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URAL & PEACEFUL & WIT

가로수길에 자리한 젊은 작가들의 디자인 스튜디오 구오 듀오의 작업실

가로수길에 자리한 젊은 작가들의 디자인 스튜디오 구오 듀오의 작업실

1995년생의 젊은 작가 맹유민, 이화찬이 이끌고 있는 디자인 스튜디오 구오 듀오의 작업실이 궁금했다.

신사동 가로수길에 자리한 구오 듀오의 두 번째 작업실.

 

구오 듀오의 맹유민, 이화찬 작가.

 

홍익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맹유민, 이화찬 작가는 같은 과에서 만난 것을 계기로 현재 디자인 스튜디오 구오 듀오 Kuo Duo를 함께 이끌고 있다. 좋아하는 음식, 음악, 취향, 생각하는 방식이 비슷했던 두 사람은 어느 순간 단순히 친하다고만 생각했던 부분이 팀워크처럼 나아간다는 느낌을 받았고, 언젠가 함께 스튜디오를 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게 되었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졸업 후 이들은 기존의 관념을 새롭게 넓혀보고 폭넓은 경험을 해보자는 결심으로 가까운 나라인 일본부터 유럽 등지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저는 덴마크 코펜하겐의 세실리아 만즈 스튜디오에서 1년 반 정도 있었고, 화찬 작가는 스웨덴 스톡홀름의 폼어스위드러브 스튜디오와 일본 도쿄의 시게키 후지시로 스튜디오에서 1년 정도 있었어요. 옆 나라인 스웨덴과 덴마크를 자주 왕래했는데, 당시 일하면서 느꼈던 경험과 주변 사람들의 조언에 힘입어 한국에 돌아가면 우리 것을 시작해봐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정말 맥주를 마시면서 가볍게 이야기하다 ‘그래, 오늘부터다!’ 하고 확신을 했죠(웃음)”라며 맹유민 작가가 구오 듀오의 시작을 설명했다.

 

신사동 가로수길에 자리한 구오 듀오의 두 번째 작업실.

 

이들의 작업을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하면, 자연스러움, 평화로움 그리고 위트다. 이들은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새로운 이야기를 할 때도 과연 이것이 자신들한테 자연스러운지 되묻는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억지스럽지 않았으면 해요. 새로운 작업을 시작할 때 기존의 결이나 가치관이 억지스러운 면은 없는지 또 컬러를 선택할 때에도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을 추구하는 편이에요.” 이화찬 작가가 말했다. 이들은 무형적인 것과 내면에서 오는 영감을 바탕으로 작업을 이어간다. 최근 선보인 피스 피스 Peace Piece 작업도 그렇다. 책을 좋아하는 두 작가는 그간 아카이빙해온 예술 서적을 정리하다 우연히 책장을 자세히 살펴보았고 직선으로만 이루어진 것들 사이로 울퉁불퉁하고 울렁울렁한 무언가가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고, 이렇게 시작된 단순한 의문이 매력적인 형태의 북엔드로 탄생했다. “저희가 생각하는 즐거움이나 재미를 시각적으로 만들어낼 때 어떻게 하면 이를 적당한 형태로 발현시킬 수 있을지 고민해요. 항상 익숙하게 봐왔던 기존의 형태, 예를 들어 북엔드 하면 머릿속에 자연스레 떠오르는 모습이 있잖아요. 그런 것을 최대한 새롭게 제안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이화찬 작가가 설명했다. 구오 듀오는 이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레 작업할 사물의 형태를 정한 뒤 평온함과 위트 한 방울을 가미한다. “만드는 행위를 하는 그때만큼은 마음이 편안해지고 즐겁고 행복해요. 아무것도 없는 판 위에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이 상당히 흥미진진해요. 그런 기분을 저희가 작업한 결과물을 보는 사람들한테도 전해졌으면 해요. 그런 이유로 마음에 평온함을 부여하는 부드러운 파스텔 톤을 입히죠. 작품의 이름도 피스 피스 Peace Piece로 지었고요. 평화로운 조각의 의미로요.” 맹유민 작가가 설명했다.

 

신작 피스 피스 시리즈의 북엔드와 바스켓.

