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로 완성된 가구는 투명 플라스틱 가구에서 느낄 수 없는 아슬함, 두툼한 두께에서 오는 묵직함이라는 상반된 감각을 품고 있다. 주변 환경을 투과시키며 어우러지지만 아찔한 매력으로 존재감을 발하는 유리 소재 가구 이야기.
↑ 네오/크래프트에서 출시한 아이솜은 옆으로 길게 매치하거나 위로 올리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다.
현대 디자인의 시초였던 바우하우스의 철학은 미스 반 데 로에의 명언 “Less is more”를 통해 정점을 찍었다. “간결한 것이 더 아름답다”는 그의 말은 디자이너들에게 꽤 오랫동안 디자인의 십계명으로 받아들여졌고 여전히 유효하다. 그 간결함의 끝은 어디일까? 최신 기술의 집약체인 전자제품, 특히 스마트폰 디자인의 경우 더 이상 뺄 것이 없어 보인다. 여기저기 튀어나왔던 버튼도 아주 최소한만 남겨놓고 액정 안으로 숨겨버렸으니 말이다. 디지털 기기와는 방식이 좀 다르지만 가구들도 모습을 감추고 있다. 나무, 철 등으로 이루던 몸체를 유리로 바꾸면서부터다. 테이블의 상판이나 수납장의 일부만을 이루는 게 아니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유리로 된 가구 말이다. 곧 깨져버릴 것같이 아슬아슬한 매력을 지닌 이 유리 가구를 보면 소재의 투명한 특성에서 오는 긴장감이 느껴진다. 두근거리고 설레게 만드는 무언가 때문에 요즘 디자이너들이 유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 같다.
↑ 1,2 콘스탄틴 그리치치가 디자인한 맨 머신 컬렉션 중 의자와 테이블. 3 콘스탄틴 그리치치가 맨 머신 테이블을 살펴보는 모습.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디자이너 세바스티안 셰러 Sebastian Scherer는 최근 디자인 브랜드 ‘네오/크래프트 Neo/Craft’를 론칭하고 유리 재질의 사이드 테이블 ‘아이솜 Isom’을 출시했다. 아이솜은 육각형의 유리 상판과 하부의 다리 역할을 하는 3개의 유리 판재가 겹쳐지는 구조로, 하나의 상판이 미묘하게 다른 3가지 색상으로 제작된 듯한 착시를 만들어낸다. 또 육각형의 특징인 자유로운 확장성을 지녀 아이솜 유닛들을 활용하면 긴 테이블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능적인 묘미가 있다. 아이솜은 전통적 판재 유리에 CNC 기술을 적용해 제작되며, 가구 제작을 위한 네오/크래프트의 혁신적 노력은 ‘인테리어 이노베이션 어워드 2015 Interior Innovation Award 2015’로 연결되는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 1 벽에 기대어 사용하는 시머 거울은 아랫면으로 갈 수록 투명하게 제작되었다. 2 빛에 따라 그러데이션 색상이 달라지는 모습이 환상적이다. 3 네오/크래프트에서 출시한 아이솜은 옆으로 길게 매치하거나 위로 올리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다. 4 여성스러운 곡선이 특징인 시머 컬렉션.
디터 람스 이후 가장 주목받고 있는 세계적 명성의 독일 디자이너 콘스탄틴 그리치치 Konstantin Grcic도 유리 가구를 선보였다. 프랑크푸르트의 전통 유리 기술자와 협업해 선보인 ‘맨 머신 Man machine’ 컬렉션은 파리의 ‘갤러리 크레오 Galerie kreo’를 위해 8개만 제작된 한정판이다. 맨 머신은 건축과 인테리어에서 주로 사용되는 유압 피스톤 방식의 구조를 적용해 유리가 기능적 가구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의 근육 움직임과 유사함을 가진 무빙 구조는 판재 유리를 접이식 테이블, 등받이 조절 의자, 여닫이 수납장 등 기능적인 가구로 재탄생시켰고 그리치치는 독일의 냉철하고 혁신적인 디자인 정체성을 이 작품에 그대로 반영했다.
