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인디신에서 활동하며 언더그라운드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는 인디 밴드 페이션츠의 베이시스트 조수민을 만났다. 음반사의 대표이기도 한 그의 집은 인디 밴드에 대한 편견을 시원하게 깨뜨렸다.
1 베르너 팬톤의 미러 스컬처가 눈에 띄는 조수민 대표의 주거 공간 겸 작업실 . 각종 음악 장비들이 어우러진 에너제틱한 공간이다. 2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 포르나세티의 스툴. 집을 꾸미면서 망설임 없이 구입한 가구다.
그룹 페이션츠 Patients의 베이시스트이자 스틸 페이스 레코즈 Steel Face Records라는 음반 레이블을 이끌고 있는 조수민 대표. 사람은 누구나 하나쯤은 아픈 상처를 품고 있는 법. 자신들의 음악을 통해 나아지길 바란다는 마음에서 그룹명을 환자, 즉 페이션츠로 정했다. 그런데 그가 사는 집 겸 작업실에 들어섰을 때 사소한 편견 하나가 사라졌다. 인디 밴드 멤버의 집은 어두운 벽면에 그래피티가 현란하게 그려져 있고 거친 느낌의 악기와 장식이 있는 공간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편견을 비웃듯 조수민 대표의 집은 그 어느 집보다 아늑하고 따뜻했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했어요. 졸업 후 건축사무소에서 근무하기도 했죠. 하지만 대학생 때부터 푹 빠져 살았던 음악을 놓을 수가 없었어요. 뭐든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한단 걸 알았죠. 건축과 음악 중 좀 더 하고 싶은 일을 고르라면 단연 음악이었기에 건축을 포기했습니다. 물론 건축 실무도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조수민 대표는 건축의 끈을 놓으면서 아쉬운 마음을 이 집에 쏟아부었다. 홍대 인근에 위치한 빌딩 제일 위층에 자리한 그의 집은 작업실과 침실, 부엌이 공존하는 그만의 세계다. 하나로 트여 있는 공간에 가벽을 세워서 안쪽에는 침대를 두었고 거실에는 작업 책상과 각종 악기를 두었다. 평상시에는 슬라이딩 도어로 가려 벽처럼 보이지만 문을 열면 세탁기부터 싱크대, 선반 등이 나오는 일자형 부엌도 철저히 집주인의 생활 패턴에 충실하게 실용적으로 꾸몄다. “여기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편안한 수면 공간과 취사를 위한 부엌 정도는 필요했어요. 그러나 거실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부엌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일자형으로 공간을 나누고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해 산만해 보이는 내부를 가렸죠.” 조수민 대표는 이 공간을 자신의 생활에 맞게 직접 디자인했고 지인에게 소개 받은 LKSA의 이근식 대표에게 시공을 의뢰했다.
1 집에 악기가 많아서 가구는 투명하거나 색깔이 없는 것으로 고른다. 2 가벽을 세워 침대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공간으로 마련한 침실. 작업이 많거나 공연 중일 때는 이곳에서 잠을 잔다. 3 공연을 할 때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는 조수민 대표.
공간을 채우고 있는 가구도 남달랐다. 포르나세티 스툴, 베르너 팬톤의 벽 오브제 ‘미러 스컬처 mirror sculpture’, 나무로 만든 로 테이블, 루이고스트 의자 등 건축을 공부하며 체득한 자신의 심미안에 충실한 가구와 소품을 두었다. “건축을 그만두면서 집의 가구나 소품에 아낌없이 투자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격대가 높은 편이어도 아까운 마음이 들지 않았죠. 그중 포르나세티 제품을 제일 좋아해요. 악기나 음악 장비들이 많기 때문에 가구는 되도록 간결한 것으로 골랐어요.” 각종 악기와 장비들이 대부분 유광이고 색깔이 강한 점을 고려해 가구는 거의 색깔이 없거나 투명한 것으로 구비했고 나름대로 고요한 존재감을 발하고 있다. 곡선을 그리고 있는 창가의 새시도 깔끔하게 새로 설치한 후 그 위로 햇빛을 부드럽게 걸러주는 면 커튼을 달아서 포근한 공간이 됐다. 연주를 기다리는 반짝이는 악기들과 미드센트리 시대의 테이블이 어우러진 분위기도 천편일률적인 인테리어 공식에 따르지 않아 더욱 신선하다.
1 그간 진행한 페스티벌이나 공연 엽서도 벽에 붙여두었다. 2 밴드 멤버들의 악기도 집에 보관하고 있다. 언젠가 인디 밴드들이 마음껏 공연할 수 있는 공연장을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다. 3 벽에 걸린 그림은 조수민 대표의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주신 콜라주 작품이다. 4 건축학도의 길을 걷다가 좀 더 좋아하는 음악 쪽으로 삶의 방향을 전환한 조수민 대표는 밴드 페이션츠의 베이시스트이자 스틸 페이스 레코즈의 대표이기도 하다.
“이 건물 옥상에서 공연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저희 집은 연주자들이 공연 전에 대기하고 쉬기도 하는 공간이 되죠. 그럴 때 참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요. 언젠가 인디 밴드가 마음껏 공연할 수 있는 작은 공연장을 만들고 싶거든요.” 조수민 대표는 그가 소속된 그룹 페이션츠와 함께 영국 투어를 앞두고 있다. 작년에 런던 리버풀 등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후 록의 종주국에서 관객들이 보여주는 열띤 반응에 매료되어 올해 한 번 더 계획한 공연이다. ‘스틸 페이스 레코즈’라는 레이블명은 얼굴에 철판을 깐 것처럼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신나게 공연을 즐기는 그의 모습에서 기인한 것. 조수민 대표는 이 공간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넓고 거친 음악의 바다로 항해를 이어갈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전공을 살려 인디 밴드들의 성지가 될 공연장을 설계하고 있을 그를 다시 만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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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신진수 | 포토그래퍼 임태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