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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의 계절은 더한옥헤리티지의 식탁 위에서 가장 선명해진다. 한옥과 계절, 지역 식재료가 한 줄기로 이어지며, 라온재에서 시작한 회복의 여정은 식탁에서 완성된다.

더한옥헤리티지의 프라이빗 빌라 영월종택의 복도.
레스토랑의 통창으로 보이는 테라스와 계절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정자.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자연을 여행하는 일이 도시의 ‘악’을 씻어내는 필수 해독제라고 말했다. 실제로 산업혁명이 본격화된 18 세기 후반, 영국의 도시 거주자들이 시골의 온천과 호수를 여행하기 시작 했다. 이는 몸과 영혼의 회복을 위해 자연으로 향하는 지금 우리 모습과 다 르지 않다. 영월은 그런 여정에 잘 어울리는 목적지다. 동강과 서강이 굽이 치며 산자락을 감싸 안고, 안개가 걷히는 아침이면 겹겹의 능선이 수묵화 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이 풍경 속 문개실 마을에 더한옥헤리티지가 있다. 지난 8월, 더한옥헤리티지는 쉼에 대한 한옥의 오랜 지혜를 현대적인 언어 로 재해석한 웰니스 공간 ‘라온재’를 공개했다. 온전한 회복을 향한 여정에 완성도를 더하는 소중한 레이어 하나를 쌓아올린 셈이다. 한옥의 고즈넉한 처마 아래로는 아득히 펼쳐지는 인피니티 풀이 자리하고, 깊은 이완을 선 사하는 프라이빗 스파와 웰니스 라운지가 단정하게 숨을 고른다. 그 곁으 로 한식 파인다이닝 ‘몬토 MONTO’, 올데이 다이닝 ‘나무 NAMU’, 그리고 호젓한 회포를 나누는 바 Bar가 어우러져 미식의 즐거움을 더한다. 이 곳에서의 식경험은 영월의 너른 품에서 자란 제철 식재료와 정성이 더해져 방문객의 숟가락 끝에서 만개한다. 마당을 스치는 바람과 처마 끝의 풍경 이 입안의 풍미와 포개어지며 시각과 미각이 동시에 깨어나는 순간. 단순 한 한 끼를 넘어 영월의 숨결을 고스란히 맛보는 미식의 여정이 고요하게 펼쳐진다. ‘즐거운 울림이 머무는 곳’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곳에서의 시 간은 지친 마음의 결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오래도록 깊은 여운을 선사한 다. 18세기 여행자들이 자연의 품에서 갈구했던 영혼의 평온. 어쩌면 이 고 요한 공간에서 누리는 감각의 충만함이야말로 그 답이 아닐까.

바 테이블이 보이는 레스토랑 몬토.

신동민 총주방장은 약 8년간 일식을 했고, 도쿄에서 2년 가까이 일했다. 이후 SM엔터테인먼트 외식사업부에서 약 10년간 여러 외식 사업으로 그 관심과 전문성을 넓혔다. 2025년 봄 더한옥헤리티지에 합류해 한식 파인다이닝 몬토, 올데이 다이닝 나무, 바, 라온재 풀사이드, 인룸 다이닝, 독채 프라이빗 다이닝까지 이곳의 식탁 전체를 총괄한다.

더한옥헤리티지 음식 총괄 신동민 총주방장.

