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한식

세계의 한식

세계의 한식

‘미쉐린 가이드’,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등 글로벌 고메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한식 레스토랑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한식은 이제 단순히 음식이 아닌, 전 세계 사람들을 연결하는 문화적 언어로 자리 잡고 있다. 전 세계 미식가들이 한식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본고장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 한식을 전개하며 뜨거운 미식의 현장에 서 있는 셰프들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내음이 재해석한 양장피 요리. 까맣게 탄 갑오징어에 다진 부추와 당근을 넣고 볶은 후, 캐비아와 디종 머스터드를 얹었다.

 

모던 한식의 시작점, 정식당 뉴욕

정식당 뉴욕의 다이닝 공간.

시그니처 메뉴 중 하나인 김밥 요리. 트러플로 양념한 밥을 김부각으로 감싼 뒤, 방어와 함께 제공한다.

뉴욕점과 서울점 모두에서 사랑받는 돌하르방 디저트.

세계가 한식에 주목하기 훨씬 전인 2011년, 임정식 셰프는 뉴욕의 파인 다이닝 신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당시 그의 목표는 단 하나, 한국에 아직 들어오지 않았던 미쉐린 스타를 따내는 것. 오픈 1년 만에 미쉐린 1스타를 받은 정식당 뉴욕은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2024년 말에 당당히 3스타를 거머쥐었다. 지금이야 혁신적인 시도를 꾀한 한식 메뉴들이 낯설지 않겠지만, 당시만 해도 ‘모던 한식’이라는 단어는 한국인에게조차 생소한 개념이었다. 모든 것은 2007년 임정식 셰프가 스페인의 식당에서 경험을 쌓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페인의 전통 음식을 새롭게 재해석한 파인 다이닝 셰프들을 보며 ‘뉴 코리안’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이를 곧 정식당의 토대로 삼은 것이다.

ADD 2 Harrison St, New York, NY 10013, US WEB jungsik.com

 

INTERVIEW
임정식 셰프

임정식 셰프.

한국이 아닌 뉴욕에 두 번째 매장을 연 이유가 있는가? 당시만 해도 한국에는 미쉐린 가이드가 들어오지 않은 터라, 미쉐린 스타에 대한 열망이 컸다. 별을 한번 받아보자는 일념으로 뉴욕 매장을 시작했는데, 오픈 1년 만인 2012년에 1스타를 받더니, 그 이듬해에는 2스타로 승격됐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그토록 바랐던 3스타를 받게 됐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지금, 미쉐린 3스타를 받은 날로부터 딱 한 달이 흘렀다. 요즘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주기적으로 스태프를 모아 우리에 대한 점수를 매기는 작업을 한다. 아주 작은 것까지 하나하나 채점하고, 2스타 미만으로 평가되는 요소는 없애려고 한다. 3스타를 받자마자 서버가 다운될 정도로 예약이 들어왔는데, 그 예약만 받고 올해 초 일주일 정도 쉬면서 테이블도 한두 개 뺐다. 퀄리티에 좀 더 신경 쓰기 위해 내린 조치였다.

오징어먹물밥 위에 노르웨이산 랑구스틴을 얹은 누룽지 요리.

정식당 뉴욕의 시그니처 요리인 문어 고추장 아이올리.

레스토랑을 오픈한 초기부터 지금까지, 변치 않는 마음으로 고수하는 철칙이 있다면? 단순하다. ‘맛있는 음식을 손님에게 제공하자.’ 2009년 정식당 서울을 오픈하고 만 15년이 흘렀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식당의 본질은 음식과 서비스’라고 생각하고 있다.

식재료 수급 특성상, 서울과 뉴욕의 메뉴에는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 한국에서는 전복 요리가 시그니처 메뉴라면, 뉴욕에서는 문어 고추장 아이올리가 시그니처 메뉴 중 하나다. 퀄리티와 크기를 다 갖춘 완도의 전복을 뉴욕에서는 구할 수 없다. 그 대신 뉴욕에서는 스페인산 문어로 조리했을 때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문어보다 더 좋은 식감을 내서 손님들이 많이 찾게 되었다. 태안의 김 양식업자에게서 직접 공수한 김밥 김이나, 우리가 자체적으로 주문하는 들기름은 향이 15일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뉴욕에서 구할 수 없는 이런 특별한 재료는 서울에서 직접 받곤 한다.

줄무늬 전갱이 요리는 백김치, 간장에 절인 다시마, 감초, 오세트라 캐비아와 함께 제공된다.

처음 정식당 뉴욕을 열었을 때와 현재를 비교하면, 한식의 위상이 높아진 것을 실감하는가? 오픈 초기만 해도 손님들의 반응은 반반이었다. 이제는 한국의 식문화를 포함한 전반적인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걸 느낀다.

가장 좋아하는 한식 재료는? 김치. 한국의 대표 음식이기도 하고, 앞으로 무궁무진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 게 김치다. 언젠가는 김치가 밥과 곁들여 먹는 음식에서 나아가 샐러드 역할을 할 수 있는 컨셉트의 식당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치가 사이드가 아닌 하나의 메인 음식으로 먹을 수 있는 존재가 되는 순간, 한식이 한 단계 더 뻗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예술적 환대가 만드는 경험, 아토믹스

지난여름에 선보인 코스. 아토믹스는 제철 메뉴를 활용해 매 시즌 새로운 코스를 선보인다. © Evan Sung

쥐치와 캐비아를 활용한 애피타이저. © Evan Sung

푸딩처럼 크리미한 식감으로 재해석한 간장게장. © Evan Sung

성게를 곁들인 간장 메추라기 알. © Evan Sung

세계적인 레스토랑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특징은 단순히 요리 맛을 넘어, 식사를 하나의 풍부한 경험으로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디테일한 플레이팅, 현대적 미학, 맞춤형 테이스팅 코스와 환대가 어우러질 때, 식사는 예술 작품처럼 다가온다. 뉴욕의 아토믹스 ATOMIX는 이러한 철학을 잘 보여주는 레스토랑인데, 2019년부터 미쉐린 2스타를 유지하며 2022년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에서 ‘진 마레 아트 오브 호스피탈리티’ 상을 받았다. 박정현 셰프와 박정은 총괄 매니저가 이끄는 아토믹스는 한국 전통의 맛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며, 식사를 하나의 서사적 경험으로 만든다. 한국의 희귀한 재료와 각 코스의 영감을 담은 카드, 한국 장인의 도자기와 직물 등 세심한 큐레이션을 통해 손님에게 한국의 문화와 미학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ADD 104 E 30th St, New York, NY 10016 US WEB www.atomixnyc.com