스페인 태생으로 밀라노에 거점을 두고 활동하는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파트리시아 우르퀴올라 Patricia Urquiola는 이탈리아 유리 브랜드 글라스 이탈리아 Glas Italia와 함께 2015년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에서 ‘시머 Shimmer’ 컬렉션의 신제품을 공개했다. 합판 유리 소재로 테이블, 콘솔, 선반을 만들었는데 보는 각도에 따라 유리 표면에 미묘하게 생기는 컬러 그러데이션이 아주 환상적이다. 빛과 각도에 따라 변화하는 색상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들인다. 뿐만 아니라 가까이에서 보면 살며시 드러나는 미세한 도트 패턴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낸다. 최소한의 곡면만이 지면과 벽에 맞닿게 디자인했으며 단순한 곡면의 형태가 가볍고 투명한 유리의 재질로 완성되며 당장이라도 공중으로 떠오를 듯한 감정을 이끌어낸다. 유리 소재의 아름다움과 기능적 측면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모두 만족시킨 디자인 작업을 선보인 파트리시아 우르퀴올라에게 유리 소재에 대한 가능성을 물었다.
INTERVIEW
글라스 이탈리아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유리의 매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유리 재질의 투명함을 강조할 수 있는 제품을 떠올렸다. 최종적으로 유리 표면의 빛반사와 굴절을 통해 감각적인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려고 했다. 시머의 표면이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면서 그러데이션과 패턴이 달라지고 일상적인 공간을 감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해준다.
최근 바카라, 카르텔, 글라스 이탈리아 등 투명한 재료를 사용하는 많은 브랜드와 협업했는데 각 브랜드는 어떤 차이가 있었나? 프랑스의 크리스털 브랜드 바카라는 250년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현재까지 이뤄온 고무적인 결과물과 오랜 역사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와 동시에 현재 그들의 기술과 고객들에 대해서도 많이 연구해야 한다. 반면 새롭게 시장에 도전하는 브랜드는 그들만의 새로운 브랜드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이런 브랜드와 일할 때는 자유롭게 디자인 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기술의 발달로 강화유리를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 하더라도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 특별한 기술이 필요할 거 같다. 당신이 가진 아이디어를 얼마나 구현할 수 있었는가? 우리는 테크놀로지가 어디에서 시작되었으며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현실적인 어려움은 이러한 예상과 달리 작고 사소한 문제에서 시작된다. 나는 늘 중요하게 여기고 지키려 하는 것이 ‘엄격함’이다. 우리는 언제나 디자인을 위한 작은 과정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반면 손쉬운 방법이나 지름길을 통한 프로세스는 지양한다. 이번에도 쉽지 않았지만 잘 해결되었고 결과물도 아주 만족스럽다.
이번 신제품 ‘시머 shimmer’의 테이블, 선반을 사각형이 아닌 타원형으로 디자인한 이유가 있나? 유리 재질을 가구 디자인에 적용시키려고 할 때 가장 첫 번째 난관이 강도라고 생각한다. 곡선 형태는 분명 기술적 어려움을 동반하지만 이전에 직선 형태의 유리 가구가 주는 공격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여성스럽고 아주 부드러운 이미지를 전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무, 패브릭, 금속, 세라믹 등 다양한 소재들 가운데 유리만의 매력을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유리는 매우 다루기 어려운 소재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또 하나의 문장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다양한 감각의 뒤섞임을 전해주는 재질이다. 이렇게 감각이 복합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깨지기 쉬운 유리의 특성과 이와 반대되는 강성, 반사, 투명함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구로서 유리의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유리공예는 오랜 전통을 지녔다. 그만큼 다양한 기법이 있는데 아직까지 그 기술이 가구에 모두 적용되지는 못한 것 같다. 유리 가공 기법을 계속적으로 발전시킨다면 기존의 제작 한계가 극복될 것이고 그에 따라 디자인 결과물도 더욱 세련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 김진식(가구디자이너) | 에디터 최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