서울이 아닌 영월을 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입사 전에 조남희 부사장님과 두 차례 이야기를 나눴는데, 제가 생각해온 음식의 방향과 더한옥헤리티지가 만들려는 경험이 많이 맞닿아 있었어요. 부사장님은 “럭셔리의 가치는 가격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정성과 시간에 나온다”고 하셨죠. 한옥과 자연, 지역 식재료와 한국의 식문화를 하나의 경험으로 잇는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영월에 온 건 큰 결심이 필요했는데요. 인프라가 갖춰진 서울과 달리 무척 막막하게 느껴졌거든요. 하지만 처음부터 하나씩 기반을 만들고, 팀을 꾸려 지금의 모습을 갖춰가는 과정을 함께했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일반 레스토랑과 이곳의 식경험 기획은 무엇이 다른가요? 일반 레스토랑에는 한 끼를 먹으러 오지만, 여기서는 숙박과 공간, 음식이 하나의 여정으로 이어집니다. 해외 손님은 2~3박 이상 머무는 경우가 많아서, 매 끼니가 비슷해지지 않도록 공간마다 역할을 나눴어요. 나무의 점심은 ‘영월을 맛보는 한 끼’이고, 저녁이 되면 몬토가 되어 영월의 제철 식재료를 정제된 코스로 경험합니다. 라온재 풀사이드에서는 수영 뒤에 가볍고 시원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바에서는 한식과 양식을 자유롭게 푼 K-타파스를 냅니다. 연박 고객들은 여러 끼니를 이곳에서 경험하기 때문에, 매번 코스 요리를 드시기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한식을 경험하실 수 있도록 풍성한 한상차림도 마련했어요.

레스토랑 나무의 조식. 감자밥과 시래기 토장국, 해산물 숙회, 영월의 산초 두부와 어수리 나물, 병어전 등 13종 반찬과 직접 만든 명란 소금, 매실 고추장, 옥수수 강된장 등 소스 5종.

한옥이라는 공간이 메뉴를 설계할 때 영향을 주기도 하나요? 한옥에서는 음식을 공간과 떼어 생각하기 어려워요. 손님은 식탁에 앉기 전에 계절 따라 바뀌는 마당과 정원을 지나오니까요. 서울에서는 완벽한 요리 한 접시가 통했다면, 여기서는 전체가 어우러져야 합니다. 그래서 음식이 공간과 경쟁할 만큼 화려하지 않도록 맛과 형태, 색감과 여백을 함께 고민해요. 영월은 계절이 뚜렷해서 봄에는 산나물, 여름에는 옥수수와 참외, 송어, 가을에는 버섯이 좋습니다. 그 재료를 따라가다 보면 한옥 밖의 계절이 저절로 식탁 안으로 들어와요.

더한옥헤리티지가 지향하는 맛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화려함보다 재료가 먼저 느껴지는 음식이에요. 저는 이걸 ‘직선적인 맛’이라고 불러요. 좋은 더덕이라면 숯불에 굽기만 해도 더덕의 향과 식감이 분명해야 하고, 좋은 나물이라면 조금 심심하더라도 나물 자체의 향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양념이 센 음식은 즐기지 않아요. 재료를 많이 쓰거나 비싼 재료를 쓴다고 좋은 요리가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 재료의 가장 좋은 순간을 찾아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그 맛을 얼마나 정확하게 보여주느냐가 중요해요. 한식의 뿌리와 이유는 지키되, 방식은 자유롭게 가져갑니다. 예를 들어 한입 크기의 오색 꼬치 화양적 위에는 다시마에 절인 단새우를 올려요. 일식에서 익힌 기법을 활용하되, 한식의 재료와 조화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재해석한 것이죠.

디너 코스의 시작을 알리는 완두콩을 갈아 만든 소스로 만든 면 아뮤즈 부쉬. 무늬 오징어 경단, 웅피 조개, 화양적, 메밀전병과 송어, 당나귀 고기로 맛든 육포까지 맛볼 수 있는 9종 전채.

