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집이 새로운 신혼집으로 변했다. 구조 변경을 통해 좁은 부엌을 공간 효율적으로 만들고 포인트가 될 요소에 집중한 중성적인 느낌의 신혼집을 찾았다.
↑ 거실 쪽에서 들어갈 수 있는 침실의 발코니 부분.
이화여대 정문 옆 언덕길을 오르면 20년이 넘은 럭키 아파트가 있다. 언더클래식이라는 남성복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문승현 씨는 이 아파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지금의 신혼집은 부모님과 함께 중학생 때까지 살던 집으로 그동안 전세를 주었다가 결혼을 하면서 공사를 거쳐 그들의 보금자리로 탄생했다. “오래된 아파트라 손을 대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인터넷을 통해 삼플러스 디자인을 알게 됐고 시공 사례를 봤는데 제 취향이랑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문승현, 임윤정 씨 부부는 가능한 무채색을 사용한 집을 원했고 철이나 나무 등의 기본적인 소재를 사용해줄 것을 부탁했다. “직업이 의상 디자이너이다 보니 다양한 색깔의 원단이나 디자인의 의상을 접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집만큼은 눈을 피로하게 하는 요소가 적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벽도 흰색 계열의 벽지를 발랐고 가구도 나무 소재가 들어간 것으로 골랐죠. 또 공간이 너무 밋밋해 보이지 않게 소파가 놓인 벽은 벽돌 시공을 했어요.”
1 좌우로 편하게 밀어서 사용할 수 있는 책장. 책 표지를 볼 수 있게 꽂을 수 있어 데커레이션 역할도 한다. 2 거실에 식탁 용도의 6인용 테이블을 두어 부엌 공간을 여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또 천장을 다 뜯어내고 매끈하게 마감해 실제 28평형인데도 넓어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사는 사람에게 맞춘 실용적인 구조 변경도 진행했다. 부엌 뒤쪽에 세탁실로 나가는 문이 있었는데 벽을 세워서 문을 없애고 냉장고를 두었고 그 대신 서재에서 세탁실로 갈 수 있는 문을 만들었다. “부엌이 좁아서 원래 지정된 자리에 냉장고를 두었으면 답답해 보였을 거예요. 냉장고 자리를 부엌 뒤쪽으로 만들면서 일자형의 시원한 부엌이 되었죠. 간단한 아일랜드 형태의 식탁과 의자를 두어서 혼자 식사를 하거나 간단하게 차를 마실 때 활용하고 있어요.” 상대적으로 공간적 여유가 있는 거실에 6인용의 넓은 테이블과 의자를 두었다. 이 집의 특징 중 하나는 집주인의 요구에 맞게 제작한 슬라이딩 철제 책장이다. 소파 뒤쪽 벽에 설치한 책장은 좌우로 움직이면서 사용할 수 있고 책 표지가 보이게 꽂을 수 있다. “사실 방문을 모두 슬라이딩 도어로 바꾸고 싶었어요. 그런데 여유 공간이 좁아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도 미련이 남아 책장을 슬라이딩 형태로 만들었어요. 잡지나 책을 많이 보는데 책 표지가 보일 수 있게 꽂을 수 있어서 좋아요. 거실 벽에 특별한 작품을 걸지 않아도 책장에 꽂은 책이 계속 바뀌어서 데커레이션 효과도 있고요.”
1 오픈형 드레스 시스템을 설치한 옷 방. 2 현관에도 작은 선반을 설치해 쉽게 책을 볼 수 있도록 했다. 3 남편이 소소하게 모으는 오브제와 피규어. 4 서재 벽에 세탁실로 향하는 문을 만들었다. 모든 문에 공간의 이름을 표시한 점도 재미있다. 5 부엌 뒤쪽의 세탁실 문을 없애고 냉장고를 두어 일자형 부엌을 완성했다. 6 옷장과 침대만을 둔 간결한 침실. 7 아웃도어 폴딩 체어로 꾸민 침실 베란다.잡지나 패션 관련 책을 자주 보는 남편을 위해 현관 벽에도 작은 선반을 만들어 출근할 때도 쉽게 책을 들고 갈 수 있도록 했다. 심플한 침실 베란다에는 인조 잔디를 깔고 아이졸라의 빈티지 폴딩 체어와 빨간색 캐비닛을 두어 야외 베란다처럼 꾸몄다. 캠핑을 좋아하는 남편을 따라서 이제 부인도 캠핑을 시작하게 됐다고. 이곳에 앉아 캠핑용 머그로 즐기는 차 한잔도 소소한 재미다.
남편은 어린 시절 살던 집에 대한 애착으로 아내보다 신혼집 꾸미기에 더 열정을 쏟아부었다. 보편적인 신혼집에 비해 남성적인 느낌이 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부는 이제 몇 달 후면 태어날 딸을 기다리고 있다. 아빠의 추억이 깃든 공간에서 세 식구는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갈 것이다.
에디터 신진수 | 포토그래퍼 박상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