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 마셔요

시들지 않는 꽃을 피우는 나난 작가 개인전

시들지 않는 꽃을 피우는 나난 작가 개인전

 

윈도우 페인터라는 수식어와 함께 시들지 않는 꽃을 피우는 작가로 유명한 나난이 세 번째 개인전을 연다.
그녀의 신작 ‘티타임’을 감상하며 눈으로 마시는 차 한잔의 여유를 누려보길.

 

 

음악의 도입부만 듣고도 노래를 부른 가수를 맞히는 것처럼 그림체만으로 특정 작가를 알아맞히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어쩌면 작가 생명에 있어 마지막 과제일 수도 있는 꿈을 나난 작가는 단숨에 이뤄냈다. 틀에 박힌 캔버스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에덴동산을 자유롭게 펼쳐내며 두터운 팬층을 자랑하는 나난이 반가운 개인전 소식을 알려왔다. 신작 소개에 앞서 그녀의 화려한 과거 이력과 대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싶다. 20대 초반, 광고를 전공한 나난 작가는 우연한 기회로 잡지사에 취직했고 기자와 일러트스레이터로 겸업을 이어왔다. 그러한 그녀의 남다른 활동을 눈여겨본 LG텔레콤에서 20대 초중반을 타깃으로 한 잡지의 편집장을 제안했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남들과 다른 행보를 이어오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삶을 살겠노라 선언한 그녀가 시도한 첫 번째 작품은 바로 윈도우 페인팅이었다.

 

 

“우연히 놀러 간 친구의 집 창문에 그림을 그렸어요. 첫눈에 반한 사람을 만난 듯한 느낌이었죠. 인쇄매체에서 벗어난 해방감도 함께 작용한 것 같아요.” 투명한 창문에 비친 햇빛이 만들어낸 그림자와 안과 밖이 서로 소통하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것을 계기로 나난은 윈도우 페인터로서 첫발을 내디뎠고, 이후 수많은 작업과 전시, 브랜드와의 협업 프로젝트까지 진행하며 존재감을 톡톡히 알렸다. 그다음으로 이어진 작품은 페이퍼 아트워크다. 앞서 예술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중요성을 알게 된 그녀는 관람객과 더욱 친밀히 소통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작품의 영역을 확장했다. 시들지 않는 꽃을 컨셉트로 ‘나난 가드닝’, ‘롱롱 타임 플라워’ 시리즈 등을 비롯해 성인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설치작품까지, 그야말로 작가의 상상 속에서 출발한 나난 월드를 펼쳐낸 것. “제게 있어 자연, 특히 식물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존재예요. 자연으로부터 많은 것을 누리고 빚지고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영감을 지속적으로 받고 얻으니까요.” 자연뿐 아니라 한복 저고리, 까치, 백자, 초충도 등의 한국 전통문화 요소에서 모티프를 얻은 동양적 미감도 엿볼 수 있다. “세상의 많은 작가가 꽃을 그려 세상에 내놓을 텐데 ‘아, 이건 나난이 그린 꽃이구나’ 하고 구별될 수 있으면 했어요. 우리 모두 현대를 살아가고 있으니 작품 또한 현대적으로 재해석해내는 것은 작가로서 당연한 과제겠죠.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와 전통에 대한 지속적 관심을 갖고 공부하는 자세를 필수적으로 갖고 있어야 해요.”

 

이번 전시를 통해 선보일 오브제 작품. 일일이 물감으로 염색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녀의 대표작 ‘롱롱 타임 플라워’.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에 대한 탐구의 결과물은 2Gil29 Gallery 이길이구 갤러리에서 열리는 세 번째 개인전 <티타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우리의 삶 속에 깊이 녹아 있는 종이인 한지를 캔버스와 결합해 새로운 미학적 관점을 담아낸 회화 작품과 오브제를 선보이기 때문. 작가는 불현듯 차를 마시는 시간과 차를 우려내고 건져낸 티백에서 조상들이 남긴 수묵화에서 여백의 미와 농담의 멋을 발견했고 차를 주제로 한 신작을 구상해냈다. 한지는 티백에서 차가 ‘우러나는 멋’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였으며 추운 겨울을 뚫고 가장 먼저 피어나는 꽃으로 강인함과 부활의 의미를 포괄하고 있는 매화가 그림의 주인공이 되었다. “과거 우리 민족은 차 마시는 것을 즐겼고, 오늘날 그 차가 커피로 대체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차를 핑계로 카페에 머물러야 하는 공간과 시간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고요. 작금의 우리 사회가 ‘피로사회’임을 대변하는 것일 수도 있을 텐데요. 이런 것을 사유하다 보니 결국 작가로서 눈으로 마실 수 있는 티타임을 전시로 표현하게 되었어요. 사실 예술, 그림 한 점이 줄 수 있는 의미가 티타임과 다르지 않다 생각하거든요. 제 전시에 오셔서 작품을 통해 티타임하길 바라요”라며 관람객들이 이번 전시를 통해 한 템포 쉬어갔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티타임>전은 2Gil29 Gallery 이길이구 갤러리에서 4월 22일까지.

 

SPECIAL GIFT

나난 작가에게 증정한 끌레드뽀 보떼의 더 세럼은 피부 본연의 힘을 일깨워 생기 있고 매끄러운 피부를 완성시켜준다. 또한 피부에 고르게 퍼지고 빠르게 흡수되어 24시간 보습 효과를 유지시키고 피부의 길을 열어 다음 단계 제품의 흡수를 높여준다. 50ml, 3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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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물결

베르너 팬톤 블랙&화이트 펜던트 디자인

베르너 팬톤 블랙&화이트 펜던트 디자인

 

두 개의 반원이 겹쳐진 독특한 형태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베르너 팬톤의 플라워팟 조명이 코발트 블루, 스윔 블루, 버밀리온 레드, 탱기 핑크, 다크 플럼 등의 컬러를 추가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블랙&화이트 색상의 물결무늬다. 어떻게 보면 경쾌하고 복고풍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1970년에 선보인 플라워팟 조명의 오리지널 버전을 재출시한 것으로 의미 있다. 1970년대의 자유분방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이들의 선택을 받기에 충분히 매력적이다.

