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은 더 이상 ‘대안’이 아닌 하나의 미식 문화다.
단순한 한 끼를 넘어, 채소의 다채로운 얼굴과 깊은 요리 철학을 그릇 위에 담아내는 공간들.
비건이라는 이름의 황홀경, 레귬
©레귬
레귬의 채소는 그 자체로 완전한 파인다이닝 주인공이 된다. 이곳을 이끄는 성시우 셰프는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 ‘스와니예’의 오픈 멤버 출신으로, 제로 웨이스트에 기반해 채소가 지닌 무한한 맛의 가능성을 정교하게 풀어낸다. 순무와 고사리, 당근, 버섯 등 너무도 익숙한 이름들이 낯설 만큼 우아하게 입 안에 스며든다. 제철 채소로 구성한 코스는 매 시즌 새로워지며, 다가올 9월에는 깊어진 가을의 풍미를 오롯이 담을 예정. 오렌지와 함께 브레이징한 엔다이브에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 무스, 오렌지필, 진피 파우더를 얹어 마무리한 ‘엔다이브 타르틀렛’, 이스트 풍미의 오일에 살짝 튀겨 고소함을 살린 찰옥수수 위에 피클링한 고수 씨앗을 올려 톡 쏘는 풍미를 더한 ‘영콘’ 등이 준비됐다.
INSTAGRAM @legume.seoul
ADD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 652 신사스퀘어 2층
로컬 채소가 들려주는 이야기, 로컬릿

ⒸMaisonkorea
세상은 넓고, 채소 요리는 그만큼 다채롭다. 2019년 옥수동에 문을 연 로컬릿은 채식이 하나의 트렌드로 떠오르기 전부터, 채소가 지닌 잠재력을 알아봤다. 남정석 셰프는 2018년 봄, 마르쉐에 참여하며 농부들과 직접 교감했고, 그 현장에서 개발한 채식 메뉴가 로컬릿의 출발점이 되었다. 시그니처 메뉴인 ‘채소 테린’은 채식에 대한 셰프의 철학을 오롯이 담아낸 결과물. 제철을 맞은 빨강, 초록, 노랑 채소 위에 백태콩으로 만든 후무스를 켜켜이 쌓아 계절이 주는 맛의 선물을 전한다. 이 밖에도 호박, 치즈, 허브로 속을 채운 카넬로니에 토마토 당근 퓌레를 곁들인 ‘호박 까넬로니’, 고소한 감자 뇨끼와 산뜻한 시금치 크림소스가 어우러진 ‘시금치 뇨끼’ 등 채소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유러피안 요리들이 이곳 메뉴판을 채우고 있다.
INSTAGRAM @the_local_eater
ADD 서울 성동구 한림말길 33 2층
전통의 맛으로 써 내려가는 채식 문법, 비움
©비움
비움의 김대천 셰프는 옛 선조의 지혜를 단순히 보완하거나 재해석하지 않는다. 그는 그 자체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태도로 요리에 임한다. 이곳의 한식은 업장명처럼 육류, 해산물, 오신채까지 모두 비워낸 채소 중심의 정갈한 한상 차림으로 차려낸다. 이러한 철학의 출발점은 바로 ‘사찰음식’이다. 코로나 시기 진관사에서 식사를 하던 중, 김대천 셰프는 ‘비움’이 결핍이 아닌, 오히려 완성에 가까운 맛을 지닌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코스 형태로 차려지는 식사는 셰프가 직접 담근 전통 장을 비롯해 한국의 자연에서 자란 채소, 다채로운 나물과 절임, 떡과 밥 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계절의 흐름을 섬세하게 담아내고자 매 시즌마다 다른 콘셉트를 선보이며, 현재는 가을의 정서를 품은 ‘춘하추동’ 콘셉트로 운영 중이다.
INSTAGRAM @biumseol
ADD 서울 강남구 학동로97길 41 1층
창작의 캔버스가 된 그린 가스트로노미, 천년식향
©천년식향
당근으로 만든 장, 젖산 발효로 피클이 된 쑥. 천년식향의 안백린 셰프는 제로 웨이스트와 발효를 토대로, ‘비건’이라는 테마를 자유롭게 창작한다. 그녀만의 독특한 요리 세계는 단순한 취향이 아닌, 삶의 궤적에서 비롯된 결과다. 영국에서 의료생물학을 전공하던 시절, 지속 가능한 식생활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 가치를 직접적으로 전하기 위해 요리사의 길을 택한 것. 대표 메뉴인 ‘섹스 앤 스테이크’는 그 철학이 오롯이 담긴 결과물이다. 스테이크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고기는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 대신 전통 발효제인 누룩으로 비트를 발효시켜 육회에 가까운 식감을 구현했다. 일반 스테이크처럼 ‘레어’, ‘미디움’, ‘웰던’ 등 굽기 조절도 가능해, 육식 애호가들도 충분히 만족할 만하다.
INSTAGRAM @millennial_dining
ADD 서울 서초구 효령로 316-1 3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