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마이애미의 아시아 첫 전시 <창작의 빛: 한국을 비추다>가 열린다. 이번 전시 기획을 맡은 조혜영 큐레이터가
DDP의 이간수문전시장에 펼쳐질 한국 디자인의 힘과 공예의 아름다움을 소개한다.

김경희,(Door) , 2022.

김민재, (Ruffled Chair),2025, Marta.
9월 1일 디자인 마이애미 아시아 개막을 앞두고 조혜영 큐레이터는 “어깨가 굉장히 무겁다”며 말문을 열었다. 디자인 마이애미라는 이름의 무게감과 아시아 첫 전시라는 타이틀, 한국 디자인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일련의 일들이 서울을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한 곳인 DDP에서 펼쳐지기까지, 세심한 조율 시간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서울디자인재단(대표이사 차강희)의 지지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서울이 글로벌 디자인 담론을 주도하는 핵심 거점이 되어야 한다는 재단의 의지가 강했죠.”

김윤환, (Unintended Dining Table), 2023, 토드 메릴 스튜디오.
이번 전시의 중심은 ‘K-디자인’이다. 전시 제목인 ‘Illuminated’는 조명(照明)이라는 뜻으로 이어지며, ‘한국 작가들의 창작물을 세계에 비추고 알리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해외에서 이미 자리 잡은 1세대 작가, 해외 갤러리와 꾸준히 협업해온 작가, 그리고 해외에서 떠오르는 신진 작가들을 소개하는 토대를 마련해 향후 한국의 디자이너와 공예가들이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발판을 공고히 하려 한다. 작가 선정 과정에서도 한국의 뿌리 깊은 역사와 전통이 현대 창작 활동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줌으로써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한국 디자인의 독자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서울디자인재단은 한국 디자인의 성장과 서울의 문화적 저력을 보여주고자 했고, 디자인 마이애미 측과 서울디자인재단이 협의를 통해 작가를 선정했습니다. 디자인 마이애미는 한국의 전통도 함께 보여주기를 요청했어요. 한국의 뿌리 깊은 역사와 전통이 현재의 창작 활동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지금까지 이어져온 한국 창작의 흐름을 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어요. 전통과 현재가 공존하는 한국 디자인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박원민, (Stone & Steel Bench), 2025, 카펜터즈 워크숍 갤러리.
조혜영 큐레이터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미션은 바로 전시 공간이다. 자하 하디드 건축가의 DDP 건물은 전시 기획자에게는 언제나 도전적인 공간이다. “DDP는 타일 하나, 천장 높이 하나 똑같은 게 없을 정도로 독특한 공간이에요. 개인적으로 굉장히 존경하는 건축가임은 분명하지만 전시 공간으로서 DDP는 까다로운 공간이기도 해요. 이번 전시가 열리는 ‘이간수문’ 공간의 특별한 의미를 활용해 공간의 특징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했습니다.” 그의 큐레이션 철학은 ‘최소한의 연출’과 ‘보일 듯 말 듯한’ 아름다움에 있다. 아무것도 넣지 않는 게 가장 아름답다는 신념에 따라 건축물 본연의 미학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작품이 돋보일 수 있도록 계획했다. 기둥을 천으로 감싸 구역을 나누고, 조명을 최소화해 작품 본연의 빛깔이 드러나도록 연출할 것이다. 전시 외에도 다양한 부대행사가 마련되어 있다. 특히 조혜영 큐레이터가 가장 기대하는 프로그램은 ‘토크’다. 해외 갤러리 실무자들이 직접 참여해 한국 작가들을 섭외하고 대표하는 이유와 한국 디자인의 매력에 대해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또한 참여 작가들의 아틀리에를 방문하는 VIP 투어 프로그램을 통해 관람객이 작가들의 창작 과정과 철학을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창작자와 작품이에요. 큐레이터의 어원은 ‘관리자’라는 뜻의 라틴어 큐라(Cura)에서 유래했어요. 누군가를 대변하고 치유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죠. 큐레이터로서 이 본질에 충실하고 싶습니다. 작가와 작품이 빛날 때 비로소 큐레이터도 빛난다고 생각해요. 작가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그들의 창작 과정을 깊이 파고드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죠.” 자아를 내려놓고 작가의 의도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작품이 스스로 이야기하게 만드는 것이 그의 큐레이팅 방식이다.

원리, (Unearthed Forms, Scotty). 2023, 찰스 버넌드 갤러리.

정다혜, (A Time of Sincerity), 2025, 솔루나 파인 크래프트.
세계 시장에서 한국의 디자인이 주목받기까지 K 디자인이 큰 힘을 가지게 된 원동력을 조혜영 큐레이터는 한국의 ‘적응력’과 ‘실리주의’로 꼽았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 형성된 ‘프렉티컬(Practical)함’이 김치냉장고나 옹기 항아리처럼 실용적이면서도 지혜로운 창작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해요.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 변화에 적응하며 살아왔죠. 짧은 계절 변화 주기에 끊임없이 적응해야 하는 환경 속에서 우리 민족은 매우 강인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해요. 적응하기 위해 한국인은 매우 실리적인 특성을 갖게 되었어요. 단순히 변화에 순응하는 것을 넘어, 삶의 환경을 개선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혜를 발휘해왔습니다.” 현대 한국 디자인에서도 이런 특징이 강점으로 작용한다. 선조들의 지혜로운 물성 다루기에서 현대 디자인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전통과 현대 기술을 자연스럽게 결합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며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나요. K콘텐츠와 디자인이 디지털 시대의 빠른 변화 속에서 유튜브나 모바일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인들의 뛰어난 적응력과 실리주의가 곧 창의적인 해결책과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이어져, 전 세계가 주목하는 K디자인의 기반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최병훈, (Afterimage of beginning 018-499), 2018, 프리드먼 벤다.
조혜영 큐레이터는 이번 ‘디자인 마이애미’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강한 희망을 드러냈다. ‘우리나라만큼 잘하는 데가 없다’는 그의 확신처럼, 이번 전시에 참여한 해외 갤러리들도 한국 작가들의 잠재력에 크게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재익 작가는 로에베재단 파이널리스트가 된 이후 해외 갤러리 소속이 되어 활발히 활동하고 있고, LA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헌정 작가는 노먼 포스터와 브래드 피트 같은 유명인들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어요. 한국 디자인의 선구자적 역할을 해온 최병훈 작가 역시 해외 갤러리에서 활동하며 한국 디자인의 위상을 높여주었죠. 이러한 뛰어난 작가들이 있기에 한국 디자인은 충분히 지속 가능하다고 봅니다.”

조혜영 큐레이터.
조혜영 큐레이터는 전시를 찾는 시민들에게 이번 전시가 한국 디자인의 아름다움을 쉽고 즐겁게 전달하는 계기가 되기 바랐다. “디자인 마이애미 아시아는 세계적인 브랜딩과 우리의 좋은 디자인이 만나 탄생한 전시예요. 이를 통해 많은 시민이 좋은 것을 경험하고 즐거움을 느끼기 바랍니다. 큐레이팅의 핵심은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 디자인이나 공예에 익숙지 않은 분들도 시각적으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단순하고 명확하게 보여줄 거예요. 누구나 부담 없이 와서 아름다운 사물과 가구를 보며 즐거워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