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 K팝, K푸드를 넘어 디자인과 아트까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서울이 뜨겁다. 시시각각 빠르게 변하는 일상에서 최근 서울에 새로 생긴 다섯 곳을 통해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의 현주소를 엿보았다. 다양해진 개성과 취향으로 틀에 박힌 정형화된 모습을 벗어던지고 브랜드 고유의 가치와 이야기를 자신만의 목소리로 전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철학에 조응하는 취향과 가치관을 중심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는 다양한 공간을 조명한다.

페사드 플래그십 스토어의 오픈 전으로 이광호 작가의 작품과 함께 브랜드의 정체성을 담아 마구간 분위기로 연출했다.
예술가들이 만든 만지는 향기, 페사드
시시각각 변화하는 진부하지 않은 공간 페사드가 해석한 향의 스펙트럼.

플래그십 스토어는 전반적으로 정제되어 있지만, 메인 테이블은 비정형의 형태로 공간에 무게를 잡아줄 수 있도록 의도했다.
창문 너머 밧줄로 감싼 독특한 테이블이 눈길을 끈다. 곳곳에는 다양한 오브제와 아트북이 전시되어 있다. 마냥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곳은 페사드 Pesade의 플래그십 스토어다. 일상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움에서 영감을 받아 조향한 오드 드 퍼퓸을 기반으로 향 제품을 전개한다. 마장마술에서 말을 훈련하는 기술의 하나인 ‘페사드’는 브랜드를 만드는 핵심 키워드다. 패키지 디자인이나 공간의 컬러 선택, 경마장의 바닥을 연상시키는 모래 바닥 텍스처 등 그곳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페사드와 연결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향수와 뷰티 제품을 판매하는 숍을 떠올리면 제품과 이를 진열하는 집기로 구성되지만, 페사드는 이광호 작가의 아트 퍼니처가 있는가 하면 다양한 오브제와 아름다운 화보가 담겨 있는 책이 펼쳐져 있다. 2층은 라운지로 구성되는데, 편안한 암체어와 다양한 가구가 공간을 빛내고 있다. 휴식과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루프톱도 마련되어 있다.

아트북과 함께 작은 라운지로 구성된 2층. 전시 등 다양한 변화가 이루어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단순히 기능적인 역할만 수행하는 숍은 열고 싶지 않았어요. 향을 기반으로 페사드만의 무드를 공간에 표현하고 싶었죠. 이광호 작가의 매듭을 활용한 아트퍼니처를 페사드만의 감성으로 풀어보면 어떨까 싶어 협업했어요. 향이라는 것이 단순히 제품으로 체험하는 것 이상을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특정 시대의 패션과 좋아하던 책의 글귀, 이미지에서 그 시절의 기억과 추억을 떠올리게 되잖아요. 향은 기억이에요. 향을 단순히 텍스트로 설명하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을 전달하고 싶어서 오브제 연출 또한 세심하게 골랐으며, 특정 책의 화보 페이지를 펼쳐놓음으로써 그 향이 시각적으로 와닿을 수 있도록 장치를 만들었어요. 이곳에 더 오랫동안 머물고, 향이 머릿속에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2층에는 책과 함께 작은 라운지를 구성했어요.” 목영교 대표의 말처럼 향을 전달하기 위해 공간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최근 2층에서 이광호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었으며, 다른 작가들과의 전시도 계획 중이다. 때때로 소소한 파티가 열리기도 하고, 재미있는 물건이 펼쳐지는 공간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는 설명도 전했다.

하이엔드 향료로 만든 페사드 향 제품의 이름은 각기 향을 유추할 수 있는 힌트와 같다.
“영화의 클리셰처럼 여느 브랜드와 같이 뻔한 라인업으로 구성하고 싶지는 않아요. 아트와 창작자들과의 접점을 지속적으로 찾기 위해 노력할 예정이고, 이러한 시도가 페사드의 공간에서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주방, MMK
점점 달라지고 있는 우리의 주방 풍경.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나만의 주방을 갖고 싶을 때, 새로운 시각을 선사한다.

MMK의 기본적인 가구 라인인 에센셜 컬러와 나무의 조합으로 완성한 내추럴한 분위기의 주방
박물관에 온 듯 관람하고 매장 입구에 마련된 아카이브 공간에서 하나 둘씩 소품을 구입해 간다. 마치 박물관의 아트숍에서 기념품을 사듯 말이다. 후암동에 위치한 이곳은 ‘우리는 주방 문화를 만든다 We Build Kitchen Culture’는 신념으로 주방 가구부터 작가와 협업해 제작한 도자류와 글라스, 커틀러리 등의 키친웨어를 비롯해 리넨 패브릭까지 주방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전개하는 키친 브랜드 뮤지엄 오브 모던 키친(MMK)이다.