 

INTERVIEW
박정현 셰프, 박정은 공동대표

아토믹스를 운영하는 박정현 셰프와 박정은 공동대표. © Peter Ash Lee

© Peter Ash Lee

부부가 함께 일하고, 같은 꿈을 이뤄가는 것이 어떤지 궁금하다. 두 사람의 성향은 어떠한가? 박정은 이뤄나가는 것보다 같은 방향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 생각한다. 우리 둘의 성향은 다르지만 음식, 디자인, 사람 등 좋아하는 취향이 비슷하다. 공통된 취향 덕분에 자연스럽게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된다.

정식당에서 셰프로 뉴욕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독립 후 아토보이를 선보였다. 캐주얼 한식당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박정은 아토보이가 아토믹스에 비해 캐주얼한 것뿐이지, 음식이나 서비스 전반을 고려했을 때 단순히 캐주얼하다고 정의하기는 어렵다. ‘아토’라는 브랜드를 연 가장 큰 이유는 지금의 한국 문화를 반영하는 멋진 한국 레스토랑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토보이는 대중이 한식을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기획된 공간이다.

U자형 카운터와 오픈 키친 구성으로 셰프와 친밀하고 가깝게 마주할 수 있는 아토믹스. © Evan Sung

해외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며 가장 고민한 점은 무엇인가? 박정은 우리가 가진 가치와 철학을 직원들에게 우선적으로 전달하고, 그들이 이를 이해하고 소화하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레스토랑과 음식 문화는 개인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팀의 협업으로 이루어진다. 이를 위해 꾸준한 교육과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집중했다. 특히 한식이 아직 모두에게 익숙지 않기에 이런 부분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한식의 어떤 점이 전 세계 미식가들을 매료시키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박정현 한식은 이제 막 글로벌 무대에서 소개되기 시작한 단계다. 한식이 해외에서 일상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고 사람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갈 길이 아직 멀다. 우리 스스로도 한식의 매력적인 부분을 좀 더 고민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박정은 전통과 현지화의 조화다. 전통을 지키는 것은 정말 중요하지만, 현지화가 되지 않으면 그 사회에서 성장하기 어렵다. 문화는 변화하며, 그 변화에 맞춰 성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미식의 실험실, 꼬꼬닥

공간을 가로지르는 아치형 조명이 인상적인 꼬꼬닥 매장. © Jason Varney for Rockwell Group

선명한 그린 컬러가 시선을 사로잡는 알래스카 마티니 Alaska Martini. © Evan Sung for COQODAQ

한입 크기의 치킨 위에 캐비아를 올린 애피타이저 ‘황금 너겟 Golden Nugget’. © Evan Sung for COQODAQ

한국식 프라이드 치킨과 캐비아의 조합을 상상해본 적 있는가? 2017년 뉴욕 최초의 한식 스테이크 하우스 ‘꽃 COTE’을 선보인 사이먼 김이 또 한 번 한식의 경계를 넘는 혁신적인 다이닝을 제안한다. 꼬꼬닥 COQODAQ은 한국식 치킨을 가볍고 캐주얼하게 즐기면서도 샴페인 페어링을 결합해 독특하고 럭셔리한 경험을 선사한다. 주방을 이끄는 김승규 셰프는 미국과 한국에서의 배경을 바탕으로 전통적인 맛과 혁신적인 요소를 결합해 프라이드 치킨의 새로운 해석을 보여준다. 간장마늘과 고추장 글레이즈 등 다양한 맛과 함께 한국 홍삼이 들어간 치킨 콘소메, 파 샐러드, 요구르트 디저트 등 새로운 미식의 장을 열고 있다.

ADD 12 E 22nd St, New York, NY 10010 US WEB www.coqodaq.com

 

INTERVIEW
김승규 셰프

김승규 셰프. © Evan Sung for COQODAQ

꼬꼬닥의 총괄 셰프로 함께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사이먼 김이 프라이드 치킨 컨셉트에 대한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함께 착수하던 프로젝트가 진행될수록 이 역할을 맡고 싶다는 열망이 커져 합류하게 되었다.

지난 10년간 뉴욕의 레스토랑 장 조지에서 프랑스 요리를 선보이며 일했는데,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소감이 궁금하다. 돌아보면 내 어린 시절을 형성한 재료들과 함께 한국적 뿌리로 돌아온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느껴진다. 꼬꼬닥에서 가장 고민이던 부분은 운영 방안이었다. 매우 독창적인 컨셉트가 있으나 참고할 만한 확립된 모델이나 사례가 거의 없었다. 오픈 초기에는 하루 400명 이상의 손님을 맞으며 완벽한 실행과 비전을 함께 실현할 팀 구성에 집중했다. 개업 첫해 동안 이룬 성과와 그 과정에 자부심을 느낀다.

따뜻한 홍삼 닭 콘소메와 밑반찬, 상큼한 들깨국수 등으로 구성된 ‘버킷 리스트 The Bucket List’. © Evan Sung for COQODAQ

프라이드 치킨과 샴페인의 조합이 매우 흥미롭다. 그야말로 완벽한 조합이다. 레스토랑의 음료 프로그램을 책임진 빅토리아 제임스 총괄 음료 디렉터 덕분이다. 그녀가 만든 100달러 이하의 샴페인과 스파클링 와인 100가지 리스트가 매우 자랑스럽다. 그 덕분에 누구나 완벽한 페어링을 즐길 수 있었다.