그렇다면 식재료를 고르는 기준이 무척 까다롭겠네요. 첫 번째 기준은 제가 직접 먹어보는 겁니다. 누가 좋다고 추천해도, 먹어보고 제 음식과 결이 맞는지 확인하기 전에는 쓰지 않아요. 같은 품종, 같은 산지라도 생산자와 재배 환경에 따라 맛이 다르거든요. ‘영월 재료니까 쓴다’는 방식도 지양합니다. 왜 이 재료가 영월에서 좋은지, 지금이 가장 맛있는 때인지부터 봐요. 몬토의 첫 상인 9종 전채도 여기서 출발했어요. 지금 영월의 계절과 몬토가 가는 방향을 첫 상에서 보여주고 싶었죠. 그러다 보니 계절이 바뀌면 구성도 자연스럽게 바뀝니다. 메뉴는 최소 두 달에 한 번, 바빠도 분기마다 한 번은 꼭 바꿔요. 저는 재료부터 정하는 편이에요. 처음 보는 재료에 꽂히면 무조건 다음 메뉴에 넣고, 쪄보다 실패하면 굽고, 그래도 안 되면 조려 봅니다. 9종 전채의 경우 아홉 가지를 새로 짜야 하니 가끔은 “다섯 가지였으면 좋았을걸” 하고 농담도 합니다.

가장 애착이 가는 메뉴는 무엇인가요? 먼저 영월나물 구절판이에요. 영월은 일교차가 커서 나물의 향이 선명하고 은은한 단맛이 있어요. 그래서 양념을 더하기보다 나물 자체의 맛을 먼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나물마다 성게나 꽃게살을 조금씩 올려 서로 다른 감칠맛을 느낄 수 있게 했어요. 나물은 영월 장터의 나물 전문 가게에서 직접 고릅니다. 코스에 나물이 나오면 소박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나물이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다”, “나물마다 향이 다 다르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말린 나물만 쓰면 신선함이 떨어져서, 이 메뉴는 가을까지만 낼 생각입니다.또 하나는 민어 만둣국이에요. 여름에 가장 좋은 민어를 구이나 회가 아니라, 한국인에게 친숙한 만둣국으로 풀어보고 싶었어요. 민어는 손질한 뒤 척수와 핏물을 빼고 사흘간 건식 숙성합니다. 마르면서 기름이 올라오는데, 사흘이 딱 적당하더라고요. 살은 만두소로 쓰고, 생선만 쓰면 비릴 수 있어 돼지고기와 고사리를 섞어요. 머리와 뼈, 자투리 살로는 육수를 냅니다. 민어 한 마리를 거의 버리지 않고 한 그릇에 담은 셈이죠. 만두피는 직접 빚는데, 칡전분을 조금 넣어 쫄깃함을 더했어요. 대부분의 요리는 팀에 맡기지만 이 육수만은 제가 불 앞을 떠나지 않아요. 비린 향을 잡으려면 끊임없이 거품을 걷어내야 하거든요. 오래전부터 선후배들이 “네 생선 육수가 제일 맛있다”고 말해줬던 것도 이 메뉴를 만든 계기가 됐어요.

 9가지 나물과 민어 만둣국.

그릇과 테이블 세팅은 어떻게 정했나요? 원칙은 하나였어요. ‘음식보다 튀는 그릇은 쓰지 말자’ 장식적인 기물보다 나무와 흙, 돌에서 느껴지는 질감과 차분한 색을 좋아합니다. 몬토의 기물은 도예가 김선미 작가와 함께 만들었는데, 디자인에만 3개월 넘게 걸렸어요. 일산 공방을 오가며 샘플에 음식을 담아보고 규격을 고치기를 반복했죠. 한 메뉴만 담고 말 그릇이 아니니, 여러 음식을 담았을 때 생기는 여백까지 계산해야 했거든요. 9종 전채 기물은 더한옥헤리티지 로고이기도 한 한옥의 창호를 모티프로 가져왔습니다. 조식 유기는 유기 공방에 따로 맡겼어요.

호텔이니만큼 고객과의 최접점인 서비스에도 정성을 들이셨겠지요? 식사 전체가 끊김 없이 이어진다고 느끼게 하는 거예요. 어떤 음식 뒤에 가벼운 음식이 와야 하는지, 온도와 맛의 강약, 다음 접시까지의 간격, 설명은 어디까지 할지를 계속 고민합니다. 열 가지 음식이 1분씩만 늦어도 손님은 10분을 기다리게 되잖아요. 흐름이 끊기면 음식의 감흥도 반감돼요. 그래서 저는 거의 매일 홀에 나와 손님에게 직접 메뉴를 설명하고, 음식이 나가는 타이밍을 지켜봅니다. 다만, 식사 내내 많이 설명하고 개입하는 게 좋은 서비스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필요한 순간에는 정확하게 챙기되, 손님이 대화와 음식, 공간에 집중할 수 있게 한발 물러나 있는 것도 중요합니다.

