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와인’으로 여는 한 잔의 여름

'뉴욕 와인'으로 여는 한 잔의 여름

'뉴욕 와인'으로 여는 한 잔의 여름

지금 마시기 딱 좋은 ‘뉴욕 와인’과

조합하기 좋은 메뉴들.

 

 

Pairing Tips

 

1 울퍼 에스테이트, 서머 인 어 보틀 로제
뉴욕 롱아일랜드 햄튼스의 여름을 그대로 병에 담은 듯한 울퍼 에스테이트 Wölffer Estate의 서머 인 어 보틀 로제 Summer in a Bottle Rosé는 이름처럼 시각적으로도 아름답고 맛이 상쾌하다. 은은한 복숭아 향과 잘 익은 멜론, 시트러스의 조화가 기분 좋은 산미와 어우러져 무더운 날씨에 잘 어울린다. 특히 아시아식 샐러드, 연어 타다키, 스시, 베트남식 월남쌈과의 조합이 탁월하다. 상큼한 민트, 라임, 생선 소스 같은 재료들과의 궁합이 좋아 여름 저녁 테라스에서 가벼운 음식과 곁들이면, 마치 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 아폴로스 프레이즈, 드라이 리즐링 라호마 빈야드
아폴로스 프레이즈 Apollo’s Praise의 드라이 리즐링 라호마 빈야드 Dry Riesling Lahoma Vineyards의 알코올 도수는 12.5도로 낮지만, 입을 가까이 대는 순간 퍼지는 풍부한 아로마와 입안 가득 느껴지는 복합적인 과일 풍미가 매력적이다. 선명한 산미 덕분에 전체적인 밸런스도 훌륭해서 자연스럽게 손이 간다. 특히 매콤한 아시아 요리와 찰떡이라, 스파이시한 타이 누들이나 김치볶음밥, 혹은 고수가 첨가된 베트남식 볶음요리와 즐기는 것을 추천한다. 매운맛을 부드럽게 감싸주면서, 와인의 과일 풍미가 요리의 풍성함을 더욱 살려줄 것이다.

3 버튼우드 그로브 와이너리, 언오크드 샤도네이
가볍고 신선한 스타일을 좋아한다면 버튼우드 그로브 와이너리 Buttonwood Grove Winery의 언오크드 샤도네이 Unoaked Chardonnay 2024를 추천한다. 오크 숙성을 하지 않아 샤도네이 본연의 생동감 있는 과일 풍미가 고스란히 살아 있고, 질감도 산뜻하고 깔끔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 첫 모금에서 전해지는 풋사과, 배, 시트러스의 뉘앙스가 입안을 맑게 채워준다. 리코타 치즈를 곁들인 가벼운 샐러드나 삶은 아스파라거스에 허브 오일을 뿌린 요리, 혹은 크림치즈를 올린 크래커나 스시와 함께 즐겼을 때 가장 잘 어울린다. 담백하면서도 섬세한 맛의 음식들과 조화를 이루며 와인의 상큼함이 더욱 살아난다.

4 닥터 콘스탄틴 프랭크, 세미 드라이 리즐링
조금 더 부드러운 스타일을 원한다면 닥터 콘스탄틴 프랭크 Dr. Konstantin Frank의 세미 드라이 리즐링 2023이 제격이다. 은은한 단맛과 생동감 있는 산미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한 모금 마시는 순간 기분이 환해지는 느낌이다. 과실 향과 은은한 꽃 향기, 미네랄리티가 길고 섬세하게 이어지면서 입안을 부드럽게 감싸준다. 가리비나 새우 등 해산물 요리, 특히 크림소스를 곁들인 메뉴와 잘 어울린다. 중식이나 태국 요리, 혹은 모로코식 향신료가 들어간 요리와 함께 마셨을 때 와인의 풍미가 더욱 풍성하게 살아난다. 감미로운 향신료와 와인의 균형감 있는 달콤한 산미가 탁월한 페어링을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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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 시대의 새로운 대안, 뉴욕 와인

기후 위기 시대의 새로운 대안, 뉴욕 와인

기후 위기 시대의 새로운 대안, 뉴욕 와인

뉴욕 와인은 기후 위기를 직면한 와인 업계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
조금은 생소하지만 그래서 더 궁금해지는 뉴욕 와인 이야기.

기후 위기가 세계 와인 산업의 지형을 재편하고 있다. 2020년 스페인 알칼라대학의 이그나시오 모랄레스 카스티야 Ignacio Morales-Castilla가 PNAS에 발표한 논문은 이를 수치로 요약한다. 지구 평균 기온이 2℃ 상승할 경우 현재 포도 재배지 중 56%가 재배에 부적합해질 수 있으며, 4℃ 상승 시에는 그 비율이 85%에 이를 수 있다는 것. 이런 변화의 중심에서 예상 밖의 지역인 뉴욕이 새로운 가능성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아직 많은 소비자가 낯설게 느끼고 있지만, 사실 뉴욕은 미국 내 세 번째로 큰 와인 생산지다. 지리적 특징에서 비롯한 뉴욕 와인만의 특성과 역사, 그리고 기후 위기 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는지에 대해 뉴욕와인생산자협회와 이야기를 나눴다.