꼬꼬닥은 고품질의 닭고기와 글루텐 프리 반죽, 프리미엄 오일을 사용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무엇보다 품질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더 나은 프라이드 치킨을 개발하기 위해, 사람과 환경 모두에 이로운 재료를 사용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다르타냐에서 공급하는 동물복지 인증 ‘그린 서클 치킨’을 사용하고, 비종자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제로 에이커 오일’을 사용하며, 글루텐 프리 반죽을 개발해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오이스터 차림. © Evan Sung for COQODAQ

바다송어와 참다랑어, 잿방어 회로 구성된 ‘타르타르 트리오 Tartare Trio’. © Evan Sung for COQODAQ

메뉴 개발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가장 특별한 경험 중 하나는 페릴라 누들 요리를 개발할 때였다. 처음에는 한국 전통 음식 중 하나인 차가운 닭국수에서 영감을 받고자 했다. 이를 위해 서울 근교를 돌아다니며 15개 음식점을 방문했지만, 그 어디에서도 설레게 하는 맛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택시기사 한 분이 간판도 없이 영업하는 숨은 맛집을 추천해주었고, 그곳에서 드디어 특별한 영감을 찾았다. 뉴욕으로 돌아와 이 요리를 재현하기로 결심했고, 이를 메뉴의 ‘버킷 리스트’에 포함시켰다.

세계적으로 한식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셰프로서 어떻게 바라보는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 사람들은 한국 음식의 진정한 매력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세계화를 위해 훌륭한 한국 레스토랑을 늘리고, 대담하고 강렬한 맛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에는 소비자 입맛에 맞춰 변형했지만, 이제는 타협 없이 본연의 모습을 선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토리텔링을 통한 한식의 재발견, 도사 런던

감태와 성게를 올린 비빔밥. 놋그릇에 담아내 한국적 미감을 더했다.

도사 런던의 카운터. 오픈 키친 위로 높이 솟은 금속 천장으로 장식해, 더욱 극적이고 화려한 장면을 연출했다.

낯설게만 느껴지던 문화도 그 속에 담긴 이야기에 주목하면 누구나 쉽게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다. 도사 런던 DOSA LONDON은 바로 그 이야기를 통해 전통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풀어내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공간이다. 한국계 스타 셰프 아키라 백(백승욱)은 서울 청담동에서 미쉐린 1스타를 받은 레스토랑 도사를 런던으로 옮겨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만다린 오리엔탈 메이페어 호텔에 자리하며, 14석 규모의 바 테이블 구조로 설계되었다. ‘도사’라는 이름처럼, 숙련된 셰프의 미식 여정을 게스트 14명만이 경험하도록 하여, 더욱 프라이빗하고 독특한 미식 경험을 제공한다. 셰프의 요리 과정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경험할 수 있는 점이 이곳의 큰 특징이다.

ADD 22 Hanover Square, London W1S 1JP UK WEB www.mandarinoriental.com

 

INTERVIEW
백승욱 셰프

만다린 오리엔탈 메이페어 F&B를 총괄 감독하고 있는 백승욱 셰프.

한식 파인 다이닝 ‘도사’를 런던으로 이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오랫동안 도사를 해외에서 열 생각을 해왔고, 나만의 스타일로 한국 음식을 선보일 적절한 시점을 기다리고 있었다. 런던은 전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인데, 뛰어난 음식과 음료 신을 자랑하는 이상적인 도시라고 생각했다.

이전 매장과 차별화된 점은 무엇인가? 런던의 도사는 14명만을 위한 셰프 테이블로 구성되어 있다. 손님들이 레스토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식사가 끝날 때까지 셰프들이 안내하며 한국에서 영감을 받은 메뉴로 마치 하나의 연극 같은 다이닝 여정을 선사한다. 한국 음식은 이미 꽤 인기가 있지만, 아직 접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교육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셰프 테이블이 그 메시지를 전달하고 선보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 믿는다.

시그니처 메뉴로 선보이는 랍스터 김밥.

도사 청담 출신의 김지훈 셰프가 총괄 셰프로 함께하고 있다. 김지훈 셰프는 두바이와 파리 등 여러 프로젝트에서 함께 작업해왔다. 서울 도사에서도 도와준 바 있으며, 세계적인 경험을 가진 매우 재능 있는 셰프다. 도사는 한국 음식이기에 런던 고객들이 한국 음식에 익숙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요리를 디자인할 수 있는 국제적인 경험을 가진 사람을 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스타일이 나와 잘 맞는다는 점이다.

한식의 어떤 점이 전 세계 미식가들을 매료시키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미식가들은 항상 새로운 것을 찾고 있다. 5~10년 전에는 페루 음식이 주목을 받았다면, 지금은 한국 음식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 음식은 강렬하고 독특한 맛을 지니고 있어 큰 잠재력이 있다.

광어를 미역으로 감싸고, 해물탕과 막걸리 버터를 곁들인 ‘찰광어 Turbot’.

장 트리오를 활용한 숙성 오리 로스.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성공적인 글로벌화를 위해서는 강력한 공급망이 필요하다. 한국은 라면과 고추장뿐만 아니라 신선한 해산물, 장인의 참기름, 갓 수확한 농산물 등 뛰어난 식재료가 많이 있다. 이런 식재료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아야 하며, 적극적으로 수출되어야 한다.