 

평소 장난끼 많은 두 작가는 로프가 흔들릴 때의 순간을 포착한 듯한 형태처럼 작품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한번 웃음짓게 만드는 위트를 강조했다. 구오 듀오는 활동 기간이 오래되지 않았기에 지금은 북엔드나 바스켓 등 핸디하고 작은 작업물을 선보이고 있지만, 점차 확장된 피스 피스 시리즈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또한 유럽에서 열리는 작은 기획전에 참여하게 되었다며 조만간 국내외 다양한 곳에서 작품을 보여줄 예정이라며 부푼 기대감을 내비쳤다.

 

전시를 위해 제작했지만 현재 화기를 올려두는 화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클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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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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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E IN B&B ITALIA

파격적인 디자인과 트렌디함을 갖춘 가구 브랜드 비앤비 이탈리아

파격적인 디자인과 트렌디함을 갖춘 가구 브랜드 비앤비 이탈리아

파격적인 곡선형 디자인 체어 세리 업 시리즈부터 BTS가 선택한 모듈 소파 카멜레온다에 이르기까지.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아이코닉한 디자인과 트렌디함을 갖춘 이탈리아 가구 브랜드 비앤비 이탈리아 이야기.

1969년 처음 출시된 세리 업 라운지 체어는 여성을 형상화한 유기적인 곡선 디자인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매년 다양한 가구가 출시되지만,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다. 이유야 수십 가지 일테지만, 단박에 눈을 사로잡는 인상적인 디자인의 가구는 유독 오래도록 머릿 속에 남는다. 1969년처음 출시된 가에타노 페셰 Gaetano Pesce가 디자인한 세리 업 Serie UP 5와 6이 그 중 하나다. 세리업 5는 여성의 신체를 형상화한 유기적인 곡선으로 구성된 암체어로, 당시 얽매이고 억압받았던 모든 여성을 상징화한 묵직한 구 형태의 스툴 세리 업 6과 함께 시선을 사로잡는 전위적인 디자인을 자랑한다. UP 시리즈는 50년 전뿐만 아니라 뉴욕의 모마 MoMA는 물론, 몬트리올의 파인 아트 뮤지엄과 비트라 뮤지엄에서도 영구 소장 중일 만큼 지금까지도 여전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전의 문법을 과감히 파쇄하고 새로운 발상의 디자인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혁신을 추구하는 비앤비 이탈리아 B&B Italia의 철학과 일맥상통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1966년, 비앤비 이탈리아는 이탈리아 가구 산업의 메카로 불렸던 브리안차 Brianza 지역에서 당시 가구 산업의 선구자로 불렸던 피에로 암브로시오 부스넬리 Piero Ambrosio Busnelli에 의해 설립됐다. 당시에는 현재의 브랜드명 대신C&B(Cassina and Busnelli)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점이 꽤나 흥미롭다.

 

남아메리카의 컬러풀한 직물에서 영감을 받은 패브릭을 사용해 역동적인 느낌을 내는 아웃 도어형 소파 리베스 Ribes.

 

스트라이프 패턴을 적용해 위트를 살린 세리 업 라운지 체어.

 

당시 전통적인 가구 제조 방식을 내세우며 이탈리아 가구계에서 큰 입지를 차지하고 있던 까시나와 손을 잡는 파격적인 행보로 그 시작을 알렸기 때문. 이와 동시에 독자적인 가구 제조 기술까지 하나둘 도입하기 시작하며 서서히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특히 그 당시 자주 사용되던 목제 프레임 대신 스틸 구조를 활용한 소파 프레임을 제작해 훨씬 내구성을 높인 기술과 함께 최초로 폴리우레탄 폼 몰딩 기술을 활용한 쿠션을 제작해 디자인의 폭을 넓힌 것은 엄청난 파급력을 불러일으켰다. 그때부터 꾸준히 이어온 새로운 재료와 기술에 대한 연구는 비앤비 이탈리아를 지탱하는 가장 큰 동력이다. 영원히 변치 않는 가치, 타임리스를 표방하는 디자인과 그에 기반이 되는 창의적 발상과 신선한 시도는 모두 소재에 대한 빈틈없는 연구와 앞서 말한 요소를 모두 현실화하는 기술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했기 때문. 미적, 실용적 측면을 갖춘 산업디자인에 주어지는 황금콤파스상을 네 차례나 수상한 것은 그들의 집중과 시도가 옳았음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타임리스를 추구하지만, 가장 동시대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비앤비 이탈리아는 트렌디한 컬렉션을 끊임없이 선보이고 있다.

 

암체어와 다이닝 체어 두 가지 버전으로 출시된 젠스체어.

