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짓기에 대한 고정관념을 없애고 나면 그 자리엔 가족 구성원의 희망 사항과 합리성이 자라난다.
용인에서 만난 이 집은 용도에 따른 변화 가능성을 품은 주택의 진화를 보여준다.
↑ 접이식 도어를 열면 개라지와 소통되어 확장된 모습을 갖게 되는 1층 공간.
사람은 저마다 마음속에 나만의 집을 짓고 산다. 그곳에는 치열한 경쟁도, 과장된 허세도 없다. 편히 몸과 마음을 누일 수 있으면 그뿐. 자연이 있고 사람이 있는 집. 여기에 가족에게 상상력과 영감을 부여하고 필요에 따라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집이라면, 당신도 그런 집에 살고 싶지 않은가? 이런 물음에 명쾌한 해답이 되어줄 집을 방문했다. 올해 초, 용인 동백지구에 집을 지은 오정민, 이재헌 부부. 개라지 하우스 Garage House라고 명명한 이 주택은 겉으로 봤을 때 작은 텃밭을 끼고 있는 ㄱ자형 구조에 현관 옆으로 만든 커다란 또 하나의 문과 페르몹의 컬러풀한 의자를 둔 2층 베란다가 먼저 눈에 들아왔다. 그 외엔 요즘 주택 단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느 주택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낯선 손님의 인기척을 느낀 개가 짖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리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는 웰시 코기 종의 키로와 공중에 매달린 자전거, 오토바이를 둔 유럽식 창고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현관 입구를 창고로 만든 것도 인상적이지만 실내로 들어서면 마감을 끝내지 않은 듯, 벌거벗은 채로 있는 거친 원목 벽 마감이 신선한 자극을 준다.
↑ 컬러 징크 패널과 벽돌을 조화롭게 마감한 개라지 하우스의 외관.
↑ 오정민, 이재헌 부부와 애견 키로의 모습.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 ‘옴니 디자인’과 A.I 건축 사무소에서 설계 쪽 일을 해온 아내 오정민 씨와 네이버의 공간 디자이너로 일해온 남편 이재헌 씨는 초등학생 아들을 둔 40대 부부다. 이들 역시 마당이 있는 집에 대한 로망으로 집을 짓게 되었지만, 전원주택과 아파트에 살아본 경험 덕분에 보다 현실적인 집짓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고 한다. “아이가 태어나자 마당이 있는 평화로운 전원주택에 살고 싶어 경기도 광주에 있는 주택을 얻어 전세로 살아봤어요. 처음엔 지인들을 초대해 매일 바비큐 파티를 열며 즐기고 살았지만 곧 현실에 부딪쳤어요. 갓난아이가 있는 맞벌이 부부에게는 너무도 불편한 집이었고,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주말에는 마당을 가꿔야 했어요. 빠른 도심 생활에 지쳐 쉬어야 할 집이 짐처럼 느껴져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아파트로 이사를 했어요.” 부부가 전원주택 집짓기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된 건 이현욱 소장이 지은 땅콩집을 보고 나서다. 적은 돈으로 내 집을 지을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준 땅콩집이었지만 단조로운 내부 구조는 이들 부부에게 맞지 않았다. 그래서 부부는 직접 집을 지어볼 용기를 냈고, 그들의 집에 대한 철학을 담은 집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흔히 집을 지으면 평생 살 집을 생각하는데, 이런 생각이면 수도꼭지 하나를 고를 때도 죽을 때까지 써야 한다는 생각에 노심초사하죠. 저희 부부는 아이가 성장하면서 환경은 바뀌어야 하고, 직장을 옮기면 이사를 할 수도 있어서 새로운 전입자들이 손쉽게 분위기를 전환할 수 있는 집을 만들었어요.” 224㎡의 집은 흔히 패시브 하우스를 지을 때 내장용으로 사용하는 ESB 보드를 사용해 집 전체를 마감했다. ㄱ자형의 몸체 격인 넓은 집은 오정민, 이재헌 부부의 집이고, 일자형으로 붙어 있는 집은 전세를 주었다. 겉으로 봤을 때는 하나로 보이지만 독립된 현관이 있어 사생활이 보호된다. 창고와 이웃해 있는 카페처럼 아늑한 느낌의 1층 거실 겸 다이닝 공간에서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독립적인 형태의 부부 침실과 아이 방, 욕실이 자리한다. 2층은 천장이 높아 기다랗고 좁은 공간이 넓어 보이는 효과를 준다. 특이한 점은 2층 거실에서 천장을 올려다보면 난간처럼 다리가 보인다는 것. 이 다리는 거실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위치해 있는 남편과 아이의 놀이터로 사용되고 있는 다락방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다락방은 아이 방에서는 계단을 통해 올라갈 수 있고, 부부의 공간에서는 천장을 뚫어 만든 사다리를 통해 올라갈 수도 있는 재미있는 구조를 띤다. “다락방에서 아이와 저에게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놀이터 같은 공간이에요.”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나오는 민용이의 방처럼 봉을 타고 내려오는 구조. 드라마처럼 2층에서 봉을 타고 1층으로 내려올 수 있는 위트도 첨가했다.
1 마치 카페테리아를 보는 듯한 오픈된 주방. 2 이 집을 꾸미는 하나의 요소가 된 마감하지 않은 노출 천장.
이 집의 특징 중 하나는 무게감이 있는 큰 가구가 없다는 것이다. 육중한 소파 대신 캠핑 의자와 빈백으로 연출한 거실, 부부 침실에 제작해 만든 소박한 평상형 침대만 봐도 인테리어는 살면서 채워가고 덧입혀져야 완성된다고 믿는 부부의 철학을 읽을 수 있다.
↑ 다락방을 이어주는 다리에서 내려다본 2층 거실.
↑ 하나로 이어져 있지만 분리되어 있는 소박한 느낌의 부부 침실.
1 부부 침실 천장에 만든 사다리는 다락방으로 이어지고 옆에 만든 봉을 타고 내려오면 1층 입구로 바로 내려올 수 있는 구조가 재밌다. 2 아이 방 한쪽에 만든 기다란 계단은 다락방으로 이어진다. 3 욕실 입구에 만든 세면 공간.
↑ 초등학생인 민현이는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게 게임을 좋아한다. 창문 위에 ‘아빠가 보고 있다’라는 사인 하나만으로 아이에게 긴장감을 주기도 한다.
집 안 곳곳에 재미있는 상상력이 넘쳐나는 집. 이 집의 원천은 ‘개라지’라고 남편 이재헌 씨가 이야기한다. “서구식 주택의 기본 형태로 차고는 모든 창의적인 일의 발상지였어요. 세계 문화의 아이콘이 된 록 밴드나 IT기업의 천재들도 처음 시작은 차고에서였고요. 젊은이들이 열정을 불태우며 연구와 실험실이 되어준 차고야말로 상상력의 방이자 세상을 바꿀 씨앗이 태동하는 공간입니다.” 때론 목공방이 되기도 하고 자동차, 자전거, 오토바이 수리점이 되기도 하며 각종 공구와 재미있는 물건이 가득한 차고는 부모나 아이들에게 보물 창고가 되어준다. TV와 컴퓨터 대신 가족과 함께 취미를 즐기며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는 일명 개라지 하우스. 아이가 있는 젊은 부부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는 집이다.
↑ RC 비행기 조립이 취미인 남편 이재헌 씨를 위한 다락방.
↑ 행잉된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있는 개라지는 이 집의 얼굴이자 상상력을 샘솟게 하는 또 하나의 방이다.
에디터 박명주 | 포토그래퍼 임태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