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토랑의 옥상이나 인근 지역에 직접 텃밭을 꾸리는 요리사들이 있다. 열심히 기른 각종 채소와 허브는 수확하자마자 바로 접시에 담긴다. 푸드마일리지 제로에 도전하는 도시 농부이자 요리사들의 텃밭 일기를 소개한다.
‘르 끌로’의 최연정, 최지민 자매 셰프의 1.5평 아담한 텃밭 일기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르 끌로’의 뒤켠에 1.5평 남짓한 공간이 바로 우리의 텃밭이다. 3년 전부터 각종 허브와 샐러드 채소를 기르고 있다. 토마토, 가지, 치커리, 청경채, 비타민, 상추, 루콜라 등은 샐러드 재료로 쓰며 로즈메리, 민트, 바질, 타임 등은 소스 재료로 사용한다. 각종 허브는 고기를 재울 때도 사용한다. 텃밭에서 나는 수확물의 분량이 레스토랑에서 필요한 모든 요리에 사용할 만큼 충분한 양은 아니다. 하지만 소량이어도 신선하고 질 좋은 수확물을 절대 포기하거나 타협할 수는 없다. 작은 규모지만, 5월부터 9월까지는 샐러드에 들어가는 채소의 70% 정도가 텃밭에서 나온다. 실제로 5월 중순부터 매일 오전 11시 반 즈음이면 점심에 쓸 채소를 텃밭에서 수확한다. 씨를 심고, 초록 잎들을 따먹고, 토마토가 붉게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텃밭을 가꾸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한 일상의 행복을 배우고 있다. 더불어 너와 나, 우리가 먹는 식재료를 직접 키우고 요리하는 것에 대한 뿌듯한 자부심이 우리를 요리사로 버티게 하는 힘이 된다.
↑ 텃밭이 한창일 때, 르 끌로의 샐러드에는 갓 딴 채소가 들어간다.
↑ 1 틈틈이 물을 주고 솎아주는 작업을 한다. 2 프랑스어로 밭을 둘러싼 담장을 뜻하는 르 끌로의 실내.
↑ 르 끌로의 최연정, 최지민 자매 셰프.
↑ 1 텃밭에서 수확한 토마토와 치커리에 직접 만든 리코타 치즈와 캐러멜 호두, 레몬 드레싱을 더한 샐러드. 2 베스트 메뉴인 ‘캬슐레’.
‘오키친’ 스스무 요나구니와 오정미 셰프 부부의 평생을 함께한 텃밭 일기
요리의 기본인 식재료에 누구보다 민감하고 제철 재료를 기반으로 한 요리를 선보이는 우리 부부에게 사실 ‘팜 투 테이블’이라는 개념은 단순한 유행과는 거리가 멀다. 뉴욕에서 만난 우리 부부가 브루클린의 그린포인트 지역에 살던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해온 일이 바로 텃밭 꾸리기다. 낡은 공장과 유통 창고가 많았던 그곳의 공간을 십분 활용하고 폐타이어를 화분 삼아 꽃과 허브를 심었다. 각자 셰프로, 푸드 스타일리스트로 바쁘게 일하면서도 쉬는 날이면 친구들을 초대해 수확한 식재료로 요리를 해서 나눠 먹곤 했다. 이를테면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킨포크 게더링’을 십몇 년 전부터 실천해온 셈이다. 한국에 와서는 가회동에 레스토랑을 오픈하면서부터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봉산 안골에서도 작은 텃밭을 가꿨다. 다들 일반적인 무, 배추, 파를 심을 때 래디시, 아티초크, 펜넬, 루바브, 오레가노 등 쉽게 접할 수 없는 이색 작물을 심었다. 국내에서는 구하기 힘든 씨앗은 해외에서 직접 공수해오곤 했다. 음식물 쓰레기나 커피, 약초 찌꺼기를 삭힌 퇴비도 직접 만들어 썼다. 처음에는 도랑 한두 개로 시작한 것이 점점 늘어나 농장 규모까지 됐다가 규모를 줄여 집 근처인 종로구 북촌한옥마을에서 도시 텃밭을 가꾸고 있다. 잎채소와 허브는 물론이고 래디시, 비트, 엔다이브, 아마란스, 딜, 루콜라, 세이지, 바질, 로즈메리, 월계수, 라벤더, 방아, 시소도 빠질 수 없다. 우도에서 가져온 토종 박하도 있고 사계절 내내 키우는 보라지 꽃도 있다. 매일 아침마다 텃밭에 들러 아이를 돌보듯 정성을 쏟아 키운 작물은 피자, 샐러드, 수프, 파스타까지 다양한 요리에 쓴다. 일주일만 보관해도 물러지는 일반 채소와 달리, 직접 기른 유기농 채소는 3주도 너끈히 갈 정도로 신선하고 맛이 뛰어나다. 무엇 하나 버릴 것도 없다. 텃밭에서 무엇을 수확하고 그것으로 어떤 요리를 만들어 먹을지 고민하는 것은 두 번째 문제가 됐다. 오롯이 계절을 느끼고 노동의 즐거움을 맛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 1 매일 아침, 저녁으로 물도 주고 잡초도 솎아내며 정성을 쏟는다. 2 푸드 칼럼니스트와 푸드 아티스트로 유명한 스스무 요나구니와 오정미 셰프 부부.
