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가치관과 철학은 때론 집을 디자인하는 좋은 재료가 된다. 공간 디자이너 김관수의 첫 집은 ‘나’를 표현하는 것들로 채워져 있다.
↑ 아트월을 사이에 두고 나뉘는 2개의 거실.
↑ 뉴욕 지하철 역에 장식된 레터링을 본떠 만든 액자들.
인테리어 디자인 그룹 이든 아이디의 김관수 대표의 집을 찾았다. 현관이 열리자 귀족적인 외모의 아프간 하운드종 애견 ‘쿠퍼’가 겅중겅중 뛰어나와 촬영팀을 반겼다. 회색과 하얀색이 조화를 이룬 지극히 남성적인 공간에 은빛 갈기털을 휘날리는 쿠퍼는 이 집을 상징하는 오브제 같았다. 들어서자마자 인테리어에서 한 가지 눈길을 끌었던 것은 거실 천장에 두른 회색 띠였다. 이 작은 요소 하나가 평범했던 집을 개성 넘치는 공간으로 반전시키는 열쇠가 되고 있었다.
그는 이 집에 ‘5피트 8인치’라는 애칭을 붙였다. “제 생애 첫 집이기도 하고 당장 결혼할 계획도 없는지라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집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던 중 바뀌지 않는 내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죠. 외모는 헤어스타일이나 의상에 따라 바뀔 수 있지만 다 자란 키는 바뀌지 않죠. 174cm인 제 키를 피트로 환산해 이를 이미지화시키는 작업을 했어요. 우리 집에서는 제 머리까지가 벽이고 그 위로 천장이에요.” 거실 천장을 타고 흐르는 회색 띠는 하얀색 벽에 포인트인 동시에 마치 천장과 분리된 가벽처럼 공간에 입체감을 선사한다. 단순한 색의 조합과 발상의 전환만으로 집주인의 주장과 철학이 드러난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 김관수 대표와 애견 쿠퍼의 모습.
김관수 대표는 스물아홉 되던 해 지금의 회사를 설립했다. 지난 7년간 다음 커뮤니케이션을 비롯해 티몬, 삼성생명, 모츠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기업의 사무실 인테리어와 상업 공간을 디자인해왔다. 본가가 지방인 탓에 고등학교 때 서울로 상경해 서른여섯인 지금까지 혼자 살고 있는 그는 혼자서도 잘 먹고 잘 사는 법이라면 득도의 경지에 이르렀을 정도. 스스로 오늘까지 삶을 이끌어온 자신감이 팽팽하게 느껴지는 청춘이다. 김관수 대표는 이 집에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것들로 채워 넣었다. 그런 이유로 이 집은 그를 관조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학교나 회사 근처에 있는 오피스텔이나 아파트에 살다 보니 제 집에는 그 공간들이 가지고 있었던 특징을 모두 덜어내고 싶었어요.” 낡고 15년 된 79㎡의 아파트는 그의 바람대로 아파트라는 단서가 전혀 보이지 않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 망입 간유리를 통해 방안의 불빛이 새어나오면 카페보다 그윽한 분위기가 완성된다.
↑ 싱크대를 철거하고 바 형태의 수납 공간을 만든 식사 공간.
↑ TV를 놓은 거실에는 주조색과는 다른 원목 가구와 카페트를 매치해 색다른 공간을 만들었다.
집 전체에 부여한 주조색은 평소 좋아하는 짙은 회색과 흰색. 자칫 평범해 보일 수 있는 색상의 조화지만 마감재의 질감을 조화시켜 원했던 미니멀한 스타일은 완성하되, 밋밋하지 않은 공간을 연출했다. 그 예로 거실의 아트월에 안티스타코 기법으로 스케치한 듯한 질감을, 바닥에는 넓은 사이즈의 폴리싱 타일을 깔아 유리알같이 투명한 반짝임을 입혔다. 기존 부부 침실로 사용되던 방을 트고 가벽을 세워 2개의 거실을 만든 것도 주목할 점. 현관과 맞닿아 있는 거실에는 5.1채널로 영화를 볼 수 있는 스크린을 설치한 공간과 TV 시청을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 왼) 검정과 흰색의 대비로 남성미 흐르는 공간을 연출한 욕실. 오) 거울의 배치로 확장감이 느껴지는 드레스 룸.
↑ 왼) 주방 한 켠의 홈바. 오) 시안을 찾는 인테리어 관련 서적.
↑ 매일 쓸고 닦아 정성스레 관리한 김관수 대표만의 공간.
기존 베란다는 좁고 기다란 복도로 변신했는데 아파트의 정형화된 창문을 거둬내고 직사각형의 문을 만들어 이국적인 느낌을 더했다. 집에서는 요리를 하지 않는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부엌 싱크 공간을 없앴다. 대신 바 형태의 수납공간을 만들고 그 앞쪽으로 심플한 식탁을 배치했다. 좁고 길게 뻗은 직사각형의 드레스룸에는 실용적인 11자형의 수납장을 만들었고 욕실은 검정과 흰색의 대비로 남성미가 흐르는 공간을 연출했다. 이 집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은 3개의 방문. 카페의 문처럼 망입 간유리를 달아 밤이 되면 조명 역할을 해준다. 운동을 좋아해서 골프, 자전거, 스키, 스노보드, 웨이크보드 등 다양한 운동을 섭렵할 정도로 다이내믹한 스포츠를 즐긴다는 김관수 대표. 그런 그도 집에서만큼은 호젓이 쉴 수 있는 공간을 꿈꾼다. 5피트 8인치 높이의, 흑과 백으로 나누고 그 안에 섬세한 변주를 불어넣은 79㎡ 넓이의, 기능을 극대화한 거실과 최소화한 부엌으로 구성한 이 집은 주인의 우주로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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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박명주 | 포토그래퍼 임태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