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전체를 커다란 캔버스 삼아 그림 그리듯 하나하나 채색했다. 회화 작가 멜로디 박과 남편 장현 씨가 설렘을 담뿍 품고 꾸민 신혼집.
화가에게 정해진 규격의 캔버스에서 벗어나 커다란 공간을 채우는 과정은 얼마나 설레었을까. 벽에 걸린 작품 속 풍부한 색채가 현실로 나와 집 안 곳곳을 물들이고 있는 이곳은 회화 작가 멜로디 박과 남편 장현 씨의 집이다. 새 아파트에 입주한 덕분에 공사 없이 그대로 살까 고민했지만 작품을 돋보이게 할 갤러리 같은 흰 벽이 필요했고 인테리어 시공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남편이 전 공을 살려 전반적인 집의 골격을 재구성했다. 122㎡의 아파트를 채우는 과정은 색에 대한 일가견이 있는 아내의 몫이었다. “주로 평면 페인팅 작업을 해요. 원하는 색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데, 제게 있어 색은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색 자체가 작업의 시작점이며 조형을 이루는 구조예요. 물감을 비롯해 가루, 페이스트, 고체 등의 물질을 입혀 서로 다른 질감으로 색을 표현하는 것을 즐겨요. 집 역시 마찬가지고요. 색과 함께 다양한 소재가 한 공간에서 어우러지기를 바랐어요.” 멜로디 박이 설명했다.
마치 그림을 그리듯 집 꾸미기에 다가간 것. 우선 집의 배경이 되는 페인트색을 세심히 고르고 색과 형태, 소재를 생각하며 가구와 소품을 구입했다. 피트 헤인 에이크가 디자인한 모스 그린과 블루 컬러 암체어를 중심으로 한스 베그너의 빈티지 원목 수납장과 코듀로이 원단을 입힌 겨자색 소파를 배치했다. 그레이 톤의 러그는 통통 튀는 색을 중화시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바닥은 다양한 색을 수용할 수 있는 따스한 원목으로, 디귿자 형태의 주방은 메탈 상판으로 마감해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다이닝 식탁으로 선택한 빈티지 놀 Knoll 테이블 역시 메탈 다리와 원목 상판의 조합이 멋스러워 큰마음 먹고 구입한 것이다. 사실 이 집의 숨은 비밀은 미묘한 차이를 띠고 있는 화이트 벽이다. 블랙 라즈 베리 컬러로 칠한 서재를 제외하고, 모든 벽을 화이트로 마감한 모습. 하지만 결코 모두 같지 않다며 멜로디 박이 방을 둘러보며 설명했다.
“공사를 준비하 면서 종류별 화이트 컬러칩을 매일 들고 다녔어요. 자연광에 비춰보기도 하고 그늘에서는 어떻게 보이는지, 또 밤에는 어떤지 비교해보면서 고심 끝에 고른 거예요. 거실의 화이트는 조금 따뜻한 분위기를 주길 원했고, 스테인리스 조명을 단 침실 한쪽 벽은 완전한 백색이었으면 했어요. 또 하늘색의 대형 작품을 건 벽면은 회색빛이 감도는 화이트여야 했고요.” 컬러에 관해서만큼은 자신이 세운 명확한 기준과 확신에 찬 단호함마저 엿보였다. 이러한 남다른 색 구별 방법은 작가로서 색을 바라보는 작업 방식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저는 작업실 문을 활짝 열어두고 무조건 낮에만 작업해요. 야간 작업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빛이 가장 좋은 시간대에 맞춰 작업하고 자연광 아래에서 색의 미묘한 차이를 발견하는 것을 정말 좋아해요. 밝은 색상일수록 빛이나 외부 환경으로 인해 끊임없이 바뀌기 때문에 전체적인 집의 분위기를 고려하고 그에 맞는 화이트를 선택하려고 노력했어요.” 멜로디 박이 덧붙였다. 이들 부부의 집을 찾은 지인들은 종종 그녀의 그림 안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늘 캔버스에 자신만의 세계를 그려왔다면, 이들의 신혼집은 부부가 함께 완성한 첫 번째 합작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