셰프만의 한국 음식을 정의해보면? 한국 음식은 다양한 향신료와 허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발효와 저장 기술을 통해 만들어진 강렬하고 복합적인 맛이 특징이다. 여기에는 장, 저장된 육류와 해산물, 발효된 채소가 포함된다. 이러한 기술은 한국의 사계절을 보내며 영양을 유지하려던 우리 조상이 자연스럽게 개발한 것이다. 한국 음식은 세계 최고의 미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미니멀리즘 한식, 솔잎

브라운 크랩으로 속을 채운 호박꽃. © Rebecca Dickson © Rebecca Dickson

솔잎의 시그니처 메뉴인 무 타르트 타탱. © Shin Miura © Shin Miura

잣 프랄린을 활용한 몽블랑. © Rebecca Dickson © Rebecca Dickson

모시, 삼베 등 한국적인 소재로 정갈하게 꾸민 솔잎 다이닝 룸. © Rebecca Dickson

2020년 런던에 문을 연 솔잎 SOLLIP은 한식의 본질을 현대적 미학과 결합해 깊은 미식을 선보이는 레스토랑이다. 박웅철 셰프와 기보미 페이스트리 셰프 부부는 단순하면서도 정제된 맛과 간결한 디자인을 통해 한국의 맛과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며, 오픈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미쉐린 1스타를 획득했다. 이는 영국에서 한국인 최초로 미쉐린 스타를 받은 기록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솔잎의 요리는 얼핏 보기엔 한식과 거리가 멀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그 안에는 깊은 한국적 맛과 식재료가 숨어 있다. 막걸리 소르베, 감태 애피타이저처럼 유럽 요리법을 활용해 한국적 맛과 식재료를 독창적으로 재해석했다. 단순히 퓨전을 넘어 한국적인 정체성을 담아내며, 전통과 현대가 조화된 새로운 미식을 제안한다.

ADD Unit 1, 8 Melior St, London SE1 3QP UK WEB www.sollip.co.uk

 

INTERVIEW
박웅철 셰프

박웅철 셰프. © Rebecca Dickson

런던에 솔잎을 오픈하게 된 이유는? 기보미 페이스트리 셰프를 프랑스 요리학교 르 코르동 블루 런던 캠퍼스에서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다. 런던으로 돌아온 가장 큰 이유는 이곳이 두 사람에게 특별한 추억이 많은 장소였기 때문이다. 제주도 호텔에서 5년 정도 근무한 뒤, 런던에서 우리만의 공간을 오픈하고자 했다.

오픈한 지 1년도 안 되었는데 미쉐린 1스타 타이틀을 얻었다. 팬데믹의 영향이 있을 때라 온라인 시상식을 진행했고, 그 전에 화상 미팅을 통해 별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 단어나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팬데믹과 함께 오픈한 터라 별은 단순히 기쁨을 넘어 고생했다고 다독여주는 듯한 의미였다. 미쉐린 디렉터인 그웬달 풀레넥이 해준 말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London is yours.” 이 짧은 한마디가 마치 “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 웰컴 투 런던”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된장을 베이스로 만든 소스를 곁들인 어린 비둘기 디시. © Rebecca Dickson

막걸리 코코넛 소르베. © Rebecca Dickson

차별화된 전략은 무엇이었나? 런던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것이 차별점이라 생각한다. 단순히 한식 요소를 서양 형식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음식, 공간, 서비스 전반에 한국적인 스토리를 조화롭게 녹여내려 했다. 이를 위해 오픈 전부터 한국적인 요소들을 억지스럽지 않고 은은하게 스며들도록 찾는 과정이 필요했고, 이는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다.

한국적인 소품 등 인테리어에도 신경 썼다고. 다이닝 룸의 높은 창에는 커튼 대신 모시와 옥사를 사용해 가리개를 달았고, 삼베를 음식 프레젠테이션에 활용하고 있다. 한국 작가들의 식기와 옹기는 다이닝 룸 선반에 배치해 자연스럽게 한국적인 분위기를 보여준다. 화장실에는 편백나무와 소나무 오일을 블렌딩한 천연 디퓨저로 솔잎 향을 더했다. 다양한 요소가 지나치지 않으면서도 조화롭게 어우러지기 바랐다.

계적으로 한식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셰프로서 바라보는 관점은? 사람들이 한식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띈다. 단순히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데 그치지 않고, 한식에 담긴 역사와 정서, 그리고 지역마다 다른 특징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발효음식이나 정성을 담아내는 과정, 그리고 재료의 조화가 해외에서 큰 공감을 얻어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에피소드가 담긴 메뉴, 내음

감자 크레페, 김치 사바용, 돼지 볼살로 만든 춘빙. 중국 전통 요리를 한국식으로 재해석했다.  © John Heng

내음의 전경. © John Heng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때 오픈한 내음 NAE:UM이 2022년 미쉐린 1스타를 받고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전통적인 한국의 맛에 모던한 서양의 테크닉을 가미한 덕분이다. 레스토랑 이름인 ‘내음’은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향기를 의미한다. 매 순간의 추억을 중요시하는 셰프에게 좋은 음식과 그 향은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한석현 셰프의 추억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에피소드’ 메뉴는 6개월마다 새롭게 리뉴얼되며, 한국 식문화와 그에 얽힌 경험을 보여준다. 현재는 여덟 번째 에피소드, ‘화교의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해가는 중이다. 한국식 중화요리에 대한 한석현 셰프의 기억과, 싱가포르 차이나타운 근처에 위치한 내음의 위치적 특징에서 착안한 이야기다.

ADD 161 Telok Ayer St, 068615 Singapore WEB naeum.sg

 

INTERVIEW
한석현 셰프

꾸준히 선보이고 있는 요리 중 하나인 메밀면. 캐러멜라이즈한 제주 돔베 고기를 올려 바삭한 식감을 더했다. © John Heng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 한식을 선보이는 이유가 궁금하다. 싱가포르에 오기 전 레바논, 아부다비 등 해외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오랜 기간 해외에서 지내며 느낀 점은 한국 요리를 선보이고 대변할 만한 곳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해외의 한식당들은 보통 전통적인 한국 음식을 선보이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조금 더 현대적이면서 혁신적인 한국의 미식 문화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으로 내음을 열게 되었다.