 

드러운 곡선과 몸을 감싸는 듯한 높은 등받이의 아폴로 소파.

 

마리오 벨리니, 안토니오 치테리오, 나오토 후카사와 등과 같은 세계 적인 명성을 지닌 디자인 대가와의 협업을 통해 정체되지 않는 미학적 발전을 시도하고 있다. 이로 인해 마치 픽셀 같은 모듈형 소파 가구인 카멜레온 다 Camaleonda, 푹신한 폴리우레탄과 고리 모양의 가죽 벨트 같은 디테 일이 인상적인 아톨 Atoll, 마트 Mart 암체어 등 브랜드를 대표하는 감각적인 가구의 향연을 감상할 수 있게 된 것. 또한 비앤비 이탈리아의 사업영역은 주거 가구와 공용 공간 및 호텔 리조트 가구, 선박 가구 등으로 나눠 제조 및 공정 생산 과정을 분리할 만큼 체계적인 제조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데, 이는 디자인은 물론 기능성과 효율적인 부분에 까다로운 눈높이를 지닌 요즘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아웃도어 가구를 전문으로 선보이는 비앤비 이탈리아 아웃도어, 공용 공간을 고안한 비앤비 이탈리아 프로젝트와 같은 세부 라인과 함께 목제 프레임과 정교한 디테일 을 기반으로 프렌치 클래식 스타일의 가구를 선보이는 자매 격 브랜드 막살 토 Maxalto 등 여러 분야에서 비앤비 이탈리아와 동일한 가치관을 공유하 는 가구를 출시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인피니를 통해 비앤비 이탈리아의 가구 컬렉션을 만나볼 수 있다.

카멜레온다 소파

독 Dock 소파.

50주년 기념 세리업 라운지 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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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REAMER’S WORLD

머릿 속으로만 할 법한 기이한 상상을 위트있게 펼쳐낸 공공 예술가 알렉스 친넥

머릿 속으로만 할 법한 기이한 상상을 위트있게 펼쳐낸 공공 예술가 알렉스 친넥

실재와 환상 그 사이에 머무는 공공 예술가 알렉스 친넥은 마치 몽상가의 머릿속처럼 흐트러진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기이하고도 유쾌한 위트로 풀어낸다.

2년 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선보인 작품 ‘A Sprinkle of Night and a Spoonful of Light’. 마치 옷처럼 지퍼를 내리면 하얀 내부가 나타나는 서사를 부여했다. photography by Marc Wilmott

 

자신이 구현한 구조물 옆에 서 있는 알렉스 친넥.

 

구부러진 도로, 배배 꼬인 소화전과 괘종시계, 아무것도 남기지 않을 것처럼 녹아내리는 저택 그리고 종이처럼 찢겨진 빌딩. 그저 한 번쯤 머릿 속에 그려봤을 법한 기이한 상상의 단면이 영국 한복판에 펼쳐졌다. 모두 공공 예술가 알렉스 친넥 Alex Chinneck의 손에서 탄생한 것들이다. 그는 기둥이나 건물, 소화전 등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공공 설치물에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착시효과를 부여한다. 마치 미끄러져 흐르는 듯한 파사드의 ‘From the Knees of My Nose to the Belly of My Toes’, 뒤집힌 채 당장이라도 쓰러져 버릴  것만 같은 송전탑을 형상화한 ‘A Bullet from a Shooting Star’ 등을 사진으로 처음 접하는 이들이라면 두 눈을 의심할 정도. 엔지니어, 건축가, 목수, 화가 등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 및 전문가와 협력해 존재하는 건물에 비현실적인 환상을 부여하는 그와 대화를 나눴다.

 

건물의 중앙부를 부숴 공중부양하는 듯한 착시효과를 낸 ‘Take My Lightning but Don’t Steal My Thunder’. photography by Jeff Moore

 

 

다양한 규모의 공공 예술을 선보이고 있다. 첫 시작이 궁금하다. 8년 전, 버려진 공장 정면에 유리 조각 1248개를 설치했는데, 그 중 312개는 동일한 형태로 깨진 것처럼 고안한 야외 조형물을 완성했다. 그게 공공 미술작업의 첫 시작이었다. 그 후로 영국 전역에서 점점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다. 물론, 대부분의 예술가들의 처음이 그러하듯 페인팅을 가장 먼저 시작했다. 하나씩 완성해가는 과정 자체가 좋아서 미술이라는 장르에 반했고. 하지만 모든 예술가에게 기회가 돌아올 만큼 현실은 공평하지 않더라. 내가 만들고자 하는 것을 표현할 수단을 더욱 늘릴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이유로 조각, 건축, 무대 연출 같은 수단으로 시야를 넓혔다. 나는 이제껏 단 한번도 미술이라는 장르를 떠난 적이 없다.