매장 입구 A존에 마련된 아카이브 공간. 이곳에서는 주방에서 사용되는 각종 소품을 만날 수 있다.

트롤리와 모듈 프레임 등 주방 가구와 어우러질 수 있도록 색상을 맞춘 다양한 형태의 가구.

트롤리와 모듈 프레임 등 주방 가구와 어우러질 수 있도록 색상을 맞춘 다양한 형태의 가구.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해 퍼니처 라인을 구입하는 그날까지, 우리의 제품을 하나씩 사모아 언젠가는 꿈꿔왔던 로망을 이룰 수 있게끔 하고 싶었어요. 우리와 같이 나이가 들어가는 거죠.” MMK의 박기민 대표가 입을 열었다. 현재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 라보토리의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가 특별히 주방이라는 특정 분야를 파고든 이유가 궁금했다. “라보토리에서는 대부분의 가구를 커스터마이징해요. 의자와 테이블, 조명, 소품까지도 기성품을 사용하지 않아요. 누군가는 라보토리에서 디자인한 제품으로도 충분히 브랜드를 론칭할 수 있지 않냐고 말해요. 그런데 저한테는 마땅한 명분이 없더군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했어요. 그런 면에서 주방은 10년, 20년도 사용하니까 굉장히 큰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죠.” 박기민 대표가 설명했다.

도예가와 협업해 제작한 도기류.

감각적인 컬러 조합이 돋보이는 에센셜 라인.

빈티지한 감성의 센츄리 라인.
또 그는 환경이 바뀌면 먹는 음식도, 행위도, 사람 간의 관계에도 자연스럽게 변화가 생긴다며 주방의 변화는 그곳에서의 시간이 생겨나는 개념이라고 강조했다. 주방에 대한 그의 확고한 철학은 MMK의 퍼니처 라인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MMK는 가장 기본적인 구성의 ‘에션셜‘ 라인을 비롯해 붙박이 형태와 달리 자유로운 움직임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무빙’ 라인, 미드센트리의 특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모던하게 담아낸 ‘센츄리’ 라인으로 구성된다. 컬러와 소재도 무척 다양하다. 16가지의 감각적인 컬러 시스템과 우드 타입, 매니시한 매력의 메탈 타입까지 다채로운 룩을 연출할 수 있다.

원목과 메탈 조합의 에센셜 라인.
주방의 역할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 있는가? 박기민 대표는 주방의 문화적인 성격이 달라지면서 그 중요도와 레이아웃에도 큰 변화가 찾아왔다며 앞으로의 트렌드에 대해 꼬집었다. “주방은 부정적인 이유로 독립적으로 떨어져 있었어요. 가부장적인 제도하에 밥상머리 예절이 있을 정도였죠.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선입견이 완전히 없어졌죠. 그러면서 주방이 점점 더 집 안에서 가장 중요한 곳으로 여겨지고 있어요.” 이러한 새로운 인식을 바탕으로 가장 먼저 주택의 기본 요소인 거실과 부엌을 통합하여 지칭하는 개념인 LDK(Living Dining Kitchen), 즉 리빙과 주방이 하나로 결합되면서 공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 집 안의 주인공인 거실을 제치고 주방이 남향 쪽으로 나오기 시작했으며, 2~3인 가구가 늘어남에 따라 거실을 대폭 축소하고 방 하나가 늘어나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주방이 많은 공간을 차지해야 할 이유가 없어요. 주방은 다양한 라이프를 위해 배려되어야 하는 공간이죠. 과감하게 크기를 줄이고 책장을 만들어 서재처럼 사용하는 등 다목적 공간이 될 수 있게끔 만들어야 해요.” 미국이나 유럽, 가까운 일본만 봐도 작은 주방에서 다양한 상황이 일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는 천편일률적인 형태의 빌트인에서 벗어나 가구성을 띤다는 것이다. 가족 구성원이 줄어듦에 따라 수납을 줄이고 개인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가구를 선호한다는 것. 주방은 아침에 일어나 물을 마시러 오는 시작점이자 마지막점이고 가장 오랫동안 머무는 장소다. MMK는 단순히 아름다움을 선보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긍정적인 주방 문화를 그려나가며, 우리 머릿속에 깊숙이 박혀 있는 고정관념을 깨트리고 주방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