셰프로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가? 진정성과 진실성. 팀원들에게 마음을 열고 진심 어린 태도로 대하며 다 함께 같은 목표로 향하고자 한다. 음식에서 중요한 건 맛뿐만이 아니다. 향, 함께한 사람, 마음 등이 어우러져야 비로소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할 수 있게 된다. 음식을 선보일 때, 내 이야기를 함께 곁들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내음의 여덟 번째 에피소드 ‘화교의 여정’에서 선보이고 있는 스낵 메뉴. © John Heng

내음을 운영하는 한석현 셰프. © John Heng

내음의 시그니처 메뉴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에피소드’가 바뀔 때마다 메뉴에 변화를 주고 있지만,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유지하고 있는 요리 중 하나가 메밀면이다.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일요일마다 해주시던 김치국수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요리다. 메뉴를 연구할 때는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추억을 바탕으로, 당시 감정을 재구성하며 영감을 얻곤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식의 위상이 높아진 것을 실감하는가? 세계적으로 한국 음식의 인기가 대단한 것 같다. 근처 편의점에만 가도 한국 음식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처음 레스토랑을 운영할 때만 해도 대부분 싱가포르 현지 손님들이 많이 방문했는데, 이제는 미국은 물론 루마니아, 조지아 등 세계 각지의 손님들이 우리 음식을 찾곤 한다.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을 운영 중인 지금,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하다. 내 요리 철학과 함께 나만의 방식으로 전개하는 한국 음식을 지속적으로 전파하고 싶다. 지난해부터는 구움이라는 스테이크 하우스를 열어 좀 더 캐주얼한 다이닝 신을 전개해가고 있다.

특별히 좋아하는 한국의 식재료가 있다면? 한국의 대파와 실파, 그리고 된장과 고추장을 비롯한 장을 좋아한다. 어릴 적 맛본 할머니의 백김치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이를 메밀면 양념으로 재탄생시키기도 한다. 술과 함께 즐기기 좋은 페어링 궁합을 소개해달라. 최근 비 오는 날 마르텔 XXO코냑에 호떡을 함께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미국에서 전개하는 소주 칵테일, 리셉션 바

리셉션 바의 칵테일 중 하나인 ‘미국’은 타로 소주, 스위트 베르무트, 앙고스투라 비터스를 조합해 맛을 냈다. © Minu Han

리셉션 바의 외부 전경. © Minu Han

시그니처 메뉴 중 하나인 ‘말차 메도우’. © Minu Han

한국계 미국인 케이티 루 Katie Rue가 뉴욕에 ‘뉴 코리안 크래프트 소주 바’인 리셉션 바 Reception Bar를 오픈한 것은 자신의 문화적 유산에 대한 사랑과 존중에서 비롯됐다. ‘충분히 한국적이지도, 충분히 미국적이지도 않다’는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바에 고스란히 담아낸 것이다. 모든 칵테일의 베이스는 소주이며, 말차, 고추, 계화 등을 소주로 담가낸 ‘하우스 인퓨즈드 소주 House Infused Soju’ 또한 리셉션 바의 오리지널 메뉴다. 소주 칵테일의 맛을 미국인 입맛에 맞게 맞추는 대신, 케이티는 자신에게 의미 있는 재료를 강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리셉션 바만의 독창적인 음료를 선보이는 중이다.

ADD 45 Orchard St, New York, NY 10002 US WEB receptionbar.nyc

 

INTERVIEW
케이티 루 오너 & 바텐더

리셉션 바의 오너 겸 바텐더 케이티 루. © Minu Han

한국 소주에 집중한 특별한 이유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영향으로 소주가 친숙하게 느껴졌기에, 내가 선보이는 술의 베이스는 소주가 되어야만 했다. 소주는 보드카를 비롯한 맑은 술보다 깊은 맛과 균형감이 있으며, 다른 맛의 풍미를 강조해주는 훌륭한 수단이 되어주기도 한다.

리셉션 바만이 가진 차별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일반적인 주류나 칵테일을 찾아볼 수 없다. 모든 메뉴는 목적을 가지고 신중하게 만들어지고, 고객들은 특별한 음료와 맛을 경험하기 위해 우리 레스토랑을 찾는다.

대표 메뉴에 대해 설명해달라. ‘말차 메도우 Matcha Meadow’라는 메뉴는 사실 말차가 아닌 한국 배를 강조하는 메뉴다. 한국 배의 육즙과 바삭함, 그리고 유럽 배와의 차이를 액체 형태로 묘사하기 위해 많은 실험을 했다. 결과적으로 말차와 재스민의 풀잎과 꽃 향으로 한국 배의 관목을 표현하게 되었다. 한국의 배는 갈비를 재울 때처럼 다른 음식의 맛을 향상시키는 데 사용되지 않는가. 그 과정에서 착안한 아이디어지만, 이 음료에서는 반대로 한국 배가 주인공인 셈이다.

직접 담금 소주를 빚기도 한다고. 어렸을 때 인삼, 도라지, 대추를 술에 담그는 할아버지를 보며 처음으로 담금 소주를 접했다. 어른이 되어 그 맛을 직접 느껴보니, 그 과정에서 우러나는 풍미와 가능성에 눈을 뜨게 되었다.

 

런던에서 만나는 전통주, 오감 타파스 바

시그니처 칵테일 중 하나인 ‘단지’는 누룽지와 쌀 음료를 활용해 고소하면서도 달콤한 맛을 낸다. © Vladimir Studenic

런던에서 오감 타파스 바 Ogam Tapas Bar를 운영하는 김태열 바텐더는 외국 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2011년부터 전통주를 활용한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많은 바텐더가 한국 술의 가능성에 대해 의구심을 품던 시기인데, 한국인으로서 우리 술을 더 널리 알리고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그는 수많은 대륙을 돌며 바텐딩을 해왔지만, 한국 전통주만큼 잠재력이 큰 술은 없다고 생각해 이를 유럽에 제대로 소개하고자 오감 타파스 바를 운영하게 되었다.

ADD 10 Chapel Market, London N1 9EZ UK WEB ko.ogamtapasbar.com

 

INTERVIEW
김태열 바텐더

오감 타파스 바를 운영하는 김태열 바텐더.

