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비드한 컬러의 벽과 기하학적인 가구로 꾸민 자코모 발라의 딸 엘리카 발라 Elica Balla의 침실. ©GIACOMO BALLA, by SIAE 2021
프랑스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본 ‘수련’의 연못이 그대로 남아 있는 모네의 집은 아름다운 빛을 표현한 그의 걸작처럼 초록으로 칠한 창문과 분홍 벽, 파란 타일, 온통 노란색인 방이 마치 살아 있는 또다른 예술 작품 같았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과거로의 시간 여행으로 예술가를 직접 만날 수는 없지만 그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집을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흥분되는 일이다. 또 예술가에 대한 이해는 물론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다. 최근 로마 국립현대미술관 Maxxi에서는 팬데믹으로 흥미를 잃은 지루한 일상에서 미래주의 화가 자코모 발라 Giacomo Balla의 집을 둘러볼 수 있는 프로젝트로 새로운 활기를 불러일으켰다. 자코모 발라의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로마 오슬라비아에 위치한 그의 자택 카사 발라 Casa Balla를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한 것이다. 이탈리아 중앙 복원 연구소와 이탈리아 은행, 국립현대미술관이 함께 오랜 복구 과정을 거친 지금, 자코모 발라와 그의 딸들의 작품으로 채워진 집을 복원할 수 있었다. 자코모 발라는 전통적인 미술 표현 영역에 다이내믹한 움직임을 묘사하며 새로운 화풍을 선보인 대표적인 미래주의 화가다. 우리가 알고 있는 퓨처리즘, 미래주의 개념은 1910년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전위예술운동으로 기계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산업화 시대를 맞아 움직임, 속도, 역동성을 새로운 예술 소재로 승화시켰다. 자코모 발라는 움직임의 시각적인 환영과 현상을 과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탐구해 고차원적인 묘사 방법으로 표현하며 근대미술 양식의 발전에 크게 공헌한 인물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작품은 ‘끈에 묶인 개의 역동성’으로 걷고 있는 주인의 발과 강아지의 움직임 그리고 흔들리는 끈의 움직임을 마치 만화책에서 봤던 것처럼 역동적이면서 위트있게 표현했다.

엘리카 발라의 침실은 그녀의 작품과 함께 아기자기한 아지트 같은 느낌이다. ©GIACOMO BALLA, by SIAE 2021

자코모 발라의 딸 루체 발라 Luce Balla의 침실은 가구, 인테리어 오브제, 수많은 그림과 조각 등이 어우러져 예술 실험실을 떠올리게 한다. ©GIACOMO BALLA, by SIAE 2021

카사 발라의 복도에는 마티스의 작품 속으로 들어온 듯한 컬러와 패턴의 향연이 펼쳐진다. ©GIACOMO BALLA, by SIAE 2021

복도 한 켠에는 자코모 발라가 딸 루체를 위해 만든 재킷이 걸려있다. ©GIACOMO BALLA, by SIAE 2021
그의 작품처럼 자택 역시 역동적이고 다채로우며 퓨처리스트 자코모 발라의 선구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1929년 부터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아내와 화가인 두 딸과 함께 거주하며 작업을 해온 곳으로, 가족의 손길이 곳곳에 닿은 하나의 문화유산과도 같다. 카사 발라의 정문에서 반기는 ‘Futur Balla’라고 새겨진 명패가 미래 여행을 떠나게 하듯 설레게 만든다. 입구에서 거실로 이어지는 긴 복도는 파스텔 컬러의 추상적인 패턴으로 뒤덮여 낯선 세계로 온 것 마냥 동화적이다. 이곳에서 1972년 베니스 영화 비엔날레 황금 사자상을 수상한 <잭 클레멘테 Jack Clemente>의 이탈리아판 미래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된다고 한다. 복도를 지나면 부엌과 아름다운 욕실, 두 딸의 방과 빨간 서재가 나타나는데 계속해서 변화하는 갖가지 색채 무늬를 보는 만화경처럼 다양한 패턴과 컬러로 눈을 즐겁게 한다. 발라의 가족이 페인트칠을 한 문과 벽 앞에는 직접 만들어 사용한 테이블과 의자, 접시 등 가정에서 사용하는 도구와 오브제가 놓여 있다. 곳곳에는 자코모 발라와 그의 딸들 작품이 함께 놓여 있는데, 이것만 보아도 그의 가족이 얼마나 즐겁고 예술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즐겼는지 상상이 간다.

부엌에는 발라 가족이 만든 가구부터 테이블웨어로 완성했다. ©GIACOMO BALLA, by SIAE 2021

발라가 명상과 사고를 위해 만든 작은방 ‘스튜디오 로소’. ©GIACOMO BALLA, by SIAE 2021

거실에는 자코모 발라가 작업 중이었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GIACOMO BALLA, by SIAE 2021

민트 컬러의 욕실에는 이국적인 타일과 함께 직접 만든 선반이 있다. ©GIACOMO BALLA, by SIAE 2021

자코모 발라의 딸 루체 발라의 침실에 놓인 다양한 유리 작품. ©GIACOMO BALLA, by SIAE 2021
예술 실험실과도 같은 이곳은 자코모 발라가 ‘지속적인 창조’라는 미래주의적인 개념에 기반했기에 평범한 물건과 가구를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직접 만들었으며, 그림이나 조각과 함께 공존하는 창조적인 집이 완성되었다. 오늘날 일상에서 예술을 즐기는 우리처럼 1세기 전 자코모 발라는 평범한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아트를 선보인 것이다. 카사 발라 프로젝트의 큐레이터 도미틸라 다르디 Domitilla Dardi는 이렇게 말한다. “발라와 그의 딸들이 추구하는 미래는 예술과 삶의 연결고리일 것이다. 이는 현재, 즉 우리의 오늘날과 닮아 있다. 1970년대 디자이너들이 이런 접근 방법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지금 그들의 미래가 우리의 현재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카사 발라는 그저 자코모 발라와 그의 작품을 보다 심도있게 이해하는 그 이상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곳에서 어쩌면 뉴노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새로운 통찰력을 발견할 수도 있다. 자코모 발라가 살아 있었다면 과연 어땠을까?

자코모 발라 가족의 거실은 아틀리에를 방불케 하듯 집과 작업실의 혼재를 보여준다. ©GIACOMO BALLA, by SIAE 2021

자코모 발라와 그의 두 딸인 엘리카 발라, 루체 발라. ©GIACOMO BALLA, by SIAE 2021

카사 발라 출입문에 달린 ‘Future Balla’ 명패가 미래로 인도하는 듯하다. ©GIACOMO BALLA, by SIAE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