 

처음 작품을 접했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얼핏 렌더링 이미지이지 않을까 의심했을 만큼 머릿속에서만 일어날 법한 환상이 현실로 나타난 듯했다. 세상을 좀 더 마법처럼 만들고자 익숙한 물질이나 물체, 상황에 일말의 환상을 엮어낸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들의 머릿속에 있는 모든 부정적인 문제로부터 주의를 환기시키고, 그 문제를 떠올리지 않게끔 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들을 보라. 현실과 환상, 사실 그리고 동화를 명확히 판단할 수 없는 행복한 능력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는 성장하면서 이러한 능력을 잃어간다. 좋은 예술은 논리를 따르지만 위대한 예술은 논리를 따르지 않는다는 말을 믿는 편이다. 논리적인 현실과 그렇지 않은 환상을 구분할 수 없게끔 하는 나의 일련의 행동이 현실로부터 순간적이지만 희망찬 휴식을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에 사람들이 잠시나마 공명할 수 있다면 만족한다.

 

사실 그저 아름답기만 한 환상은 아니다. 용해, 지퍼, 꼬임 등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을 뒤튼다. 주변을 둘러싼 일상적인 설치물이나 건축물에서는 일말의 유연성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당연히 여긴다. 그렇게 무뎌지는 거다. 이들에 기이한 유연성을 부여해 주변을 교란시키는 작업을 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늘 당연히 여긴 것들에게서 느껴지는 비일상적인 인상을 부여한 것이다. 사람들한테 주변을 긴밀하게 돌아볼 수 있는 순간을 주고 싶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건물을 구부리거나 집을 녹이고 때로는 일상적인 물건을 꼬는 듯한 작업은 모두 이러한 유연성, 나아가 비일상적인 요소를 부여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건물이 뒤집힌 듯한 기이한 형태를 구현한 ‘Under the Weather but over the Moon’. photography by Stephen O’Flaherty

 

photography by Charles Emerson

 

기둥과 설치물을 꼬아놓은 듯 매듭 짓는 위트를 발휘한 작품. 소화전은 젤리로 제작됐다. photography by Marc Wilmott

 

특정한 상태나 순간을 구현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변하지 않고 그저 머물러 있는 것들에서는 어떠한 신선함과 자극도 느낄 수 없지 않겠나. 우후죽순 솟아나 있는 건물, 도로 한 켠에 놓인 소화전이나 방지턱 등 변화나 주목할 만한 현상 없이 그저 매일 보는 그 상태 그대로인 주변의 것에 우리가 어떠한 반응과 지각 없이 무뎌지는 것은 그러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것들에게 비현실적인 위트를 잠시 불어넣는 것이다. 한번은 왁스로 만든 문과 7500여 개의 왁스 벽돌로 이층 집을 지은 적이 있다. 집은 45일 동안 천천히 녹았다. 이 조각은 매일 모습이 바뀌었다. 유동인구가 많은 기차역 근처의 혼잡한 거리에 위치해 있어서 날마다 통근자들이 그 곳을 지나치며 매일 달라지는 건물의 모습을 보게 된다. 매일같이 다니는 길이지만 그 건물의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을 지켜보면서 그들에겐 자신도 모르게 건물에 대한 서사가 생겨나는 것이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설치했던 작품 ‘A Sprinkle of Night and a Spoonful of Light’ 또한 마치 옷처럼 건물에 지퍼를 달아 여닫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나는 거창한 무언가를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조금의 환상을 불어넣어 우리 주변의 것에 흥미로운 위트와 서사를 불어넣고 싶을 뿐.

 

그래서일까, 흘러내리는 건물, 실컷 꼬인 소화전, 곧 곤두박질칠 송전탑 등을 마주한 이들은 종종 당신을 몽상가라 표현한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웃음). 그렇지만 나는 실행하는 몽상가다. 그저 앉아서 아무런 에너지나 노력 없이 머릿속에서나 기이한 세계를 구축하고 이내 지워버리는 이들과는 엄연히 다르다.  머릿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흥미로운 상상을 물리적으로 현실에 존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오랜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는다. 상상력은 프로젝트의 씨앗을 뿌리지만, 꽃을 피우는 데는 몇 년이라는 인고와 끈기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기 마련이니까.