‘한강의 기적’. © Vladimir Studenic

‘달콤한 서울’. 어린 시절 즐겨 먹던 청포도 사탕에서 영감을 받아 화요, 청포도 사탕, 레몬 주스와 탄산수를 활용해 만들었다. © Vladimir Studenic

오감 타파스 바만이 가진 차별점은? 전문 바에서 김치전과 김치장아찌를 선보이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한국적인 특색을 살리기 위해 시즌별로 유자, 매실, 오미자, 모과, 인삼, 야관문 등 한국 고유의 재료로 만든 가공 청으로 직접 리큐르와 코디얼을 생산해 칵테일 재료로 활용하고 있다.

시그니처 메뉴에 대해 설명해달라. ‘한강의 기적’은 전통주 특유의 누룩 향을 자몽과 파인애플로 조화롭게 다듬어 2013년 대회에서 처음 개발한 칵테일이다.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2015년 OECD 만찬주로 선정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현재까지 세계 주요 국가 행사와 국빈을 위한 자리에서 꾸준히 사용되는 칵테일이 되었다.

인상 깊었던 손님은? 세계 각지에서 런던을 방문하는 이들이 우리 바를 찾아오는데, 손님들이 자신의 나라에도 비슷한 맛의 요리나 음료가 있다는 사실을 공유한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각자 고유의 미식 경험을 기준으로 삼다 보니 새로운 요리를 접하고 영감을 얻게 되기도 한다.

추천하는 페어링 궁합이 있다면? ‘담솔 소다’와 잉글리시 블랙퍼스트의 조합. 이 조합은 지리산의 자연을 런던 한가운데에서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한국 전통주의 홍보를 위해 특별한 노력을 하는가? 숍을 오픈한 2019년부터 ‘이강주 UK’를 설립해 전통주 보급에 힘쓰고 있다. 생막걸리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런던 엘리펀트&캐슬 지역에 양조장을 설립하여 생막걸리, 청주, 증류식 소주를 직접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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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계절, 부담 없이 속을 달래주기 더없이 좋은 육즙 가득한 딤섬 맛집 세 곳.

비싼 만큼 훌륭한 맛, 모트 32 서울

비취 관자교

블랙 트러플 메추리알 샤오마이

해산물 산라 소룡포

서울 고속터미널역과 연결된 파미에 스테이션, 이곳은 한 번 발을 들이면 미로처럼 복잡한 동선에 길을 잃기 십상이다. 특히 모트 32 서울을 찾아가려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간 다음,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야만 도착할 수 있다. 까다로운 접근성에 한숨이 나올 법하지만, 그 문턱을 넘는 순간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어두운 조도와 화려한 샹들리에, 세련된 모던 차이니스 레스토랑의 분위기가 강렬하게 시선을 사로잡는다. 정신 없이 분주한 아래층 푸드코트와는 완전히 대조되는 고급스러운 공간이다. 이곳에서 맛본 메뉴는 딤섬 세 가지와 식사 메뉴 두 가지. 먼저 해산물 산라 소룡포는 비주얼은 훌륭하지만, 매운맛이 꽤 강렬했다. 산라의 특징인 얼큰함을 넘어서 캡사이신의 매운맛이 속까지 아리게 하는 수준이라 저녁 메뉴로는 호불호가 갈릴 듯했다. 매운맛이 부담스럽다면 점심에 제공되는 기본 소룡포를 추천한다. 이어서 블랙 트러플 메추리알 샤오마이는 트러플의 진한 향과 반숙 메추리알이 어우러져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맛을 선사했다. 딤섬에서 반숙 메추리알을 만나는 경험은 흔치 않아 그 자체로 신선해 인상적이었다. 캐비아가 올라간 비취 관자교 역시 비주얼이 좋았다. 통통한 관자와 탱글한 새우살이 씹히는 식감은 좋았지만, 캐비아의 존재감은 다소 미미했다. 다만 쫀득한 피가 입안에서 즐거운 식감을 더해줘 기억에 남는다. 식사 메뉴로 선택한 첨면장 반면은 만족도가 아주 높았다. 분명 우리가 아는 짜장면 맛이긴 한데, 한층 더 깊고 진했다. 녹진하면서 달달한 소스와 수타면의 탄력 있는 식감, 그리고 통통한 새우살이 어우러져 고급스러운 중화요리의 정수를 보여줬다. 반면 사천식 탄탄면은 무난했다. 깨의 고소함이 은은하게 어우러졌지만, 기대한 단맛은 부족하고 얼큰함이 더 강했다. 이 외에도 모트 32 서울의 메뉴는 결정장애를 불러일으킬 만큼 다양했다. 고가의 메뉴가 많아 연말연초, 혹은 중요한 모임이나 격식 있는 식사 자리로 추천하고 싶다. 길을 헤매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지만, 그 어려운 길 끝에 펼쳐지는 모던 차이니스 레스토랑의 화려한 분위기 속에서 고급스러운 식사를 즐기고 싶다면, 모트 32 서울은 분명 한 번쯤 찾아가볼 가치가 있는 곳이다.

