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밀라노 살로네 델 모빌레에서 만났던 디자이너 하이메 아욘을 서울에서 다시 만났다. 2년 만에 만난 그는 여전히 유쾌했지만, 한층 여유 있고 성숙해진 소년의 모습이었다.

올해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에서 선보일 예정인 신제품이 르 코르뷔지에로부터 영감을 얻었다고 들었어요. 평소 그의 건축을 좋아했나요? 이번 ‘리액션 포에틱’ 컬렉션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어요. 르 코르뷔지에가 그의 부모를 위해 지었던 빌라 르 라크 Villa le Lac에는 그가 어머니를 위해 심었던 나무가 있었죠. 무척 아꼈던 나무였는데 병이 들어 잘라내게 되었어요. 르 코르뷔지에 재단에서 안타까운 마음에 그 나무를 활용한 무언가를 만들어주길 까시나 Cassina에 부탁했고 제가 리미티드 에디션을 만들게 됐죠. 새, 새집, 그네를 만들었는데 모두 나무에서 온 것이고 나무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점에서 재미있었어요. 그 후 까시나를 통해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에서 영감을 얻은 가구들을 만들게 됐죠. 오직 나무로만 만들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나무를 조합하고 연결하느냐를 고민하는 것마저도 즐거웠습니다.
파올라씨를 통해서 콜로세움 모양의 테이블웨어를 선보이기도 했죠. 건축에 흥미가 있나 봐요. 어쩌면요. 그렇지만 주제나 테마에 대해 생각하는 편이에요. 물론 하이메 아욘의 스타일도 첨가해서 말이에요. 파올라씨에서 선보인 뉴 로만 컬렉션도 건축에 집중했다기보다는 그들이 주로 사용하는 소재에서 고대 로마 시대를 떠올렸거든요.
당신에게 협업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모든 브랜드와 잘 맞을 수는 없어요. 디자이너나 브랜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서로 공생할 수 있는 협업이 가장 이상적이죠. 제 스타일을 주장하는 것만큼 브랜드의 고유한 정체성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거든요. 예를 들어 프리츠 한센의 파븐 소파에서는 북유럽 스타일이 느껴져야 했었죠. 이런 부분이 아주 중요하죠.
까시나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까시나는 특히 나무를 잘 다루는 브랜드예요. 장인정신을 가지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격의 브랜드죠. 그 때문에 더욱 좋았어요. 이번엔 나무 하나로 끝장을 보겠다는 일념을 갖고 있었죠.
많은 브랜드와 작업하지만 세라믹 브랜드 보사와 각별한 것 같아요. 물론이죠. 보사는 저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예요. 제가 만든 세라믹을 그냥 구워줄 정도입니다. 같이 재미있는 작업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고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죠. 저는 제 작업을 이해해줄 브랜드가 필요하지요. 때론 미친 사람같이 보여도 말이에요.
당신이 생각하는 창의성이란 무엇인가요? 아주 좋은 레스토랑에 갔다고 가정해보세요. 멋진 테이블과 조명, 완벽한 커트러리까지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상황이죠. 그런데 음식을 내올 때 그릇에서 머리카락을 발견했어요. 그렇다면 이후에 기억 나는 건 뭘까요? 머리카락이죠! 창조적인 디자인이란 머리카락 같은 거예요. 모든 것을 한번에 뒤바꿀 수 있을 만큼 감정적인 동요가 있어야 하죠. 나의 스승이 이 얘길 해주었을 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이제는 알 것 같아요. 창의적인 디자인이란 곧 감정의 동요고 이를 뒷받침하는 건 품질이라고 생각해요.

매번 새로운 디자인을 생산한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요? 마치 헬리콥터에서 뛰어내리는 것만큼 위험성도 있죠. 예전엔 미팅을 하자고 하면 움츠러들기도 했어요. 바카라와 미팅했던 공간은 그들이 루이 14세를 위해 만든 샹들리에가 달린 방이었죠. 상상이 되나요? 하지만 이젠 ‘새로운 것을 보여줄 테니 준비하세요’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즐기고 있죠. 디자인 역시 지금은 예전보다 좀 더 순수하고 정밀한 디자인을 추구하고 있어요.
2014년에 코펜하겐에 위치한 SAS 로열 호텔의 506호 방을 프리츠 한센의 제품으로 리뉴얼했죠. 아르네 야콥센이 설계한 공간에 손을 댄다는 것은 어떤 경험이었나요? 오리지널과 신진 디자인이 잘 어울릴 수 있을지 관건이었어요. 일단 한번 테스트를 해본다는 마음이었죠. 원래의 공간은 그대로 두면서 새로운 느낌을 낸다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았는데 다행히 프리츠 한센의 컬렉션과 공간은 완벽할 정도로 잘 어울렸어요.
당신의 집은 어떤 모습인가요? 스페인 발렌시아에 집을 짓고 있어요. 2년 정도 걸렸는데 이제 곧 완성됩니다. 집을 디자인하고 꾸민다는 것은 정말 재미있고 머리가 아프기도 한 일이에요. 타일 등, 소소한 디테일까지 모두 생각해야 하니까요. 마이클 아나스타시아데스와 스튜디오 욥 등 다른 디자이너의 작품도 함께 어우러진 아주 재미있는 집이 될 거예요.
아빠가 되고 나서 어린이 가구에도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요? 물론 있죠! 그래서 올여름 비트라에서 키즈 워크숍을 진행하며 장난감을 만들 계획이에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인지는 저의 아들을 통해 테스트해볼 예정이에요. 하하.
쉴 때는 주로 무엇을 하나요? 시골로 여행도 가고 맛있는 소시지를 만들기 위한 연구도 해요.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해서 가족끼리 자전거 여행도 하고 클래식 기타도 치죠. 일을 하지 않을 땐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해요. 아들과 보물찾기 같은 게임도 하죠. 최근 헬렌 미렌 주연의 영화 <로맨틱 레시피 The Hundred-Foot Journey>를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처음 한국에 왔는데 어떤 느낌을 받았나요? 뭐든 꼼꼼하게 관찰하는 편인데 서울에 제가 좋아할 만한 것들이 많다는 생각을 했어요. 리움에서 본 설치 미술 작가 양혜규의 전시도 정말 멋졌죠. 미술관도 아름다웠고요. 서울에서도 스케치를 많이 했어요. 이곳에서 생각하고 영감을 얻었던 것들이 언젠가 작품에 녹아들 수 있길 바라요.
이번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에서 기대해도 좋을 만한 것이 있다면요? BMW 미니와 함께 ‘Urban Perspectives for MINI’란 설치 작품을 선보여요. 미니에서 나오는 전기 퀵 스쿠터인 ‘시티서퍼 컨셉트’를 다른 버전으로 디자인했고 초현실적인 루트와 함께 헬멧, 재킷 같은 액세서리류도 디자인했죠. 대리석으로 된 도로, 이를 떠받치는 푸른색 기둥, 황동으로 된 조명 등이 스쿠터와 어우러져 아주 환상적인 도시의 모습을 보여줄 거예요.
에디터 신진수|포토그래퍼 안종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