해외 손님들도 경험할 한식이라는 점을 유의해 코스에 반영한 부분이 있나요? 저는 한식의 본질을 ‘재료와 시간, 그리고 함께 먹는 문화’라고 생각해요. 장, 김치, 장아찌처럼 시간이 맛을 만드는 음식이 많고, 한 상에 여러 반찬을 놓고 나눠 먹는 문화도 중요하죠. 한국 사람들이 계절과 재료를 소중히 여기고, 시간과 정성으로 맛을 만들고, 그 음식을 함께 나눈다는 걸 느꼈으면 합니다. 몬토에서 9~10가지 코스를 드신 손님들이 “보통은 뒤로 갈수록 물리는데, 여기서는 끝까지 편안했다”고 할 때 가장 기뻐요. 배가 부르다는 느낌보다 ‘참 좋은 시간을 보냈다’는 기억이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의 쌈을 모티프로 한 채끝등심과 안창살 스테이크 위에 올린 잎새버섯.
기와 모양의 흑임자 아이스크림, 매일 밤의 달 모양을 그대로 옮긴 한라봉 젤리, 토마토와 더덕을 이용한 정과

‘좋은 요리’란 뭘까요? 처음에는 레시피를 정확히 지키는 게 잘 만든 요리라고 생각했어요. 생각이 바뀐 건 일본에서 케이지 마토바 KeiJi Matoba 셰프에게 배우면서예요. 아만 AMAN 그룹이 각 지점을 오픈할 때마다 참여하며 총괄 셰프들을 교육해주던 분인데, 오늘 손님이 맛있게 드신 요리도 다음날이면 조리법을 바꿨어요. 같은 재료라도 그날의 상태가 다르니, 레시피보다 눈앞의 재료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거였죠. 처음엔 놀랐는데, 실제로 맛이 조금씩 계속 좋아지더라고요. 지금은 저도 후배들에게 레시피에 의존하지 말고 감각을 키우라고 말합니다. 한입 크기가 3cm라면, 자를 대지 않아도 눈으로 3cm를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고요. 몬토에서도 같은 메뉴를 늘 똑같이 만들지 않고, 그날 들어온 재료에 따라 조리 시간과 간을 조금씩 조정해요. 정해진 답을 정확히 만드는 것보다 더 나은 답을 찾아가는 게 중요해졌습니다.

더한옥헤리티지의 식경험을 책임지면서 꼭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이고, 또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지켜야 할 것은 ‘이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음식’이에요. 서울에서 반응이 좋았던 메뉴를 그대로 가져오는 건 의미가 없어요. 더 깊이 파고들고 싶은 건 한식의 기본, 특히 장과 김치, 발효와 저장 음식입니다. 지금도 직접 장을 담그고 장아찌를 배우고 있는데, 숙성 냉장고의 장아찌가 어느새 60가지쯤 됐어요. 장아찌는 투숙객에게 작은 병에 담아 선물로도 드립니다. 지금 맛있는 복숭아를 겨울에도 맛볼 수 있게 저장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생산자들과도 더 가까워지고 싶습니다. 최근 인근 농가에서 씨 없는 포도를 맛보고 직접 거래를 제안했는데, 그 농가는 보름마다 가장 맛있는 품종으로 바꿔서 보내줘요. 어떤 재료가 언제 가장 좋은지 누구보다 잘 아는 생산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부터가 요리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농가와 함께 영월의 식재료를 발굴하고, 장과 발효 분야의 장인들과도 협업하고 싶어요. 영월의 재료와 그걸 키운 사람, 요리하는 사람, 한옥이라는 공간이 함께 만드는 ‘영월에서만 가능한 음식 문화’가 제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