 

WEB www.andtradit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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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에 펼친 한국의 미

'조선, 병풍의 나라2' 전시 이야기

'조선, 병풍의 나라2' 전시 이야기

 

병풍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 간직하고 싶을 만큼 멋진 풍경, 장수를 기원하는 마음, 드러내고 싶은 상징 등.
이 모든 마음이 가치 있듯 하나하나가 매력적인 무궁무진한 병풍의 세계로.

 

아무 의미나 목적 없이 서 있는 대상을 보고 ‘병풍 같다’고 표현한다. 뒤에서 누군가를 받쳐주는 역할을 말하는 등 대개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되는 병풍은 우리 의식 속에서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은 그런 병풍을 주인공으로 전시를 열었다. 이번이 두 번째다. 15개 기관과 개인을 찾아가 모셔온 병풍과 소장품을 포함해 총 50여 점을 선보인다.

 

철제 구조물과 금속 프레임을 사용해 연출한 <조선, 병풍의 나라 2> 전시 전경.

 

조선시대부터 근대기에 이르는 우리 병풍의 정수가 담긴 전시 <조선, 병풍의 나라2>다. 병풍은 특히 우리나라에서 크게 발달했다. 전통적인 장식미술은 건축양식에서 영향을 받았다. 석조 건물이 발달한 서양은 벽에 그림을 그린 벽화가, 벽돌로 건물을 만드는 중국은 종이를 벽에 붙이는 부벽화가, 목조 건축이 많은 일본은 문이나 칸막이에 그림을 그린 장병화가 발달한 식이다. 한옥은 온돌방과 마루가 나뉘어 있어 그림을 벽에 걸기가 적절하지 않다. 그래서 발달한 것이 병풍이다. 병풍은 필요에 따라 접었다 펼칠 수 있어 보관과 이동이 편리하고, 공간을 장식하면서 칸막이로도 사용할 수 있어 가구의 기능도 겸한다. 잔치와 제사 등 관혼상제에도 늘 병풍이 함께했다. 왕실에서도 사용했다.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아주 다양한 병풍이 제작되었다.

 

왕실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궁중 병풍 ‘일월반도도 12폭병풍’.

 

이번 전시는 병풍의 ‘형식 Format’에 주목했다. 지금까진 주로 병풍에 담긴 그림이나 역사적 내용에 집중했다면, 병풍이란 장르의 서사와 만듦새, 디테일 등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고미술을 재미없고 따분하게 생각했다면, 그 다채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전시는 사용 및 제작 주체에 따라 민간 병풍과 궁중 병풍으로 주제를 나눠 그 특징을 비교하면서 감상할 수 있게 의도했다. 민간 병풍은 일상생활에 녹아 있는 유머와 자유분방한 해학이 깃들어 있다. 제작 과정에 뚜렷한 규칙이나 법칙이 없기 때문에 개성 넘치는 미감과 스토리를 엿볼 수 있다. 전시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미술관 도입부에 민간 병풍을 설치한 이유도 그것이다. 궁중 병풍을 통해서는 조선 왕실의 권위와 품격 그리고 궁중 회화의 장엄하고 섬세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왕실에서 사용하기 때문에 엄격한 법칙에 의거해 도화서 화원만이 병풍을 제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크기는 컸어도 정형화된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보통 우리나라 병풍은 짝수로 이뤄져 있다. 8폭, 10폭이 가장 많다. 그림은 낱폭으로 구성되기도 하지만 전체를 연결해 하나의 화폭으로 삼는 일지 병풍이 있다. 그리고 병풍이 접히는 부분을 돌쩌귀라고 부른다. 돌쩌귀는 접혀 들어가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 부분에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병풍을 활짝 펼쳐서 모든 낱폭이 하나의 그림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때, 그 길이가 4~5m다. 캔버스 크기로는 500호가 넘어간다. 이런 대형 작품을 몇 번만 착착 접으면 크기가 10분의 1가량으로 줄어든다는 사실이 직접 눈으로 보면 더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이다.

 

매화나무 두 그루가 양쪽으로 뻗어 있는 역동적인 모습을 그린 ‘홍백매도 10폭병풍’.

 

<조선, 병풍의 나라2>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기획한 첫 번째 전시이기도 하다. 전시 과정에서 발생하는 많은 양의 폐기물과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목재 가벽을 설치하지 않았고, 재활용할 수 있는 철제 구조물과 조립식 금속 프레임을 사용해 전시를 연출했다. 일반적인 목제 쇼케이스를 사용하지 않았으면서도, 실제 병풍과 쇼케이스 유리 사이의 거리를 좁혀 더욱 디테일한 미감을 살펴볼 수 있도록 감상자를 배려했다. 현대미술이 미술 시장에서 주류를 이루는 지금, 한국의 전통 미술이 어떤 의의를 찾을 수 있을까 했던 의문 섞인 나의 질문은 기우였다. 병풍을 통해 바라본 고미술은 현대적인 관점으로도 충분히 트렌디했고, 섬세한 붓 터치나 꼼꼼한 마감은 현대미술 못지않았다. 이미 전시회를 다녀간 BTS 리더 RM이 최근 스페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K-수식은 프리미엄 라벨이다. 우리 조상이 쟁취한 품질보증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시라. 전시는 4월 3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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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시스턴트 에디터

강성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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