뉴욕에서 와인을 생산한다는 사실이 대중에게는 조금 생소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다른 국가 또는 생산지와 비교했을 때 뉴욕 와인만이 지닌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뉴욕 와인의 가장 큰 매력은 고유한 기후가 빚어낸 독특한 맛의 균형에 있습니다. 뉴욕주는 북위 40~45도의 위도에 위치해 스페인의 북부와 비슷한 위도이지만, 대서양과 오대호, 긴 호수와 해풍의 영향으로 기후는 그보다 훨씬 서늘합니다. 이처럼 시원한 환경에서 자란 포도로 생산된 뉴욕 와인은 산도가 살아 있고 풍미가 우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과일의 풍부한 향미와 산뜻한 산미가 조화를 이루어 자칫 무겁거나 과숙하기 쉬운 다른 산지의 와인들과 차별화됩니다. 실제로 현지 양조자들은 뉴욕의 최고 레드 와인은 신세계 다른 지역에서는 찾기 힘든 풍부함과 절제가 공존하는 균형미를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알코올 도수나 과일 단 이 과도하게 높지 않아 산뜻하고 깨끗한 과일 풍미가 두드러지며, 이는 뉴욕만의 독특한 테루아(자연환경)를 그대로 반영한 것입니다.

각기 다른 기후와 지형을 지닌 400개 이상의 와이너리가 존재한다는 것 또한 뉴욕주만이 지닌 특징이라 들었습니다. 각 지역별 특징은 어떻게 되나요? 뉴욕 와인은 다양한 품종과 스타일로 그 매력을 발산합니다. 특히 핑거레이크 지역의 리슬링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품질로, 잘 익은 복숭아나 감귤류의 향기에 청량한 산미와 미네랄 느낌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한편 롱아일랜드에서 재배되는 메를로와 카베르네 프랑 같은 레드 와인은 과일 풍미가 풍부하면서도 탄탄한 구조감이 돋보입니다. 롱아일랜드 노스포크의 메를로는 캘리포니아산처럼 잼과 같은 진득한 과실 맛보다는 절제되고 우아한 스타일을 가져, 산미와 과일, 흙내음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특징입니다. 실제로 한 와인평론가는 롱아일랜드산 메를로를 프랑스 보르도의 유명 산지인 포므롤 와인과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맞먹는 점수를 주었을 정도로 높이 평가했죠. 그 밖에도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생산지 중 하나인 허드슨 밸리의 완만한 구릉과 점토질 토양에서 생산되는 화이트 와인은 은은한 과실 향과 산뜻한 미네랄감을 지니는 것이 특징입니다.

뉴욕의 와인 양조 역사 또한 흥미롭습니다. 미국 최초로 상업용 와인을 생산한 브라더후드 와이너리 또한 뉴욕에 있다고요. 뉴욕의 와인 양조는 19세기 초반부터 시작되어, 금주법 시대 등 여러 역사적 굴곡을 겪으며 조금씩 성장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전통을 지키면서도 혁신을 더해 뉴욕 와인의 품질을 끌어올린 주역들도 함께 등장했죠. 브라더후드 와이너리는 금주법 시기에도 가톨릭 미사주를 만들며 명맥을 이어온 곳으로, 지금도 19세기 와인 저장고 등 유서 깊은 시설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또한 핑거레이크 지역의 닥터 콘스탄틴 프랭크 와이너리는 1950년대 ‘비니페라 혁명’을 이끌며 뉴욕 와인의 위상을 새롭게 정의한 곳입니다. 콘스탄틴 프랭크 박사는 케우카 호숫가의 가파른 셰일 경사면에 유럽 품종인 리슬링과 샤르도네를 심어, 뉴욕에서도 비티스 비니페라 Vitis Vinifera 포도 재배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도전은 뉴욕 와인을 지역 특산주에서 세계 수준의 프리미엄 와인으로 이끌어 올린 계기가 되었습니다.