↑ 1,2 한창 텃밭이 무성한 5~10월에는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채소 중 절반을 직접 키워 쓴다.
↑ 광화문에 위치한 ‘오키친’의 실내.
↑ 1 직접 만든 훈제연어와 오정미 셰프가 좋아하는 보라지 꽃으로 장식한 완두콩 팬케이크. 2 농약을 뿌리지 않아 벌레 먹은 잎을 떼지 않고 뿌리째 깨끗이 씻어 만든 계절 샐러드. 3 텃밭에서 난 루콜라로 만든 페스토로 맛을 낸 파스타. ‘보나세라’ 샘킴 셰프의 비밀의 화원에 관한 일기
내가 일하는 ‘보나세라’의 건물 옥상에는 비밀의 화원이 있다. 1년 전, 쪽파와 고추로 시작해 지금은 애플민트, 로즈메리, 바질, 실버타임, 레몬타임, 라벤더, 방울토마토 등이 자라고 있는 근사한 텃밭이다. 텃밭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아들 다니엘이 태어나고 먹거리에 관심이 많아지면서부터다. 우리가 먹는 식재료를 보면 누가 어떻게 키웠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레스토랑에선 특히나 직접 장을 보지 않고 발주를 넣어 대량으로 식재료를 공급 받으니 직접 키우고 수확하는 등 제로 포인트부터 시작하는 푸드 마일리지에 갈증이 생겼다. 그렇게 텃밭을 만들기 시작했다. 옥상의 텃밭만으로는 생산량이 턱없이 모자라서 부천 집 인근에도 40평짜리 텃밭을 마련했다. 방울토마토, 대추토마토, 완숙 토마토 등 3가지의 토마토와 가지, 애호박, 래디시, 양상추, 로메인, 치커리 등을 키운다. 매일 아침 텃밭에 들러 시든 잎을 솎아내거나 물을 줬고 바쁜 요즘에도 이틀에 한 번꼴로 꼭 텃밭에 들른다. 이렇게 생산한 수확물은 ‘보나세라’의 모든 메뉴에 들어간다. 방울토마토는 곱게 갈아 면포에 밭쳐 반나절이 지나면 맑은 색의 토마토 콩소메가 된다. 식사 전 식욕을 돋우는 애피타이저인데 더치 커피마냥 오랜 시간 내린 유기농 방울토마토즙이 수수하면서 개운한 맛을 낸다. 게 집게살과 직접 기른 타임, 마늘, 올리브유를 버무려 구운 다음 오래 끓여낸 향긋한 비스크는 조미료가 흉내 낼 수 없는 감칠맛을 낸다. 바쁜 요즘 들어서는 텃밭을 꾸리기가 힘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한 아이의 아빠이자 셰프인 내가 직접 키운 수확물로 요리하는 이 소소한 움직임이 분명 대한민국의 건겅한 식문화에 일조하리라는 확신에 오늘도 나는 텃밭을 찾는다.