INSTAGRAM @mott32seoul EDITOR 원지은

 독창적 딤섬, 티엔미미

딤섬 세트

마늘새우찜

디저트 딤섬   

2024년 <흑백요리사>로 뜨거운 관심을 받은 정지선 셰프의 레스토랑 티엔미미. 딤섬을 중심으로 한 광동식 중국요리를 선보이며, 강남점과 홍대점 두 곳을 운영 중이다. 치열한 예약 경쟁에서 실패하고 홍대점에서 현장 웨이팅으로 방문했다. 티엔미미는 오전 11시 이전(런치)과 오후 3시 이전(디너)에만 웨이팅 접수를 하며, 웨이팅 명단에 이름만 올리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식사가 가능해 여유롭게 기다릴 수 있다. ‘딤섬의 여왕’답게 레스토랑의 시그니처는 역시 독창적인 딤섬이다. 바질, 트러플, 마라, 날치알 등 특별한 재료를 더해 풍미를 살린 다양한 딤섬은 시각적 즐거움과 함께 색다른 맛을 제공한다. 무엇을 주문해야 할지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세트 메뉴도 준비되어 있다. 다양한 딤섬과 대표 요리를 코스로 즐길 수 있는 티엔 세트를 선택했다. 오이무침과 마늘새우찜으로 가볍게 시작해 날치알새우딤섬, 부추새우딤섬, 바질쇼마이, 트러플쇼마이의 딤섬 4종이 이어졌다. 이 딤섬들은 모두 새우가 주재료이기에, 가미된 재료의 역할이 더욱 중요할 터. 존재감을 가득 드러내기 바랐으나 기대와 달리 은은하게 스쳐가는 맛이라 다소 아쉬웠다. 식감은 속이 꽉 차 있어 육즙이 풍부하기보다는 뭉친 듯한 느낌이었다. 부추새우딤섬이 클래식하면서도 가장 만족스러운 맛을 선사했다. 다양한 딤섬을 깊이 있게 즐기고 싶다면 세트 메뉴보다 단품을 주문하는 편이 나을 듯하다. 튀김 요리도 뛰어난데, 추가로 주문한 춘권은 새우, 부추, 달걀이 가득 들어 있는 알찬 맛으로 만족스러웠다. 후식으로 등장한 튀긴 바나나 딤섬은 얼린 바나나를 카다이프로 감싸 튀겨내, 바삭함과 차가운 단맛이 어우러지는 독특한 디저트였다. 티엔 세트에 포함된 동북 꿔바로우와 어향완자가지는 각각 새콤달콤한 소스와 촘촘히 칼집을 낸 가지튀김의 식감과 맛이 인상적이었다. 1인 기준 5만원으로 즐길 수 있는 티엔 세트는 다양한 요리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선택이지만, 특정 요리에 대한 기대가 크다면 개별 메뉴로 주문하기를 추천한다.

INSTAGRAM @tianmimi_hongdae__ EDITOR 원하영

 한 알 한 알에 담긴 섬세함, 포담

샤오마이

가지딤섬

구채교 

‘담백한 음식을 만두피에 담다’란 의미를 갖는 포담. 현대카드 재직 중, 베이징에 1년여 간 파견근무를 하러 간 포담의 윤석권 대표는 그곳에서 딤섬의 매력에 빠져 현대카드를 퇴사하고 지금의 식당을 열게 됐다고 한다. ‘높은 연봉을 주는 대기업을 제 발로 나가고, 불안정성이 가득한 자영업의 세계에 발을 들이다니, 딤섬의 매력이 그 정도란 말인가?’ 홀로 의문을 품으며 주말 저녁 방문한 포담은 이른 시간부터 대기 줄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오후 6시30분 예약을 한 터라 당당하게 식당에 들어섰는데, 돌아온 대답은 앞시간의 손님들이 한꺼번에 밀려와 약간의 대기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 당황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협소한 공간이라 그럴 수 있겠다 싶어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잠시 후 자리에 앉아 주문한 메뉴는 가지딤섬, 구채교와 샤오마이. 손님이 많아 요리가 늦게 나올지 않을까 걱정한 것과 달리 빠르게 서빙되었다. 포담의 시그니처 메뉴 중 하나인 가지딤섬은 가지 속에 다진 고기와 새우를 넣은 뒤 튀겨낸 딤섬이다. 가지의 물컹한 식감을 선호하지 않아 걱정을 품고 입에 넣었으나, 속에 실하게 차 있는 재료들과 바삭하게 튀겨진 가지 겉면 덕에 포실포실한 식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이후 나온 구채교의 쫀득한 피 속에는 새우와 부추가 담겨 담백한 맛을 자랑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만족스러웠던 샤오마이는 겉면의 김과 위에 얹힌 날치알이 속재료와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한 판으로는 아쉬워 추가로 한 번 더 주문했다. 세 가지 딤섬을 맛보며 느낀 점은 딤섬의 속을 너무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딱 적당한 양으로 채워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포담은 일관된 맛을 위해 만두소 중량을 저울에 일일이 재서 동일하게 만든다고 한다. 딤섬에 대한 윤 대표의 섬세한 열정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INSTAGRAM @dimsumxmore EDITOR 문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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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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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Tradition

가장 한국적인 동시에, 가장 전통적이지 않은 한국 요리. 조셉 리저우드 셰프의 에빗에서는 지금까지 맛볼 수 없던 또 다른 한국의 맛을 경험할 수 있다.

에빗의 오리 요리. 합천에서 공수한 오리를 10일 동안 드라이에이징한 뒤 숯불에 구웠다. 산사나물 열매로 만든 퓨레와 슬라이스한 반시를 곁들였다.

에빗의 다이닝 공간. 한국적인 뉴트럴한 컬러 톤에, 오방색 중 ‘창조’의 의미를 지닌 푸른 컬러를 포인트로 사용했다.

카메라를 보고 웃음 지어 보이는 셰프 조셉 리저우드.

2024년 하반기 방영한 넷플릭스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서 시선을 사로잡은 장면 중 하나는 호주 출신의 조셉 리저우드 Joseph Lidgerwood 셰프가 태극 문양의 부채를 들고 장어를 훈연하는 장면이었다. 한국말이라고는 전혀 하지 못할 것 같아 보이던 그가 2라운드 배틀에서 선보인 요리는 ‘담백한 바다 장어’. 바다 장어를 약주에 끓인 다음, 복분자주 글레이즈를 바른 후 사과나무 숯불에 구운 음식이다. 비록 경쟁 상대와의 약소한 차이로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지 못했지만, 한국 식재료에 대한 셰프로서의 지식을 증명하기엔 충분한 순간이었다. “보통 외국 출신의 셰프가 한국에 오면 자국 음식을 요리할 것이라 생각하는데, 저는 한국의 식재료로 한국 요리를 하니 많은 분이 호기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그런 그가 ‘인생 요리’로 겨루는 라운드에 진출해 선보이고 싶었던 음식은 메주 도넛. 찹쌀과 메주 가루로 만든 반죽 안에는 캐러멜라이즈 크림이 들어 있다. 도넛 위에는 흑마늘 퓨레와 멸치 달고나, 오메기떡으로 만든 흰색 토핑이 올라간다. 이는 전통적인 한국 식재료를 활용한 동시에 ‘단짠’ 문화를 즐기는 한국인의 입맛까지 고려해 개발한 메뉴다. “디시를 개발할 때, 식재료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화와 역사까지 고려해가며 만들어요. 호주에서는 고기와 같은 짠 음식과 설탕을 같이 먹지 않는데, 이런 ‘단짠단짠’은 한국의 문화를 잘 반영하기도 하잖아요.”