기후 변화가 포도 재배까지 영향을 미치며 전통 와이너리들이 도전에 직면한 와중에, 업계는 뉴욕을 ‘기후 피난처 Climate Refuge’로 정의했다고 하죠. 실제로 세계 최대 와인 기업 중 하나인 E.&J. 갤로와 나파밸리의 주요 와이너리들이 뉴욕에 포도밭을 조성하거나 확장을 검토 중입니다. 여름 기온이 상승하며 생육 기간이 길어지고, 과거보다 자주 ‘포도가 완벽히 익은 해’가 등장하며 뉴욕 와인의 품질은 꾸준히 향상되고 있습니다. 한 세대에 한두 번 나올까 말까 하던 수준의 우수한 빈티지가 이제는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핑거레이크의 경우 2016년, 2020년, 2022년처럼 우수한 빈티지가 잇따랐습니다. 이는 온난화로 생장기가 길어지고 생육 적산온도(GDD)가 상승한 덕분인데, 포도가 당도를 충분히 올리면서도 뉴욕 특유의 산도와 균형은 유지되는 이상적인 성숙도를 달성하는 해가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후 변화로 인한 타격도 있을 것 같습니다. 기후 변화의 명암은 분명 존재합니다. 늦서리와 곰팡이 질병 발생 위험이 증가하는 등, 포도 재배 관리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소가 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이러한 도전 속에 포도나무 개체별 생육 데이터를 수집해 관리하는 소프트웨어와 자율주행 로봇을 도입해 미세한 환경 변화를 모니터링하고, 동해 예측 앱을 활용해 가지치기 시기를 조절하는 등 과학적 접근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품종 측면에서도 변화를 모색합니다. 뉴욕 와인 생산자들은 리슬링, 카베르네 프랑같이 이미 입증된 쿨 클라이밋 품종뿐만 아니라, 내병성과 내후성이 좀 더 강한 하이브리드 품종을 적극 시험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품종들은 급변하는 기후에도 안정적으로 수확량을 내줄 수 있어 ‘뉴욕 와인 산업의 미래를 지탱할 열쇠’로 불립니다. 실제로 몇몇 와이너리는 비니페라 순종 포도나무 대신 이런 신품종으로 과원을 꾸려가며 기후 리스크를 분산하고 있으며, 소비자들의 입맛 변화에도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와인 생산에 적합한 서늘하고 습한 곳을 찾아 포도밭이 이동할 것이다. 뉴욕 같은 곳이 기후 피난처로 각광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 점차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병행 상승하고 있는 와인의 품질입니다. 뉴욕산 와인은 최근 각종 품평회와 시상식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 전문가들은 “뉴욕의 테루아가 해마다 더 훌륭한 와인을 빚어내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한 와인 양조학 교수는 “만약 최근 몇 년 뉴욕의 여름처럼 따뜻하고 건조한 조건이 지속된다면, 뉴욕 포도 재배는 분명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2023년은 포도 생육에 이상적인 기후 조건을 보인 덕분에 “뉴욕 와인 역사상 손꼽힐 만한 최고의 빈티지”라는 찬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기후 변화의 도전에 맞서 탄탄한 연구 기반과 유연한 대응 전략을 갖춘 뉴욕 와인 산업은 앞으로 세계 와인 시장에서 품질과 스토리를 겸비한 신흥 강자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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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조리서에서 피어난 부엌

오랜 조리서에서 피어난 부엌

오랜 조리서에서 피어난 부엌

고조할머니의 손때 묻은 조리서 한 권에서 시작된 세대와 세대,
기억과 맛을 잇는 작은 공간 이야기.

문을 열면 부엌의 형태를 갖춘 바 공간이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공간 디자인은 엔알디자인팩토리의 김나리 소장이 진행했다.

막걸리를 재료로 한 증편과 약편을 정성스럽게 차려냈다.

청주부엌의 강신혜 대표.

윤형근 화백의 화폭에서 영감을 얻은 공간의 색과 옻칠한 한지로 만든 한지 문살이 한국적인 느낌을 살린다.

취미로 시작한 요리가 어느새 업이 되었다. 1988년부터 30여 년간 <싱글즈>, <쎄씨>, <여성중앙> 등 다양한 잡지에 몸 담으며 일해온 ‘1913 청주부엌’(이하 청주부엌) 강신혜 대표의 이야기다. 이름에 쓰인 ‘1913’은 충청북도의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고조리서 <반찬등속>이 편찬된 연도를 의미한다. <반찬등속>은 충북 지역 유일한 고조리서이자, 총 46가지 음식의 조리법이 기록된 귀중한 자료다. 이를 편찬한 진주 강씨 집안 며느리 밀양 손씨는 청주부엌 강신혜 대표의 고조할머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강신혜 대표의 아버지는 잡지 일을 쉬고 있던 그에게 <반찬등속>과 관련된 일을 해보라 했고, 이는 곧 관련 저서 두권 출판에 이어 청주부엌 오픈으로까지 이어졌다.

40년 된 오랜 양옥을 개조한 청주부엌은 현대적인 동시에 한국적인 인테리어를 갖췄다.