 

작업의 규모가 커서 협업은 매번 필수적일 텐데. 비단 작업의 규모뿐 아니라 사용되는 재료나 기술 등 상상을 현실로 구현하는 작업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협업을 제안한다.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가의 기술과 아이디어가 어우러지는 작업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들과 함께하는 작업에 있어 프로젝트의 색깔을 잃지 않게 잘 조율해야 하지만, 늘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작업에 임하는 것은 짜릿하다.

 

어려움은 없었나? 타협 없는 진보는 없지 않은가. 당연히 부딪힐 때는 있다. 그러나 타협점을 찾는 일을 두려워하진 않는다. 오히려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일을 망치는 지름길이지 않을까.

 

평형추를 활용해 공중에 갈라진 상층부가 떠 있는 듯한 착시효과를 연출한 것. photography by Chris Tubbs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공개한 지퍼 시리즈. 열린 지퍼 틈 사이로 다채로운 컬러의 LED가 쏟아져나오는 대비 효과를 준 것이다. photography by Marc Wilmott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는 편인가? 외부와 내부 모두에서 얻는다. 외부적 영감은 자주 걷는 거리 혹은 낯선 여행에서 마주하는 건축 등 내가 보고 만질 수 있는 것들, 심지어 우연찮게 들려오는 소음에서도 찾아온다.  내부적인 영감은 쉽게 말해 에너지라고 볼 수 있겠다.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야 한다는 강박과 스스로에게 불어넣는 동기부여가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거친 파도 위에서 더 힘차게 닻을 잡듯 끝없이 몰아붙이는 내면의 갈망이 나를 늘 새로운 작업으로 인도한다.

 

한 인터뷰에서 ‘위험 요소를 꺼리지 않는 것과 야심’을 다른 이들과 구별 짓게 하는 요소이자 당신을 움직이게 만드는 두 가지 메커니즘이라 말한 것을 봤다. 당당히 개척자가 되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위험 없이 발전하는 건 없고 생산이 간단할수록 모방은 쉬워지지 않겠나. 남들이 꺼리는 것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와 진득이 밀어 붙일 수 있는 야심은 작품을 보다 특별하게 만들 수 있는 요소라 생각한다.

 

 

지퍼를 내리면 건물 내부가 보이도록 고안한 작품 ‘Open to the Public’. photography by Marc Wilmott

 

건물이 마치 미끄러지듯 무너지는 모습을 구현한 ‘From the Knees of My Nose to the Belly of My Toes’. photography by Stephen O’Flaherty

 

코로나19는 지역사회의 연결을 느슨하게 했다. 서로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당신의 공공 예술이 느슨해진 연결고리를 이어줄 수 있을 거라 보는가? 예술은 많은 문제로부터 우리를 환기시킨다. 때론 그 문제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생각하게 하거나 잠시라도 우리를 쉴 수 있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특히 요즘과 같은 시기에 더욱 환상을 불어넣는 일을 고집한다. 특히 공공 예술은 마치 열쇠처럼 우리가 고립의 껍데기를 부수고 나올 동기를 부여한다고 믿는다. 예술만이 전할 수 있는 즐거움은 우리가 오래도록 안고있는 이 고통을 덜어낼 수 있을것.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는가? 매일 실내와 실외 환경을 막론하고 크고 작은 예술 작품을 개발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더군다나 이렇게 고립이 이어지고 있는 상태는 내게는 더없이 긍정적인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페인팅이나 조각이 될 수도 혹은 이제껏 시도하지 않은 형태로 실현될 테다. 물론 여행에서 비롯되는 영감이 그리워질 때도 있지만 말이다. 어떤 것을 준비하고 있다고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지는 않지만, 내 프로젝트가 어느 날 한국 한복판에 떡하니 세워질지도 모를 일이다(웃음).

 

A Sprinkle of Night and a Spoonful of Light’는 주변이 어두워지면 다양한 색의 LED가 교체되도록 설계됐다. photography by Marc Wilmott

 

매듭 시리즈의 일환으로 선보인 ‘Growing up Gets Me down’. photography by Charles Em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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