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것을 좋아하는 남편과 아내의 취향이 녹진히 배어든 효자동 한옥은 작지만 풍요롭고, 거창하지 않지만 근사하다. 좋은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며 게으른 쉼이 있는 효자 라운지만의 풍류를 즐기는 법을 소개한다.

나무 소재로 만든 제작 가구가 대부분이다. 벽에 제작된 수납장 문을 열면 TV가 나타나며, 제작한 패브릭 커튼은 욕실로 이어지는 공간을 자연스럽게 분리하는 역할을 한다.
유독 아파트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한옥과 주택살이에 대한 로망은 누구나 한 번쯤 가져봤을 것이다. 배은, 김상주 부부의 한옥도 이러한 막연한 꿈에서 시작되었다. 3년 전 100년이라는 세월을 품은 효자동의 작은 한옥을 부부만의 공간인 ‘효자 라운지’로 새롭게 탈바꿈시켰다. “남편과 저는 좋은 곳에 있을 때 행복해요. 그래서 오랫동안 손길이 닿지 않은 100년 된 한옥이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공간으로 바꾸자고 결심했죠. 아파트는 정해진 틀이 있는데, 주택도 그렇고 한옥은 집을 바꾸는 재미가 있어요. 이 집에 처음 들어왔을 때 집 자체가 하나의 인격처럼 느껴졌어요. 그리고 땅과 가까이 지내다 보니 마치 뿌리를 내린 것 같았어요.” 아내 배은 씨의 설명에는 집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집에 대한 부부의 남다른 관심은 대문 앞에 붙인 나무 명패에서도 알 수 있었다. 광고회사의 디자이너인 남편과 카피라이터인 아내가 합심해 집의 이름을 ‘효자 라운지’로 짓고 그에 맞는 로고를 제작해 명패에 새긴 것. 게으를 라 懶에 운치 운 韻, 땅 지 地를 써서 게으르고 운치가 있는 편안한 공간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

침실의 미닫이문을 열면 거실과 이어진다. 아내 배은 씨와 딸 시와 그리고 남편 김상주 씨의 행복한 일상.
“신기한 것은 결혼하고 아기가 없었는데, 이 집에 들어오고 한 달 만에 딸 시와가 생겼어요. 우연이겠지만, 오래된 집을 고쳐주면 복이 들어온다는 말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시와가 선물이에요(웃음).” 아내의 설명을 듣고 보니 집 안 구석구석을 누비는 17개월 된 시와는 이 집과 오랫동안 함께한 듯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가족은 현재 근처 빌라에서 살며 이곳을 세컨드 하우스처럼 활용하고 있지만 주말마다 여행하는 기분으로 한옥에서 휴식을 취한다고. 드르륵 문 여는 소리가 정겨운 시와네는 작은 것이 주는 매력으로 풍성하다.

집 안에 들어서면 아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엌을 마주한다. 부부의 살림에 꼭 맞도록 나무로 제작한 수납장과 정사각형 아이보리 컬러의 타일을 더해 흥미롭다.
“작아도 우리 취향만 녹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답답함은 없고 오히려 집 안 곳곳이 제 손에 닿으니, 작게 살아도 되는구나 생각했어요.”

곳곳에 작은 소품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선물 받은 고드레와 아내가 구입한 원숭이 훅, 패브릭이 아기자기하다.

을지로에서 직접 구매한 빈티지 스위치.
작지만 충분한 15평
“작아도 우리 취향만 녹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답답함은 없고 오히려 집 안 곳곳이 제 손에 닿으니, 작게 살아도 되는구나 생각했어요.” 한옥의 전반적인 리모델링은 건축 설계사 지랩에서 디자인하고, 그리즈에서 시공했다. 15평의 작은 평수임에도 불구하고 효자 라운지가 넓어 보이는 이유는 공간 구획과 숨은 수납 그리고 조도를 위해 곳곳에 낸 창문에 답이 있었다. 딱 필요한 공간으로만 구획을 최소한으로 하고 침실은 미닫이문을 설치해 문을 열어두었을 때는 거실과 이어져 확장될 수 있게 했으며, 주방은 거실과 단차를 주어 분리했다. 이는 거실에 마루를 둔 것 같은 효과를 내는 동시에 아래로 내려와 요리를 했던 옛 한옥에서의 라이프스타일을 연상시킨다. 특히 리모델링을 할 때 부부가 우선순위로 여겼던 조도를 위해 기존에 창고로 쓰이던 곳을 현관으로 바꾸고, 거실 한쪽 벽면을 통창으로 뚫어 개방감을 준 것도 집 안을 넓어 보이게 만드는 큰 역할을 한다. 부엌에도 상부장 대신 창을 내고, 위로는 천창을 내 색다른 재미가 있다. 작은 집의 가장 큰 난제인 수납도 깔끔하게 해결했다. 거실 한쪽 벽면에는 벽처럼 보이지만 붙박이장으로 만들고 자투리 공간도 수납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 덕에 집 안에는 식탁과 홈 오피스를 위한 책상 말고는 큰 가구가 없다. 결국 집 안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은 부부의 취향이 담긴 소품이었다.

할머니 집에 온 듯 부엌과 침실을 이어주는 창문이 정겹다.

부엌에서 바라본 거실. 최근 교체한소파의 커버 컬러가 포인트 역할을 한다.
소품으로 완성한 공간
“이 집의 재미는 작은 것들이에요. 아내와 제가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고른 것들로 이 작은 집을 채웠어요.” 부부가 직접 을지로를 다니며 발품을 팔아 구매한 스위치나 문 잠금쇠가 공간을 더욱 풍요롭게 채우고 있다. 주방에 걸린 도구부터 커튼과 같은 패브릭까지 어느 하나 어긋나는 것 없이 아기자기하게 조화를 이룬다. “오히려 작은 것이 분위기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작은 것 하나를 구매할 때도 많이 고민해요.” 아내의 이런 정성 덕분에 부부의 집에는 반짝거리고 빛나는 것보다는 손때가 묻은 것들로, 소박하지만 의미 있는 물건들로 채워져 따스함이 깃들어 있었다. “오래된 것의 가치와 멋이 있어요. 광고회사에서 일하기 때문에 트렌드에 민감하다 보니 반대로 일상에서는 클래식함을 추구하는 것 같아요. 오래 봐도 질리지 않고요. 유럽만 봐도 고택을 조금씩 고치며 살잖아요. 한옥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남편 김상주 씨가 덧붙다. 부부의 집은 큰 가구 없이, 소소한 디테일만으로도 자신들의 취향을 집 안에 물들일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욕실은 반신욕을 할 수 있는 욕조와 샤워부스, 변기로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부엌 한쪽 벽면에 뚫려 있는 창문으로 보이는 작은 홈 오피스. 자투리 공간을 활용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현관과 이어지는 통로에는 신발장이 숨어 있으며, 대나무 문 뒤에는 보일러실 겸 창고가 있다. 식물을 좋아하는 남편이 마당의 식물 관리를 담당한다.

나라 요시모토의 작품과 꼭 닮은 시와가 활짝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