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도 높은 색감, 거침없는 패턴, 리듬을 따라 전개되는 장면들. ‘보여주는 집’을 넘어서 ‘살아보게 하는 집’으로 확장된 까사오넬라는
느린 박자라는 감각에 집중한 실험적 인테리어를 공개했다.

지중해의 리듬을 담은 거실 전경. 파지니 특유의 색 구성과 구조적 개방감이 공간을 관통한다. © Sara Soldano, 5VIE

아트 디렉터 마리아 비토리아 파지니. 까사오넬라 프로젝트의 기획자이자 공간의 스토리텔러다.

© Sara Soldano, 5VIE

거울, 그림, 조각 오브제가 뒤섞인 장면. 일상의 틈에 유머와 상상이 개입된다.© Isabella Magnani

벽을 따라 펼쳐지는 아치 구조는 공간의 리듬을 만드는 구조적 장치로 기능한다. © Isabella Magnani
매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새로운 구성으로 소개되는 까사오넬라 Casaornella는 전시 공간이자 거주 개념을 실험하는 쇼하우스 프로젝트다. 아트 디렉터 마리아 비토리아 파지니 Maria Vittoria Paggini가 이끄는 이번 시즌 테마는 ‘Mediterranea – Andamento Lento’, 즉 ‘지중해’와 ‘느린 흐름’에 대한 이야기다. 그동안에는 디자인 위크 기간에만 문을 여는 일시적 공간이었다면, 올해부터는 성격이 조금 달라졌다. 까사오넬라는 이제 상설로 운영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쇼하우스이자 디자인 실험의 플랫폼으로 확장된 것. 입구에 들어서면 녹색 세라믹 타일 바닥 위에 놓인 지오 폰티의 세면대, 마몰리의 수전, 그리고 이탈리아 타일 브랜드 퀸테센자 체라미케의 타일이 ‘물의 의식’이라는 인트로 장면을 만든다. 하얀 벽을 따라 이어지는 파란 프레스코 천장과 뾰족한 아치형 구조, 길게 드리운 거울 등 장식적으로 과하지 않으면서도 흐름을 조율하는 요소들로 채워져 있다. 욕실은 침실로 이어지는 하나의 전환 장면이 되고, 주방은 기능을 넘어 오감을 자극하는 실험실처럼 구성됐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파지니가 연출한 컬러의 리듬감이다. 짙은 블루의 하이글로시 키친, 동물 무늬 벽지와 붉은색 타일, 녹색 거울과 원색 오브제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공간의 전체 분위기를 형성한다.

테라조, 벨벳, 스트라이프 등 서로 다른 감각이 충돌하며 작은 휴식처를 이룬다. © ISara Soldano, 5VIE

다채로운 재료와 텍스처의 충돌. 파지니의 공간은 예상 밖 조합에서 생동감을 얻는다. © ISara Soldano, 5VIE

레오파드 프린트와 원형 수납장이 시선을 사로잡는 조리 공간. © ISara Soldano, 5VIE

동물 프린트와 녹색 유리, 반사 패널이 뒤섞인 키친. © ISara Soldano, 5VIE

기하학적 조명과 테이블, 오브제가 어우러진 침실. © ISara Soldano, 5VIE

소프트하우스와 협업한 테이블과 오브제. 부드러운 조형성과 유쾌한 소재감이 중심이다. © ISara Soldano, 5VIE

하이글로시 블루의 키친 공간. 기능 중심의 구성 안에 유화 초상화가 이질적 리듬을 만든다. © Isabella Magnani

스트라이프 벽지와 공간의 중심에서 시선을 이끄는 회화 작품이 인상적인 욕실. © Isabella Magnani
까사오넬라에는 두 개의 주방이 공존한다. 하나는 거실과 이어지는 장식적 성격의 키친으로서 애니멀 프린트 벽지와 대리석 상판에 글로시한 소재들이 조화를 이룬다. 다른 하나는 실용적인 블루 톤의 주방으로서, KWC 수전과 셰프 니코 로미토가 개발한 식재료 라인이 함께 구성된 조리 공간의 기능을 보여준다. 파지니는 이번 전시에서 이탈리아 가구 브랜드 소프트하우스와 협업한 가구도 다수 선보였다. 곡선 실루엣이 특징인 침대 로미오를 비롯해 유리 테이블, 우드 수납장, 플루티드 미러를 적용한 대형 식탁 등 다양한 오브제가 기능성과 시각적 완성도를 동시에 갖추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중심은 ‘살라 콘비비오 Sala Convivio’라는 식사 공간이다. 뾰족한 아치 형태의 조형적 구조물이 공간을 분절하면서도 시선을 유도하고, 퀸테센자 체라미케의 타일이 이를 감싸며 리듬을 만들어낸다. 중앙에는 널찍한 테이블이 놓여 있고, 그 위에는 감귤과 채소, 셰프 니코 로미토의 유리 과일 오브제가 함께 연출되어 지중해의 계절감과 식문화를 보여준다. 주변에는 스트라이프 벽면, 빈티지 그림, 세라믹으로 만든 수영복 오브제, 그리고 다양한 공예품이 믹스매치되어 위트 있는 분위기를 더한다. 낯선 재료, 평범하지 않은 오브제, 기능과 장식 사이를 오가는 가구와 구조물로 하여금 일상적인 집 풍경을 색다르게 해석한 까사오넬라. 이 집이 궁극적으로 제안하는 것은 완벽히 새로운 삶의 방식이라기보다는, 익숙한 공간 안에서 감각을 천천히 환기시키는 방식이다. 마리아 비토리아 파지니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명확하다. ‘지금, 우리는 조금 더 느린 박자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