↑ 매일 오전 옥상 텃밭을 찾아 오늘의 식재료를 수확하는 샘킴 셰프.
↑ 1 갓 따서 싱싱하고 향이 진한 허브. 2 비스크에 쓰일 게 집게살을 구울 때도 들어가는 허브.
↑ 따사한 자연 채광이 들어오고 곳곳에 허브 화분이 놓여 있는 ‘보나세라’의 1층 테라스.
↑ 1 종이포일에 생선과 각종 채소, 허브를 넣고 오븐에 구운 생선찜. 뜨거운 접시에 타임을 올려 먹는 내내 향을 음미할 수 있다. 2 잘게 다진 타임과 로즈메리로 향을 낸 닭 가슴살구이에 직접 수확한 가지와 애호박을 곁들인 샐러드. ‘더그린테이블’ 김은희 셰프의 5년 차 옥상 텃밭 일기
힘들 때마다 옥상에 올라 평상에 앉았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비어 있는 옥상이 허전해 보였고 텃밭으로 채워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5년 전부터 작은 모종을 들여 키우기 시작했다. 자라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 금세 큰 화분으로 옮겨 심는 분갈이를 해야 했다. 1천5백원에 산 바질 모종의 경우 쌈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잎이 되었다. 정말이지 한창인 여름부터 선선해지기 전까지 신선한 바질을 매일 딸 수 있을 정도였다. 부지런하고 충직한 허브의 생명력에 매료되어 열심히 텃밭을 가꿨고 지금은 그 종류가 어마어마해졌다. 15평 남짓의 옥상 한 켠에 있는 작은 텃밭이지만 한련화, 샐러드 버넷, 파인애플 세이지, 이탈리아 파슬리, 루콜라, 비올라, 오레가노, 물냉이, 애플제라늄, 레몬버베나, 방울토마토 등 있을 건 다 있는 허브 텃밭이 되었다. 이렇게 자란 허브와 채소는 따자마자 주방으로 옮겨진다. 다양한 요리에 쓰이는데 그중 코스 요리에 나가는 일명 ‘허브 꽃다발’이 있다. 한 잎 두 잎씩 딴 모둠 허브를 컵에 담아 내는 메뉴다. 그간 접했던 허브 차나 허브 오일과 달리 씹는 순간 몸 구석구석에 퍼지는 신선한 아로마에 반해 리필을 요청하는 손님이 꽤 있다. 사과 퓌레와 구운 가리비가 들어가는 샐러드에도 옥상 텃밭에서 수확한 보물이 들어간다. 얼핏 가리비가 주인공 같지만 바질 오일, 달래 오일, 오디 엑기스 등을 넣고 버무린 허브는 푸른 잎의 깊고 다양한 맛으로 접시라는 무대를 평정해버린다. 틈이 날 때마다 노랗게 시든 잎은 솎아내고 여름에는 매일매일, 봄과 가을에는 2~3일 한 번씩 물만 주면 쑥쑥 자라는 텃밭. 이렇게 키운 허브와 채소는 신선함은 물론 향긋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리고 텃밭을 가꾸는 동안 정화되는 기분은 텃밭이 주는 또 다른 선물이다. 나에게 텃밭은 힐링이다.
↑ 방배동 서래마을에 위치한 ‘더그린테이블’.
↑ 1 지하 주방부터 3층 옥상까지의 발걸음이 힘들지 않은 이유는 늘 푸르른 생명을 아낌없이 내주기 때문이라는 김은희 셰프. 2 옥상 텃밭에서 수확해 바로 주방에서 요리되는 수확물.
↑ 1,2 옥상 텃밭에서 수확해 바로 주방에서 요리되는 수확물.
↑ 섬세한 프랑스 요리를 구사하는 ‘더그린테이블’의 실내.
↑ 1 구운 아몬드 가루에 직접 수확한 방울토마토와 채소 잎을 올린 메뉴인 ‘그린테이블 텃밭’. 2 신선한 허브를 곁들인 가리비 샐러드.에디터 이경현 · 프리랜스 에디터 이지영 | 포토그래퍼 이병주 · 이향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