이블이 자리 잡고 있다. 곳곳에 비치된 19세기 중엽 유럽풍 콘솔과 나폴리 전경을 담은 19세기 회화 등은 이 공간이 단순한 숙소보다는 하나의 큐레이션된 예술 공간처럼 보이게끔 한다. 외관의 복원은 피렌체 문화재청의 조언을 받아 18세기 프레스코화와 19세기 후기 장식을 조화롭게 통합했다. 트롱프뢰유 창, 기둥 장식, 천장 몰딩 등의 복원은 보존을 넘어 공간의 시각적 리듬을 회복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빌라 비온델리에서 생산한 와인의 코르크가 진열되어 있다.

(The Singing Princess) 속 캐릭터들로 벽 한쪽을 장식한 레스토랑 내부.

시간의 층위를 간직한 빌라 비온델리 내부.

테라스 앞 언덕에는 포도나무가 심어져 있다.
이 모든 경험은 와인을 중심으로 완성된다. 빌라의 와이너리는 약 10만㎡의 포도밭에서 연간 5만 병의 프란치아코르타 와인을 생산한다. 대표 와인인 로제 밀레지마토 ‘돈나 클레미 Donna Clemy’는 요스카 비온델리의 할머니 클레멘티나를 기리는 피노 누아 단일 품종 와인으로, 이 공간에 깃든 가족의 서사를 완성한다. 그 외에도 브뤼, 사텐, 리제르바 등 총 4종의 스파클링 와인이 생산되는데, 당도와 첨가물을 최소화하고 오크 숙성은 배제한 방식으로 빚어져 간결한 풍미와 순수한 품종의 개성을 지향한다. 기능적 숙박 공간을 넘어 정원 디자인, 예술적 큐레이션, 건축적 복원과 감각적 경험이 정밀하게 교차하는 이곳엔 곧 25m 규모의 인피니티 풀과 소규모 웰니스 스파 또한 신설될 것이다. 향후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프라이빗 테이스팅 이벤트 등 문화와 미식을 연계한 프로젝트 계획도 있다. 이곳에서 환대는 형태가 아닌 경험으로 존재하며 미식과 예술, 건축과 삶의 경계는 섬세하게 유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