플레이팅에 집중하는 조셉 셰프의 모습.

프라이빗한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

레스토랑에서 직접 절인 절임 메뉴.

조셉 셰프의 한국 식재료에 대한 관심은 2016년에 전 세계를 돌며 팝업 레스토랑을 하던 ‘원 스타 하우스 파티 One Star House Party’의 일환으로 한국을 방문하며 시작됐다. 팝업 레스토랑을 운영하기 전 호주와 영국, 미국 등 저명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느낀 점은 이 국가들의 식재료가 너무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캐비어, 트러플 같은 고급스러운 재료만 사용한다는 것. 어쩌면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의 특성상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처음 한국에 방문했을 때 한국 식재료에 더욱 끌릴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같은 재료이지만 손질하고 요리하는 방식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음식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한국 식재료가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는 가능성 때문이에요. 한 가지 재료로 여러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풍부하잖아요. 이 재료는 이 방식으로만 쓰여야 한다는 관념을 따르는 대신, 일부러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려 노력하기도 하죠. 물론 제가 여기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익숙지 않은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이게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전통적인 한국의 방식을 따르지 않기에 창의성을 더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흑백요리사>의 심사위원이던 안성재 셰프는 그에 대해 “한국 셰프는 생각할 수 없는,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을 다른 각도로 바라본다”고 했다. 물론 외국인에게는 익숙지 않은 식재료를 연구하고 색다른 요리로 개발하는 데에 어려움이 따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지난 몇 년간 메뉴 개발에 애를 쓰다 마침내 2024년 겨울 출시한 으름 메뉴가 그 대표적인 예다. 으름은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만 볼 수 있는 야생 과일인 만큼 흥미로운 동시에 어려웠던 재료다. 그 지난해에도, 지지난 해에도 도전했지만 결과에 만족하지 못했는데, 드디어 2024년 말 또 다른 방법을 시도한 끝에 성공했다. 그렇게 탄생한 에빗의 으름 메뉴는 얼핏 보면 달걀찜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푸아그라 파르페에서 형식을 착안했다. 함께 서빙되는 밤 와플에 얹어 먹으면 풍부함과 동시에 기분 좋은 씁쓸함이 입안을 채운다. 모든 식재료가 그렇듯 제철 기간인 2~3주 동안밖에 선보이지 못하지만, 셰프로서 의미 있는 성취였다.

에빗의 내부는 한국의 항아리, 옹기, 방짜에서 영감을 받아 유기적이고 곡선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창의적인 레시피는 지방의 원산지를 돌며 식재료를 채집하거나, 농부와 양식업자들에게 이야기를 들으며 얻는 영감에서 탄생한다. 실제로 조셉 셰프는 한 달에 두세 번은 꼭 제철 식재료를 공수하러 전국 방방곡곡으로 향한다. “최근엔 굴 메뉴를 개발하기 전, 한국의 야생 굴에 대해 배우기 위해 태안으로 향했어요. 그곳에서 직접 굴과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 굴이 서식하는 장소도 두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물론 그냥 박스로 배송받으면 저도 편하지만, 그게 흥미롭지는 않잖아요. 제가 한국 출신이 아니다 보니 식재료에 대한 더 많은 정보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2주 전엔 유자를 공부하러 여수 유자축제에 다녀왔고, 송이버섯을 채집하러 영양에 가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식재료에 대한 지식은 아직 초보자라고 생각해요. 쓰고 싶고, 개발하고 싶은 식재료들이 여전히 너무 많아요. 지금도 일주일에 한 메뉴씩 개발 중입니다.” 현재는 모과로 담근 김치를 개발 중인데, 모과의 영어 단어 ‘퀸스 Quince’와 김치를 합성해 ‘퀸치’라는 이름을 미리 생각해뒀다며 웃음을 보인다. 전국에서 직접 식재료를 공수해오는 덕분에, 에빗을 방문한 외국인 손님들은 간접적으로나마 한국의 여러 지방을 여행한 듯하다는 피드백을 주기도 한다.

‘인생 요리’로 선보이고 싶었다는 메주 도넛.

레스토랑에서 직접 말린 반시.

한치를 주재료로 한 물회. 신안에서 나는 이끼의 일종인 바위옷으로 젤리 식감의 묵을 만들어 올렸다.

2019년 처음 문을 연 에빗은 오픈 1년 만인 2020년 미쉐린 1스타를 받은 뒤 지금까지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어느덧 운영 7년 차를 맞이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2025년 새해 계획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계속해서 한국 음식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유명세를 얻고 안정되면 이제는 좀 살살 해도 된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저는 계속해서 최고의 레스토랑을 만들기 위해 나아가고 노력할 겁니다. 여전히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고, 탐험하고 싶은 분야가 너무 많아요. 좋은 셰프는 레스토랑을 처음 시작한 이유를 항상 상기하고 초심을 잃지 않는 셰프라 생각해요. 저는 한국 식재료에 대해 파고들고자 에빗을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저 자신과 음식에는 항상 진솔할 거고, 그 과정에서 재미를 잃지 않을 거예요.” 레스토랑의 이름 ‘에빗’은 대대로 물려 받는 가족의 미들 네임이다. 요리에 대한 자신의 배움과 지식을 전수하려는 마음에서 이를 사용했다. 실제로 에빗의 직원 중 30%는 외국인 셰프다. 노르웨이, 프랑스, 이탈리아 등 각국에서 수준 높은 셰프들이 한국 식재료와 음식에 대한 애정만으로 한국행을, 그리고 에빗을 택했다. 이들의 지식과 열정은 에빗을 통해 전개되고 확장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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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그래퍼

임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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