대표가 오래전부터 한국전래음식연구회에서 요리를 배우고, 여러 자격증까지 취득할 정도로 음식에 진심일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집안에 내재된 DNA 때문인지도 모른다. 일찍이 음식으로 정을 나누고, 추억 쌓는 법을 배운 그였다. “아버지께서는 제가 중학교 들어가던 날엔 뷔페에 데려가 식사하는 법을 가르쳐주셨고, 대학 들어가던 날엔 양식집에서 스테이크 나이프와 포크 쓰는 법을 가르쳐주셨어요. 당시엔 흔한 일이 아니었지요.” 외식으로 맛본 좋은 음식을 집에 있는 육남매에게 재현해준 것 또한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가 병상에서 남긴 말을 쉽게 떨칠 수 없었다. 그 이전부터 아버지와 친척 어른들의 이야기를 녹취해가며 <반찬등속> 관련 자료를 모으던 그는 본격적으로 공부에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아침이 되면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저녁부터 새벽까지는 배운 조리법을 실제로 만들어보는 일상이 3~4년간 반복됐다. 다른 고조리서들도 참고해가며 연도별 역사까지 세세하게 분석할 정도로 열심이었다. 그래야만 오늘날과 다소 다른 옛 방식의 조리법을 이해하고, 그것을 재현하고 현대화한 과정을 담은 책을 쓸 수 있었다. 그렇게 각각 2022년과 2024년, <반찬등속, 할머니 말씀대로 하는 김치 이야기>와 <반찬등속, 할머니 말씀대로 하는 한과 이야기>가 세상에 나왔다.

간장과 꿀로 간한 떡가루에 호두, 대추, 밤 잣 등 포함한 5가지 소를 넣어 완성한 궁중 두텁떡.

곶감채가 들어간 수정과는 얼음을 갈아 그라니타처럼 시원하게 선보인다.

강신혜 대표의 취향이 묻어난 소품들이 가게 한편을 장식한다.

청주부엌은 그 흐름의 연장선에서 문을 연 것이다. 서울에 두 발 붙이고 살아온 그가 청주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어머니와 오빠밖에 없었지만 그 외 다른 지역에서 식당을 여는 것은 선택지에 없었다. 공간의 색은 청주 화가 윤형근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었고, 식당 한쪽은 부엌 형태를 갖추기 원했다. 고조할머니가 반찬을 적어놓던 곳도, 아버지가 요리를 재현해주던 공간도 결국 부엌이었다. “생명을 이어가고, 세대를 이어가는 장소가 부엌이잖아요.” 공간의 구현은 엔알디자인팩토리의 김나리 소장이 진행했다. 40년 된 오래된 양옥에 현대적인 동시에 한국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현대적 분할이 들어간 유리창살과 옻칠한 한지로 만든 한지문살로 공간을 살렸다. 제대로 된 떡 만드는 것을 배우기 위해 짧은 기간이나마 명인의 가게에서 일하고 숙식을 해결해가며 조리법 또한 익혔다. 현재 가게에서 선보이는 화병은 <반찬등속> 속 레시피를 그대로 구현한 메뉴다. 길게 쳐서 늘인 인절미 위에 달걀 지단과 실고추를 꽃잎처럼 얇게 썰어 장식한 화병은 쫄깃한 식감과 고소한 맛이 어우러진다. 정갈하게 담긴 떡을 먹고 있으면 괜스레 마음까지 단정히 정돈되는 느낌이다. 떡이 고급 디저트가 되기 바라는 강신혜 대표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하다. 부담없이 즐기되 충분히 특별한, 기꺼이 대접받는 느낌이 드는 음식이 되기 바라는 마음이. 그래서인지 청주부엌에서 내는 떡 종류는 많지 않다. 양보다는 질에 집중한다. 두텁떡, 화병 등 ‘고정 칼럼’ 같은 메뉴 옆엔 살구, 초당옥수수처럼 계절과 시기에 맞는 식재료로 만든 ‘특집 떡’이 그 자리를 채운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잡지 출신인가 봐요. 이 공간도 잡지처럼 생각하게 돼요.” 습관처럼 흘러나온 농담을 건네면서도, 청주부엌과 <반찬등속>에 관해서라면 말투가 달라진다. 오래된 조리서를 오늘의 언어로 풀어내는 이 작업은 단순한 복원이 아닌 세대와 문화, 감각을 잇는 일이라 믿기 때문이다. 낡은 조리서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오늘날의 감각으로 이어가는 살아 있는 공간. 잡지처럼 매 시즌을 기획하고 새로운 특집을 준비하는 이곳에는 한 사람의 일생과 가족사, 지역의 전통과 감각, 오랜 기록을 재해석하려는 기획자의 시선이 고루 녹아 있다.

<반찬등속> 속 레시피를 구현한 화병엔 달걀 지단과 실고추를 얇게 썰어 고물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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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포토그래퍼

임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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